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쑈’의 동기
(서프라이즈 / 내과의사 / 2010-10-01)
이명박이 이른바 ‘양배추 쑈’로 다시 한 방 터뜨렸다. 물론 그가 단지 대통령이고, 족벌 보수 언론과 끈끈한 유착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들이 구역질을 참아가며 고문당하듯 억지로 봐 줄 수밖에 없었던 쑈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추석 악어눈물 쑈, 광우병 촛불 시위 당시 아침이슬 노래 쑈, 어묵 처묵 쑈, K3 기관총 개머리판에 눈을 밀착시킨 군 면제 거총 쑈, 그리고 숭례문 태워 먹고 천연덕스럽게 벌인 국민성금 모금 쑈 등 따지고 보면 이명박은 ‘달인 개그맨’ 김병만을 능가하는 쑈의 대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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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 - 당시 프랑스 왕가가 얼마나 무능했는지, 그녀가 왜 단두대에 머리를 잘려 죽어야만 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 ‘양배추 쇼’를 기획한 MB와 청와대의 운명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나는 이명박에게 과연 홍보참모가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과연 어떤 인간일까, 하는 궁금증을 억누를 수가 없다. 혹시 광고나 홍보를 전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명박이 그간 벌여왔던 쑈와 그 쑈를 기획했을 홍보참모(과연 존재한다면)를 연구해 볼 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이토록 완벽하고 철저하게 정치인의 이미지를 망가뜨릴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말이다.
이명박이 공연한 쑈를 통해서 이명박 자신이, 혹은 그 수하의 홍보참모가 의도했던 바는 안 봐도 비디오이다. ‘알고 보면 이명박은 인간적이며, 서민적이고,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진실한 사람이다.’라는 따위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참 딱한 일이지만 쑈의 공연 결과는 의도한 바를 가볍게 능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쑈의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나같이 이명박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에겐 그에 대한 혐오감을 극대화 시켰으며(요즘 나는 아이들 책 속 설치류 그림만 봐도 이유 없는 구토증에 시달린다.), 정치에 무관심한 이들조차도 이명박이 천박한 사람이라는 반응을 보이게끔 만들었다.
그렇다고 맹목적 지지 세력들이 쑈의 결과 이명박에 대한 호감을 더욱 크게 키울 수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이명박이 그 어떤 쌩쑈를 벌이던지 꼴통 보수들은 관심 없다. 그들이 이명박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들 기득권과 밥통을 지켜주는 일이지 이명박이 인간적이든, 서민적이든, 진실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이명박을 대통령 자리에 앉힐 수 있었던 대한민국의 전제조건은 “비도덕적 폐륜아라도 능력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논리였다. 애초부터 이명박에게 인간적이며, 서민적이고,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진실한 인간성을 기대한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오로지 삽질을 통해 땅지랄, 돈지랄로 행세하는 인간들 밥그릇을 지켜내라!” 이것이 잘나신 대한민국 주권자들이 이명박에게 부여한 유일무이한 소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명박이나 그 수하의 홍보참모에게나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홍보 방법은 처음부터 아무런 쑈도 공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리얼리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쑈를 편집광적으로 반복한다. 반대자들로부터의 엄청난 역풍과 방관자와 지지자로부터의 냉랭한 반응을 무릅쓰면서까지. 이건 정말 미스터리다.
미스터리의 이유를 나는 두 가지 관점에서 풀어본다. 하나는 이명박이 망상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다. 그는 정말 자기 스스로를 인간적이고, 서민적이고, 진실한 사람이라도 믿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이명박의 쌩쑈는 예전에 개그맨 오지헌이 ‘나는 꽃미남이야’라는 멘트로 사람들을 웃겼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오지헌의 자아도취 개그는 개그일 뿐이지만, 이명박의 쌩쑈는 사이코패스의 행동 징후로 분류된다는 결정적 차이가 존재한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이명박의 생쑈가 다름 아닌 ‘GG 선언’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최근의 부동산 경기나 경제상황으로 볼 때, 이명박은 자신이 부여받은 유일무이한 미션-수구꼴통 밥그릇 지키기-을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만약 상황이 그렇게 돌아간다면 이명박은 김영삼을 능가하는 ‘국민 왕따’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동안 대충 넘어가 주었던 형사적 사건들의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음은 업계 선수가 아니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험은 자신의 선한 의도를 최대한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즉 결과는 나빴지만 나는 선한 사람으로서 선한 의도로 행동했으니 정상참작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 끊임없는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이명박이 쌩쑈를 반복하는 이유이다. 남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자기는 착한 사람이라고 윽박지르는 거다.
아무튼 이명박의 생쑈는 여러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그가 배설한 저질 쑈의 뒷수습을 위해 여러 명의 ‘열사’들이 탄생하고 있다. 어제는 방송 앵커 하나가 이명박을 위해 몸을 던진 모양이다.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도 대충 잘나갈 인생들인데 왜 이리 막장으로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기야 어차피 인생 한 방이다. 그의 ‘영웅적 행동’은 다음 총선 때 국회의원 공천 자리 하나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