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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범죄혐의"에 대한 삼청각 '만찬 조사'와 한국의 민주화

순수한 남자 2008. 2. 21. 11:31
"이명박의 범죄혐의"에 대한 삼청각 '만찬 조사'와 한국의 민주화
번호 213807  글쓴이 이장춘   조회 2687  누리 747 (776/29)  등록일 2008-2-20 23:10 대문 47 톡톡


"이명박 범죄혐의"에 대한 삼청각 '만찬조사'와 한국의 민주화


李 長 春(외교평론가, 전 외무부대사)


2007년 12월 17일 국회가 제정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가동된 이명박 특검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무혐의 처리할 것이라고 한다. 2월 17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약 두 시간 동안 특검팀과 당선자 간에 가진 삼청각 '만찬조사'는 한국의 소위 민주화가 짝퉁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역사적 에피소드로 남게 될 것이다.


"명함이 소총이라면 동영상은 원자폭탄"

서울 성북동 소재 삼청각은 과거 개발독재 권력이 야간에 뽐내며 즐기던 유곽으로 특검에 어울리는 곳은 아니다.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조사'와 만찬을 겸한 그 곳에서의 비밀 회동으로 볼 때 분명한 것은 서로가 함께 밥을 먹었다는 사실이다. 조사다운 조사일 수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특검팀이 제왕적 대통령의 신하로 중용되는 것을 보장받는 기회가 아니었는지를 의심케 한다.

한국이 진짜로 민주화된 나라라면 특검의 명패를 단 한국의 사법적 권력이 국민의 최고 대표기관인 국회가 범죄혐의자로 규정한 자를 그런 식으로 상대할 수 없다.

필자는 2001년 5월 30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서초동의 영포빌딩에서 이명박 씨로부터 받은 문제의 명함 때문에 2회에 걸쳐 3시간 반 동안 이명박 특검으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그 조사 대상자별 우선순위와 비중을 가렸어야했다. 김경준 씨의 변호인 박찬종 변호사가 끈질기게 요구한 범죄혐의자 내지 주요 관련자 간의 대질신문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명박 씨의 한 때 동업자로 불쌍해진 김경준 씨만을 열두 번 불러 개미 쳇바퀴 돌듯 수사의 시늉을 낸 것 같다. 국회가 지칭한 범죄혐의자와는 고급 요리점에서 만찬을 함께하며 조사를 끝내는 이명박 특검팀에게 과연 양심과 양식이 쥐꼬리만큼이라도 있는 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명박의 범죄혐의"에 대한 상식적 결판은 2007년 12월 16일에 이미 끝났다. 바로 그날 이명박 후보가 근 7년 전에 'BBK를 설립했다'고 말한 그의 육성을 담은 동영상이 TV로 온 세상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명명백백한 이명박 씨의 자백으로 지울 수 없는 역사가 되었다. 그 동영상은 "이명박의 범죄혐의"를 둘러싼 시비를 한 방으로 끝낸 원자폭탄이었던 셈이다. 그가 BBK를 만들었다고 자랑했던 여러 가지 언론 인터뷰나 그가 사용했던 BBK/LKeBank/eBank "회장/대표이사" 직함의 명함은 소총에 불과하다.

»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2000년 한 공개강연에서 자신이 BBK투자자문을 설립했다고 직접 말하는 동영상을 확보한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당직자가 16일 새벽 국회에서 이해찬 의원 주재로 긴급 선거대책위원회 회의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 뒤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범죄 수사의 기본 중의 기본은 범인의 자백이다. 한국이 진짜로 민주화된 나라라면 국가검찰이 범인의 자백을 무시한 채 범인을 철면피하게 감싸는 반상식적 역행을 감행할 수 없다. 

"이명박의 범죄혐의"로 야기된 2007년의 소란은 기본적으로 정치사건이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그의 과거 "범죄혐의"가 다시 문제되지 않았다. 소란의 핵심은 "범죄혐의"가 아니고 거짓말이다. 이명박 후보는 작년 대선으로 가면서 BBK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관계가 있다면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책임을 지겠다고 호언했다. 그런 호언이 2007년 12월 16일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거짓말을 은폐하면 역사의 죄인

이명박 특검의 활동기간은 40일로 "이명박의 범죄혐의"를 규명하기에는 짧았지만 이명박 후보가 거짓말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한국이 진짜로 민주화된 나라라면 국가검찰은 범인의 거짓말을 중죄로 다스릴 만큼 중시해야 한다.

이명박 특검은 수사 기간이 짧아 "이명박의 범죄혐의"를 규명하지는 못하지만 이명박 후보가 거짓말 한 것을 덮으면 안 된다. 거짓말을 은폐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

그러나 언론보도로는 이명박 특검이 역사를 의식하는 것 같지 않다. "BBK를 설립했고 BBK는 올해 시작했지만 이미 9월말 28.8% 이익이 났다"는 이명박 씨의 광운대 강연 및 같은 취지로 자랑한 언론과의 인터뷰에 대해 특검팀은 이씨가 '실제 상황을 과장해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검찰이 범인을 비호하는 것 같아 경악을 금치 못한다.  

또한 삼청각 '만찬 조사'에서 이명박 당선자가 "BBK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거나 지배력을 행사한 적은 전혀 없으며 광운대나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은 LKe뱅크를 같이 운영하던 김경준 씨를 돕기 위한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BBK 창업 당시 막대한 자금의 투입과 유치는 단지 김경준 씨를 도우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명박 씨의 말은 누가 들어도 눈감기고 아옹하는 식의 견강부회이고 터무니없는 왜곡이다.

한국이 진짜로 민주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의 사법적 권력이 범죄혐의자를 낯 두껍게 비호하며 유전무죄의 제작소로 행세하는 일방 '사면 정치'의 도구로 봉사하는 전통과 관행을 깨지 못했다.

이명박 특검이 한국의 사법적 권력의 예외가 될 수 없었던 것은 뻔하다. 특검은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한국의 일부일진댄 그 자체의 용기로 정의를 구현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자유언론(a free press)의 본분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

주요 신문지 신문이 지은 죄가 태산이다. 한국의 전통 언론은 이명박 당선자를 '살아있는 권력'으로 규정하고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겁을 주며 스스로 겁을 먹었다.

무릇 자유언론(a free press)의 본분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거늘 '정치적 후폭풍'을 들먹이며 비겁해진 정도가 가관이다. 독재권력의 시퍼런 칼날에도 굴하지 않고 말발을 세웠던 한국의 자유언론이 어느새 숨어버렸거나 권력형 언론으로 전향했다. 그러니깐 이명박 특검이 용기를 내기는 언감생심이었다. 

4,717만 표를 얻어 당선된 미국의 닉슨(Nixon) 대통령은 1974년 한 명의 특별검사 콕스(Archibald Cox)의 고집으로 현직에서 쫓겨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문 출신이었던 콕스가 미국의 확립된 사법적 권력의 전통을 누린 때문이었기도 하지만 미국의 국회가 강하게 추궁하는 가운데 언론이 그를 전폭 밀어준 덕분에 워트게이트 특검이 성공할 수 있었다.

자유법치주의(constitutional liberalism)의 뿌리가 여린데다 직업언론이 자유언론의 사명을 망각하고 권력에 영합하면 보통검찰이든 특별검찰이든 제구실을 수행할 리 없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상대하는 싸움이고 그런 싸움에는 언론의 지원 역할이 필수적이다.


국회가 전가한 정치적 짐을 특검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적 과욕

한국에서 지금 특검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명박 특검과 삼성 특검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 사법적 정의의 확립이 일견 왕성한 것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로 보통검찰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니깐 특검이 남발되어 사법적 권력의 자괴 현상을 초래할 뿐이다. 빈번한 특검은 사법적 정의를 담보하는 특효약이 될 수 없다.

이명박 특검, 전원 찬성 통과 ⓒ 뉴시스

한마디로 국가의 오만한 권력에 대한 일차적 견제는 국회가 국민적 수임(mandate)을 제대로 수행해야만 가능해진다. 국회가 그 자신의 위상을 확립 못하면 사법적 권력이 그 자체로 독립을 쟁취하며 자신의 위상을 정립할 수 없다. 역사상 한 번도 그 자신의 울타리를 치기 위해 피를 흘려 본 적이 없는 한국의 국회가 전가한 정치적 짐을 특검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적 과욕이다.

2004년 봄 국회는 사상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소추했다. 그러나 꼬리를 곧 내려버렸다. 촛불부대를 앞세워 광화문을 점령한 'TV쿠데타'의 위용에 놀란 때문이다. 뒷수습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도망병처럼 행동했다.

366년 전 영국내란(the English Civil War) 때 중무장한 군대를 이끌고 국회로 쳐들어간 왕 찰스(Charles I)에게 국회의장 렌돌(Lenthall)이 보여준 용기는 영국의 국회가 그 권력의 울타리를 치는데 기여한 일화로 꼽힌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노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을 인정하고도 정치적 핑계를 붙여 그를 방면했다. 유권자인 국민이 손수 뽑은 나라님을 국회와 재판소가 하야시키는 것은 만부당하다는 국민적 의식이 조작된 바람에 한국의 국회는 그 자체의 권력이 없는 싱거운 기관으로서 그 정체를 확실히 했다. 

연거푸 한국의 국회는 2007년 12월 17일 대선 이틀을 앞두고 이명박 특검법을 제정만 해놓고 다시 꼬리를 내려버렸다. 노 대통령을 탄핵·소추했을 때와 기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그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줄 모른다. 국회의 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생색을 내는 여의도 귀족들은 웰빙족의 정치적 안식처로부터 쫓겨날 걱정만을 한다. 이번에도 유권자인 국민의 다수가 손수 뽑은 나라님의 등극을 일개 특검이 가로막을 수 없다는 국민적 의식의 조작이 팽팽한 것을 눈치 채고 안절부절못한다.

전통적으로 일종의 왕권신수(divine rights of kings)를 신봉해온 나라인 한국은 맹목적으로 도입한 국민주권(national sovereignty)의 신화를 애지중지하며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인 것으로 안다. 영국식의 의회주권(parliamentary sovereignty)은 아예 생각조차 못할망정 미국의 의회처럼 국가권력의 견제·균형을 위한 사령탑으로서 국회의 위상을 확립하지 않고는 자유민주주의로 갈 수 없다는 문제의식마저 없다. 한국의 국회는 특검을 이따금 정쟁의 도구로 발동하여 권력 게임에 이용하되 뒷감당을 못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법치주의는 기본 중의 기본

한국의 민주주의는 1948년 건국 당시 초건목피 상태에서 약 80퍼센트의 문맹률로 시작했다. 그 당시 민주주의는 한갓 국가건설을 위한 간판에 지나지 않았다. 다행히 박정희가 개발독재로 경제기적을 일궈낸 덕분에 민주주의의 천적인 기아와 빈곤을 추방함으로써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초와 조건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 직선제의 채택으로 민주화를 완성했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환상이다. 직선제 그 자체가 민주화는 아니다. 민주화의 모양새를 낼 뿐이다. 직선제로 제왕적 대통령을 뽑아 놓기만 하는 것은 결코 민주화가 아니다.

1987년 6월 26일, 6.26 평화대행진이 벌어진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웃옷을 벗은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외치며 다탄두 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에게 달려가고 있다.

선거는 독재권력을 은폐하거나 정당화하는 도구로 얼마든지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와 사법적 권력이 제왕적 권력의 하녀로 변하지 않고 자유언론이 숨어버린 가운데 전통 언론이 권력형으로 전향한 것이 역연한 데에도 한국은 민주화되었다고 자만한다.

"이명박의 범죄혐의"를 위요한 정치사건의 발생 원인으로부터 그 귀결에 이르기까지의 복판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한국의 민주화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한국이 민주화를 달성한 것으로 언급해왔고 최근에는 그의 최측근의 한 명인 유우익 지리학교수도 그렇게 말했다. '이명박의 사람들'은 한국의 향후 국가 목표가 '선진화'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도대체 민주화가 무엇이며 선진화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생명과 재산 즉 개인의 자유를 맘대로 유린한 왕의 목을 벤 후 왕권을 국가기관에 분산하여 자유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선진민주국가가 산업화를 달성하면서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하는 데는 근 350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언론의 자유를 확립한  가운데 국회가 권력의 중추역할을 하며 사법적 권력의 독립을 보장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법치주의는 기본 중의 기본으로 그 핵은 약속과 정직이다. 특히 거짓말을 다스리지 못하면 법치주의가 안 된다. 법치주의를 확립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깐 선진민주국가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추방하여 법치주의를 확립한 나라이다. 그것이 빠진 것은 선진화가 아니다. 그 다음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를 확립한 나라 즉 국회가 스스로의 위상을 지키고 사법적 권력이 독자적으로 기능하며 자유언론이 자재로 숨을 쉴 수 있어야만 민주화된 선진국가이다. 

한국이 선진민주국가라면 이명박 후보는 자퇴하지 않고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일본 같았으면 하라키리 케이스이고 싱가포르의 경우만 해도 자살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명박 특검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에 관계없이 "이명박의 범죄혐의"를 처리한 한국적 방식은 한국이 민주화되지 않은 정치적 후진국가라는 것을 입증하는 근거로 충분하다. 

선진화는 영어를 잘 구사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영어 몰입교육으로 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하도록 하여 한국인의 혼이 빠지는 것을 아랑곳 않고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허물면 그것도 반역이 된다. 지난 10년간의 권력형 반역의 시대가 배금주의 기망의 시대로 바뀌면서 그런 반역의 조짐이 나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에서 거짓말을 추방하여 한국이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로 자유사회(a free society)를 지향하는데 국가목표의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선진세계의 문턱에 올라 설 수 없고 문명사회의 일원이 될 자격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 위한 처음도 참(眞)민주화이고 끝도 참(眞)민주화이다.  

 

ⓒ 이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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