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다시 오고 싶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너무나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인사동 길을 배경으로 어떤 미국 젊은이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거침없이 하는 말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그의 국적과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건 KBS 밤 아홉 시 뉴스 시간이었다. 소파에 몸을 부리고 있던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고, 다음 순간 십여 년 전에 보았던 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소설 『아리랑』을 쓰기 위해 중국으로 취재를 떠난 것이 1990년이었다. 우리나라와 정식으로 국교가 트이지 않아서 그때 중국을 가려면 바로 북경으로 가지 못하고 일단 홍콩으로 간 다음에 거기서 중국 비행기로 바꿔 타야 했다. 그리고 홍콩에서 출발하는 중국 비행기는 국내선이 아니라 국제선이었으므로 중국 입국소속을 북경이 아닌 천진 공항에서 했다. 그 수속을 마치고 아까 타고 온 비행기를 다시 타는데, 그때부터 그 비행기는 국내선이 되어 북경으로 날아갔다.
입국수속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한쪽에서 갑자기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건 영어 욕설이었다. 너무 많이 들어온 '갓뎀'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은 청바지 차림의 건장한 미국 남자였다. 그는 고함만 지르는 것이 아니었다. 고함에 따라 큼직한 손가방을 마구 걷어차고 있었다. 그때마다 지퍼가 열린 가방에서는 이런저런 물건들이 튀어나왔다.
"왜 당신들은 영어를 안 쓰는 거야. 영어로 말해, 영어로."
그 남자는 중국 세관원에게 삿대질하며 외쳤다.
그러나 중국 세관원은 무표정하게 중국말을 할 뿐이었다. 딱하게도 그 사나이는 중국 사람들 거의 전부가 미국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한 달 동안 중국에 머무르면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교수들도 러시아말은 곧잘 해도 영어는 할 줄 몰랐다.
중국에는 자금성이나 이화원 같은 데 들어가는 입장료를, 외국인에 대해서는 자국민보다 싸게 받는 것이 아니라 네다섯 배나 더 받았다. 그건 개방이 얼마 안 되어 관광사업 수완이 미숙하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다. 너희들이 보고 싶으면 돈을 더 내라 하는 중국식 배짱이었다. 그런 그들의 자만심 강한 대국주의 배짱이, 미국과 수교를 한 지 꽤 되었다고 해서 세관원들에게 영어를 익히게 했을 리 없었다. 중국에 오고 싶으면 너희들이 중국말을 배워라. 이것이 중국 사람들의 느긋한 배포 아니었을 것인가.
입국수속을 끝내고 그 미국 사나이 옆을 지나치던 나는 멈칫했다. 공항 바닥에 흩어져 있는 그의 짐들 속에 있는 담배, 그것은 한국 담배였다. 그 사나이는 한국을 거쳐 중국에 왔음을 엿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자기 돈으로 그 담배를 산 것인지, 아니면 한국 사람 누군가가 사준 것인지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문제는 그가 한국에서 영어를 지껄이며 누렸던 편리를 중국에서도 똑같이 누리려고 하는 점이었다. 아니, 그는 중국 사람들이 당연히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 사나이의 거침없는 태도와 KBS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고 있는 사나이의 태도는 어쩌면 그리도 빼 박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닮은 것은 세계 최강국 국민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KBS 텔레비전이다. 미국인의 그런 모습을 방영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국민들이여, 우리 어서 빨리 영어를 잘하도록 하자.' KBS는 이런 충동질을 노골적으로 해대고 있었다. KBS는 명색이 국영방송이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맘껏 방자한 발언을 토해내고 있는 미국 젊은이는 추레한 입성에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가 정식으로 여행사를 통해 들어온 관광객이 아니고 흔히 보는 배낭여행족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특히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일수록 배낭족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말썽과 사고가 날 우려가 많은데다가 관광수입에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배낭족들이 뿌리는 푼돈도 긁어모아야 할 만큼 급한 사정이란 말인가. 그런 자들까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전 국민이 영어를 능통하게 하는 관광안내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나라에도 세계적 경영망을 갖춘 여행사들이 수없이 많다. 한국을 여행하고 싶으면 돈 제대로 내고 그 여행사들을 통해서 들어오면 된다. 그러면 거기에는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아무런 불편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의식이라고는 없이 국영방송이 전 국민의 관광안내원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몰지각함의 폐해는 벌써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영어공부에 적응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이 우울증과 자폐증을 일으켜 정신병원을 찾는 수가 날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영어를 잘하게 하려고 혀 수술을 시키는 바람이 일고 있다.
사람에게는 제각기 특기라는 것이 있다. 체육을 직업으로 삼을 만큼 운동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수학을 뛰어나게 잘하면서도 국어는 전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리 화학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으면서도 글짓기를 빼어나게 잘하는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따로 있다. 영어는 그런 사람들을 가려 뽑아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며 시켜야 한다.
중ㆍ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특출한 학생들을 전 사회적으로 필요한 만큼 오십만이고 백만이고 뽑아 국비로 유학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을 상대로 해야 하는 모든 기업체에 필요한 인원을 배급하는 것이다. 그러면 각 기업들은 그들에게 들어간 국비를 나라에 연차적으로 갚고, 나라는 그 돈으로 새로운 인재를 키워내는 순환을 이룰 수 있다.
모든 대학들이 전공을 가리지 않고 일정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졸업을 시키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모든 기업들이 영어 실력이 모자라는 사원부터 감원 대상으로 삼으면서 전 사원들에게 영어 잘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화가ㆍ성악가ㆍ연기자ㆍ문학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토플 800점의 영어 실력이 왜 필요한가. 그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그들은 정작 자기들에게 필요하고, 하고 싶은 공부에 얼마나 큰 지장을 받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평생에 거려 토플 800점의 영어 실력을 몇 차례나 써먹을 수 있을 것인가. 꼭 영어가 필요할 때가 오면 전문 통역사를 쓰면 된다. 이 나라에는 동시통역사라는 새로운 직종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인터넷 시대니까 영어는 누구에게나 필수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는 벌써 인터넷에서 세계 오십여 개 언어로 동시에 번역되는 시스템을 곧 완성하게 된다고 한다. 거기에 우리 한국어도 포함되어 있다.
기업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외국 사람들을 빈번하게 상대해야 하는 무역회사라면 모르지만 국내 업무에 치중된 일반 기업의 사원들이 외국인을 상대로 업무 처리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세계화라는 이상한 바람에 휩쓸려 하나같이 영어 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턱없이 고통당하고 있는 월급쟁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굳이 세계화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외국어 하나쯤 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그건 교양수준 정도만 갖추면 충분하다. 인생이란 단 한 차례의 기회일 뿐이며, 그다지 길지도 않다. 그런데 그 소중한 인생을 억지로 영어공부 하느라고 낭비하고, 또 학원비로 아까운 돈을 무작정 탕진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비생산적인 일인가.
영어를 잘하게 하겠다고 자식의 혀를 수술시키는 오늘의 현실은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남들보다 출세를 하면 얼마나 하고, 편안하게 잘 살면 얼마나 편케 잘 살 것인가. 그보다 더한 이기심의 극치가 또 있을 수 있을까. 그 안면몰수한 이기심들은 당연한 것처럼 국어를 천시해 지금, 일제시대보다 더한 국어 수난의 시대가 되었다.
영어를 잘하면서도 넋도 얼도 없이 배부른 짐승으로 사는 게 나을까. 민족혼 담긴 국어와 역사를 잘 이해해가면서 사람답게 사는 게 나을까.
돈이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한 지 오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노예가 되길 자청하고 나서는 시대다. 남보다 먼저 영어를 잘하겠다고 정신없이 다투는 것이 그 한 예다. 그런 거센 물결 앞에서 나는 한갓 잠꼬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누구나 홀로 선 나무 /조정래 지음 (문학동네/2002년 12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