※ 이 글은 서프라이즈에서 '다리미'란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일리서프라이즈 하승주 경제팀장이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쓴 팀장 칼럼입니다.
최초의 성과
이명박 당선자의 정권인수위는 위풍당당했다.
10조 원을 들여 신용불량자 대사면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으로 철회되었다. 통신요금 20% 인하로 서민들의 생활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시장원리를 무시한 기업에 대한 부당한 압박이라는 지적으로 철회되었다.
통신 과소비를 막기 위해 쌍방향 통신요금제와 통신요금 누진제를 추진하였다. 이는 통신시장의 기본원리도 모른다는 최악의 비난을 받았다. 불법행동을 막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뜬금없는 공안정국 조성기도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바로 철회되었다.
이 모든 정책구상이 모두 실패, 철회, 사과성명으로 망신살이 뻗치던 중, 드디어 성공사례가 나왔다. 무려 2개나 되는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단 3일 만에 뽑은 일이다. 보수언론은 이를 두고 1면 톱기사와 대형사진으로 환호하였다. 기업활동을 돕기 위한 당선자의 세심하고도 강력한 의지는 무려 2개의 전봇대를 뽑아내는 힘이 된 것이다.
전봇대와 법치주의
이명박 당선자의 전봇대 언급 이후, 관료사회는 호떡집에 불이 난 듯 분주했다. 산자부 본부장이 목포로 내려가고, 산업단지공단에 비상이 걸리고, 한전에서도 우르르 대불공단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이 당선자가 이런 공무원들을 이 시대의 걸림돌이라고 비하한 것은 아마 이들도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맞는 지적인지도 모르겠다.)
전봇대 2개를 뽑았다. 언론의 찬사는 이어지고, 관료주의를 혁파하는 개혁의 이미지가 이명박 당선자의 머리 뒤로 어른거린다.
그러나 대불공단의 업주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쓸데없는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업주들은 모를 것이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이 벌어졌는지….
전봇대를 뽑는 일은 지중화 사업을 맡은 한전의 책임이다. 그러니, 인수위에서 공무원을 다그치는 것은 번지수가 잘못되었다. 그것은 한전의 몫이다.
전봇대를 뽑는 비용은 수익자 부담이다. 대불공단의 전봇대 2개를 뽑는 비용은 총 5천만 원이 들었다고 하며, 그 수익자는 공단 내의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다. 그러나 한전이 3천2백만 원을 부담하였다. 원칙은 두 기업이 5천만 원을 부담하는 것이었으나, 당선자의 다그침과 공무원들의 극성으로 한전이 그렇게 비용을 부담하였다. 기업이 불편하다면 기업이 돈을 지불하여 뽑으면 되는 문제였다.
원칙이 무너져 간다. 대통령이 나서서 전봇대 옮기라고 성화를 부리는 일은 체통의 문제도 크지만, 무엇보다 정해진 행정절차를 무시하고서라도 속도를 내라는 ‘닦달’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이다.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것은 당연히 느리게 보일 수도 있고,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스템을 무시한 속도전은 분명히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이제 전국 공단의 전봇대는 심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대불공단의 전봇대만 전봇대인 것은 아니다. 남은 전봇대의 철거비용 원칙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수익자부담의 원칙은 지켜질 수 있는가?
전봇대와 관료주의
이 당선자의 말을 선의에 선의를 더해 해석해 보자. 전봇대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었다고, 공무원사회의 관료주의를 지적한 것이었는데, 보수언론의 호들갑으로 그렇게 부산을 떨며 뽑은 것일 뿐이라고. 이 당선자의 말은 그 절차를 신속히 처리하라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믿어 보자.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관료조직은 '복지부동'이라는 말처럼 태생적으로 수동적인 조직이다. 상급기관의 지시, 각종 법규와 상급기관의 감시·감독기능 등으로 얽매여 있기에 그러하다. 그 관료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참여정부는 5년 내내 혁신을 부르짖었다. 청와대부터 솔선수범하였고, 공무원들의 귀에 딱지가 앉도록 혁신, 혁신 타령을 불러 대었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 측은 전혀 다른 방식이다. 최고권력자가 "전봇대"를 지적하면서 시정을 요구했다. 이렇게 당선자가 직접 공무원을 닦달한 결과는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라는 기업의 코멘트이다.
관료사회의 자율적인 노력을 무시하고 불신상태로 밀어붙인다면 그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바로 "최대한 욕 안 먹도록 일하기"이다. 괜히 열심히 하다가 사고라도 터져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면,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 최상의 방책이 된다. 세상에는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질 것이다.
'저는 작년에 국민들의 가스요금을 3천억 원을 깎았습니다.'
일전 산자부의 가스요금 담당 공무원에게 사석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어떤 언론에서도 그의 활약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였고, 그는 이를 충실히 이행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공무원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비쳤다.
그는 가스회사와 수없이 많은 분쟁을 치렀을 것이며, 숱한 방해를 뚫어야 했을 것이다. 굳이 3천억 원을 깎으려고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별일이 없었을지 모른다. 어떤 분쟁도 없이 깔끔하게 가스요금을 결정하고, 그는 무난히 자리를 보전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이라는 역할모델에 매우 충실했다.
이제 그런 공직사회의 자발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눈에 거슬리는 전봇대 하나가 있으면 최고권력자의 질타가 날아오는 판에,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자기변명술의 연마"밖에 없을 것이다.
이 당선자는 관료주의를 혁파하기 위해 그들을 질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법과 절차를 무시한 막무가내식 질타는 관료사회를 최악의 관료주의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