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와 뜨는 해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9-27)
1905년 일본 의대에 다니던 루쉰이 의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와 작가가 된 것은 해부학 수업 때 러일전쟁 중 첩자 혐의를 받은 중국인이 일본군에게 처형당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고 나서였다. 루쉰에게 충격을 준 것은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던 동급생들이 아니라 사진 속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구경을 하고 있던 건장한 중국인 동포들이었다. 루쉰은 정신이 병든 사람은 아무리 몸이 건강해도 구제 불능이라고 생각하고 병든 중국인의 정신을 해부하고 치유하기 위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중국인의 국민성은 그전부터 젊은 루쉰을 사로잡은 문제였다. 루쉰이 특히 인상 깊게 읽은 것은 아서 스미스라는 선교사가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지켜본 중국인에 대한 인상기 <중국인의 성격>이라는 책이었다. 1894년에 나온 이 책은 청일전쟁이 끝난 뒤인 1896년에 일본어로 번역되었고 루쉰은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중 이 책을 읽었다. 스미스는 체면, 근면, 시간관념, 공공정신, 성실함 등 수십 가지의 주제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중국인들의 성향을 비판적으로 그렸다. 가령 무신경한 중국인은 서양인과는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단잠에 빠져든다면서 “세 개의 손수레를 맞대어놓고 누워 거미와 같은 자세로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입을 쫙 벌리고서 파리 한 마리를 그 안에 둔 채로 잠이 드는 능력을 가지고 시험을 치러 병사를 뽑는다면 아마 중국에서는 십만 아니 백만의 병력도 거뜬히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비웃었다. “중국은 안으로부터 개혁될 수 있는가?” 스미스 선교사의 결론은 단호했다. “중국은 외국의 개입이 필요하며 기독교 문명의 복음이 전파되어 국민의 성격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쉰은 스미스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이 제대로 일어서려면 중국인의 국민성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루쉰은 이광수하고는 달랐다. 루쉰도 이광수처럼 자기 나라가 서양 나라들에게 뒤졌음을 인정했고 동양에서는 일본이 그래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서 서양 문명을 일찍 받아들인 모범생임을 인정했다. 이광수처럼 루쉰이 일본에 유학을 간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나 이광수가 유치한 낙관적 계몽주의를 펼치다가 냉엄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금세 비관론으로 돌아서서 자기를 부정하고 내선일체를 부르짖은 것과는 달리 루쉰은 끝까지 자기를 잃지 않았고 중국이 스스로의 힘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루쉰은 끝까지 절망하지 않았다. 루쉰의 희망은 절망과 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은 루쉰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절망과 싸우는 것이 희망
얼마 전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을 놓고 맞서던 해상에서 일본 해상순시선과 충돌했다가 나포되었던 중국 어선의 선장을 일본 정부는 중국 정부의 거센 항의를 받고 풀어주었다. 100여 년 전 청일전쟁에서는 맥없이 무너졌지만 이제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 등 첨단 무기로 무장한 중국의 군사력도 무서웠을 테지만 일본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은 중국의 막강한 경제력이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일본 최대의 교역국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중국 경제의 폭발적 성장이 빈사 상태에 빠진 일본 경제에는 단비다.
중국은 2010년 2분기에 모두 1조 3,300억 달러를 생산하여 1조 2,800억 달러를 생산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국으로 올라섰다. 불과 5년 전까지도 중국은 경제 규모가 일본의 절반에 그쳤다. 그러나 침체에 빠진 일본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중국은 연간 10%가 넘는 폭발적 성장을 보이면서 단숨에 일본을 추월했다. 돌발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 20년 뒤면 미국 경제도 추월하고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낙인찍힐까 봐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에너지 소비에서는 작년에 원유 기준 22억 6천 톤을 소비하여 21억 7천 톤을 소비한 미국을 벌써 넘어섰다. 새 차도 작년 한 해에 미국보다 중국에서 더 많이 팔렸다. 미국 노동자는 공장 문이 닫힐까 봐 임금 삭감을 감수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중국 정부에 밉보여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퇴출당할까 봐 알아서 중국 노동자의 임금을 크게 올려주고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공장 중국이 세계를 움직이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투자국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아프리카 구석구석에서 80만 명의 중국인이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달라지는 질문
루쉰이 살아 있다면 아직도 동포의 국민성을 놓고 잠을 못 이룰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런 처지로 몰렸을까? 우리의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이제 그런 고민은 한 세기 전 루쉰을 어둠으로 몰아넣었던 제국주의 국가의 지식인들이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철저하게 자기 실력으로 겨루는 수밖에 없다.
백 년 전 미국과 일본은 뜨는 해였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을 밀어내고 서양의 맹주로 떠올랐고 일본은 중국과 조선을 누르는 실력을 보이면서 서양 열강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바로잡고 동양의 맹주로 떠올랐다. 일본은 어떻게 서양에게 먹히지 않았는가, 일본은 독립국으로 살아남았는데 우리는 왜 먹혔는가가 백 년 전 중국 지식인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고민은 일본의 몫으로 돌아왔다. 왜 우리나라는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총리에 당선된 지도자조차도 미국의 협박에 밀려 공약을 지키지 못하고 총리직에서 쫓겨날 만큼 자기 운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결정짓지 못하는 종속국으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정확히 한 세기 전 중국 지식인 루쉰을 고민에 빠뜨렸던 일본의 몫으로 돌아왔다. 답은 분명하다. 백 년 전 일본은 아무도 나를 돕지 않는다는 절박함에서 제 운명을 제 손으로 만들어나간 독립국이었지만 지금의 일본은 미국에 업혀 살아가는 운명에 만족하는 종속국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미래가 과거를 규정
달라진 현실이 달라진 물음을 낳는다. 독일어 Sonderweg 곧 독일만의 <남다른 길>은 원래 독일의 보수 세력이 자랑스럽게 쓴 말이었다. 똑같이 황제가 다스리는 체재지만 러시아 차르의 전제 정치와는 달리 빌헬름 일세의 독일 제국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연금제를 도입하는 등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떠밀리지 않고도 먼저 위에서 진보적 개혁을 단행했다는 자긍심의 표현이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 아래 무질서와 비효율을 방치하는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효율적으로 부국강병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독일이 양차 대전에서 지면서 <남다른 길>은 무엇이 독일을 나치즘이라는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는가를 캐는 탐구의 어두운 화두가 되었다. 현실이 달라지면 묻는 질문도 달라진다. 과거가 현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규정한다. 백 년 전 아서 스미스는 중국이 진 이유를 중국의 과거에서 찾았지만 백 년이 지난 지금 아서 스미스의 후예는 중국이 이긴 이유를 중국의 과거에서 찾는다. 오늘은 어제다. 오늘이 내일을 바꾸고 내일이 어제를 바꾼다. 달라진 오늘이 달라진 어제를 만든다. 오늘이 내일을 만들고 내일이 어제를 만든다. 역사에는 끝이 없다.
백 년 뒤의 중국 지식인은 어떤 물음을 던질까? 만약 중국이 미국처럼 제 잇속만 챙기면서 타국을 일방적으로 유린하여 유아독존의 길을 걷는다면 중국은 또다시 미국처럼 지는 해가 될 것이고 루쉰의 고민은 반복될 것이다. 남을 등쳐먹으면서 타오르는 해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은 지속 가능한 번영이 아니다.
남을 해치지 않으면서 제 힘으로 떠오른다는 것은 가시밭길이지만 그런 형극을 헤치고서 뜬 해만이 두 번 다시 지지 않는다. 패권국은 반드시 무너지고 패권국에 기대는 종속국도 반드시 무너진다. 남을 짓누르지도 않고 남에게 업히지도 않는 자주국만이 영원한 해가 된다. 루쉰이 보았던 어둠을 자기 나라 안팎 어디에서도 만들어내지 않고 누리를 밝히는 태양이 된다.
개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