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

다르지만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것

순수한 남자 2010. 11. 16. 13:39

다르지만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것
번호 213508  글쓴이 개곰 (raccoon)  조회 975  누리 378 (378-0, 20:48:0)  등록일 2010-11-15 20:08
대문 30


다르지만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것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11-15)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최근 두 가지 군사 협정에 서명했다. 하나는 핵탄두 성능의 검사 기법과 실행이라는 핵무기 개발 영역에서 양국이 공조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항공모함 전력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1차대전과 2차대전 때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싸웠지만 반목과 상호 갈등의 오랜 역사를 가진 두 나라가 군사 분야에서 심도 깊은 동맹 관계를 맺게 된 배경은 물론 양국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다. 영국은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각종 복지 혜택이 크게 줄어들고 50만명의 공무원이 실직할 것으로 예상되며 대학 등록금이 3배로 오를 판이다. 프랑스 정부도 만성적인 재정 적자로 최근 은퇴 연령을 상향 조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국민의 거센 항의에 부딪쳤다.

영국 언론은 대체로 과도한 군사비 지출의 부담을 덜면서도 세계 무대에서 영국의 군사적 위상을 지키려는 고육지책으로 이번 협정의 현실적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부 보수 언론은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핵무기 개발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은 국가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핵무기를 보유한 제3국의 위협 앞에서 프랑스가 자국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영국의 안전을 위해 나설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는 과거의 역사에서 볼 때 찾아보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영국은 포클랜드 전쟁 초반에 아르헨티나가 보유한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에 큰 피해를 입자 프랑스의 대아르헨티나 무기 판매 중단을 요구했지만 프랑스가 미온적으로 나오자 대처 총리는 만약 엑조세 미사일의 비밀 암호를 알려주지 않을 경우 남대서양 해역에 대기중이던 핵잠수함으로 아르헨티나에 핵미사일을 쏘겠다고 위협했고 미테랑 대통령은 결국 암호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피해 의식도 만만치 않다. 1942년 영미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상륙 작전을 벌였을 때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드골은 작전을 통보받지 못했다. 미국과 영국에게 프랑스의 국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는 드골은 눈엣가시였다.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군은 영국에게 중요한 자산이었지만 미국이 참전한 이후로는 골치거리로 취급당할 때가 많았다. 특히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프랑스의 국익을 수호하려는 드골을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견습 독재자”로 깎아내리면서 독일에 항복한 프랑스의 비시 정부에게 더 정통성을 부여하고 비시 정부를 지지하는 프랑스군의 고위 장성들을 우대했다.

미국은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를 독일처럼 미국의 속국으로 만들 셈이었다. 미국으로부터 물자를 빌려서 전쟁을 수행하던 영국은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도 드골은 루스벨트의 요청을 받아들여 드골을 철저히 배제하고 프랑스를 연합국 관리하에 둘 참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자신의 이름이 배제된 사실을 알고 드골이 격분하여 자유프랑스군을 빼겠다고 위협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드골의 프랑스 입성을 허용했고 드골은 프랑스 국민의 열렬한 지지 속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일한 지도자로 살아남았다. 처칠도 루스벨트도 드골처럼 자국의 국익을 가장 높은 가치 기준으로 두는 타국 지도자는 탐탁치 않게 여겼다. 서양은 철저히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며 그것은 국제 관계 인식에서도 관철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 다르지만 같은 나라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의지는 종속 변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의지다. 프랑스가 반대하는 전쟁에 미국이 참전을 요청할 때 영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영국과 밀도 있는 군사 정보를 공유하는 미국이 프랑스와의 강도 높은 군사 정보 공유로 자국의 군사 정보가 영국을 통해 프랑스로 흘러들어간다고 판단하고 영국과의 정보 공유 범위를 축소하겠다고 나올 때 영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마음대로 타국과 동맹을 맺을 수 있는 국민국가 체제의 법적 기틀이 유럽에서 마련된 것은 1648년 종교전쟁이 끝나면서 조인된 베스트팔렌 조약이라고 하지만 자유로운 동맹에도 한 가지 단서가 붙었다. 신성로마황제에 맞서는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자본주의 신성제국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간의 동맹을 용인하지 않는다.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영국이 프랑스와 찰떡 공조를 유지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영국이 제국의 자리에서 내려온 다음에도 상임이사국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과 미국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서였다. 이런 영국의 위상은 그동안 영국이 일방적으로 미국을 추종하는 바람에 빛이 많이 바랬다. 그런데 영국이 미국과 거리를 두는 데 실패한 데 이어 유럽을 상징하는 프랑스와도 거리를 두지 않고 군사 동맹을 강화할 경우 영국의 입지는 흔들린다.

영국과 프랑스가 강도 높은 군사 동맹을 발전시킬 경우 장기적으로 두 나라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상임이사국 자리를 따로 가져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두 나라는 군사 동맹은 강화해도 독립국으로서 주권을 유지한다고 강조하지만 밖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영불 전력을 묶어서 하나로 본다. 상임이사국 자리가 더 늘어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상임이사국 두 자리는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럽연합 몫의 한 자리로 통합되고 나머지 자리는 남미를 대표하는 브라질이나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남아프리카에게 돌아가는 것이 역사의 순리다.

그러나 단순히 대륙을 대표한다고 해서 상임이사국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칙론이기는 하지만 상임이사국 자리에는 다른 상임이사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는 나라만이 들어갈 자격이 있다. 진정한 독립국만이 상임이사국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


BBC와 KBS : 같지만 다른 방송

지난 수요일 런던 시내에서는 현재의 3천파운드선에서 무려 9천파운드로 등록금을 3배로 올리겠다는 영국 정부의 방침에 반발하여 5만명이 넘는 영국 대학생이 가두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시종 평화롭게 이루어졌지만 일부 학생들이 보수당 당사의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가 옥상을 한동안 점거하면서 과격해졌다.

그날 BBC는 학생들이 보수당 당사로 몰려들어가는 모습도 생생히 보여주었지만 평화로운 집회를 벌이는 모습도 균형 있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부 관리와 경찰만이 아니라 시위에 참석한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생생히 전했다. 시위를 조직한 남학생은 일부 과격한 학생들이 막판에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항의 집회의 대의를 망쳤다고 분통을 터뜨렸고 지도부에 속한 한 여학생은 경찰의 과격 진압이 학생들을 자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은 평화로운 시위가 막판에 폭력으로 끝난 것을 아쉬워했고 미안하게 여기면서도 경제 위기의 주범인 금융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도 못가하면서 다음 세대를 빚더미에 앉혀놓는 정부의 편향된 정책이야말로 자신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든 주범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고 이런 학생들의 견해는 여과없이 그대로 BBC를 통해 방송되었다. BBC가 다양한 영국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노력하는 공영방송임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방송의 공정성은 사회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엘리 알레비라는 역사가는 영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원인은 영국 교회 특히 감리교 목사들이 사회 개혁에 헌신적으로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BBC라는 공영방송의 존재도 영국의 사회 갈등을 줄이는 데 기여한 주역의 하나로 꼽았을 것이다. BBC는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하며 앵커 중에도 인구 비례로 따졌을 때 유색인의 비율이 무척 높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라도 유색인에게 소외감을 주지 않고 끌어들이려는 BBC의 의도가 엿보인다.

한국에서 비슷한 시위가 벌어졌다면 KBS는 학생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만을 내보냈을 것이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 특히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공영방송은 존재 이유가 없다. KBS는 권력의 앵무새로 전락한 지 오래다. 얼마 전에 끝난 G20 정상회담 관련 방송을 KBS는 무려 3300분이나 내보냈다. G20이란 건 그저 경제 규모가 좀 크다는 나라들이 6개월마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여는 거시경제 정책 조율 회의에 불과하고 구속력도 없다. 그런데도 G20 회의의 경제 효과가 한국 1년 국내총생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450조원이나 된다는 황당무계한 추정치를 대서특필하면서 KBS는 국민을 바보로 만들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의 G20 설레발’이라는 기사에서 한국의 한 여학생이 애국가를 들으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의 보도가 한국 방송에 나왔다면서 북한 방송인 줄 착각했다고 꼬집었다. 또 G20을 앞두고 외국인 기자들에게 한국의 전통 의상이다, 요리다, 관광이다 엇비슷한 행사에 얼마나 많이 끌려다녔는지 가난한 한국 납세자의 돈을 이런 식으로 탕진해도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비아냥거렸다. 터무니없는 자화자찬이 국격을 어디까지 떨어뜨릴 수 있는지를 이번 서울 G20은 보여주었고 그 선봉에 선 것이 KBS다.

BBC가 약자의 목소리도 실으면서 영국이라는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수호자의 역할을 한다면 KBS는 강자의 목소리만 보내면서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파괴자의 역할을 한다.

얼마 전 대구의 한 여학생은 학자금으로 대출받은 돈 700만원의 원금과 이자를 못 갚아서 고민하다가 목을 매 자살했다. 여학생은 자살하기 전날 몸이 아픈 엄마를 붙들고 미안하다면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G20을 치르는 데 서울시에서만 630억원을 썼다. 전체 예산은 국가 기밀이라며 쉬쉬하고 숨기지만 적어도 그 몇 배는 될 것이다. 그 돈 가운데 상당액은 외국인 기자만이 아니라 KBS 기자를 포함하여 한국 기자를 접대하는 데도 들어갔을 것이다. 1억원이 훨씬 넘는 연봉을 받는 KBS의 간부급 기자들은 700만원을 갚을 길이 없어 G20 개막을 이틀 앞두고 목숨을 끊은 가난한 21세 휴학생의 자살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KBS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이제 부질없다. 야당들은 거창한 이념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망치는 암덩어리 KBS를 합법적으로 망하게 하고 새로운 공영방송을 세울 것인지를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야 한다. KBS에는 일부 양식 있는 기자들도 있지만 기술직과 관리직에는 공영방송을 수호하는 데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는 고임금 철밥통들이 수두룩하다. 지금의 KBS는 머리와 가슴은 없고 위장만 발달한 이런 철밥통들의 볼모가 되었다. 지금의 KBS가 망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지금의 KBS를 죽이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만 끝없이 죽어나간다.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다.

 

(cL) 개곰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13508

최근 대문글
‘君師父一體’와 ‘스승은 하늘’의 유래 - 시골훈장
천안함 사고해역 초소 하나 더 있었다 - 미디어오늘
MB '4대강'에 저항하는 김두관 지사 '최고'다 - 耽讀
다르지만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것 - 개곰
천안함 흰색 물질, 연료탱크 속 경유 분해로 생성 - 통일뉴스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