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병 들고 전선으로’… 안상수와 연평도 사태
남북 군사충돌 한다면 수도권 밀집 국민 구할 안전대책 뭔가
(미디어오늘 / 고승우 / 2010-12-01)
‘보온병 들고 전선으로!’
네티즌들이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대해 쏟아놓는 촌평의 하나다. 군 미필 딱지 붙은 안 대표의 세계토픽감 행동에 대한 변명을 보면 구차하기 짝이 없다. 당시 안 대표 옆의 군 출신 국회의원, 심지어 TV 카메라 탓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안 대표가 보인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북한과 관련해 줄을 잇는 황당한 주장, 행동들과 엇비슷한 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교전규칙을 무시한 북 미사일 기지 공격 등 단호한 응징 발언, 군 당국의 대북 대응 사격과 관련한 말 바꾸기, 천안함 사고에 대한 군 당국의 조개 증거물 폐기, 연평도에 떨어진 북한 포탄의 숫자와 천안함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어뢰의 숫자논란을 결부시키면서 천안함 의혹의 종지부를 선언한 사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연평도 사태 이후 공안당국은 이적성 유언비어를 단속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찰 등은 연평도 사태에 대해 북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범민련 등을 수사한다고 나선다. 오늘날 같은 정보화시대에 연평도 사태 관련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상황을 도외시한 공권력 발동이다. 안보 위기 속의 공안정국 공포를 확산시켜 국민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폭력적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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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8시뉴스 화면 캡쳐 |
권력층의 군 관련 쌩쇼가 이어지는 한심한 상황 속에서 연평도 등 서해 5도에서의 위기 상태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주민들이 불안해서 못 살겠다면서 섬을 아예 등지려 한다. 이명박 정권이 북에 대한 군사적 대응 의지를 거듭 확인하면서 벌어지는 역기능적 현상이다. 정부는 연평도 주택 수리 등을 지원할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주민들은 이주를 해야 한다면서 섬을 떠나고 있다.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라서 주민들의 심정을 충분히 챙길 여유가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안해하는 것은 서해 5도민 만이 아니다. 전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연평도 등 도서 주민들의 불안과 자구적 행동을 볼 때 수도권 등을 포함한 육지에서의 비슷한 위기 사태가 발생했을 때의 경우를 상상할 수 있다. 수도권은 남북 전면전 시 전쟁의 엄청난 불길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처럼 이명박 정권이 대북 강경자세를 고수할 경우 수도권 주민 수천만 명을 위태롭게 만들 사태의 발생 가능성도 전면 부정키 어렵다. 그렇다면 국방비를 충당할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 정부에 묻고 싶다. 수도권에 밀집해 있는 주민들이 남북 군사충돌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대책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남북 간 위기 상황 발생 시 청와대 지하벙커에 가서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이런 모습을 일반 국민에게 대통령은 포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지만 자신들은 피할 곳이 어디냐 하는 걱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청와대는 고려하기 바란다.
한반도는 지형적 특성상 도서가 아닌 육지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국지전을 뛰어넘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은 국민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도 북한의 버릇을 고치겠다는 식의 강공책을 구사할 방침이라면 일단 유사시 자국민 안전 대책에 대해서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것도 생략한 채 긴장을 고조시키는 작업만을 할 경우 병역미필 정권이라는 비판 공세가 더 강화될 것이다.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여권은 전쟁 불사의 열기를 쏟아낸다. TV 방송사들은 서해 상에서 전개되는 한미연합훈련의 미 군사력이 북한 심장부를 초토화할 수 있다는 보도에 열중한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전쟁은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쟁이 나면 민간인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한다. 군인은 자기 방어 수단을 갖춘 훈련된 인력이지만 민간인은 그렇지 않다.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를 고려할 때 반드시 민간인의 안전을 사전에 챙겨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집권 이후 위기 발생 시의 민간 안전 대책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 연평도 대피 시설 미비 등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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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난길 나선 연평도 주민들 ⓒ오마이뉴스 |
이명박 정권은 대북 경각심고취와 안보강화를 외쳤지만 말로만 그랬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비핵개방 3000이라는 대북 전략을 앞세워 안보가 우선이라고 강조했지만 한반도 안보 상황은 지난 반세기이래 최악이다. 군의 안보 태세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국민의 혈세 수십조 원을 쏟아 부어 신무기 개발 등을 추진했지만 군 자체 개발 무기 다수가 국내외에서 불량품으로 드러나 국가적 망신을 자초했다.
여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대북 퍼주기가 포탄이 되어 날아왔다. 햇볕정책이 연평도 포격의 원인이다’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비겁한 일이다.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모두 다 정전협정 존재 속에 이뤄진 남북 간 합의다. 평화와 안보는 관리하는 것이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 정권은 남북교류협력으로 북으로 간 돈만을 내세운다. 그러나 남이 챙긴 이득은 없는가를 살펴야 한다. 북측이 자기들 군사지역을 비무장화해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건설을 가능케 했다. 이런 조치로 이른바 땅굴을 걱정하던 남측이 얻은 군사적 이익은 어떤가? 개성공단이 남북 경제공동체로 자리 잡아 남측 경제 성장의 자극요인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또 어떤가? 이명박 정권은 미국의 대북 봉쇄 정책에 편승해서 종전에 이뤄진 남북 교류협력관계를 중단, 마비시키는 작업만 해온 것 아닌가?
이명박 정권의 공개된 대북 정책은 강공 일변도다. 그런데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진상을 보면 딴판이다. 청와대 등이 침묵하는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접촉도 실제로 이뤄졌다. 그런 사실을 미국 관리에게 귓속말로 전달했지만 정작 제 국민에게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비틀어진 정치권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명박 정권은 연평도 사태 이후 대북 군사적 태세를 강화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쟁 위기감을 고조시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을 뿐이다. 무능한 정권이 정직하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무능하면서 부도덕, 무책임하다면 그것은 국민의 지탄을 면치 못할 정권의 운명에 처한다.
고승우 / 전문위원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