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가짜들
(서프라이즈 / 초모룽마 / 2010-02-27)
음산한 그림자가 하루 종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초조하게 서성인다. 손에 칼을 빼들고 마치 언제 어느 때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듯 주변을 경계한다.
방심했다간, 곧바로 누군가가 그림자를 발가벗겨 쫓아낼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 그림자보다 악몽에 시달리지는 않을 거다. 갠 날이나 궂은 날이나 그림자는 줄곧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이 년 동안 이명박들의 모습이 바로 저 그림자였다. 자기들을 훌러덩 발가벗길 그 누군가(진짜 내지 진리라고 감히 칭할 수 있는)가 바야흐로 나타낼까 두려워했었고 그리하여 입에 단내 풍기며 내내 설쳐댔던 거다.
벤야민이 일찍이 일갈했었다.
“정치란 현재와 미래를 통제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과거의 기록을 통제하기 위한 전쟁이다”
과거가 현재를 판단하는 기준이기 때문일 게다. 과거의 기록에 비추어 보면, 현재 정통이라고 씨부리는 것들이 실제로는 순 가짜이고, 이단으로 간주되는 것들은 정통(=진리)으로 뒤바뀔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명박들의 제1의 목표는 기록을 없애는 거다. 저들이 꿈틀하기 시작했을 때, 알 만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이런 뉴스를 예견할 수 있었다.
“세종시에 건설하려던 대통령기록관의 설계비 예산 12억 원 중… 11억 6,700만 원이… 도로건설로 전용됐다…. 2009년에는… 예산이 전혀 잡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사소한 빙산의 일각일 뿐, 어찌나 노무현 정신이 담긴 기록(기억이라고 해도 좋다)들을 깡그리 없애려고 열심인지 이명박들… 눈까지 빨개져 있다. 이 년 내내 그랬다.
호세 수사는, '웃음'을 기록한 책이 세상에 웃음을 퍼뜨릴까 봐, 이 책에 호기심을 보이는 후배 수도사들을 차례로 죽인다. 윌리엄 수사가 마침내 그 책에 접근하는 데 성공하자, 호세는 아예 수도원을 불 질러 버린다.
근엄한 질서는 이렇게 지켜졌던 거다. 앞으로도 어린 양들은 “웃지 않았던 그리스도" 마냥 여전히 웃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웃음은 이단이다. 뭔가 뒤틀렸다.
‘정통’ 기독교 교회는 “교회의 밖에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자기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나라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다.
나그함마디 초기 기독교 기록들은 그게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밝힌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는 (이미) 너희들 안에 있다. 지식은 네 안에 거한다” 고 말했다. 자아발견 상태가 곧 하느님 나라다. 다른 누구가 아닌 너희가 진리를 드러낸다. 우리가 아는 한, 이게 진짜 종교다.
하지만 ‘정통’들에게 이게 씨알 먹힐 리 없다. 그저 이단이며 불태워져 하는 것이다. 하여, 진짜 종교를 담은 이 기록들은 사막동굴 속에 황급히 숨겨졌다. 이천 년 후 진리가 이기게 되는 것을 기대하면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신부 막달라 마리아는 이집트로 피신한 뒤 다시 프랑스로 건너간다. 거기서 그녀는 딸을 낳는다. 예수의 직계 혈통이다. 막달라는 잃어버린 신부(=장미)요, 원탁의 기사들이 찾던 성배다.”
말하자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후손을 잉태한 그릇=잔이었다. 당시 유대인이 30살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 그렇다면 그의 결혼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비밀에 부쳐졌을 가능성…. 아무튼, 예수가 막달라를 무척이나 아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
'예수의 신부'를 복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꽤 있다. 잊혀진 반쪽을 찾아내 불구가 된 세계를 온전히 돌려놓자는 거다. '대립 에너지들의 균형과 합일', 뭐 그런 거... 이 생각은 사실 고대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였는데 말이다.
물론 가부장적 질서를 신성히 여기는 근육질 ‘정통’ 기독교에게는 경기 날 일이다. 프랑스에서 나타났다던 예수 모계 후손의 정통성 회복 움직임도 '정통파'에겐 그저 이단이다. 정통과 이단이 여기서 또 뒤집혀 화형주가 세워졌다.
불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제 진리를 오직 상징으로만 기록해야 했다. 위대한 중세 고딕 성당들과 그림 속에는 잃어버린 장미의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세종시는 참여정부가 역사에 남기는 기념비적, 상징적 기록이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비전이 성공하면 이 땅의 불구적 현상들이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모두, 일거에 해소되지 않더라도, 이 땅에 똬리 튼 기형적 현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최소한, 그것을 해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분명히 보여 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된다면 이명박들이 순 가짜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저들은 이 땅에 만연된 불구적, 기형적 현상이 낳은 괴물이기 때문이다. 집어삼키는 거대한 괴물 서울이 이명박들을 낳았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세종시의 '수정'이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기록 자체를 없애려는 거다.
‘정통’과 ‘이단’은 예수가 누구이고 진짜로 그가 한 말이 무엇인가를 놓고 싸웠다. 예수는 역사에 무엇을 기록했고, 과연 무엇을 상징했는가? 참여정부와 수구들은 현대사가 어떻게 읽히고 평가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싸웠다. 과연 참여정부는 어떻게 역사에 기록되어야 하고,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
이 싸움에서 지금껏 '정통'으로 알려져 있던 자들은 실제로는 진리를 참칭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걸 몰랐다. 하지만, 가짜 밑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다 보니, 사람들이 이제사 “고통은 죄악에서 오는 게 아니라 무지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듯싶다.
(cL) 초모룽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