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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순수한 남자 2008. 1. 29. 22:16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번호 206158  글쓴이 스나이퍼 (kwonsw87)  조회 2881  누리 1323 (1328/5)  등록일 2008-1-29 16:06 대문 82 톡톡


1편 -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대선 결과 분석부터 제대로 해보자

새 정부 출범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동시에 노무현 대통령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한번으로 정치는 끝났는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싸움이 시작됐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준비하여 미래의 추동력을 확보할 것인가? 그 해답은 지난 역대 대선 결과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나의 글에 담기에는 양이 많을 것 같아서 시리즈로 싣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 편으로 대선결과 분석 편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 통계

먼저 역대 대선결과 통계부터 보자.

선거인 수 (괄호는 투표자 수 및 투표율)

먼저 선거인 숫자를 보면 87년을 기준으로 20년간 1,200만 명 가까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투표율은 계속 하락을 거듭해 2007년 투표자 숫자와 87년 투표자 숫자가 2,300만여 명으로 비슷하다.

선진국일수록 투표율이 낮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과연 그렇게만 해석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정치무관심층'이 증가한 데 대해 그 이유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 부분은 뒤에 설명이 나오는 관계로 여기서 따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 흐르는 대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각 후보자의 득표수와 득표율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오늘 글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통계를 유심히 머리에 담아놓고 글을 읽어주면 감사하겠다.

역대 대통령 후보자들의 득표수와 득표율이다. 밑줄 친 부분은 당선자를 표시한 것이다.

역대 대선 후보의 득표수와 득표율

이 통계에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통계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87년 13대에서 97년 15대 대선 결과 분석

굳이 과거의 대선결과를 분석하는 이유는 가장 최근의 2002년과 2007년을 해석하기 위함이다. 먼저 87년 대선은 '지역분할 구도'에 의한 선거임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통계를 유심히 봐야 하는 지점은 김대중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의 득표수 합계 때문이다. 김대중 후보가 얻은 610만여 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맹주들의 표를 합산하면 1,640만 표 정도가 나온다.

이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호남 610만 vs 비호남 1,640만

이 결과는 호남고립주의의 상징적인 숫자 비교다.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김대중 후보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여기서 2007년 대선결과를 한번 보자.

공교롭게도 정동영 후보가 획득한 득표수는 87년 김대중 후보의 득표수와 거의 일치한다.

김대중 611만 표 vs 정동영 617만 표

동시에 한나라당 진영의 득표수를 보면, 이명박 1,149만 + 이회창 355만 = 1,504만이다.

87년 대선과 비교해서 보자.

 1987년 13대 호남 610만 vs 비호남 1,640만
 2007년 17대 정동영 617만 vs 범보수세력 1,504만

87년 김대중 후보와 2007년 정동영 후보의 표 차이는 불과 6만 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2007년 대선에서 소위 민주개혁세력은 정확하게 87년 수준으로 몰락한 것이다. 동시에 호남고립주의가 재현됐음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그 연결고리를 찾아가보자. 이를 위해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역대 대선결과를 먼저 살펴본다.

 13대 김대중 611만
 14대 김대중 804만 (+193만)
 15대 김대중 1,032만 (+228만)
 16대 노무현 1,201만 (+129만)
 17대 정동영 617만 (-584만)

87년 13대부터 2002년 16대에 이르기까지 소위 민주개혁세력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각 시기별로 유권자 숫자의 추이를 들여다보자. 먼저 1992년 14대 대선에서 193만 표가 증가했다. 이 유권자들은 어디에서 온 유권자들일까? 그 해답은 90년의 3당 합당에 있다.

다 알고 있다시피 90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김종필의 공화당과 함께 노태우의 민정당과 합당하게 된다. 이때 김영삼의 ‘투항’으로 인해 영남지역의 민주개혁세력은 그 뿌리를 통째로 상실하게 되었다.

14대 대선에서 김대중이 추가로 획득한 193만 표는 바로 3당 합당에 반대한 영남지역 유권자들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87년에 분열했던 민주개혁세력이 김영삼의 투항으로 인해 반사적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193만을 기억해두시기 바란다.

그리고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14대에 비해 228만 표를 더 얻게 된다. 이 228만 표의 실체는 잘 알고 있듯이 김종필의 자민련과 연대한 결과물이다.


각 대선에서의 변수들, 박찬종, 이인제

이 시기에는 중요한 변수들이 나온다. 92년 정주영과 박찬종, 97년 이인제가 그 주인공들이다. 92년과 97년 대선 결과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자.

13대부터 15대 대선 통계는 매우 중요하다. 2002년과 2007년 대선 결과가 갑자기 뚝 떨어진 결과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직선제가 시작된 이후 역대 대선결과의 축적물이 바로 2002년과 2007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온 결론들을 다시 놓고 보자.

호남 610만 vs 비호남 1,640만
김대중 후보의 증가한 득표수 193만

13대 14대 대선에서 중요한 변화가 몇 가지 있다.

단순 합산을 하면 14대 대선에서 김영삼은 '비호남 1,640만 표'를 고스란히 가져가야 말이 된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왜 그랬을까? 13대 대선에서 드러난 노골적인 지역투표에 대한 반감이 14대 대선에서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건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를 빼놓고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지역주의 완화가 14대 대선결과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김종필의 자민련과 연합한 것은 부분적인 지역주의이긴 하지만, 유권자 전체의 흐름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13대와 비교한 상대적인 정의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비호남 1,610만 vs 14대 김영삼 997만 (613만 증발)

이 차이는 대략 613만 정도다.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지역주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유권자가 이렇게 늘어난 것이다. 이 숫자는 나중에 밝히겠지만 소위 '부동층'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613만의 유권자는 어디로 갔을까? 김대중, 정주영, 박찬종이 분할했다.

김대중 193만 + 정주영 388만 + 박찬종 151만 = 732만

합산하면 732만이니까 김영삼이 상실한 643만과 대략 89만 표 차이가 난다.

여기서 김대중이 흡수한 193만 표는 원래가 민주개혁세력 지지자들이다. 다만, 그 지역의 패권자였던 김영삼의 3당 합당에 반대해 김대중 지지로 옮겨왔을 뿐 본질적으로는 한 뿌리다.

그렇다면, 이를 제외한 유권자 수를 보자.

정주영 388만 + 박찬종 151만 = 539만, 바로 부동층의 실체

이 539만 표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13대 대선에서 드러난 지역주의 투표에 대한 반감이 아닐까? 동시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바로 '민주평화통일개혁세력 vs 반세력'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의 심리가 정주영과 박찬종을 불러들였다고 보는 게 합당할 것이다.

어찌 됐든 확실한 것은 13대 대선이 지역주의 투표의 극치를 보여줬다면 이후 대선은 점차 지역주의 투표성향이 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539만이라는 유권자가 바로 실체가 아리송했던 '부동층' 바로 그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있는 유권자들이 항상 제3지대의 후보를 선호했다. 그것은 이인제의 등장에서도 동시에 발견된다.

97년 대선에서 이인제가 올린 득표수는 492만(18.9%)이었다. 거의 비슷한 수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동층의 대략적인 숫자가 500만은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한나라당을 위시한 보수세력도 싫고,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민주개혁세력도 싫은 사람들의 숫자라고 봐야 한다. (문국현이 노린 지점이 바로 이 500 만에 있다)

정주영 388만 + 박찬종 151만 = 539만
이인제 492만


한나라당의 득표수 변화 추이

여기서 잠깐 민정당으로 시작해서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세력들의 득표를 살펴보자. 대비할 수 있도록 민주개혁세력 득표수와 비교해서 보자.

먼저 위의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먼저 양 진영의 고정지지층 숫자다. 범보수세력의 득표수가 1,500만을 넘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보수화된 것일까?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그렇다면, 2002년 대선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2007년이 보수세력의 승리이고, 2002년은 민주개혁세력의 승리였을까?

애석하게도 이런 해석은 대단히 정치세력 중심의 해석이다. 누구의 승리라는 식으로 해석하게 되면 민주개혁세력의 반 토막 난 지지율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범보수세력의 지지율 급증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이 해석은 철저하게 유권자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과연 어떻게 바뀌었으며, 무엇을 기준으로 선거에 임한 것일까? 이걸 찾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2편은 다음에 쓴다. 유권자들의 투표성향 변화를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해답을 찾아볼 것이다.


2편 - 진짜 통합은 국민의 통합, 정치인들의 통합은 분열이다


앞선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87년 13대 대선은 지역주의 투표의 극치

◈ 92년 14대 대선에서는 3당 합당에 반대하는 643만의 유권자들 김영삼 지지 이탈, 이로 인해 김대중 지지층 193만 증가, 동시에 양 김씨를 비토하는 부동층 500만 증가

◈ 2007년 17대 대선에서 정동영의 득표수는 87년 김대중 득표수와 거의 일치

◈ 각 진영의 고정지지층, 민주개혁세력 600만 vs 보수세력 900만(역대 대선결과를 토대로 본 고정지지층 숫자임)

◈ 2007년 대선 결과 민주개혁세력 지지율 반 토막, 보수세력으로 500만 유입
 

사실 1편은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글이다. 그럼에도, 쓴 이유는 어차피 2편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본론이다.

2002년과 2007년 대선을 어떻게 분석하는 것이 타당할까? 먼저 선거결과를 보자.

한쪽은 반 토막 났고, 한쪽은 400만 표 가까이 증가했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 때문? 이런 개그 같은 분석을 보기 싫어서 내가 이 글을 쓰는 중이다.

2002년 대선결과를 보자. 2002년 16대 대선은 양자대결이다. 13대는 지역 맹주들의 대결이었고, 14대와 15대에는 부동층을 흔들어놓은 정주영, 박찬종, 이인제라는 인물들이 일정 득표수를 기록하며 표를 갈랐다.

반면 2002년 대선은 확실한 양자대결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동층'이 어떤 형태로든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거였음을 말한다. 그러나 투표는 강제되는 게 아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겠다는 투표의지가 생기게끔 만든 요소가 있었다. 바로 노무현이라는 존재다.

먼저 2007년 대선결과부터 분석하자. 정동영이 획득한 표는 정확하게 반 토막 난 득표수다. 그렇다면, 노무현을 지지했던 1,201만 표 가운데 584만 표는 어디로 증발한 것인가?

먼저 92년 김대중 지지로 옮겨온 숫자를 보자. 대략 193만 명인데, 이 숫자가 소위 영남지역의 개혁세력 지지자들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3당 합당에 반대한 사람들 말이다. 이를 제외한 숫자는? 대략 391만 명이다. 이 391만 명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바로 '부동층'이다. 14대와 15대 대선에서 정주영, 박찬종, 이인제를 지지했던 그 500만 가운데 다수가 노무현 지지로 옮겨온 것이다.

이건 대단히 유의미한 통계다. 정주영과 박찬종, 이인제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기본적인 심리는 '탈지역주의', '탈대립구도'에 있다.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이런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즉 노무현이라는 정치인 자체가 가지는 아이콘은 소위 말하는 '민주개혁세력'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기존 정치에서 벗어나 있는 비주류의 매력이기도 하겠다.)

통계를 다시 보자. (계속 보다 보면 외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외웠다 ^^ )

그런데 2007년 정동영의 득표수가 말하는 바가 무엇일까? 까놓고 말한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정동영의 통합신당을 '호남지역당'으로 규정한 것이다. 정확하게 87년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으로 전락한 게 2007년 통합신당이다.

이것은 정치세력 스스로 규정하든 부인하든,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판단'이다. 그 중요한 근거는 또 있다. 바로 14대 대선에서 새롭게 김대중을 지지했던 세력들의 이탈이다. 그 숫자는 김대중을 지지했던 숫자를 계산하면 나온다. '14대 804만 - 13대 611만 = 283만'이다.

수식으로 정리해보자.

16대 노무현 1,201만 - 17대 정동영 617만 = 584만 증발
증발한 584만 = 14대 대선 김대중 지지증가분 193 + X, 따라서 X= 391만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했다가 17대 대선에서 사라진 표는 위와 같이 분석된다. 87년 6.10 항쟁으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추구세력 가운데 3당 합당에 반대하며 김대중을 지지했던 193만 명과 제3세력을 지지했던 부동층 391만 명이 이번 17대 대선에서 모조리 증발한 것이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먼저 문국현이다. 문국현이 획득한 표는 137만 5498(5.8%)표다. 일부에서는 문국현에게 분열의 책임을 묻고 있는데 아주 타락한 모습이다. (문국현에게는 분열의 책임을 절대 물을 수 없다. 분열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문국현으로 인해 패배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찍이 문국현을 양아치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러나 나의 주관적인 가치판단과 객관적인 분석과는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584만 가운데 문국현의 137만을 제외하면 447만의 지지자가 남는다.

기권자를 살펴보자. 이번 대선에서 사라진 유권자 수는 16대 투표자 수에서 17 투표자 수를 빼면 나온다.

▣ 기권자 수 : 16대 투표자 2,478만 4,963명 - 17대 2,373만 2,854명 = 105만 2,109명

약 105만 명이 17대 대선에 불참했다. 그렇다면, 문국현 지지자와 합치면 242만이다. 결국, 증발한 584만 명 가운데 242만 명은 제3세력을 지지하거나 투표를 포기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 나머지는? 나머지는 342만 명이다.

▣ 증발한 584만 명 = 문국현 137만 + 기권자 105만 명 + ? (342만 명)

어디로 갔을까? 범보수세력의 증감을 보자.

2002년 16대 이회창 1,149만
2007년 17대 이명박 + 이회창 1,504만
범보수세력 증가분 = 355만

답이 나온다. 2002년 노무현을 지지했다가 2007년 범보수세력 지지로 옮겨간 숫자는 대략 340~350만 명이라는 계산 말이다.

그럼 이 유권자들은 보수적인 사람들인가? 그렇게 단언할 수 있나? 절대 없다. 왜냐면 2002년 노무현을 찍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서 이명박을 찍는다? 진보적인 사람이 갑자기 보수적으로 바뀐다? 이건 논리적이지 않다.

이걸 찾아야 한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유권자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노무현의 당선은 국민의 통합

진짜 본론으로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에둘러 온 이유는 바로 2002년과 2007년 대선 결과를 분석하기 위함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은 바로 '국민의 통합'이다. 87년 지역주의 선거에서 시작해 92년 3당 합당에 대한 반발로 소위 민주개혁세력이 하나로 뭉치게 되고, 그 세력이 자민련이라는 보수적인 정당과 연대하여 정권을 교체하고, 그리고 2002년 정치적으로 정의하기 힘든 세력(정몽준은 탈정치적인 코드를 갖고 있다.)과의 연대를 통해 정권 재창출에 이른 과정은 '국민 통합'의 과정이다.

내가 '국민통합'을 말하는 이유는 소위 '민주개혁진영의 승리'라는 뻔한 분석 틀을 거부하기 위함이다.

노무현이 획득한 1,200만 표가 죄다 민주개혁세력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통계분석으로 설명됐다. 500 만에 가까운 부동층은 자신들을 민주개혁세력 혹은 반민주개혁세력이 묶이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노무현의 당선은 바로 핵심 민주개혁 지지세력 600만(87년 김대중 지지표) + 반지역주의적 개혁세력 193만(3당 합당 반대하며 김대중 지지한 영남개혁세력) + 탈정치세력 410만(정몽준 등 제3의 후보를 지지했던 세력)이 연대(통합)하여 만들어 낸 작품이다.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 2002년 16대 대선 노무현 득표수

① 전통 민주개혁세력 지지표 - 600만 (87년 김대중 지지표)
② 3당 합당 반대하며 김대중 지지한 영남개혁세력 지지표 - 193만 (92년 김대중 지지표)
③ 민주개혁세력 vs 반민주개혁세력의 구도에서 이탈한 유권자들(소위 부동층) 지지표 - 410만 (92년 정주영과 박찬종, 97년 이인제, 2002년 정몽준 지지층)

이 통계는 굉장히 중요하다. 소위 2002년 대선 결과를 '민주개혁세력의 승리'라고 포장한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개혁세력의 승리라고 부를 수도 있다. 왜냐면 어찌 됐든 부동층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민주개혁세력 그 자체는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나도 거기에 포함된다.)

노무현 당선의 의미를 '국민통합'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질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를 이끌어 낸 사람이 노무현이고, 그 자체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국민통합'의 요체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난을 무릅쓰고 '대연정'을 시도한 것이 비록 600만이라는 '고정 지지층 일부'의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이질적인 생각을 가진 부동층을 고려한다면 굉장히 '국민통합'에 입각한 발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정권을 획득하면 600만 고정지지층의 '생각만'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 왜냐면 그 나머지 600만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들의 생각을 배척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독식'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진짜 통합, 가짜 통합

그렇다면, 2007년 대선은 어떻게 분석하는 것이 옳을까? 한겨레신문이나 오마이뉴스 등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신문사들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라크 파병, 한미FTA, 대연정 등 고정 지지층을 와해시켰기 때문에 대선에서 진 것이다."

이거 진실인가? 이미 역대 대선통계를 설명하면서 아니라는 것쯤은 바로 이해할 것이다.

97년 김대중 대통령은 온전히 고정지지층의 지지로 당선되었나?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은 온전히 고정지지층의 지지로 당선되었나? 김종필의 자민련은? 정몽준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대단히들 착각하고 있다. 소위 민주개혁세력을 과신하고 있다. 애당초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밑천은 맥시멈으로 잡아도 600 만에 불과하다.

김대중-노무현, 이 두 정치인은 고정 지지층 600만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선거전략으로 승리한 것이다. 고정지지층에 연연해 하지 않아서 승리한 것이다. 그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국민통합'이다.


정치인들의 통합이 통합인가? 진짜 통합은 국민의 통합이다

김대중-노무현, 이 두 정치인은 어찌 됐든 국민통합적인 정치를 했다. 그 상대방이 자민련이라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그럼에도, 정권교체라는 역사적인 대의를 위해서 연합했다. 묻겠다. 노무현의 대연정은 잘못된 것이고, 김대중의 자민련과의 연대는 잘한 것인가? 누가 여기에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가?

'국민통합=연대'다. 그것은 곧 이질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열쇠를 쥐고 있는가? 즉 누가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누가 더 대의명분에 충실한가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그런데 김대중의 자민련 김종필과의 연대, 그리고 노무현의 정몽준과의 연대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굉장히 김대중이 앞장서서 만들어 낸 정치공학적인 정치인들의 논리라면, 노-몽 연대는 그 정치인들의 정치공학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탄생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노무현은 600만이라는 고정 지지층을 넘어서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지지층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자체가 바로 '통합'이다.

'통합'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제대로 정의하자. 그 출발점은 '국민'에 두어야 한다. '정치인들의 통합'이 아니라 '국민의 통합'이 '진짜 통합'이다. 2007년을 돌아보자. 소위 '통합신당'이 나왔다. 통합했는가? 정치인들은 물론 통합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분열했다. 그럼 국민들이 잘못된 것인가? 절대 아니다. 국민들은 가장 합리적으로 사고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명박을 선택한 유권자들을 나무라고 싶지 않다. 속상하고 화나는 것은 말할 수도 없지만 냉정하게 분석하는 입장에서는 그렇다)

통합신당은 호남이라는 본거지로 철수한 세력이다. 호남을 제외한 국민들을 포기하고 87년의 그 지역주의 전선으로 회군한 세력이다. 이 세력이 어떻게 국민들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가? 2002년 노무현을 통해 '국민통합'이라는 가치에 명시적, 암묵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던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통합신당을 지지하기란 대단히 곤란한 일이다.

'통합'이라는 단어는 재정의되어야 한다. 그 기준점이 바뀌어야 한다. 통합은 '정치인들의 통합'이 아니라 '국민의 통합'이라야 '진짜 통합'이다.

영남개혁세력의 씨를 말려버린 통합신당, 부동층을 내쳐버린 통합신당

이 지점에서 다시 통계를 보자.

※ 2002년 16대 대선 노무현 득표수

① 전통 민주개혁세력 지지표 - 600만 (87년 김대중 지지표)
② 3당 합당 반대하며 김대중 지지한 영남개혁세력 지지표 - 193만 (90년 3당 합당 이후 새로 유입된 김대중 지지표)
③ 민주개혁세력 vs 반민주개혁세력의 구도에서 이탈한 유권자들(소위 부동층) 지지표 - 410만 (92년 정주영과 박찬종, 97년 이인제, 2002년 정몽준 지지층

※ 2007년 17대 대선 정동영 득표수 617만 = 87년 13대 김대중 득표수 611만

느끼는 것 없나? 통합신당이 통합 맞나? 정치인들은 통합했겠지. 그러나 국민들은 분열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분열을 피했다. (이명박의 당선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국민통합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따로 서술한다.)

거의 600만 명에 가까운 지지층을 날려버린 통합신당이 통합신당 맞나? 백번 천번 양보해서 노무현 탓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14대 대선에서 3당 합당을 거부하고 김대중 지지로 몰려온 193만이라는 영남지역의 민주개혁세력 지지층은 어떻게 해석할 건가?

기권을 하든, 이명박 지지로 돌아서든, 통합신당은 그들을 묶어내는 데 실패했다. 대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칭 진보세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통합신당은 어떤 정당이었나? 바로 부동층 혹은 확고한 지지정당이 없는 유권자들을 모조리 내다버리고 600만이라는 고정-핵심 지지층으로 도망간 사람들이 모인 정당이다.

전쟁은 아군의 진지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건 1차적인 조건일 뿐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진지를 벗어나 전장을 쟁취해야 한다. 그러나 통합신당은 호남이라는 벙커에 숨어버린 정당이다. 그러니 전쟁에서 질 수밖에. 이게 노무현 탓이라고? 말을 말자.


유권자는 변하고 있고 이미 변했다

97년 대선은 사실상 87년 대선의 연장전에 불과하다. 3김씨의 지역주의 패권 다툼이 연장된 것이 본질이다.

87년 : 3김씨 군웅할거시대
92년 : 김대중 고립
97년 : 김대중-김종필 합종연횡

그러나 2002년 대선은 본질에서 다르다. 97년 대선이 소위 '서부벨트 구축', 즉 지역동맹을 통한 승리였다면 2002년은 지역주의에서 벗어난 부동층의 대폭적인 유입을 통한 '국민통합 세력'의 승리였다.

통계를 보자. 영남지역 득표수부터 보자.

1997년 김대중 후보 : 96만 10표
2002년 노무현 후보 : 175만 3275표
2007년 정동영 후보 : 66만 9661표

2007년 대선 결과는 어떠했는가? 영남지역에서 괴멸했다. 심지어 97년 김대중 후보가 획득한 표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얻었다.

김대중 후보 : 10~15%
노무현 후보 : 18~29%
정동영 후보 : 6~13%

부산, 경남, 대구, 경북 지역의 득표율이다. 앞의 숫자는 최소 득표율이고, 뒤는 최고 득표율이다.

왜 괴멸했는가? 호남으로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전장으로 나가지 않고, 벙커로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걸 부인하겠는가? 적어도 정동영이 김대중 후보와 비슷하기라도 했으면 핑계거리가 있겠지만 이 결과는 도저히 영남패권주의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한 수치다.

왜냐하면,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가 영남지역에서 가지는 혐오감은 정말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동영 후보는 김대중 후보가 올린 득표율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이걸 호남혐오주의로 치부할 수 있는가?

김대중은 스스로 호남으로 숨어버리지는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김종필이 이끄는 자민련과의 연대다. 그런데 정동영은 완벽하게 호남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600만 표도 기적적인 득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600만 표 가운데는 '어쩔 수 없이' 정동영을 선택한 표가 굉장히 많다. 어쩔 수 없이… (이런 자가 정계은퇴 선언도 안 하는 것을 보면 파렴치함에 몸이 떨린다.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무엇이 변했는가?

유권자들은 지역주의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민주개혁세력 vs 반민주개혁세력이라는 대립구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2002년 1,200만 표로 노무현을 당선시켰던 유권자들이 형식적이나마 법통을 이어받은 정동영에게 600만 표만 주었다. 대신 범보수세력에 1,500만 표를 주었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루하고 진부한 '민주개혁세력 vs 반민주개혁세력'의 틀로는 분석이 안 된다.

그런데 통합신당은 저 진부하고 고루한 선거 틀을 불러온 것이다. 그 결과는 완벽한 87년으로의 회귀다. 우리는 어떻게 이 구도를 벗어날 것인가? 무엇을 지향해야 가능할 것인가? 그 해답을 3편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3편 - 아무도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는 사회, 그 침묵에 도전해야


굳이 지난 역대 대선결과를 되짚어보는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를 찾기 위함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엇을' 되찾기 위함이다. 하여 방향성을 명확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2년과 2007년 대선 결과가 주는 의미만 간단하게 짚고 오늘 글의 본론에 들어가고자 한다.

2002년 대선 : 전통지지층 + 영남개혁세력 + 부동층 = 국민통합
2007년 대선 : 전통지지층 = 국민분열 (87년으로의 회귀)

역대 대선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핵심지지층 + 알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는 핵심지지층조차 묶어내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가치'의 실종 때문이다.

'가치'란 무엇인가?

다음 백과사전을 인용한다.

가치는 어떤 사물·현상·행위 등이 인간에게 의미 있고 바람직한 것임을 나타내는 개념을 말한다. 가치는 현실세계에 대한 인간의 실천과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의식적인 관계가 축적된 결과로서 '역사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과 대상의 관계를 통해 정착된 가치는 인간의 사고와 태도에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그들의 존재조건·욕구·이해관계 등을 보여주는 개념이 된다. 따라서 가치의 내용은 변화되는 의식구조를 반영하면서 시대적·사회적 여건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정치영역에서 '가치'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그것은 바로 '정치적인 노선'이다. 어떤 정당의 정치적인 노선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알 수 있으며, 그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결사체를 이룬 것이 바로 '정당'이다.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추구했던 가치는 무엇인가? 바로 '원칙과 상식', 그리고 '국민통합'이었다. 그런데 이 '원칙과 상식', '국민통합'이라는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어떤 역사적 산물인가?

바로 87년 6월 항쟁, 더 거슬러 올라가면 80년 5.18 민중항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노무현이 추구했던 원칙과 상식이라는 가치는 무엇으로 표현되는가? 열린우리당이 추구했던 가치는 또 무엇이었나? 그리고 우리는 그 어떤 가치를 잃어버렸는가?

바로 '민주주의'다. '원칙과 상식'은 기실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민주주의: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로서 계급주의에 반대되는 개념(대한민국 헌법 제1조도 민주공화국을 표명하고 있다.)

원칙과 상식: 계급에 기반한 반칙과 특권이 존재하지 않는 것

'원칙과 상식'이 왜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등치 되는 것인가?

민주주의는 특권이 존재하는 계급주의를 배격한다. 2007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걸었던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은 바로 '민주주의가 구현된 세상'을 의미한다. 그러한 민주주의적 가치는 비단 정치영역에만 적용되는 가치가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에서 '주권'을 빼놓고 논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주권의 신장 정도에 따라 성숙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영역에서의 주권신장은 물론이며, 일반 소비생활에서의 소비자주권, 교육주권, 노동권, 기초생활보장권, 복지주권 등 모든 영역에 관통하는 가치가 바로 주권, 즉 주인 된 권리이며, 이 주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작동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5.18 민중항쟁과 6.10항쟁, 그리고 2008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걸었던 '원칙과 상식', '국민통합'이라는 가치는 바로 5.18 민중항쟁과 6.10항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역사적인 산물'이다. 이것은 곧 '역사적 정통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를 부정한 군사독재정권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가질 수 있는가? 그 독재정권과의 3당 합당 야합을 통해 만들어진 김영삼 정권이 정통성을 가질 수 있는가? 절대 없다. 그 정통성을 가진 정치세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당(지금의 민주당이 아님)과 열린우리당 뿐이다.

그 역사적 정통성의 뿌리는 바로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추구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는 그 민주주의가 사라져버렸다. '원칙과 상식', '국민통합'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는 사라지고 온통 '반칙'과 '특권', '경제살리기'라는 '이상한 가치'에 휩쓸려버렸다.

87년 이후 역대 대선을 다시 돌아보자. 무엇을 추구했던 과정이었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과정 아니었나? 그런데 2007년 대한민국에서는 그 누구도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았다. 2008년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는가? 반칙과 특권은 모두 없어졌는가? 소비자주권은 성취되었는가? 교육주권은? 복지주권은? 그 모든 것이 성취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다시 민주주의를 위하여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역대 대선결과를 굳이 살펴본 이유는 민주주의를 말하기 위함이다.

□ 민주주의는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통하는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뛰어넘는 개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그 자체가 진짜 진보다.)

□ 민주주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가치철학이다.

왜 다시 민주주의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그것은 주권자들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고 있고, 당신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농공상의 계급을 거부하고, 그 계급에 따른 특권과 반칙을 배격하고, 원칙과 상식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들을 모아내고, 세력을 만들고, 대세를 만드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도 현실생활에서 실현해내지 못하면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다.

몇 개의 영역에서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안을 예시적으로 제시해본다.

□ 정치 : 중대선거구제 도입, 비례대표 확대, 정치적 의사표현의 철저한 보장 등 (다수 득표자가 독식하는 체제, 소수자들의 의사는 제로가 되어버리는 선거제도는 반민주적임)

□ 경제 :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제도 확대, 소비자 주권의 확대 등 (대기업의 반칙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반민주적임)

□ 사회 : 언론소비자주권 확대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여론독점과 왜곡에 맞서 언론소비자들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함)

우리 사회는 여전히 주권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제도가 산재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직 ‘경제’만을 말한다. 거대 기업들에 포섭된 정치세력들만이 존재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원칙과 상식을 위협하고 반칙과 특권을 주장한다. 이것은 분명 민주주의의 위기다.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답은 나왔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모아 정치세력화하는 일이다.

□ 정치적 노선 (가치) : 민주주의

□ 세력 (인물) : 원칙과 상식,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사람들

현실정치로 돌아와 보자.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여기 시민광장에 모인 우리들 자신 말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추구하는 정치철학에 동의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유시민도 있고, 이해찬도 있고, 안희정, 이광철, 김형주, 김태년, 이화영, 백원우, 서갑원, 박남춘, 이용섭도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노무현이 깃발을 들고, 우리가 환호했던 그 정치철학을 이어갈 수 있는 정치인들을 최대한 많이 총선에서 살려내는 것이다.

통합신당이든, 무소속이든, 살아남는 것이 최대의 과제다. 최대한 많이 살려내서 총선 이후를 모색해야 한다. 현실 정치세력으로 우리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통합신당이라는 껍데기 정당에 몰입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노씨 가문의 대가 끊기지 않는 데에만 열중해야 한다. 대가 끊긴 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우리가 추구하는 현실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라는 저 가치도 허망할 뿐이다.

일부에서는 비례대표를 위해서라도 총선 전에 정당을 만들자는 말씀도 하신다. 그러나 나는 반대다. 시간도 촉박할뿐더러 그렇게 녹록지 않다. ‘친노정당’이라는 천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최대한 많이 전쟁터로 나가서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비례대표를 할 것이며, 당 조직은 언제 건설할 것이며, 3개월의 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최대한 많이 살려내자. 살아남고 볼 일이다.

그리고 내가 말한 것 외에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마케터님이 친절하게 말씀하셨으니 따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콘텐츠 생산 + 유통망(언론-출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새삼 강조하고 싶다.

대충 정리한다. 쓰고 싶은 말이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귀찮아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

◈ 추구 가치 : 민주주의

◈ 당면 과제 : 노씨 가문 정치인들 무조건 살아나기 + 살려내기

◈ 향후 과제 : 각 영역의 민주주의 제고를 위한 콘텐츠 생산 + 유통망 확보

 

ⓒ 스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