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박지원 짝짜꿍 = 개헌
얼마 전 민주당에선 박지원 비대위 대표가 단상에 앉아 있고 단하에 잠룡들인 정세균, 정동영, 손학규 전 대표 등이 올려다보고 있는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금의 민주당을 정확히 표현했다. 잠룡 뒤에 숨어 수렴청정하는 박지원.
똑같은 인물이 한나라당에 또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 직책은 장관이지만, 역할과 권세는 장관 그 이상. 현대 정치사에서 참 특이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박-이간 애정공세가 낯 간지러울 정도. 여야 간 실세들끼리의 칭찬 릴레이. 박 대표는 이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모두 뒤져도 부동산 투기하나 없다”며 칭찬했고 일찌감치 청문회 보고서를 채택해주었다. 그는 또한 ‘내가 그만둘 테니 김태호를 살려달라’고 했다는 이 장관의 발언을 소개하고, “대북특사로는 박근혜 전 대표보다 이 장관이 낫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뜻이 통하는 것 같다”라는 의미심장한 말도 곁들이며.
이 장관 역시 “나도 한때 실세장관”이었다는 박 대표를 선배 모시듯 예우하고 있다. 특임장관으로서 제1야당 사령탑에게 몸을 낮추는 것으로만 보기에는 유별날 정도.
그런 두 사람이 1일 여야에서 동시에 개헌론을 점화했다. 이명박 정권 후반기 정치 일정이 명확해 진 것. 바로 개헌.
이 장관의 9월 5일자 중앙일보 인터뷰.
- 이 장관이 올 하반기엔 개헌, 내년 상반기엔 대북특사에 올인할 거란 얘기가 돈다.
“(약간 놀라며) 진짜? 야당 의원들 만나면 개헌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래야 정치가 선진화된다. 죽기 살기 싸움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안 되면 제도를 바꿔야지. 선거제도를 바꿔야 지역이 통합되고, 그게 통일의 바탕이 될 수 있다. 동서화합이 되면 한국 정치가 20년은 발전하고 통일도 10년은 앞당겨질 거다. 그러려면 정치인들이 사심을 버려야 한다. 나부터 그럴 거다.”
결국 이 장관과 박 대표의 계산과 뱃심이 맞은 것이다. 노회한 두 정치인은 자파가 미는 주자로 ‘차기 대권을 잡을 수 없다는 뼈아픈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이재오는 ‘본인 또는 김문수’, 박 대표는 ‘정세균, 정동영, 손학규 전 대표’로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놓칠 수는 없는 법. 그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개헌’. 의원내각제로 권력분점 및 권력 연장. 지금의 의회 구성으로 보면, 이-박이 배를 맞추면 개헌을 밀어붙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민심은?
한 정치부 기자는 얼마 전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이재오 장관, 진수희 장관, 김문수 도지사 등 3인과 만나 호방한 시간을 가졌다며, 모종의 차기 플랜을 구상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기도 했다. 지금 이 장관의 특임 역할은 바로 차기 정권 창출에 올인하는 것. 박근혜 전 대표는 빼고. 그러나 여차하면, 즉 자파로 정권 창출이 불가능하면 개헌으로 돌파구 마련. 그러니 지금은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라면 김태호건 신재민이건 모두 제거. 마침 노회한 박지원이라는 정치 파트너까지 있으니, 득의양양.
90도 넘게 허리 굽혀 인사하며 ‘이재오식 인사법’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었지만, 그새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잊어버린 듯 하다. 박 대표 역시 지금 ‘제2의 전성기’일 때, 이 장관과 배를 맞출 것이 아니라 국민과 눈을 맞춰야 한다. 이 장관은 지난 총선 실패 후 재야에서 절치부심하고, 박 대표는 권력을 잃은 후 한때 감옥에 있었던 시절을 벌써 잊었나? 무릇 모든 권력은 오만해서 망한다.
옮긴 이 : 펌생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