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치불패를 휩쓰는 화제중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주제들이 있었다. 여기 온지 얼마 되지도 않지만, 벌써 두번째다. 그 첫째는 천안함 사건이었다. 이유는 주어진 정보가 너무 부족했고, 가볍고 즐겁게 다루기에는 너무나 많은 젊은 생명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안함 얘기가지고 농담꺼리를 만들어버리긴 좀 그렇잖아. 우리 정부가 그런 걸 가지고 놀만큼 파렴치한 놈들이라는 건 잘 알지만, 나까지 그럴 수는 없어서이다.
두번째는 이 검사새끼들 문제다. 검사들이 스폰서 있고, 밥에 술에 여자까지 접대 받고, 그것 뿐이 아니라 뒷주머니까지 두둑하게 채워주는 것을 즐겼다는 사실은 어제오늘 알아온 얘기들이 아니다. 시스템상 무서울 게 없는 인간들이 안 썩길 바라는 것은 육두인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길 바라는 것과 유사한 일이다. 답은 가차없는 내부 응징이 수시로 벌어져야 한다는 점인데, 누군가 제보하면 시끌벅적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스물스물 잊어 버리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것은 너무나 지겹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안을 쟁점화 시킨 최피디의 공을 축소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나도 거기에 껴서 한마디 덧 붙일 것이 없을 뿐이라는 얘기이다.
그래서 난 다시 정치 얘기로 돌아간다.
민주당이 골치아픈 이유이다.
위의 제목은 나름대로 여러가지 의미를 담은 문장을 구성해 본 것이다. 번역하자면, 내가 민주당을 골치아프게 생각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민주당이 이 상황에서 스스로 골치아파한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또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나 집단들이 일반적으로 민주당을 골치아프게 생각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우리말은 너무 자유로와서 협상이나 정치에 부적합한 언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야권후보 단일화와 얽힌 민주당의 내부 딜레마에 대한 얘기다.
민주당이 어떻고 하는 얘기는 벌써 몇차례나 했다. 민주당의 역사 얘기도 했고, 민주당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얘기도 했고, 민주당이 빨리 망해야 한다는 악담도 늘어 놓았다. 그런데, 또 무슨 얘기를.. 할까 싶지만, 어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민주당의 문제를 가지고 또 한마디 해야 되겠다 싶었다.
야권 단일화 전반에 대해서 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지사 후보에 대한 얘기로 좁혀보자. 결국 야권 단일화 협상 자체가 깨진 것은 민주당과 유시민의 협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 유시민과 김진표도 아니고 참여당과 민주당도 아니고 유시민과 민주당의 협상이 깨졌다는 것이다.
참여당은 아직 당으로써의 틀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신생 정당이고, 유시민의 정치적 무게는 참여당 전체의 그것보다 더 무거울 수도 있다. 유시민이 살아나면 참여당이 살아날 것이고, 유시민이 쓰러지면 참여당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번 협상은 유시민이 참여당의 미래를 걸고 민주당과 벌이는 도박이 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유시민 개인을 두려워하고 혐오한다. 이게 아주 특이한 상황인데, 민주당의 당권을 움직이는 인사들은 실제로 유시민을 혐오하는 것으로 보인다. 혐오할 뿐 더러 더불어 대화를 하기도 싫어하고, 그냥 유시민이 사라져 주기를 원하는 것같다. 그런 것 같을 뿐 아니라 사석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닌다. 이 부분이 좀 이해가 안 간다. 적어도 공당, 정통야당을 자처하는 거대한 조직, 민주당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호불호에 관한 감정, 특정한 외부 정치인 일인과의 오래 묵은 감정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 그렇게 바보 아니다. 자신의 감정으로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유시민에게 가진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표출하는 것에는 단순 감정 이상의 이유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현재 유시민은 제비뽑기라도 하자고 김진표 후보에게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란다. 이 말의 의미를 좀더 살펴보자.
민주당의 단일화 방안은 여론조사와 선거인단(뭐 여러가지 이름이 있겠지만, 사람들 모아놓고 투표하라는 것이므로 선거인단으로 호칭한다.)의 비율을 5:5로 가져가는 것이다. 김진표와 유시민을 비교할 때, 이 경쟁방법은 누구에게 유리할까? 김진표는, 아니 민주당은 조직에서 앞서고 일반인 대상의 여론 인기도는 유시민이 앞선다. 그러면 5:5로 맞추면 양측 모두 50%의 당선 가능성을 가지게 되는 걸까? 사실은 민주당이 99% 이기는 방법이 된다. 그렇기에 유시민은 외부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승률을 5:5로 하자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민주당의 승률을 99%에서 50%로 내려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조르면 민주당 승률 70% 선에서 결정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바라는 것이겠지.
왜 그럴까? 민주당이 조직이 앞선다는 말은 민주당을 너무 옹호하는 발언이다. 민주당 조직은 다 죽었다. 단지 민주당 내부의 권력을 확보한 자들의 사조직이 살아 있을 뿐이다. 당원목록조차 사조직의 목록의 합집합일 뿐이다. 물론 예전에 민주당은 김대중의 사조직 아니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정동영 일파가 보여준 조직선거는 기상천외하기 이를 데 없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황당한 동원이 횡행했다. 무슨 아이돌 그룹 팬클럽 명단이 동원된 것이 적발된 사건은 무작위로 동원된 명단중에 노무현의 이름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귀엽기 까지 한 일이다. 그런 부당한 동원의 능력을 가지고 조직이 앞선다는 식으로 건전하게 표현해 줘선 곤란하다.
물론 김진표 개인은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오랜 시간동안 자신 주변의 조직을 재건해 왔다. 따라서 경기도 각 지역에 김진표의 연락사무소를 자임하는 조직이 상당수 건설되어 있다. 그 점은 인정해 줄만 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역에 구성하는 조직들의 허상을 현장에서 봐온 나로써는 그런 조직 건설이 정상적인 공당의 조직 건설로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돌스타 유시민이 뛰어 들었으니 대선배 김진표는 새까만 후배 유시민이 괘씸할 밖에..
그렇지만 현실은 냉엄한 것이다. 김진표 후보 본인이 야간분만 토론회에서, 내 눈앞에서 직접 얘기한, "단일화에 실패하면 2,3등 뽑기 선거가 될 뿐이고 선거에 참여할 의미가 없다" 라고 한 얘기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단일화가 실패하면 선거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전직 관료다운 현실적인 발언이기 떄문이다. 그래서 단일화가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경기도지사 선거에 유시민이 야권 단일후보로 진출하는 상황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는 점이 이 사건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모순이 된다는 것이다. 단일화를 원하지만 유시민은 안된다? 단일화가 실패하면 정말 큰일이지만 유시민이 단일후보가 되는 것보다는 문제가 덜하다? 이게 민주당의 입장이고, 그렇기에 민주당은 승률 99%짜리 판이 아니면 판돈을 내지 않겠다고 우기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유시민은 계속 쫓아다니면서 50% 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다만 얼마라도 승률을 좀 낮춰줘야 게임이 재미있어 지지 않겠냐고 조르고 있는 거고..
왜 이렇게 민주당 측에서는 유시민을 싫어하고, 유시민에게 불공정한 게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위에서 말했듯이 단순한 감정 문제는 아니다. 그러면 민주당의 권력자들은 유시민에게서 어떤 그림을 보는 것일까?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바로 민주당 몰락의 서막이다.
민주당에게 남아 있는 가치는 낡은 브랜드 파워뿐이라는 것은 이제 어느정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현재의 민주당은 새로운 민주당의 가치를 재생산할 능력이 없다는 것도 자신들이 더욱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민주당의 대안 세력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자신들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치명적인 상황이 된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후발주자들을 지속적으로 제거해야만 존재를 유지할 수있다는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이 돼 있는 상태다.
그런데, 유시민과 참여당은 바로 그 대안세력이 될 수도 있는 비전을 가진 집단이 된다. 물론 지금은 껍질속의 씨앗 수준도 못되지만, 그대로 내버려 뒀다간, 어떤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가능성을 가진 세력이다. 민주당의 정치적 포지션과 별로 다르지도 않다. 그리고 민주당이 과거에 가졌었지만, 지금은 없는 스타급 대표선수를 지금은 참여당이 가지고 있다. 정당의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민주당이 누려왔던 장점들을 한두개 가지고, 자신들의 이념과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 성향을 가진 정당이 싹트고 있다는 것은 민주당에게는 뿌리깊은 공포심을 자극할 만한 일이 된다. 민주당에게 유시민은 자신들의 명단을 들고온 저승사자로 보인다.
그러니 그 저승사자를 살려둘 가능성이 50%가 된다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할 일이 된다. 김진표가 낙선하는 일이 있더라도 유시민을 야권단일후보로 만들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의 기준을 판단하자면, 유시민이 단일후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내버려두면 "해당행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해당행위라도 무릅쓰지 않고서는 경기도 지사 자리를 김문수에게 고대로 상납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골치아픈 일이 있나!!
참여당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민주당을 대치하는 대안 세력이 되기위해선 어떻게 해서든 이번 지방선거에서 일반 유권자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남겨줘야 한다. 이미 유시민 펀드 40억 모금으로 일차 고비는 넘겼다. 참여당은 그 돈으로 아마 유시민 선거 이전에 참여당 자체, 정당광고에 주력하는 전략을 쓰게 될 것이다. 그 돈으로 광고를 때리고 유시민의 선전이 뒷받침 된다면 공당으로써의 자생력을 확보하는 내부 기준인 돈내는 당원 십만명의 벽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의 끝에는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의 괴멸이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의 간판을 달고 이번 지방선거에 뛰어든 친노의 축들, 서울, 경기, 충북(은 참여당 대표가 직접.. 당선가능성은 모르겠다), 충남, 강원, 그리고 경남(여긴 무소속 김두관)까지.. 만일 이들이 선거에 이기게 될 경우, 대거 참여당으로 이동할 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가 있으며, 그 시나리오가 바로 민주당 종말의 시나리오가 된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골치아파해 봐야 고름이 살 되진 않는다. 민주당은 경기도지사 자리를 김문수에게 상납하는 일이 있어도, 유시민에게 단일후보 자리를 내어 줄 수는 없다. 유시민은 결국 각개약진으로 김문수를 넘어서야 한다는 임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유일한 변수라면, 끝내 단일화가 실패할 경우, 김진표 후보 개인의 선택으로 사퇴할 가능성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김진표 개인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 된다.
이래저래..
민주당은 지금 죽을 맛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민주당이 스스로 자처한 일이라 누구에게 원망도 못 할 것이다. 안락사라도 시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