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명숙을 법정에 세운 문명의 야만.

순수한 남자 2010. 12. 7. 18:57

한명숙을 법정에 세운 문명의 야만.
번호 218654  글쓴이 이기명 (kmlee36)  조회 1227  누리 352 (352-0, 19:40:0)  등록일 2010-12-7 14:41
대문 28


한명숙을 법정에 세운 문명의 야만
우리는 모두가 야만이 아니던가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12-07)


“존경하는 재판장님”

한명숙이 입을 열었다. 모두진술이다. 서울지방법원 510호. 법정 안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저는 지금 다시 법정에 섰습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제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믿기지 않습니다.”

이 말은 한명숙만이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한명숙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느냐.’

한명숙은 모두진술에서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이 법정에서 저를 기소한 검찰과 사실 관계를 다투는 것과는 별개로 세간의 의심과 의혹, 질시의 눈초리를 견뎌내야 하는 것입니다.”

국민들도 검찰이 바로 이 점을 노린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명숙은 곽영욱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의자가 돈을 받았다는 세계 사법사상 전례가 없는 증거를 제시했다. 검찰 스스로도 한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또 한명숙인가. 한명숙이 그렇게 만만한가. 잘못 골랐다.

이미 김준규 검찰총장도 별건 수사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하지 않는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별건 수가가 아니고 뭐라 불러야 하는가.

“하나가 안 되면 새로운 혐의를, 그것이 안 되면 다시 새로운 혐의를, 그것이 안 되면 또 다른 건을 조작을 통해서 끊임없이 저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부패와 비리의 상징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한명숙은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했다. 끊임없이 누명을 씌워 법정에 세움으로써 ‘상습범’으로 인식시키고 더 나아가 노무현의 사람들은 모두 저렇다는 것을 국민들이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 사건은 지난번 무죄판결에 대한 보복수사입니다. 검찰이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한명숙 개인이 아닙니다. 저는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님과 노무현 대통령님을 모시고 국정을 운영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국민들이 내리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국민들은 민주정부 10년을 그리워하고 있다.

멀쩡한 강을 파헤치는 4대강 사업은 이미 전 국민의 반대에 직면했다. 충북에서도 농민이 음독을 했다. 문수 스님은 몸을 태워 소신공양을 했다. 전국의 종교지도자들이 일어나 4대강 파괴에 찬동하는 자들은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얼마나 견디나 두고 볼 일이다.

“존경하는 재판장 님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공소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조차 품어보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공소장은 한명숙이 국회 회기 중에, 그것도 훤한 대낮에 수행비서와 운전기사도 없이 직접 차를 운전하여 지역구인 일산으로 가서 길가에서 돈 가방을 받았다는 것이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나 검찰의 시나리오 작법은 낙제다. 작품이 안 된다. 그 좋은 머리로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받은 날짜도 대충이고 시간도 안개다. 지난번 사건 때도 희한한 공소장이었지만 이번 공소장 역시 검찰역사에 길이 빛날 것 같다.

한명숙은 총리가 되자 바로 합법적인 국회의원 후원계좌를 폐쇄했다. 어느 누가 후원이란 이름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은 바로 노무현 정부 모두의 이름과 같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재판장 님

두 번의 부당한 기소를 겪으면서 저는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는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습니다. 본인에게 가해졌던 수모와 모욕도 참기 힘드셨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 나라의 양심적 민주세력이 받을 명예의 훼손과 상처가 더욱 아프고 쓰렸을 것입니다. 세상을 버리고 싶은 만큼의 고통스러운 사건이셨을 것입니다. 지금 저도 그렇습니다.”

한명숙이 울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에서 울며 조사를 읽던 한명숙이 떠올랐다. 누가 한명숙에게 다시 눈물을 강요하는가. 야만이다.

한명숙은 20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양심의 바탕 위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살아왔다. 군사독재와 치열하게 투쟁해 옥살이를 했고 20대 새댁이 수의를 입었다. 민주화를 위한 시민운동의 대표적 인물의 하나였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의 여인이었다.

일화 한 가지 소개한다.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께 물었다. 만약에 여성대통령이 나온다면 누가 좋겠냐고 물으니 주저 없이 한명숙이라고 했다. 남다른 혜안과 직관을 가졌던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였다.

“존경하는 재판장 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금 이 법정에 서 있는 현실을 받아 드리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꿨고 양심과 명예를 전부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무엇이 되겠다고 탐해 본적도, 더 많이 갖겠다는 욕심을 부려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평생 동안 제가 추구했던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과 단죄를 받는 자리에 초라하게 서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참담하고 고통스러운지는 이 자리에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한명숙의 모두 진술 마지막은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이었다. 권력과 맞서 싸우는 것이, 진실을 증명하는 것이 힘이 들지만 반드시 승리한다고 했다.

왜 세상이 이렇게 됐는가. 왜 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가. 왜 거짓말이 진실처럼 활개를 치는가. 진실은 어디에서 신음하고 있는가. 왜 죄 없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죄 진 자들이 왜 활개를 치고 있는가.

그러나 아니다. 한명숙은 아니다. 한명숙을 괴롭히는 것은 정말 아니다. 양심은 어디에 팔아먹었는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양심이다. 양심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천금의 무게로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디인가. 총칼로 다스리는 군사독재 시대인가. MBC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을 본다. 거기 아프리카 오지에 원시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을 야만이라고 부르는 문명인이 있다. 과연 문명인인가.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을 야만이라 부를 자격이나 있는가. 그들은 죄 없는 사람을 처형하지 않는다.

문득 아프리카 오지의 야만이 부럽다. 그들의 야만은 지금 우리를 덮고 있는 야만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문명인이여! 야만에서 탈출하라.

 

2010년 12월 7일
이  기  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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