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쏟아지는 코미디에 웃기도 지칩니다. 천박연대라니, 지역주의 발상의 최고봉입니다. 국민을 완전 홍어 불알로 아는, 감정만을 건드리는 하책 하의 작명입니다. 이렇게나마 표에 매달리려고 하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개밥그릇에 동전 던지듯이 표를 던져주는 영남분들 존경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주의가 깨어질 때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이 올 것이라는 말을 새삼 상기시키는 천박연대입니다. 특정인을 연상시키는 문구가 들어간 표현이 사회통념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제한할 방법 또한 없다고 합니다.
사회통념상 바람직하고 말고가 무슨 소용입니까? 그저 국개의원만 된다면 영혼까지도 파는 인간들입니다. '영혼을 바치겠습니다'라며 알랑 되다가 눈앞의 이익에 바로 뒤돌아서서 등에 칼 꽂는 인간들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박근혜는 한나라당에 그냥 남아 있는 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에 돌아서서 칼을 꽂는데 살아서 돌아와라. 영남분들 이것을 의리라고 해야 하나요. 우물 속의 개구리라고 해야 하나요? 새우깡 속의 쥐새끼 꼴인가요.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데 아직도 박정희의 영혼이 얼렁거리는 동네입니다. 친박이 통하는 동네입니다. 한때는 박정희에 맞서서 양심이 살아있는 도시였는데 역사는 역시 돌고 도는 모양입니다.
2004년, 노무현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이름 앞에서 정당 민주주의의 상징인 상향식 공천이 시작되었습니다. 상향식 공천은 정당 민주주의의 풀뿌리와 같은 제도입니다. 당시에는 열린우리당 80여 곳, 새천년민주당 70여 곳, 한나라당조차도 20여 곳에서 경선이 이루어져 한국 정치사의 획기적 사건이라는 평을 들으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국민들이었다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지역 유권자 의사를 후보 선출 단계부터 반영하여 당 지도부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였고 실제로 미국 등 정당 선진국들은 상향식 공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대가 이명박 정부와 함께 완전 산산조각 나 버렸습니다.
작금의 이명박 정권과 비교하여 보면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이 상향식 공천을 하게 만든, 시대를 움직이는 힘을 새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언제 우리가 그런 것이라도 했던가? 할 정도로 역사는 거꾸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과거 밀실 공천으로의 회귀를 넘어 민주주의의 후퇴입니다. 줄줄줄 뿐이었고 민심도 더불어 줄줄줄 세고 공천 부작용으로 반발, 탈당, 무소속 출마가 당연시되는 부끄러운, 염치를 모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경선이라는 제도 자체가 완전히 실종되어져 버린 것만큼 우리의 민주주의도 함께 실종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켜온 민주주의인데. 민주주의 피를 안다면, 민주주의 눈물을 보았다면 이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녕 국민 여러분 백골단의 부활을 지켜보고만 있으렵니까? 비례대표의 원칙은 아예 완전히 실종되었습니다. 단지, 내 사람을 심는 각축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허물이 강재서비가 책임 운운하며 조철봉 불알이나 만지러 가겠다며 불출마 선언 쇼를 했습니다. 국무총리라도 한 자리 노리는 모양인데 박그네의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습니다. "불공정 공천문제로 당이 아우성인데, 당 대표가 비례대표 영입에 대해 대통령에게 칭찬받았다고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아실 것"이라고 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공천 개입 의혹을 지적했는데 자기는 한통속 아닙니까? "속을 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약속과 신뢰가 지켜지기를 바랐다"며 "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여자가 올려야 할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과 속눈썹과 자존심입니다. 무너진 박그네의 자존심이 얼마나 올라갈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역사관이 있습니까? 철학이 있습니까? 그저 눈앞의 욕심밖에 더 있습니까? 무엇인가가 새로움이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4월 9일 쥐 잡는 날입니다.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한 표입니다.
양팔과 다리가 모두 잘린 채, 이전투구의 현장을 벗어나 조용히 시대를 지켜보는 봉화산이 웃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어떤 경우에서도, 전 국민이 그 사람들의 진정성을 알아주고 그 사람들의 억울함을 알아주고 있어도 조용히 승복하고 깨끗이 물러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수라 판에서 한 발 비켜난 그분들이 새삼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안희정님을 비롯한 바로 친노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봉하마을을 방문했던 분들의 사진들이 '사람 사는 세상'에 올라옵니다. 어떤 단체에서는 성지순례라는 명찰을 걸고 방문하기도 했답니다. 성지랍니다. 그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하는 분들의 표정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어쩌면 이렇게 맑을 수 있을까? 해맑을 수 있을까? 어른 아이 할아버지 할머니 할 것 없이 행복하고 그 순간의 표정은 티 없고 밝은 모습들이 너무 기분 좋게 만듭니다.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이렇게 순수하고 행복해 질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 사는 세상'의 사진 속 표정들을 살피다가 보면 함께 빙그레 미소 짓게 됩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그런 행복이, 그런 순수가, 그런 맑고 밝음이, 그런 원칙과 상식은 이대로 우리 시대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작금의 여의도를 바라보며 너무나 대비되는 친노들의 행보가 바로 사람들을 봉하마을로 이끄는 원동력이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갈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오해라고 합니다. 오해했었는가 봅니다. 참여정부 줄 곳 경제 파탄 났다고 했는데 경제 파탄 내겠다는 말을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일자리 창출 60만 개라고 했는데 그것이 코드인사 60만 개이며 해바라기 60만 개이며 머슴 60만 개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오해였습니다. 대운하로 국민여론 듣겠습니다. 역시 오해였습니다. 삽질로 땅장사하겠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뒷구멍으로는 다 챙기고 있었던 것도 모르고 오해했습니다. 국토를 그렇게 사랑했는데 오해했습니다. 그래도 그만큼만 사랑했기에 천만다행입니다. 전 국토를 다 사랑했으면 어쩔 뻔했겠습니까? 준비하는 10년이라고 했습니다. 국제 글로벌 기구인 IMF를 유치하기 위해 이렇게 애쓰는 것도 모르고 오해했습니다. 국민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국민에게 떼쓰지 말라고 백골단 만드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아항! 오해였습니다. 국민을 부린다는 말이었는 모양입니다.
새삼 성장보다 안정이 중요하다고 하셨네요. 7% 성장도 오해였나 봅니다. 핑곗거리 좋습니다. 그럼 안정 속에 5% 성장한 참여정부 더러 경제가 망했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또 어떤 핑계를 대려나 심히 궁금해집니다. 안정 좋습니다. 성장 오해했습니다. 이제 안정이라고 했으니 참여정부만큼 5% 성장 못 하면 자기 한 말에 책임지고, 전 국민을 위장으로 속인 것에 대한 책임 어떻게 지시렵니까? 물러나시렵니까? 탄핵당하시렵니까? 눈앞에 급한 불만 끄고자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자리가 아닙니다. 당신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자기들의 개인 머슴을 부리는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일면식이 있고 종교가 같아야 장관을 시키는 자리가 아닌 것이랍니다. 일본 아사히 신문과 인터뷰를 했더군요. "역사적 문제는 일본 정치인들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셨더군요. 어느 나라 대통령입니까? 일본 정치인들의 판단에 맡기겠다니? 이거 탄핵감 아닙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면? 아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들, 찌라시들에는 한 줄 언급도 되지 않았습니다. 아사히 신문을 검색하여 찾아낸 자료입니다. 진짜 웃기는 짬뽕들입니다. 역사적 문제 일본정치인들에게 맡기십시오. 다른 할 말이 없습니다. 논평의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서 일본 창설 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참석한 인간들의 집합소입니다. 부끄러운 줄은 알았나요. 대가리는 왜 숙이고 기어들어갑니까? 이제는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 정치인들에게 맡긴답니다. 나원 차~암.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가난한 사람들. 셰익스피어에 버금간다는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모두가 서로 통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돈입니다. 돈 때문에 죽이고, 돈 때문에 절망하고, 돈 때문에 싸웁니다. 정치 사회소설 '악령'은 부의 재분배를 다루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돈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는 푸시킨을 넘어섭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 말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빌어먹을 정도의 가난은 죄악입니다. 누군가 극빈 상태에 이르면 몽둥이로 쫓아내지도 않습니다. 아예 빗자루로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쓸어버립니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자기가 먼저 자신을 모욕하려 들죠." 죄와 벌의 가난에 대해 묘사한 부분입니다. 독자들의 잠재의식을 건드리는 표현입니다.
빵 한 조각이 없어 남의 물건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시대상을 절묘하게 표현한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도 정치 소설입니다.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죽거나 죽이거나'로 표현되는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들의 절규는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표현처럼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빗자루로 쓸려나가는 존재들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오늘도 청와대발 코미디 일수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생쥐를 튀겨 먹으면 몸에 좋다. 는 보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각하의 표정이 어땠을까요? "니나 튀겨 처먹어라."라고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고 오피스텔을 선물로 받은 사람의 후임으로 임명된 변도윤 여성부 장관의 알랑방귀 어록입니다. 10억의 재산을 신고하고는 "가난한 마음으로 단출하게 살았기에 문제 될 것 없다."고 씨부린 사람입니다.
상대적 빈곤이며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했나요. 여의도는 사람 살 곳이 못되어 집을 두 채 마련해 놓고 여름과 겨울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과 골프 회원권을 싸구려라고 비교하는 사람. 배용준과 비교해 보면 가난하고 단출하게 사신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강남 鼠민들. 쥐새끼 서자입니다. 강남서민들 보니. 닝기리. 욕 나옵니다. 당신이 가난하다면 우리 서민들이야 빗자루에 쓸려나가는 족속으로 전락하여 버린 기분입니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먼저 자신을 모욕하려 든다고 했습니다. 저 자신이 먼저 모욕되기에 욕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청와대에서 생쥐튀김 이야기하는 정도의 수준이 완전 블랙 코미디라는 것입니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업무는 뒷전이고 대통령 눈앞에서 "각하 쌀 샌드위치를 만들까요?"라며 알랑되는 꼬라지들이. 나라 꼬라지 안 봐도 비디오일 것 같습니다.
흑백 잉크가 실용이라는 그분의 말씀에 달린 네티즌의 의견입니다.
"원래 쥐는 뭘 봐도 흑백이지 않나요? 색맹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