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망을 포기했다. 이제 국민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순수한 남자 2008. 6. 27. 16:47
희망을 포기했다. 이제 국민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번호 128730  글쓴이 이기명 (kmlee)  조회 1466  누리 413 (413/0)  등록일 2008-6-27 11:58 대문 24 추천


희망을 포기했다. 이제 국민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 촛불은 절망을 이겨내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8-6-28)


자식 하나 바라고 살던 어머니가 목숨을 끊었다. 희망이던 자식이 죽었기 때문이다. 남편 일찍 세상 떴고 자식 하나 바라보고 살았다. 그 자식이 죽은 것이다. 희망이 사라졌다. 모진 목숨이라고 하지만 어머니는 못 견디고 죽었다. 심한 비유라고 나무라지 마라. 실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자살한 축산 농민이 있다. 이유를 설명해야 되는가.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까짓 소라고 하지 마라. 희망은 사람이나 소나 다를 바 없다.

촛불 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 여중생들이 미친 쇠고기 못 먹겠다고 촛불을 든 이후 지금까지 사그라지지 않는다. 수만 명이 모이고 반대시위가 치열해지고 정부는 슬그머니 물러나는 척한다. 그러다가 촛불숫자가 좀 적어진 듯하면 다시 원위치다.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다. 눈에 보이는 촛불만 촛불인가. 가슴속에서 활활 타는 꺼지지 않는 촛불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정말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다.

정말 국민들은 화가 난다. 도대체 국민을 데리고 노는가. 여기서 정부의 거짓말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국민들이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결정되는 최종 절차로 관보에 기재가 됐고 이제 미국 쇠고기는 법적 절차를 끝냈다. 정부는 이제 한숨을 쉴 것이다. 탈도 많고 말도 많던 쇠고기 문제가 해결됐다고. 과연 그런가.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인정을 하지 않는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여론조사를 한번 보자.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한겨레가 의뢰한 가장 최근의 여론 조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불안이 74%이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20.4%다. 쇠고기와 이명박 지지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면 미친놈 된다. 한나라당의 여의도 연구소가 여론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어떤 결과가 나왔던지 상관없이 국민의 의지는 확고하다. 광우병 의심 쇠고기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정을 추진하는 동력은 일정 수준 이상의 국민 지지다. 20.4%의 지지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독재주의다. 이 땅에서 독재가 가능한가.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에서 전쟁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도저히 적일 수 없는 사람들끼리 싸웠다. 12세 어린이도 81세의 노인도 국회의원도 상관하지 않았다. 여성 국회의원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가슴을 잡고 차에 태우는 장면이 공개되고 온 국민이 보았다.

130여 명의 시민이 끌려갔다. 점잖게 연행이라고 하지만, 끌어간 것이다. 시민의 손마디가 잘라진 걸 보면서 국민들은 절망한다. 물대포가 다시 등장했고 도처에 뒹구는 시민의 처참한 모습이 보인다. 저러다가 죽는 국민이 생기면 어쩔 것인가. 생각하기도 두렵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 임명된 수석비서관들과의 대화에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연하다. 희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희망이 있어서 인간은 산다. 이명박 대통령도 소싯적 이태원에서 미화원을 하면서 희망 때문에 살았을 것이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도덕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국민들 마음에서도 말끔히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것은 '희망' 때문이었다.

지금보다는 잘 살게 해 줄 것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를 무기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지금은 보는 그대로다. 희망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대신 그 자리에 절망이 들어섰다.

이제 진저리가 나서 인수위나 초대내각에 대한 말은 담고 싶지도 않다. 온갖 때로 얼룩진 이름들을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아마 그들도 잊혀 지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못할 것은 있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 안하무인의 작태다.

국민들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느니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었느니 하면서 두 번씩 고개를 숙인 대통령의 위선만은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화장실에만 다녀오면 마음이 변하는가. 국민이 반대하면 절대로 고시를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누가 한 것인가. 자다가 한 잠꼬대인가.

좋다. 사람이야 잘못 썼으면 바꾸면 된다. 그러나 안 되는 것이 있다. 국민의 자존심을 뭉개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한국은 미국에 어떤 나라인가. 58년 전 6·25 때 도와줬으니 언제까지라도 쩔쩔매며 고개 숙이고 살아야 할 나라인가.

가난하고 배고플 때 밀가루 먹여 줬으니 백 년 천년 기죽어서 살란 말인가. 미국인은 먹지도 않는 쇠고기를 광우병에 걸릴 위험 무릅쓰고 아무 소리 말고 수입해서 자식들에게 먹이라는 것인가.

곱창 사가라면 예! 도축장 사진 찍지 말라면 예! 쇠고기 추가협상문도 한국이 먼저 고시를 한 후에나 준다 해도 예! 이건 간도 쓸개도 다 빼 버린 인간이 아니고 무엇인가. 대한민국도 주권이 있는 나라인가.

부시가 7월 중 한국에 오지 않는다고 하니 속으로 끙끙 앓는 모양이다. 제주도에서 부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사항을 흘렸지만 그런 계획이 없다는 미국의 한마디로 머쓱해졌다. 이 모두가 쇠고기 때문이라고 이명박 정부는 믿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의 노여움을 풀어야 된다고 허겁지겁 서둘렀다.

부시가 한국에 오지 않겠다면 '아 그러셔. 평안감사도 싫으면 안 한다는 한국 속담이 있지.' 이러면 된다. 추가협상문 안 준다고 하면 '아 그래. 주고 싶을 때 주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시구려.' 이러면 된다. 한쪽만 이득을 보는 외교란 없다. 미국이 쇠고기 팔아서 손해를 보는가. 사는 쪽은 우리다. 왜 큰 소리 못 치는가.

김종훈이 촛불 시위 사진을 가지고 미국에 갔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자랑했다든가. 그래서 얻어 가지고 온 것이 미국의 서명도 없는 협상 문인가.

국민은 이명박 정권의 말 바꾸기와 거짓말에 질렸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가. 이승만 대통령이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고 했는데 정말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정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 말 무시하기로 작심을 한 모양이다. 칭찬받기는 이제 틀렸으니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밀고 나가는 거다. 국민이 뭐라고 하던 촛불이 아무리 타던 신경 꺼라. 네티즌이 아무리 떠들어도 눈 감아. KBS, MBC, 경향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아무리 비판해도 무시해 버려.

'MBC PD수첩 전담수사팀 만들어서 조사해!'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하는 네티즌도 조사 해!' 이런 결심 하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명박 정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 치운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소름이 끼친다.

자유당 독재정권과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때도 이런 식으로 언론을 장악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완전히 안면 몰수다. 정상적인 사고로서는 최시중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하지 못한다.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언론특보를 한 구본홍을 어떻게 뉴스 전문매체인 YTN사장으로 보내는가. 밤새도록 이명박 칭찬만 늘어놓을 작정인가. 구본홍도 그렇지. 도대체 몇 십 년 기자생활 했다는 사람이 이렇게 분별이 없단 말인가. 인간대우 받기를 포기한 것인가. 양휘부 이몽룡 정국록, 이들이 기자 노릇을 하면서 보고 배운 짓은 원칙도 명분도 없이 정권에 빌붙어서 사장이나 하는 것이었나.

정치권에 발을 넣었으면 정치를 해야지. 왜 언론으로 기어들어 오는가. 언론이 마음대로 드나드는 쥐구멍인가. 언론사 사장으로 앉아서 대통령에게 충성하기 위해서인가. 새로운 '땡 전 뉴스'를 만들려고 그러는가. 후배들은 무슨 낯으로 볼 것인가. 반대시위를 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 보라. 나는 인간이길 포기했다고 말이다.

KBS 정연주 사장을 내 쫓으려고 참 별의별 치사한 짓을 다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특별 감사를 한다. 배임죄로 검찰이 소환을 한다. 극우보수 세력들이 몽둥이를 들고 난동을 부린다. 노조는 정연주 퇴진 만장을 세운다.

김인규 라고 하는 역시 이명박 후보 시절의 방송전략 특보인지 뭔지 하던 사람이 정연주 다음 사장으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안다. 역시 부끄럽지 않은가. 벌써 줄 서는 인간들이 줄을 서 있다고 한다. 기가 막히는 세상이다. 이걸 언론인이라고 해도 되는가.

KBS PD의 71.3%가 정연주 사장의 사퇴가 옳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런 걸 보면 김인규도 생각이 있을 것 아닌가. 잘못된 것을 알면 입장을 밝혀야 사람이다. KBS에 대한 감사원 표적특감 등이 옳다고 생각하면 견해를 밝혀보라.

언론노조가 파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파업이 만병통치는 아니지만 그것으로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분쇄할 수 있다면 도리가 없다. 왜냐면 공정한 언론이야말로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MBC 라디오에서 시사프로를 진행하는 김미화 씨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이 가슴을 울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결정적 찬스를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명박산성'이라고 불린 컨테이너가 세종로를 가로막았을 때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나와서 '어청수 청장, 이런 거 치우시오.'라고 지시를 해야 했어요. 그다음에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젠 저를 믿고 따라와 주세요'라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소통은 그냥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 진실을 나누는 거예요. 서로 믿어주는 게 소통이죠. 그러려면 평소 꾸준한 자기관리가 필요합니다. 신뢰감을 쌓아왔던 사람의 말은 들어도 거짓말을 일삼던 이들이 진심이라고 해도 안 믿게 되거든요. 대통령도 신뢰회복이 우선 과제 같아요."

구구절절 명심보감이다.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미화 씨는 누구를 지칭해 그 말을 했을까.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명박이란 이름은 이제 조롱의 대상이다. 조선일보의 평가다. 평소에 신뢰를 쌓아야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말은 밥 먹듯이 하면서 정작 국민으로부터는 믿음을 받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가 슬프다.

한나라당의 정치를 질타하면서도 제대로 된 야당이 없다는 사실은 더욱 국민을 절망하게 만든다. 통합민주당이 정당인가. 요즘 같이 엄중한 시절에도 계파 싸움에 여념이 없다. 국민은 민주당을 정당으로 생각지도 않는다.

냉방 잘 된 의사당에서 씨도 안 먹히는 소리 말고 광화문에 나와 소화기 분말과 물대포를 맞아 보라. 소화기 분말 하얗게 뒤집어쓰고 물대포 맞아 길바닥에 나자빠지고 코뼈가 주저앉아 보라. 그래도 국민들이 민주당의 진정을 몰라 줄 것인가.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여라. 공짜로 먹을 생각 버려야 먹을 게 생긴다.

81석 의석이 다시 반쪽으로 갈라져도 파벌이나 만드는 구악 정치인 몰아내라. 누군지 잘 알 것이다. 고쳐도 못 쓸 인간들이다. 국회의원 그만두고 그 지역에 시의원이나 군 의원을 하면 될 것이다.

이제 어쩔 것인가. 법 같지도 않은 법으로 국민의 권리를 짓밟을 생각은 버려야 한다. 생존권을 박탈하면 죽으라는 말 아닌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사람이다. 조갑제가 정신 나간 소리를 했다.

"경찰이 현행범인 폭도들에게 사용할 무기는 많다. 방패, 물대포, 최루탄, 곤봉, 수갑, 총이 있다"

"민주국가인 미국의 워싱턴 백악관 근방에서 이런 폭동이 일어났다면 미국 경찰은 발포했을 것"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미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건 국가의 의무이자 대통령의 책무다. 지금 촛불을 든 사람들만이 절망한다고 생각하는가. 비록 서울 광장에 나오지 않아도 광화문에서 촛불을 밝히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촛불을 켠 사람은 많다.

그 촛불은 절망을 넘어 희망을 갈구하는 촛불이며 또한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절절한 소망을 들어주기를 기원하는 촛불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08년 6월 27일
이    기   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