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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특검에 이명박이 없다

순수한 남자 2008. 2. 19. 12:13
이명박 특검에 이명박이 없다
번호 213140  글쓴이 독고탁 (dokkotak)  조회 2143  누리 965 (985/20)  등록일 2008-2-19 00:26 대문 59 톡톡


'조사'하러 간 특검이 화기애애하게 '식사'라니요


'특검(特檢)'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특검의 '특(特)' 자를 어떤 의미로 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특검을 왜 하자고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눈에 상식적으로 보이는 것과, 특별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왜 그렇게 달라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잔뜩 변죽만 울리다가 마지막 구색갖추기를 한답시고 당선자를 조사한다는 것이 삼청각에서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한 것이 전부라니요.

오죽하면 대변인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정확하게 '조사'라고 말하긴 어렵다. 서면 답변한 내용을 확인하는 절차였다."라는 말이 나옵니까. 짜여진 각본을 보는 느낌입니다.

우리의 법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누구를 위해 쓰여지는 것이며,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요. 원초적인 질문에 갑자기 회의감이 몰려듭니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정확하게 1987년 이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듭니다. 지금까지 달려오며 우리가 애쓰며 만들었던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먼 과거로 회귀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악질이 나려 합니다. 과거 총과 칼이 무서워 그 앞에서 비굴했던 법조인들에 대해서는 그나마 조금은 이해를 합니다. 무자비한 무력 앞에서 무서움을 느끼는 것은 목숨을 보전하려는 동물적 본성에 해당하므로 측은한 마음으로 보아 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권력 앞에 자율의 의지로 비굴해지는 것은 참으로 불쌍한 일입니다. 영혼을 팔아먹는 행위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이라고요… 1년에 죽을지, 2년에 죽을지 모르지만, 때려죽여도 오 년을 넘지 못할 권력도 살아있는 권력이라고 그 앞에서 비굴해지고 싶나 봅니다.

이제 수사 막장이라며 문안을 작성하고 보고서를 올린다며 '특별한 것 없어 무혐의' 연기를 여기저기 지면을 빌어 모락모락 피우고 있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것 모두가 신기루였나 봅니다. 명함도 동영상도 모두 허상이었나 봅니다.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특검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세라 숨죽이며 보아온 우리입니다. 전·현직 판·검사, 변호사, 美 변호사, 회계사, 건축사… 잘 짜여진 특검팀이라는 보도를 보며 일말의 우려를 애써 누르며 기대로 지켜보았던 우리는 순진한 아이들입니다.

태평양 법무법인은 '살인자를 무죄로 만들 정도로' 유명한 로펌이라는 말이 있었지요. 그래서 그 말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갈피를 잡을 겨를도 없이 출범한 정 특검에 그저 '사람 진실해 보이는 관상'에 애써 후한 점수를 주고 싶었던 마음은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지 모릅니다.

처음엔 부각되지 않았지만, 정 특검이 소속된 태평양 법무법인의 설립자이며 대표 변호사였던 김인섭(사시 14회) 씨가 '고려대'가 낳은 법조인 2,000명을 거론할 때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과연 그에 속한 변호사가 특검이 되어 '고려대가 낳은 살아있는 권력'을 잘 수사할 수 있을지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권한이 없었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나간 보도 속에 보무도 당당하던 정 특검의 모습과 자신감에 넘쳤던 특검팀의 모습에 신뢰를 보냈던 우리는 언제나 늘 그랬듯이 힘없고 미천하여 농락당하기에 딱 제격인 민초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이미 거짓이 진실을 누르고 돈의 논리가 가치에 앞서버린 이 어리석은 나라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별로 관심을 두고 싶지도 않지만, 우리의 요구는 그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토해 낸 말들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그것만 밝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가 다스와도 전혀 상관없고, BBK와도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왜 그가 그곳의 이름을 자신의 것인 사칭하고, 명함을 돌리고 다니고, 이러저러해서 설립했다고 떠들고 다녔는지 그 이유를 밝혀달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당선자를 소환할 수도 있다고 큰소리쳤다가, 말미에 와서는 조사할지 여부를 고민한다고 수위를 낮추고는, 기껏 찾아간 곳이 그 유명한 삼청각이며, 대화 몇 마디 나누고 식사하다가 왔다니요….

'수사'하러 간 것입니까. '인사'하러 간 것입니까.

'조사'하러 간 것입니까. '식사'하러 간 것입니까.

만약 제가 특검의 대표로 간 특검보라면,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을 대리하여 특검을 수행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자부심이나 자존심이 있었다면, 피조사자와 마주 앉아 밥이나 먹고 오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법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밥'으로 인해 '법'이 모멸을 당합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의미하는바, '밥' 먹으며 나누었을 화기애애한 대화 속에 모든 '조사'와' 수사'가 완전히 녹아 용해되어 버렸을 것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내립니다.

그놈의 잘난 밥… 저는 오늘부터 밥을 끊겠습니다. 그리고 특검의 발표가 어떻게 나오는지 두 눈 시뻘겋게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특검 입에서 어떤 결론이 흘러나오는지 똑똑히 쳐다보겠습니다. 특검의 발표를 보고… 밥을 처먹을 것인지, 계속 끊을 것인지 고민하겠습니다.

제가 곡기를 끊는다고 누가 거들떠나 보겠습니까만, 속에서 천 불이 올라와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