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

잃어버린 광장

순수한 남자 2010. 2. 5. 11:34

잃어버린 광장
번호 112208  글쓴이 손오공 (sonogong)  조회 52  누리 29 (29-0, 1:2:0)  등록일 2010-2-5 11:00
대문추천 1

지금부터 수백 년 전의 어느날
노루는 목숨을 구해준 나무꾼에게
선녀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부터 수백 년 후의 어느날
시대를 새롭게 출발시켜준
부엉이 바위가 있었음이 전설로 만들어진다.

오랫만에, 너무나 오랫만에 희망을 봅니다. 눈 온 뒤, 산에 올랐습니다. 겨울 한 가운데 속의 눈꽃들. 폐 속까지 정화시켜주는 것 같은 맑은 공기. 심호흡을 한번 해 봅니다. 이미 원칙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이 우리들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고 맑은 물맛을 본 국민들은 아무리 달콤한 물맛이라고 사기를 쳐도 달콤한 속에 쓴맛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맑은 물맛만을 찾고 있습니다. 시대의 헤게모니를 상실한 수구들의 집단은 끊임없는 무리수를 던지고 있습니다. 카드로 카드를 돌려막는 놈은 봤어도 사건으로 사건을 돌려막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값싸고 질 좋은 미친 소, 사대강 죽이기, 용산만행, 부자감세, 명박악법으로 일컬어지는 미디어법, 세종시까지. 그리고 인권경시, 노조탄압, 줄세우기 교육, 남북대립구도, 시민단체 압박. 거꾸로 달리는 민주주의, 억압받는 표현과 비판의 자유, 심화되는 양극화, 무너져 내리는 서민 경제를 수습할 능력도, 설득도, 해명도, 노력도 없는 파쇼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권력만이 남아있습니다. 소통의 흐름이 멈춰져있다고 역사의 행진까지 멈춰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 한복판, 거대한 빌딩을 소유한 신문사로 둘러쌓인 광장들. 잠수함만 빼고는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었던 시민들의 상상력의 공간이었던 청계천은 복원이라는 달콤함 속에 냄새나는 거대한 정치 광고판으로 변질되어버렸습니다. 민중적 생산기반이 사라져버렸고 문화가 사라졌으며 상상으로 만들어지는 미래의 희망이 사라져버린 속에 썩어가는 청계천물을 관리하고자 해마다 거대한 시민들의 세금만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위락장으로 변해버린 청계광장.

거룩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보다도 잔디가 더욱 대접받는 서울시청광장. 푸른 잔디를 위해 시민들은 광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법화되고 단지 잔디 구경꾼으로 전락되고야 말았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하였던 이순신장군 동상은 권위적으로 만들어진 금칠된 세종대왕의 호위병이 되어 서 있으며 급기야는 서울시 홍보를 위해 급조된 스키쑈맨들의 경비병이 되어 광화문광장에서 씁쓸히 백의종군하며 이 시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광장이 사라져 버린 자리에 파쇼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쪽팔리는 역사의 기록인 명박산성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쑈판을 벌이고 TV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하는 광장으로 변질 시켜버린다고 하여 진실의 기록이 지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광장을 되찾는 것은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찾는 투쟁이 될 것입니다. 광장은 누군가의 기획에 의하여 조종되어 갈등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며 우리들은 그 광장을 우리들 것으로 되찾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오해이며 잘못한 것은 시민들이라며 아직도 구시대적인 국민들을 훈육하고 계몽하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발상이 불쌍할 따름입니다. 분열과 갈등의 당사자가 본인들인 줄도 모르는 그들은 대통령의 외국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조차도 마사지 하는 후진적인 언론관을 그대로 표출시키고 있습니다. 못생긴 여성이 서비스가 좋다고 하더니 못난 대변인들 역시 마사지 서비스를 잘하는 모양입니다. 마사지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그들의 발상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외국 언론과 영어로 인터뷰 했다고 하여 우리 국민들은 오뤤쥐인쥐 어린쥐인쥐 알아듣지도 못하는쥐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잘못된 상식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법원을 향해 일제히 찍찍되고 있습니다. 반이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중세 암흑시대가 그립고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빨간색만 칠하면 된다는 주홍글씨 시대가 그리운 모양입니다. 법은 오로지 진실이 중요하지 나이로 법은 재단되는 법이 아닙니다. 법관의 나이를 문제삼는 그들이기에 80을 바라보는 만사형통 이상득과 맨토 최시중이 최고인 모양입니다. 부장판사실에는 ‘대법원장이 지켜보고 있다’라는 원훈과 함께 대법원장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신영철사진입니다. 정치판사는 물러나라고 찍찍되는 그들의 소리를 듣는 신영철의 인상이 궁금할 따름입니다.

실없이 용쓰는 것이 실용이며 소와 통하는 것이 소통으로 알고 있는 그들은 스마트폰 열풍으로 대변되어지는 속도의 시대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고 권위주의만을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닫힌 정치는 열린사회를 보지 못하는 법입니다. 내일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시민들은 권위자의 뜻에 따라 움직여지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들의 희망은 우리들이 만들어 갑니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1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