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인사 검증엔 국가기관 총동원… 헌데 구멍은 왜?
[양정철의 청와대 이야기 4] - 청와대 인사와 인사검증⑴
(양정철닷컴 / 양정철 / 201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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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사퇴 기자회견(사진 출처 : 한겨레) |
현재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처한 국정 난맥은 대부분 인사에서 출발했습니다. 정권 출범 초 ‘고소영’ ‘강부자’ 내각에서 시작된 인사에서의 민심이반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최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 과정에선 여론의 역풍을 두려워한 여당이 아예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당·청 갈등이 불거지고 이에 따른 레임덕 증후군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언론은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을 고치라고 말합니다. 관련 참모들의 문책론도 함께 제기됩니다. 정말 그게 문제일까요? 그렇게 하면 고칠 수 있는 일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그 방도가 아무 의미 없는 해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입니다.
단언컨대, 문제는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인사 철학과 용인술입니다.
청와대 인사와 인사검증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살펴보면서 이명박 정부가 처한 난국의 원인과 해법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대통령이 임용하는 자리는? 8500여 개!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가장 큰 힘은 인사권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헌법과 법령에 따라 임용할 수 있는 직위는 행정부 및 헌법기관 공무원, 공공기관 임원, 정부위원회 위원장 및 위원 등 총 8500여 개에 이릅니다.
물론 그 가운데 각종 위원회 위원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또 실제로는 총리나 소속 장관에게 많이 위임이 돼 있어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는 직위의 수는 그보다 훨씬 제한적입니다. 행정부 장·차관 등 정무직 140여 개, 공공기관 임원 150여 개, 대법원장 및 대법관 13개, 헌재 재판관 3개, 중앙선관위원 3개 등 대략 고위직 중심으로 300개 정도로 보시면 될 것입니다.
이 가운데 대법원 헌재 중앙선관위 등은 정치적으로 독립된 직위이니, 통상의 임명직과는 약간 성격이 다르고, 주목 대상은 단연 국무위원입니다. 모든 국무위원이 인사청문회를 받아야 하는 현행 제도는 참여정부 때 도입됐습니다.
청와대에서의 대통령임명직 인사업무는, 대통령의 스타일에 따라 각 정부마다 변화를 보여 왔습니다. 좁혀서 얘기하면 그런 업무 자체가 체계화된 것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권위주의 군사정권 아래에선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임명하면 그만이었고, 임명 전의 검증이란 의미가 없었던 시절이니까요. 대통령이 직접, 혹은 측근과 비선과 실세가 끗발 따라 인사를 좌지우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를 누가 감히 문제 삼지도 못했습니다. 실제로 해방 이후부터 5공화국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고위공직자가 시비에 걸리거나, 도덕성 문제로 임명되지 못하거나, 중간에 그만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1993년 도입된 공직자 재산공개제도와 2000년 도입된 헌법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체계적인 인사시스템과 인사검증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문민정부 이후부터입니다. 특히 문민정부 출범 직후 첫 조각에서 장관 3명과 서울시장이 도덕성 문제로 11일 만에 퇴진해야 했고, 이후 93년 최초의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많은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이 자리에서 물러난 일은 인사발탁 기준과 인사검증의 체계화를 필요로 했습니다.
인사의 동력은? 비선·끗발이냐, 시스템이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탈루,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부동산 명의신탁, 재산형성 과정의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내부에 인사발탁의 기준과 검증체계가 잘 돼 있어도 청와대 안에서의 견제와 크로스체크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객관성을 잃습니다. 끗발과 비선에 치우치는 권력 내부의 작동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사전담부서의 필요성입니다. 대통령의 인사보좌 기능은, (형식적으론) 참여정부 이전까진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전문적 영역으로 업무가 분장돼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위공직자 복무감찰을 맡고 있는 곳이다 보니 중장기 인사계획에 따라 인사보좌기능을 수행하진 못했습니다. 따라서 부족한 인재관리 및 추천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주로 국정원 경찰 등 정보기관의 소위 ‘존안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여정부 들어선 이런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중장기 인사계획과 인재관리 및 추천절차를 전담하는 인사수석실을 신설했습니다. 그리고 검증은 민정수석실로 전담시켰습니다. 서로 견제하고 크로스체크하는 일이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최종 결정은, 비서실 내 인사추천위원회(비서실장+주요 수석들)에서 하도록 위임했습니다. 후보자의 적격성을 두고 수석들끼리 열띤 토론과 민망할 정도의 논쟁을 거치도록 한 것입니다. 위원들끼리 동등한 자격에서 얼굴이 벌게지도록 티격태격 싸우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걸러 낸 것입니다. 누구의 청탁이 통할 구석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인사수석실을 없앴다가 나중에 인사기획비서관실을 만들었지만 하부 구조의 뒷받침 없이 책임자의 역할로만 존재하는, 따라서 실제 운용은 제대로 하지 않는 부서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견제와 균형의 기능이 없어져 버린 셈입니다.
현 정부 인사시스템의 내부 견제기능이 사라졌다고 해서, 검증기능에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봐선 곤란합니다. 청와대 인사검증은 꽤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대단히 체계화돼 있습니다.
청와대의 인사검증은? 국가권력기관 총동원!
청와대에 인사수요가 생겨 인사절차가 시작됐다고 칩시다. 일은 이렇게 돌아갑니다. 먼저 후보자가 압축됩니다. 통상 3배수에서 5배수 정도의 인물을 놓고 검증을 합니다. 검증은 지금도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맡아서 합니다.
이 부서엔 비서관 1명과 10여 명 정도의 행정관, 4,5명 정도의 여사무원과 경위급 행정요원이 근무합니다. 이들은 검찰, 경찰, 감사원, 기무사, 국세청 등 사정기관에서 파견된 특정직 출신들이 많습니다. 검증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선 이들 사정기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인사검증 외에 고위 공직자 비리감찰을 같이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행안부, 지경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들은 검증을 위해 각 기관에 해당 후보자의 온갖 자료를 요청합니다. 행안부에서 주민등록자료와 종합토지세자료, 행안부 산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공직자재산신고자료를 제출받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위장전입과 이혼, 국적, 재산규모의 변동 등 기초사실을 파악합니다.
국세청에선 과세자료와 부동산 거래내역 자료를 제출받습니다. 납세나 체납은 물론, 투기나 위장전입에 의한 부동산거래, 편법증여 등을 찾아냅니다. 토지소재지를 직접 방문해 실사를 벌이기도 합니다.
병무청에서 받은 자료를 통해선 기본 병역사항은 물론이고, 출입국관리사무소 자료까지 더해, 자녀의 국적이탈을 통한 병적 제적이나 기피, 이중국적 여부를 따져봅니다.
후보 본인의 병역과 관련해선 면제사유를 집중적으로 확인합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받은 자료에선 음주운전 폭력 등 전과사실을 확인하며, 감사원 자료에선 공무원 징계사실을 확인합니다. 성매수나 성희롱, 파렴치나 뇌물 향응수수,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도 가려냅니다.
사생활? 개인·가족 신상 속속들이 파악!
그 외에도 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관리공단 등을 통해 건보료와 국민연금 납부 기록도 제출받습니다. 본인은 물론 배우자가 직장이 있는데도 이중으로 보험혜택 받은 사실이 없는지까지 꼼꼼히 따집니다.
더 있습니다. 연구논문의 중복게재나 연구비 이중청구 등 연구윤리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본인 진술을 기본으로, 학술진흥재단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연구논문 목록을 받아 중복사실 여부를 확인합니다.
여기에 더해 후보자의 신상과 관련한 특이사항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국정원 경찰청 감사원 총리실 등으로부터 신상자료를 징구합니다. 가족관계 특이사항, 재산형성의 문제, 과거 직장에서의 상·하급자 관계, 직무수행에 대한 세간의 평판, 특이종교 여부, 사생활에서의 불륜 등 문제가 될 만한 점들을 한 번 더 체크합니다. 감사원과 총리실 자료에선 또, 1급 이상 정무직의 직무수행 평가 자료나 복무자료, 기타 특이사항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거의 모든 국가기관의 행정시스템과 관련 자료가 검증에 총동원되는 셈입니다. 한 사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거의 발가벗기는 수준입니다. 그러니 당사자도 평소 몰랐던 사실을 검증과정에서 알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본인 몰래 부인이 뭘 했던 사실, 본인 모르게 부모나 장인이 재산을 어찌어찌 편법으로 증여하거나 명의를 어떻게 이전한 사실이 나와 가족 간에 민망한 일이 생기기도 일쑤입니다.
끗발인사 비선인사 부활… 무의미해진 검증
여기서 의문이 생길 겁니다. 국가기관들이 모두 동원돼 이렇게 다 파헤쳐 검증하는데, 왜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 그렇습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청와대는 거의 다 알게 돼 있습니다. 결코 모르지 않습니다. 참여정부 청와대도 임명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분들의 (그것이 하자든, 세간의 과도한 공격이든) 관련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판가름납니다. 결국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강행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남습니다. 참여정부에서 문제 삼았던 분들의 경우 (실명을 거론하긴 그렇지만) 어떤 분들은 이미 과거에 어느 자리를 맡을 때 이미 걸러졌던 사안이라 양해가 될 줄 알고 강행했다 여론의 벽에 부딪힌 경우가 꽤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의혹이 사실이 아니어서 (나중에 결백한 것으로 판명도 난 경우가 많습니다.) 인사를 강행했지만 비리 외에 정치적 사유로 정치권과 언론의 반발을 뚫지 못해 낙마한 경우도 있습니다.
참여정부에서 발탁된 인사들의 인사청문회 낙마율은 3.4%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11.6%보다 현저히 낮지만, 이조차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국회에 제출된 인사청문 요청안 58건 가운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고배를 마신 인사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2006년)와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2003년) 단 두 명입니다. 두 명 다 개인비리나 하자가 아니었습니다. 전 후보자는 법률적 임명절차와 근거에 대한 한나라당의 정치공세, 윤 후보자는 인수위 참여전력에 대한 정치적 시비가 문제 됐을 뿐입니다.
이명박 청와대가 아예 일을 안 하거나, 검증 담당자들이 모두 바보천치여서 낙마자들의 검증을 소홀히 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문제가 된 사람들의 하자는 실무 검증과정에서 이미 파악했을 것입니다.
결국 대통령의 뜻, 혹은 대통령의 의중을 대신 관철하려는 실세 누구의 의지로 지명된 사람만 대상으로 검증에 들어가니, 문제가 있어도 차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인사를 강행하다 생기는 문제입니다. 검증이 의미가 없는 것이죠.
정상적인 인사는, 실무라인에서 압축한 적격자 가운데 검증을 통과한 사람 중 한 명을 고위급 회의에서 합의하거나 그 조정이 안 되면 대통령이 낙점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는 거꾸로입니다.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 중에서 그나마 자격이 되는 사람을 어거지로 찾아 맞추다 보니, 검증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느 신문에 따르면 “이번 감사원장 지명의 경우에도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내부 검증에 들어가게 했다”고 합니다. 청와대에서 그런 단서는 말이 꼬리표지, 주상전하의 교지나 다름없습니다. 그럴 경우 어떤 수석들도 감히 대통령 뜻에 거스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 일이 심해지면 검증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기관별 검증작업엔 절대시간이 필요합니다. 대략 2주 정도는 여유를 줘야 차분하게 체크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현 정권처럼 폐쇄적으로 인사를 진행하면 제대로 된 검증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청와대 인사는 오로지 대통령 본인과 대통령실장, 인사비서관만이 관여한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나머지 수석들은 1순위 후보자가 정해진 다음 발표 직전에야 통보를 받는다는 것이죠. 검증을 책임진 민정수석도 부분 부분만 알 뿐 전체 틀을 알 수 없다고 한다면 검증이 무슨 검증이겠습니까. 이번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경우 청와대 내부 청문위원들에게 후보자가 통보된 것은 발표 당일 아침이었다니 검증다운 검증을 할 시간도 없었던 셈입니다.
참모들이나 검증시스템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시스템으로 친다면 검증의 체계가 이미 구축돼 있고, 참여정부에서 힘들게 만들어 넘긴 매뉴얼도 존재합니다. 검증의 아주 구체적인 절차와 검증의 대소항목까지 잘 망라된 매뉴얼대로만 해도 인사 참극은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든 실세든, 사람이 하는 인사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스템으로 해야 합니다. 객관적 시각에서 검증과 견제와 합의가 필요합니다. 참모나 시스템을 탓하지 말고, 대통령의 용인술과 인사 철학을 바꿔야 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혹은 측근과 비선과 실세가 끗발 따라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과거로의 회귀는, 인사 난맥상이 국정 난맥상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시작입니다.
※ 불편하겠지만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부디 참여정부 때 어렵게 만든 인사검증 매뉴얼을 한 번이라도 참고해 보길 권합니다. 또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의 생생한 기록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권오중 전 공직기강비서관실 국장의 저서 <참여정부 인사검증의 살아있는 기록>이란 책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합니다. 다음 편 ‘청와대 인사와 인사검증⑵’에선 구체적인 뒷얘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양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