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은 죽여도 되는 것일까?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미디어스 / 김완 / 201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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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들리스콧 감독의 <블랙호크다운>은 소말리아의 참상을 전우를 구하고자 하는 미군의 전우애로 착상해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이 사건은 미국 국방장관이 사임하고 소말리아에서 미군이 전면 철수하는 계기가 됐다. |
2001년 개봉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리들리스콧 감독의 영화 <블랙호크다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93년 10월,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이다. 군벌 사령부 파괴와 반군 지도자 납치의 명을 받고 UN평화유지군 소속 미국 특수부대가 모가디슈에 상륙한다. 예정대로라면, 1시간 이내에 끝났어야 했던 작전이지만 불과 20여 분 사이에 당대 최강의 전투 헬리콥터라고 불리던 ‘블랙호크’ 헬기 2대가 격추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블랙호크기는 미군의 자존심이었다. 미국은 대대적인 구출 작전을 벌였다. 하지만 결과는 더 참혹했다. 하룻밤 새 19명의 미군 병사가 사망했고 소말리아인은 무려 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포로로 억류되었던 헬기 조종사는 열흘 만에 풀려났지만 이 사건으로 미 국방장관이 사임했고 결국 미군은 1994년 3월 소말리아에서 완전 철수하게 된다. 이후 이 사건은 클린턴 행정부의 가장 큰 외교적 실패로 기록됐다.
아덴만의 쾌거? 과정에서 8명 사살한 군사작전
소말리아 해안에서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가 군사작전을 통해 구출됐다. 언론과 정부의 호들갑이 뜨거워질수록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뜨거워지고 있다. ‘아덴만의 쾌거’는 결국 과정에서 8명의 해적을 사살한 군사작전이었다.
한국군의 빛나는 승리라는 찬사가 낯 뜨겁지만 정작 왜 소말리아에는 해적이 많은가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는 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군사 작전 이후 해적들은 공공연히 ‘한국에 대한 보복’을 천명하고 있다. 비록,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연간 수백 척의 배들이 소말리아 해안을 오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등골이 오싹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언론은 호들갑을 가라앉히고 마땅히 물어야 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컨대 “소말리아엔 왜 이렇게 ‘해적’이 많은지”, “‘해적’은 죽어 마땅한 존재인지”라는 질문들은 민주사회의 상식적 질문에 속한다. ‘아덴만 마케팅’으로 충분히 재미도 봤다. 이제 우리 사회가 소말리아 사회와는 분명 다른 이성의 문화적 지배를 받는 사회라는 점을 언론이 일깨워줘야 할 때이다.
해적은 죽어 마땅한 존재인가?
소말리아는 지금까지 내전으로 숨진 사람이 최소 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말리아는 국제 사회가 공인하는 가장 최악의 ‘실패 국가(failed state)’이다. 국제시사지 <포린폴리시>가 지난 2010년 6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세계의 실패국가 순위에서 소말리아는 177개 국가 중에서 1위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08년 이래 3년째 1위라는 점이다. <포린폴리시>는 소말리아에서 정부의 통치력이 미치는 영토는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한 수도 모가디슈의 몇 블록뿐’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 외의 지역은 모두 무장한 군벌들이 통치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정확한 국가적 통계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의 나라이다. 그런 것 자체가 별로 의미 없는 절대 빈곤의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위해 미국의 CIA가 발표한 내용을 인용하면 소말리아의 1인당 GDP는 약 600달러 정도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국민 한 명이 1년 동안 70만 원 안팎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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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북동부에 있는 나라로 정식명칭은 소말리아 민주공화국이다. 소말리아의 국기는 독립할 때 UN(United Nations : 국제연합) 신탁통치이사회의 공헌이 컸던 까닭에 국제연합기의 밝은 파랑을 사용하고 있으며, 각이 5개인 별은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에 나누어졌던 5개 지방의 단결을 표시한다. 별의 흰색은 민족과 국가의 평화와 번영을 상징한다. |
실패 국가의 절대 빈곤, 누가 그들을 바다로 내몰았나?
소말리아에서 해적이 창궐하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이 ‘실패 국가’의 ‘절대 빈곤’에 기인한다. 구조적 문제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소말리아 해적들은 1인당 연간 2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단순 계산으로 국민 평균 소득의 33배가 넘는 수입이다. 산업은 물론 변변한 농업조차 없는 사회에서 해적이 차라리 하나의 ‘엘리트 직종’으로 받아들여지는 슬픈 현실이다.
물론 제아무리 절대 빈곤이라고 한들, 해적질의 당위가 되어주진 않는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절대 빈곤한 국민 소말리아인들이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고 왜 ‘무장’을 하게 된 것일까?
우문이다. 당연히 서방 국가에 의해서였다.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의 전략적 중요성은 일찍부터 소말리아를 냉전의 격전지로 만들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자신들에게 종속되어 있는 군벌들에게 무기를 제공해왔다. 소말리아가 겪고 있는 극단적 실패는 바로 이 가난하고 국민 대부분이 문맹인 나라에 무기를 쏟아 부은 미국과 소련의 행태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그리고 이때 제공된 무기들이 지금의 무장 해적으로 이어진다.
원시 상태의 현대적 구현체가 된 소말리아
미국과 소련의 지원 아래 무장한 군벌들은 1991년 대통령을 밀어냈다. 그리곤 국가적 규모에 해당하는 무력을 동원해 돈이 될 만한 모든 것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전개했다. 소말리아를 오래 취재했던 제프리 제틀먼 <뉴욕 타임스> 동아프리카 지국장은 이 과정은 이렇게 썼다.
“…(중략) 단 몇십 원 때문에 살인이 벌어졌다. 여성을 강간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혼란이 계속되자, 전쟁에 기생하며 이익을 얻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했다. 무기나 마약 밀수업자, 유효 기간이 지나고 변질된 분유를 거둬 수입하는 업자 따위가 그들이다. 이들은 혼란 상황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소말리아는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을 벌이는 바람에 삶이 피폐해지고 제 명에 죽지도 못하는 원시 상태의 현대적 구현체가 되어 갔다.”
앞서 말한 <블랙호크다운>의 실화가 벌어진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미국은 소말리아의 혼란을 잠재우겠다며 개입했지만 그 개입의 시기는 최악이었다. 혼란이 극대화된 시기 미국은 가장 강력한 군벌과 싸워 별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은 한 편으론 다른 군벌을 지원하는 악순환의 과정을 밟았다.
제프리 제틀먼은 이러한 미국의 개입에 대해 “미국은 소말리아의 위기를 이끄는 두 동인, 즉 파벌 체제와 종교를 도무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다”고 지적하며, 미국의 개입 결과 “소말리아는 실패한 국제 외교가 묻히는 무덤이 되었으며, 국민은 급진화 되고 정치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진단했다.
미군의 섣부른 개입과 블랙호크 다운의 치욕 그리고 철수 이후의 상황
이 과정에서 블랙호크 추락의 치욕을 당한 미국은 소말리아에서 철수한다. 이후 10여 년 가까이 서구 국가들은 소말리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사이 군벌과 일부 재벌들은 국가적 통치 영역 거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변변한 산업이 없던 국가에서 군벌들은 몇몇 위험한 ‘테러리스트’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재미를 보기 시작했고 곧 그것을 주요한 사업으로 확장하는 길을 택했다.
전통적으로 소말리아의 산업은 ‘어업’뿐이었다. 국가 경제는 대부분이 어업을 통해 구성됐다. 하지만 내전이 길어지고 군벌들 간의 생존을 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어업 인프라는 붕괴됐다. 사실상 공해가 되어버린 소말리아 해역에 서구 국가들은 마음껏 폐기물을 버렸고 고기를 쓸어갔다. 영국의 국제개발처 보고서에 따르면, ‘2003~4년에 외국 어선들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불법으로 조업한 참치와 새우가 1억 달러어치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소말리아 해적이 국제 사회에 이슈가 된 것도 바로 이즈음부터이다. 2007년까지 전 세계 해적 사건의 17%에 불과했던 소말리아 해적은 2009년에는 전 세계 해적질의 절반 이상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벌어질 정도로 급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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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부대원이 삼호주얼리호에서 선원들을 구출한 뒤, 생포한 해적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 |
소말리아의 해적은 국제사회의 업보
소말리아 어부들은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는 바다를 스스로 서구로부터 지키겠다며 바다에 나섰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공세적 해적질로 바뀌었다. 이미 제공받은 충분한 무기가 있었고 제 바다 드나들듯 제약 없이 소말리아의 해안을 드나드는 무역선을 잡는 편이 수익 면에서 훨씬 탁월했다. 소말리아의 해적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국제사회가 소말리아를 지켜주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던 해적들의 국내 송환이 결정됐다. 죄값을 치르는 것은 마땅할 것이다. 국내 언론들은 이제 해적의 처벌 방식과 수위를 둘러싼 흥미 위주의 기사를 쏟아내며 러시아가 ‘자그마한 무동력 고무보트에 해적들을 태운 뒤 해안에서 540km나 떨어진 망망대해에 풀어놓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지난 2009년 미국 배를 납치했다가 생포된 해적의 나이는 16세였다. 해적의 어머니는 “갱들이 돈을 쥐여주며 어린 아들을 꾀어갔다”고 호소했다. 미국에선 또 한 명의 피해자일지도 모를 그 어린 납치범을 ‘테러범’에 준하게 처벌하는 것이 옳으냐를 두고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다. 국내 언론에 이런 수준 높은 문제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어리석은 기대일 것이다.
그들은 ‘테러범’이 아니다
<블랙호크다운>은 소말리아의 참상을 전우를 구하고자 하는 미군의 전우애로 착상해냈다. 그러나 현실은 19명의 미군이 죽을 동안 천 명 이상의 소말리아인이 죽은 것이었다. 현실의 정의가 미군은 죽어선 안 되지만 소말리아인은 죽어도 괜찮은 것일 리 없다. 삼호주얼리호 선원은 국민이어서 구해야 되지만 소말리아인은 비국민이기에 작전 과정에서 죽여도 되는 것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수십 년간 자행된 서구의 약탈에 맞서 최악의 자구적 수단으로 해적이 된 사람들을 이제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앞에 또 한 번 놓인 질문이다. 우리에게 소말리아 해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소말리아 해적에 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또 무엇일까?
※ 기사를 작성하며 http://ttalgi21.khan.kr, http://deulpul.khan.kr 블로그의 내용을 참조,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