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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대한민국의 사원이 되기 싫다!

순수한 남자 2008. 4. 20. 10:08
나는 (주)대한민국의 사원이 되기 싫다!
번호 79988  글쓴이 torreypine (torreypines)  조회 3077  누리 689 (701/12)  등록일 2008-4-18 10:05 대문 34 추천


방미 이틀째를 맞아 코리아 세일즈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뉴욕의 투자환경설명회에 참석한 세계 유수 기업 대표들 앞에서 "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라고 했다. 영어로 연설했으니 정확히는 "CEO of Korea, Inc."란 표현을 썼다.

Korea, Inc.라… 많이 익숙한 표현이다. 그 표현을 들은 많은 사람은 필자와 마찬가지로 Japan, Inc.를 제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제일 잘 나가던 시기가 언제였느냐고 물으면 1980년대라고 답하는 데 주저할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Toyota와 Sony로 대표되는 자국 브랜드로 세계시장을 제패하고, 기업은 넘쳐나는 돈을 주체를 못해 해외부동산 투자에 나서 미국의 경우 뉴욕 맨해튼부터 로스앤젤레스까지 굵직굵직한 부동산이 하나하나 일본인의 손에 넘어갔다.

그 당시 세계경제를 금방 한 손아귀에 넣을 것 같은 일본의 경제적 팽창을 경이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서구인들이 만든 별명이 바로 '일본 주식회사' 즉 Japan, Inc.다.

이 Japan, Inc란 별명은 기업뿐 아니라 정부, 더 나아가서는 국민 모두가 나서 (80년대와 같은 경제 번영기에도 일반 국민의 생활수준은 그리 자랑할 게 못 됐다.) 온 나라가 하나의 큰 기업과 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해외 시장을 점령해 나가는 일본의 모습을 한 단어에 함축해 넣은 표현이다.

처음에 반은 경외의 눈으로 반은 질시의 눈으로 만들어진 Japan, Inc.는 점차 경제 동물(Economic Animal)이라는 일본인들을 비하하는 별명과 맞물려 긍정적인 면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의미를 주로 대변하게 된다.

국민은 깃발단체해외관광에 나서 부리는 온갖 추태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국가경제규모에 걸맞지 않은 애어른 짓만 하다 보니, 국민이고 국가고 그런 식의 대접밖에는 못 받은 게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다 1989년 주식시장 붕괴로 시작해서 온갖 버블이 터지며 10년 이상을 자존심 구겨가며 고통스럽게 살아왔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부동산도 90년대에 반값도 못 받고 대부분 처분했고, 현재는 Lexus, Nintendo 등 몇 브랜드가 과거의 영광을 이어 가고 있을 뿐, 일본의 경영을 배우겠다는 열풍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정도가 Japan, Inc.라는 단어를 언급하면 대부분의 미국인이 떠올릴 일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것이 일본의 전부 또는 실상이라는 말은 아니고, Japan, Inc.란 단어와 연관돼서 떠올려지는 게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어떤 기대를 하고 세계 유수의 기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환경설명회에서 Korea, Inc.라는 표현을 썼을까? Korea, Inc.하면 Japan, Inc.가 바로 연상되는 걸 몰랐을까? Japan, Inc.라는 말을 알았으니 Korea, Inc.를 생각해낸 것일 텐데, 이 표현을 미국인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드릴 것으로 생각하고 사용한 걸까?

대통령이 이런 자리를 통해 우리나라의 투자환경을 설명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대통령의 해외방문 목적이 너무 그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으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메시지는 기업 환경을 위한 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강조하면 되는 것이지, 정부가 나서서 기업과 한 몸이 될 것 같은 이미지를 전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은 잘못하면 정부의 작위적인 정책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본인의 별명 중에 불도저와 CEO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불도저는 이제 해외 언론들도 익히 알고 있어서, 어쩌다 보이는 이 대통령 관련 기사를 보면 거의 빠지지 않는 게 그 표현이다. 그런데 이 불도저에도 추진력이 좋다 정도의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앞뒤 생각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한 단어인 줄 알고 쓰는지 궁금하다.

Korea, Inc.도 미국 경제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투자설명회를 하려다 보니 CEO란 표현은 꼭 써야겠다는 생각에 개발 (좀 더 정확히는 모방) 한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이 살면서 별명 몇 개쯤은 갖게 된다. 별명에도 듣기 좋은 별명이 있고 그렇지 않은 별명이 있다. 듣기 좋은 별명은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자가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듣기 싫은 별명은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불러도 모른 척한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내 나라의 별명으로 듣기 좋은 별명인지 생각해 본다.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나에게 그 별명은 남이 붙여준다고 해도 도망 다녀야 할 별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가발전 정도가 아니고 자체개발까지 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런데 Japan, Inc.는 최소한 일본에서 자체개발한 별명이 아니고 남이 만들어서 일방적으로 부른 별명이다.

CEO도 마찬가지다. 도덕이고 뭐고 다 쓸데없는 나발이고 돈만 중요한 우리나라에서나 통할 말이지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본인에게 쓸만한 별명은 아니다. 나라를 주식회사로 비하했으니 대통령은 CEO가 될 수밖에는 없고, 일반국민은 사원이 된다. 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원이 되기 싫다. 나는 그 회사에 취직 안 해도 좋으니 그냥 대한민국 국민으로 남게 해달라.

대통령이 미국에 왔다니 미국언론에서는 어떻게 다루는지 보려고 CNN이나 MSNBC 등을 틀어 놓고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린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볼 수가 없다. 이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해서 미국의 관심은 한가지뿐이다. 소고기 수입개방! 부시에게 그 선물을 안겨주면 뉴스에서 한번 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