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소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전력시장 선진화 용역이 경쟁촉진보다 민간발전사업자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전력시장의 경쟁촉진을 위한 밑그림이 마련되지 않는 한 추가적인 논의에 참여할 수 없다며 배수진도 쳤다.
하지만 전력거래소측은 민간발전사들의 집단반발이 방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공식적인 의견수렴기구를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전력시장 규칙개정을 둘러싼 논란과 진통은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가칭 ‘민간발전협회’는 25일 서울 전경련회관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KDI 연구용역 중간발표 결과’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GS EPS, K-Power, 포스코파워, GS 파워, SK E&S, 대림산업 등 6개 업체 관계자가 참석했다.
민간발전사들은 이 자리에서 “전력시장 경쟁강화라는 기본 취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이번 용역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KDI가 도입을 검토 중인 ‘베스팅 계약(Vesting Contract)’은 경쟁보다 규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성토했다.
신규사업자의 진입장벽을 높여 오히려 독점구조를 강화하는 불공정성이 내포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규칙개정 과정에서 민간발전사업자는 사실상 배제되고 있는 반면, 판매사업자는 언제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기자간담회 형식을 빌려 이렇게 우리의 뜻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력거래소는 26일 내보낸 해명자료에서 “(민간발전사의 이같은 대응은) 공정거래를 저해할 수도 있는 담합성격의 집단행위로 전력시장 공정경쟁과 시장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언론을 통한 폭로전보다는) 공식적인 의견수렴 기구를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연구책임자인 남일총 KDI 정책대학원 교수는 해외출장 중이라 의견을 들을 수 없었다.
황인국 기자 (centa19@electimes.com)
최종편집일자 : 2010-03-26 15:25
<해설>집단행동 나선 민간발전사
"이게 무슨 경쟁촉진이냐" 집중 성토 전력시장기준 개정...수익감소 우려 거래소,"객관적 연구 악영향 줄수도"
전력시장 규칙개정을 둘러싸고 이해당사자간 갈등이 수면 위로 표출되고 있다. 민간발전사업자들은 25일 전력거래소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전력시장 선진화 용역 중간발표결과에 대해 집중 성토하고 나섰다.
◆연구팀 구상〓 전량 수입해오는 연료가격은 지난 몇 년간 급격히 상승했다. 전기요금에서 발전원가가 차지하지 비중이 갈수록 커진 셈이다. 이에 맞춰 소비자요금이 올라준다면야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소비자요금은 정부규제로 굳건히 묶여있다. 국내 유일의 전력도매업체인 한전은 엄청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모회사인 한전은 발전자회사에게 ‘고통분담’을 제안하고 나섰다. 발전원간 수익구조를 맞추기 위해 ‘보정계수’라는 일종의 할인율은 2007년 이렇게 적용됐다.(다만, 보정계수는 민간발전사업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KDI 연구팀은 “보정계수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없이 한전 발전자회사의 수익성을 좌우해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참에 보정계수를 없애자는 것이다. 대신 정부 규제 아래 발전·소매사업자간 가격·물량을 일정 수준으로 묶는 이른바 ‘베스팅 계약(Vesting Contract)’을 일부 발전기에 한해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보정계수 폐지로 한전 발전자회사들은 민간업체와 동일하게 계통한계가격(SMP)을 기준으로 정산 받을 전망이다. 연구팀은 또 발전소 신설을 촉진키 위해 책정하던 용량요금(CP)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무부하비용 제거, 변동비를 0원으로 하는 제약입찰 허용 등 부가정산금(Uplift) 산정방식과 기준도 바꿀 생각이다. KDI는 민간발전사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전력시장 경쟁강화를 위한 제도선진화’ 연구용역 중간발표회를 최근 가졌다.
◆민간업체 반발〓 연구팀의 구상대로라면, SMP는 지금보다 약간 낮아질 공산이 크다. 민간발전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수익이 종전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민간업계가 반발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민간발전사들은 1997년 투자수준으로 책정된 용량요금(CP)을 현실에 맞게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0년 이후 건설비 단가가 약 32%, 고정운영유지비가 약 9% 올랐음에도 용량요금은 유독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1kWh당 7.46원인 용량요금을 8.93원(송전접속비용 등 포함)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정부도 용량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소비자요금이 사실상 동결된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민간업체들은 더 나아가 25일 기자간담회라는 형식을 빌려 그동안 쌓여있던 불만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기존 민간발전사업자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시장퇴출을 유도하고 신규사업자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현행 전력거래기준을 토대로 발전소 신설계획을 짰을 뿐더러 관련 준비작업이 상당부분 진척돼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앞으로 관련 기준이 바뀔 경우 은행권에서 빌린 자금을 제때에 갚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런 사태가 연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GS EPS 관계자는 “자체적인 비용절감 노력, 금융비용 부담 등을 고려치 않고 민간발전사들이 현행 전력시장에서 터무니없이 많은 이익을 올리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섭섭한 전력거래소〓 전력거래소측은 기자간담회 형식을 빌린 민간업체의 집단적 ‘언론플레이’에 착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중간발표결과를 토대로 실무담당자로 구성된 ‘시장제도 실무협의회’에서 회원사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생각을 당초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확정되지 않는 연구내용에 대해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처사는 객관적인 연구진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공정성과 신뢰성을 견지하려는 전력거래소와 연구진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특히 민간발전사의 집단행동은 공정거래를 저해할 수도 있는 담합성격의 집단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고 했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전력시장을 왜곡시킨 요인을 바로 잡고 합리적인 거래기준을 정립하겠다는 당초 취지에 맞게 흔들림없이 관련업무를 진행하겠다”며 “민간업체들도 언론을 통한 집단적 대응을 지양하고 공식적인 의견수렴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간발전사의 한 관계자는 “전기위원회에서 시장규칙을 바꾸기 전에 규칙개정실무협의회, 규칙개정위원회가 열리지만, 민간업체 입장을 대변하는 위원은 단 1명도 없다”며 “전력거래소가 한국지역난방공사에 민간대표 자격을 부여했다지만, 이곳은 엄연히 한전 등이 출자한 공기업이기 때문에 민간업체의 정확한 의견을 논의의 장에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민간업체와 전력거래소, KDI간 이견이 어떤 식으로 좁혀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GS EPS, 포스코파워 등 7개 업체로 이뤄진 민간발전협회는 25일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력시장 선진화 용역 중간발표 결과'에 반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