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5년의 기쁨을 가슴에 묻고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순수한 남자 2008. 5. 25. 16:46
"5년의 기쁨을 가슴에 묻고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 국회의원 유시민이 공직자로서 드리는 마지막 감사편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국회의원 유시민입니다.

17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끝났습니다. 이제 '국회의원 유시민입니다.'라고 인사드릴 시간도 며칠 안 남았습니다. 지난 5년, 나라와 국민을 위해 힘껏 일할 기회를 주셨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공직자로서 마지막 인사를 올립니다.


참여정부와 함께 한 5년은 자부심으로 남을 것입니다.

2002년 여름, 국민 후보 노무현을 지키자고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6년이 흘렀습니다. 좋은 정당을 꿈꾸며 뜻있는 시민들과 개혁당을 세웠고, 참여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반듯한 여당을 꿈꾸며 열린우리당도 만들었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켜 참여정부를 세워주신 덕분에, 두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일할 기회도 가졌습니다.

참여정부는 시작부터 많은 숙제를 안고 출발했습니다. 지식정보화와 세계화라는 시대조류 속에서 대한민국은 IMF를 겨우 벗어났지만, 카드채 위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후유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출산 고령화와 사회적 양극화라는 우리 내부의 도전은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민족분단과 지역분열의 정치구조 같은 해묵은 과제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처한 안팎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고 해묵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여정부는 정말 숨 가쁘게 뛰었습니다.

지난 5년 참여정부는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선거와 정치, 공직사회 전반에 걸쳐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정착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역균형발전과 남북평화협력의 진전을 위해서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일했습니다. 국민의 정부 때 시작된 사회보장제도를 정착시키고 복지예산을 확대한 것도 큰 성과였습니다. 참여정부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기틀을 닦는 심정으로 일했습니다. 여당의 당원으로, 입법부의 의원으로, 행정부의 장관으로 참여정부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정말 큰 행운이며 영광이었습니다. 참여정부와 국민 여러분이 함께 일구었던 지난 5년의 국가적 성취에 대해 저는 크나큰 긍지를 느낍니다.


못다 한 정당개혁은 마음속에 등불을 켜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저는 심각한 좌절을 겪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정신을 정당 안에서 실현하려 했던 정당개혁운동은 열린우리당의 소멸과 함께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정당들이 지역을 갈라 권력투쟁을 일삼는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극복해 보려던 정치개혁운동 역시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개혁당에서 시작해 열린우리당으로 이어졌던 모든 새로운 시도가 물거품이 된 것입니다. 소망과 의지는 드높았지만, 지혜와 역량이 부족해서 빚어진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동지들과 당원들, 지지자와 후원자 여러분들께 엎드려 사죄를 올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최종적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더 좋은 사회로 가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수 국민들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마음속에 등불을 켜고 언제나 깨어 있겠습니다. 국민의 요구가 분출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묵묵히 실력을 기르고 역량을 키우며 살아가겠습니다.


역 정권교체를 선택한 국민의 뜻을 존중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은 지난겨울, 헌정사상 최초의 역(逆) 정권교체를 선택하셨습니다. 중앙정부를 보수정당에 넘긴 데 이어 총선에서도 의회권력을 한나라당에 맡기셨습니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오래전부터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한나라당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 또한 국민의 선택이니 존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정당한 절차를 거쳐 탄생한 정부입니다. 보수주의와 실용주의를 표방하여 국민의 신임을 받은 만큼 이명박 정부는 보수적 정책을 추진할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다섯 달 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말과 행동과 정책을 보면 과연 이 정부가 국가 발전과 국민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회를 떠나면서 저는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세력 인사들에게 세 가지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당부 1. 실사구시의 태도로 이전 정부가 잘한 일은 이어가야 합니다.

첫째,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실용주의적 태도로 일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은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약속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난 정부들이 했던 모든 것을 다 부정하라고 나라를 맡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지난 정부가 했던 일들도 잘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마음먹는다고 해서 경제성장률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요, 성장률을 올린다고 해서 저절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 역시 아닙니다. 강만수 경제팀이 지금 하는 그대로 하면 성장률도 지난해만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로 생기는 일자리 역시 작년보다 줄어들 것입니다. 수출과 대기업, 제조업에 집착하는 정책만으로 고용률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은 경제학계의 상식입니다. 자영업이 구조적 공급과잉 상태에 있다는 사실 역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금융과 사업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보건, 복지, 보육 분야 서비스산업이 고용창출 잠재력이 가장 큰 분야라는 점을 간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향후 10년간 1백만 개에 육박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보고서를 다시 챙겨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듣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참여정부가 사회서비스 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세웠던 제도개혁 과제와 사업계획, 중기재정계획 등을 모두 폐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상 일자리 만들겠다는 공약 하나만으로 국민의 신임을 받아 탄생한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보다 더 못한 결과를 내놓았을 때, 정권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이명박 대통령과 참모들 자신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정부라면 이념이나 감정을 떠나서 실사구시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실용정부가 아니라, 막연한 보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지난 정부의 유산조차 모두 쓰레기통에 집어던지는 이념정부의 모습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당부 2. 헌법의 통치시스템을 존중하여 공직자들 사명감을 북돋워야 합니다.

둘째, 공직자들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북돋워야 합니다. 포상과 징벌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공직사회의 기강을 세우고 역량을 키울 수는 없다는 것이 짧은 기간 한 부처를 이끌어본 저의 판단입니다. 대한민국 공무원은 강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지닌 존재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질 각오로 일하는 공무원도 수없이 많습니다. 대통령과 장관들은 이런 공무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그들이 대통령과 장관의 철학과 정책노선을 내면화하도록 북돋워야 합니다.

공직사회에는 언제나 혁신과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비판의식을 이용하여 공직사회를 감정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으로는 공무원들의 업무 의욕을 높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우익 포퓰리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요사이 공직사회의 정신적 붕괴현상을 목격합니다. 전북 김제에서 시작된 조류인플루엔자를 초기에 잡지 못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퍼지게 만든 과정을 보아도 그렇고, 협정문 초안을 읽지도 않은 채 서명한 것으로 보이는 한미 쇠고기협상 경위를 보아도 그렇고, 우리 공무원들이 자부심과 사명감을 상실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처 간 공조체제도 완전히 붕괴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인치(人治)로 회귀하는 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내각을 통괄하는 국무총리는 보이지 않고, 정부 부처간 협조체제도 마비되고, 부처장관 위에 옥상옥으로 청와대 수석을 두어,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대통령과 몇몇 측근들이 독점하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방식으로 통치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복잡한 사회라는 엄연한 사실을 대통령과 참모들이 직시하고, 다시 헌법과 정치의 기본원리에 따르는 통치시스템을 복원할 것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당부 3. 국민을 섬기는 민주적 리더십을 가지셔야 합니다.

셋째,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민주적 리더십에 대해서 더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국정혼란이 다 대통령 개인의 책임은 아닐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정치세력 전체의 철학적 태도와 문화 풍토가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민주화 세력에서 산업화 세력으로 권력이 넘어간 역(逆) 정권교체에 담긴 국민의 뜻을 제대로 해석해야 합니다. 지난 10년간 민주화 세력이 지향하고 성취했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것대로 이어가면서 경제부흥과 일자리 만들기를 더 잘하라는 것이 이번 역 정권교체에 담긴 국민의 뜻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미국 방문 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라고 했습니다. 언론인이나 지식인들이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으나 대통령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면 곤란합니다. 국민은 계약관계의 회사 직원이 아니라 대통령이 섬겨야 할 주권자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국민은 대한민국의 주권자입니다. 주권자들이 언제나 대통령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국민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선택합니다. 때로 그 판단과 선택이 대통령과 다르고, 또 학술적 논리적으로 대통령의 견해가 타당하다 할지라도, 대통령이 주권자에게 자기의 판단과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30개월 넘는 미국 소와 광우병 위험부위 수입 허용을 반대하는 촛불시위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마음이 크게 불안합니다. 시위에 나온 여고생이나 자기 집 베란다에 현수막을 내건 시민들의 주장 가운데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거나 과장된 부분도 분명 조금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정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싶어하는 욕구는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졸릴 때 잠을 자는 것과 동일한 기본적 욕구입니다. 공안기관을 동원하여 이러한 국민의 기본권을 통제하고 억압하려 한다면, 이명박 정권은 임기 내내 거리에서 국민들과 싸우면서 세월을 보내야 할지 모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소탈한 품성을 지닌 분이라 할지라도, 과거 개발시대 건설회사 사장이 직원을 대하는 태도로 국민을 상대한다면 국민에게는 권위주의적 통치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자율화 개방화 다양화 탈권위의 흐름을 체험한 국민들이 국가지도자에게 요청하는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깊이 성찰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집권세력의 교체는 국민의 일상에 다양한 영향을 끼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은 보수정치세력으로 역 정권교체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선택의 동기와 배경을 저는 충분히 이해하며 주권자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그런데 국가운영을 맡길 정치세력을 교체하는 것은 평범한 국민들의 일상에 다양하고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도정에서 우리는 집권세력의 교체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신중하게 가늠하는 지혜를 쌓아가게 될 것입니다.

민주국가의 국민은 한 번 내린 결정을 번복할 권한과 기회를 가집니다. 선거는 4년 또는 5년을 주기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반복됩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대한민국은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해, 국민이 더 풍요롭고 행복한 복지사회를 향해 전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국민 여러분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어떤 권한을 어디까지 위임한 것인가? 행정부와 국회와 지자체를 다 장악한 정치세력은 자기 마음대로 다해도 되는 것인가? 만약 정부와 집권당이 국민이 선거를 통해 위임했다고 생각하는 권한의 범위를 벗어나 질주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이 있습니다. "다음 선거에서 다른 정치세력에 표를 주면 되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흔쾌히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정당이 있습니까? 저는 그런 정당을 세우고 싶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통합민주당에 남은 분들에게 이해와 용서를 청합니다.

제가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한 지 넉 달이 넘었습니다. 열린우리당에 저와 함께 몸담았던 많은 정치인들이 대통합민주신당을 흡수통합한 민주당에 속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민주당이 한나라당 대신 흔쾌히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합류하지 않았지만, 모쪼록 통합민주당이 야당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앞길에 늘 영광과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저로 인해 마음 상하는 일을 겪으신 분들께 너그러운 이해와 용서를 청합니다. 제가 함께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역시 너그러운 이해와 용서를 구합니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며 살겠습니다.


많은 국민이 좋아서 지지하는 정당이 있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대선을 앞두고 제가 했던 선택이 옳았는지 지금도 자문합니다. 국민이 정권교체를 원하고 당장 그 마음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면 품격 있게 지는 것이 정치인과 정당의 바른 도리가 아니었을까? 이겨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정당한 절차조차 없이 열린우리당을 없애고 원칙도 없이 세력을 끌어모아 새로운 정당을 만든 것은 책임정치의 원리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이것을 저지하는 대신 거기 합류해 대통령 후보 예비경선까지 뛰어든 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던가? 이런 질문들입니다.

정치인과 정당은 집권을 원하지만 때로는 여당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야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과 소망을 기준으로 삼아 나라를 맡길 정치세력을 선택하는 국민의 권리일 것입니다. 대선 패배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책임정치의 정도를 이탈한 소위 민주개혁세력은 선거기간 내내 소모적 네거티브 캠페인에 몰두하다 품격도 없이 패배했습니다. 총선에서도 정체성을 상실한 채 막연한 견제론을 펼치다 국민의 선택에서 더욱 멀어져 버렸습니다. 품격 있는 패배를 받아들이는 정당이라야 다음 기회가 왔을 때 당당하게 재기할 능력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감과 실망감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 국민들이 정말로 좋아서, 정책이 마음에 들어서 지지하고 싶은 정당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에게 자기의 인생을 열어갈 기회를 골고루 주는 나라, 열심히 노력하는 능력 있는 사람이 반칙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나라, 실패한 사람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사회, 국민 각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발현하면서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 세계를 향해 가슴을 열고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주도하는 나라, 대한민국을 이런 나라로 발전시키는 좋은 정책비전을 지닌 깨끗하고 민주적인 정당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정당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지만, 이제 소속 정당도 없고 국회의원도 아닌 사람으로서 제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덕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5년 동안 공직자로서 봉사할 기회를 주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런 정치적 자산도 없었던 자유기고가 유시민을 국회로 보내주셨던 고양시 덕양구 유권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2003년 4월 덕양갑 재선거 당시 전국에서 모여 새로운 정치의 희망을 만들었던 개혁당 당원 동지들과 수많은 자원봉사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보여주신 성원과 지지가 있었기에 초심을 잃지 않고 정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2004년 탄핵의 소용돌이를 함께 헤쳐나왔던 열린우리당 당원들과 지지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일꾼들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소신과 용기를 잃지 않고 일할 수 있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국익을 지키고 국민 건강과 복지 향상을 위해 함께 동분서주했던 보건복지부와 소속기관 공직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러분을 만났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요 영광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 대선후보 예비경선과 올 4월 9일 국회의원 총선 때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달려와 응원을 보내주셨던 시민광장 회원과 자원봉사자 여러분, 이 고마움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3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저를 따뜻이 품어주신 대구 수성구 유권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6년 동안 지치지도 않고 해마다 큰돈을 보내주신 후원인 여러분께 엎드려 절을 올립니다. 영수증 말고는 아무것도 보내드린 게 없습니다. 한때 후원해 주신 일이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이제 저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정치인으로서 공직자로서 국민들과 대화했던 지난 시기와 다르게, 앞으로는 아무런 공적 책무가 없는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 합니다. 집권당 국회의원이거나 장관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다루지 못했던 문제들까지 폭넓게 연구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책을 쓰려고 합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생활인답게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그 과정에서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깨달음은 늦고 이별은 너무 일찍 찾아오나 봅니다. 지난 시기를 돌아보면 저를 좋아하는 분들을 실망시켰을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더 잘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삶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 모르겠지만, 제가 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방식과 우리 앞에 던져진 과제가 달라진 만큼,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어제와는 다른 모습 다른 방식으로 만나게 되겠지요. 그날까지,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8년 5월 25일
국회의원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