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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영어하며 살다가 바라본 맹박스의 영어교육 뻘짓

순수한 남자 2008. 1. 25. 21:56
미국서 영어하며 살다가 바라본 맹박스의 영어교육 뻘짓
번호 204659  글쓴이 꿈꾸미   조회 2664  누리 1007 (1007/0)  등록일 2008-1-25 11:45 대문 92 톡톡


한국 상황에서 가장 슬픈 게 뭔지 아는가, 대학 진학률이 80%에 이른다지만 대학을 나와도 여전히 무식하다는 것이다. 박사를 따도 기자질을 해도 여전히 무식하다는 것이다. 마치 "~그래 봐도 160!"을 외치는 개콘의 '키 컸으면' 코너의 허무함 같은 것이다. 그럼 가방끈이 긴데도 왜 무식한가?

대부분의 등용문이 시험으로 되어 있고 어떻게든 그 시험만 통과하면 되므로 자격증 따듯이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뭐 시험이라는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험 만능 사상 때문에 전반적인 교육이 단답식, 암기식 교육으로 치우치는데다 타율적이라 일단 시험이란 관문을 통과한 이후에는 자발적인 자기 발전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 즐거움이 아닌 고통인 사회란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지만,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어서 학위를 따거나 입사를 하는 것이므로 자기 분야는 어떻게든 최소한의 앞가림을 한다 해도 인문적 교양 수준이 너무나 낮기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의 완성과 전반적인 학문이나 사회의 총체적인 수준 향상에는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지식인’이라 불리는 집단의 전반적 '무식함'이 우리 사회의 근본 모순 중에 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어중간한 인간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영어를 못해서 생기는 국가경쟁력 저하인가 보다. 장관이나 사장이나 교수가 되어 외국 사람들과 미팅도 해보고 토론도 해보니 본인을 비롯한 우리 측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 것을 느끼게 되고, 나중에 보니 엄청난 손해와 굴욕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나 보다. 겨우 영어권 친구 몇 명 사귀는 데 필요한 회화가 필요했거나 혹은 영어 못해서 생긴 자존심의 상처 치유를 위해서 국가의 교육정책을 바꾸려는 것은 아닐 테니 결국 영어회화의 지고지순한 목적은 이러한 '이해관계가 걸린 외국인과의 대화에서의 성공'으로 압축될 수 있겠다. 그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나 국가의 이해관계이든 말이다.

일면 이해가 된다. 영어를 잘해서 인도나 중국인, 유대인들처럼 외국(특히 미국)에서 나름대로 인종적인 장벽을 극복하고 사회에서 좋은 자리들을 차지하고 있으면 그것이 개인은 물론이요 그 인적 네트워크가 모국을 위해서도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원인에 대한 분석에는 동의할 수 없다.

흔히들 우리가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나 모임에서 위축되고 소극적이 되는 것은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영어 환경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완전한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현지 회사에 취직해서 회사에도 다니면서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중요한 뭔가가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끼게 되었다.

적극적으로 대화나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언어적 능력뿐만 아니라 지적 능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지적 능력이란 것은 단순한 지식수준이 아니라 총합적 교양을 말한다. 총합적 교양에는 결코 한 인간이 개인적으로 이루어내기 어려운 역사와 문화, 성숙한 사회적 토양에서 자연스레 얻어지는 부분이 크게 자리한다. 거기에는 논리적 정합성은 물론이고 상식 수준, 도덕성 등 철학적 바탕이 삶에 녹아있는 것이다. 소위 그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심어주는 '기본'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미국에 살면서 처음에는 잘 몰랐고 사대주의에 빠지는 것이 싫어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 하다못해 일반 국민들도 엄청나게 말을 잘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나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말의 내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그 언변 속에 녹아있는 유려함은 같은 위치의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말하는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 개인들의 지적인 능력이 동일 수준의 한국인의 것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그것은 '기본'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 차이는 '영어 능력'이 아니라 '모국어 능력'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모국어 회화 능력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고, 그것이 외국어 회화능력 부족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우리가 활발한 토론에서 빠지게 되는 큰 이유는 유교적 문화 탓이 크다. 상하관계가 있고 위계질서가 발달한 사회는 두 가지의 성향을 보인다.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자유롭게 야단칠 수 있다는 점이고, 높은 사람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되고 낮은 사람은 책임을 아예 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거기다가 우리 사회의 특징인 남 눈 밖에 나기 싫어하는 성향까지 결합하면, 내게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그것을 선뜻 입 밖으로 꺼내기가 극도로 두려워진다. 윗사람에게 야단 맞을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야유를 들을 수도 있다. 또 내가 책임질 말을 왜 하는가, 그냥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니 회의를 해도 공허하거나 잘못된 결론, 누군가에 의해 미리 의도된 결론이 나오기 일쑤이니 실무보다는 쓸데없는 '싸바싸바'가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히딩크가 국가대표팀을 맡았을 때 선수 간에 위아래를 없애버린 것은 유명한 일화이고, 그 위계질서 타파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 것인지는 2002월드컵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이런 성향이 바로 우리가 토론이나 회의를 너무나 어렵게 느끼도록 하는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물며 영어로 하는 회의나 토론은 오죽하겠는가. 영어를 못하면 얼마나 쪽팔릴까 하는 두려움이 더해지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겉보기 교육수준에 비해 낮은 교양수준과 유교문화에 의한 과도한 심리적인 압박이 바로 자유로운 토론과 대화가 특징인 영어문화권에서 우리가 뒤처지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위에서 말한 원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년간 턱없이 지독하게 비난받은 이유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했던 이상에 정확하게 반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대통령으로서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야단칠 수 있는 권한을 던져버렸고, 참여정부라며 자꾸만 국민들에게 국정을 고민하게 하고 책임을 나누어지려고 했다. 게다가 그동안 들어 보지 못했던 서민 눈높이의 언행을 보여주는 바람에 사람들(특히 찌라시 기자새끼들)의 눈 밖에 나게 되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나처럼 정확하게 한국 사람들의 약점을 짚었고, 그것을 개선함으로써 국가의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키려고 했었지만 그는 국민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반작용을 극대화 시킨 찌라시들의 농간으로 오히려 한국인들의 굴종적 성향을 만족시켜줄 천박한 이명박의 당선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말을 잘할 수 있어야 잘 배울 수 있고, 배워서 머리에 든 게 있어야 말을 더 잘한다. 첫 번째 말은 당연히 모국어이고, 두 번째 말은 모국어와 외국어다. 그런데 영어로 학교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물론 그동안 말하기 위주의 영어를 배우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어 교사의 회화실력을 늘린다고 해서,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고 해서 영어로 말할 '거리' 즉 '생각'이 늘지는 않는다. 앵무새처럼 잠꼬대는 영어로 하게 될지 몰라도 오히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오는 지적 수준의 저하가 결국은 영어회화능력 수준의 저하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에게 뭔가 얻어낼 것이 있으면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배워서라도 얻어내려 할 것이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우리에게 중요한 생각이 있고 팔아먹을 기술이 있다면 우리가 설사 영어를 좀 못한다 해도 그들이 먼저 어떻게든 알아들으려 한다. 그것이 실제로 외국에 살면서 경험하는 일이다.

그 '무엇'이란 무엇인가? 바로 '좋은 생각'이다. 그 '좋은 생각'이 우리에게 있으면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우는 것이고 그 좋은 생각이 영어로 되어 있으면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것이다. 다시 반복하건대 좋은 생각을 하려면 뭘 알아야 하고 알려면 배워야 한다. 배우려면 말글을 잘 써야 한다.

따라서 모국어를 통한 좋은 교육으로 좋은 생각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놈의 빌어먹을 '국제경쟁력'을 위해서도 말이다. 그러니 교육을 외국어로 함으로써 '앎'을 방해하고 '좋은 생각'의 생산을 막아버린다면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이다. 그야말로 앞에서 말한 바처럼 '무식함'에서 나오는 뻘짓인 것이다.

이명박이 유난히 말을 잘 틀리고 개념 없어 보이는 것이 내게는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배웠어도 아는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 좋은 생각을 할 능력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이나 그 수하들의 지적 수준의 천박함, 그리고 그들이 무식하고 천박하지 않은 훌륭한 분들일 거라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국민들의 한심함, 노무현에 대한 수치심과 복수심에 불타서 진정한 천재에 대한 저주에 눈이 돌아간 찌라시 기자들, 알고 있어도 나서서 막지 못하는 소위 지식인들의 비겁함이 모두 싫어진다.


-사족-

그냥 무식한 인간들은 그렇게 한 세상 살다 가라고 하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내 생각에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에 꼭 해야 할 일은 서프앙들에게 한 수를 가르쳐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노 대통령의 지도하에 서프앙들이 노 대통령의 경륜과 지혜를 우리 것으로 체화할 수 있다면, 훗날 그 업그레이드의 위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