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도 76.1, 122㎜ 방사포탄 있었다
[폴리스코프] ‘미필’이 군복 입고 ‘보온병 포탄’ 주장… 禮 아니다
(서프라이즈 / 希望 /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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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21 하록님이 만드신 작품입니다 |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 있었던 지난달 23일 이후 지속됐던 이 ‘심각한 분위기’가 되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문도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연평도 방문 시 검게 그을린 ‘짝퉁 포탄’ 2개를 들고 나섰다가 전 국민적 망신을 자초했다. 전날 “지금이라도 전쟁이 벌어지면 입대하겠다”는 초강력 무리수를 둔 데 이어 작심한 듯(?) 연속 자살골을 넣은 셈이다. 젊은 시절 ‘입영기피’ ‘행방불명’ 끝에 고령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던 부담이 너무 컸던 탓일까.
육군 중장출신 황진하 한나라당 의원은 취재진에게 “작은 통은 76.1㎜ 같고, 큰 것은 122㎜ 방사포탄으로 보인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럴듯했다. 하지만 이들이 사라진 뒤 기자들이 포탄에서 상표를 발견하면서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명색 ‘쓰리스타’가 인증한 북한 포탄은 그냥 평범한 보온병이었다. ‘쓰리스타’나 ‘행불면제’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것이다.
누리꾼들은 “미필자의 눈에는 저게 포탄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포탄 대신 보온병 들고 뛰어들 기세” “올해 본 개그 중에 최고” “꼭 면제나 방위들이 특공대 옷 입고 다니더라” “미필보다 육군 중장이 더 웃긴다” 등의 조소를 던지고 있다. “저희 집에 포탄이 세 개 있는데, 2개는 76.1㎜ 같고, 큰 것은 122㎜ 방사포탄으로 보인다”는 식의 패러디도 등장했다.
‘폭탄 맞은 술’을 ‘폭탄주’로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민주당 소속 송영길 인천시장의 ‘폭탄주’ 발언이 문제가 됐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송 시장은 북한의 폭격 다음날 새벽 바로 연평도에 들어갔다가 불에 그을린 소주병을 가리키며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는 분위기에 맞지 않은 우스갯소리를 했다가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이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동아일보와 문화일보는 각각 “송영길의 ‘폭탄주’ 폭언” “국난 속 반(反)대한민국세력 발본색원하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뿐만 아니다. 27일 인천시청 앞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납북자가족모임, 자유북한운동연합 주최로 열린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인공기와 일부 정치인 얼굴에 스프레이를 뿌려댔다.
한나라당의 대응은 대단히 엄정했다. 배은희 한나라당 대변인은 26일 국회 기자실에서 “종북좌파의 본심을 밝힌 송 시장은 당장 사퇴하고 민주당도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며 소리를 높였다. ‘종북좌파의 본심’ 운운한 대목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한나라당이 ‘폭탄 맞은 술’을 ‘폭탄주’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송 시장이 그 심각한 상황에서 ‘폭탄주’를 거론한 것은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정도로 꾸짖으면 될 일이다. 만일 평상시 발생한 일이라면 오히려 ‘시장님의 재치’ 정도로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송 시장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과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의 안타까움을 이번 논란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속히 해결해야 할 대한민국 ‘미필의 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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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 |
이런 와중에 집권여당 대표의 ‘보온병 폭탄’ 소식이 전해졌다. 가뜩이나 건국 이래 유례없는 ‘미필정권’인 정부·여당의 이미지에 선명한 방점을 찍은 셈이다. ‘행불상수’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에 대한 지나친 압박감이 만들어낸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대부분 포털사이트에서는 ‘행불’ 심지어 ‘행부’나 ‘행ㅂ’만 쳐도 ‘행불상수’가 추천되는 현실이다.
물론 없던 일이 되기는 했지만 쇠고기 촛불집회 당시 ‘예비군복을 입으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던 여당의 ‘미필’ 대표가 군복을 입고 카메라 앞을 휘젓는 게 곱게 보일 리 없다. ‘미필’ 대통령의 군복착용까지는 ‘국군통수권자’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미필’ 국무총리, ‘미필’ 국정원장, ‘미필’ 기재·국토·환경부장관까지 참기는 쉽지 않다. 진정한 ‘미필정권’이다.
‘미필’ 여당대표와 ‘쓰리스타’ 여당의원이 카메라 앞에서 선보인 애드리브는 올해 대한민국 전체 개그·코미디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그것들을 단숨에 뛰어넘은 포스를 보여줬다. 예전에 공자께서는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言 非禮勿動)”고 하셨다. ‘미필’이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하면서 군복 입고 다니는 것은 예(禮)가 아니다.
공자의 이 가르침은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율곡 이이의 생가 오죽헌(烏竹軒)에도 게시돼 있다. ‘10만 양병설’(후대가 조작했다는 반론도 있지만)을 주장하셨던 율곡의 가르침을 멀쩡한 4대강에 콘크리트 발라대느라 국방예산 부지런히 깎고 있는 ‘미필정권’이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 국민에게 주어진 이 ‘미필의 과잉’은 조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나만 더. ‘폭탄 맞은 술’을 ‘폭탄주’라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광역시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던 한나라당 대변인은 ‘멀쩡한 보온병’을 ‘포탄’으로 둔갑시킨 집권여당의 대표에게는 어떤 논평을 선보일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강희제(康熙帝)는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책하라(以責人之心責己)”는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의 가르침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希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