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 대북정책은 허무개그 수준”
[‘훅’ 필진 열전 ⑫]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
(한겨레 ‘hook’ / 이정국, 정욱식 / 2011-02-17)
대학시절 사회 변혁을 위한 운동보다는 공차면서 하는 진짜 ‘운동’을 좋아했다. 사회문제에 딱히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위장취업을 하면서 노동문제에 눈떴고, 마르크스 경제학도 접하게 됐다. 하지만 군 제대 뒤 경제적인 문제, 취업 등 현실적인 문제가 어깨를 짓눌렀다. 원인 불명의 두통도 찾아왔다. 괴로웠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선포하며 온 국민이 집단 우울증에 시달렸을 무렵, 북한의 대기근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이 죽어나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반도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갔다.
직접 발로 뛰며 조사를 해보니 수많은 재화들이 사람을 살리는 쪽이 아닌 죽이는 쪽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른바 ‘평화군축운동’이라는 아이디어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뜻 맞는 동지들 10여 명이 모여 조직적인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백수의 공포’ 때문에 상근자를 지원했던 탓에 얼떨결에 대표가 됐다. 신기하게도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원인 모를 두통이 ‘싹’ 없어졌다. ‘운명’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사람을 살리는 ‘평화군축운동’을 전개하는 시민단체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의 이야기다.
MB 정부 대북정책 ‘상쟁공멸’로 가고 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MB 정부 대북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정책 구호와 현실의 불일치죠. MB 정부 대북 정책의 기조인 ‘비핵, 개방, 3천’(한반도 비핵화, 북한의 개방유도, 북한 1인당 국민소득 3천 달러 달성)을 놓고 봅시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제대로 된 게 하나라도 있나요? 핵 갈등은 더 고조되고 있고, 개방은커녕 빗장을 더 걸어 잠그고 있고, 북한 경제는 더 엉망이 됐고… 마치 MB의 747대선 공약처럼 허무개그 수준입니다. 상생공영이 아닌 상쟁공멸로 가고 있죠. 사실 정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 보수 강경파 정권이 득세를 하면 대북 군사 억제력은 더 강화돼야 하는 거 아닌가요.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을 보면 의아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보통 유화정책이라고 불리는 햇볕정책이 제1원칙이 ‘무력도발 불용인’입니다. 국방을 튼튼히 하면서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었죠. 국방비도 많이 증액했습니다. 하지만 MB 정부 들어서면서 국방비 증가세가 꺾이기 시작했죠. 이것이 꼭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MB의 군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지극히 경제주의적 관점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2롯데월드’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군의 사기저하를 가져오니 군 관련 사고들이 빗발친 거죠. 강력한 대북 억지력도 갖지 못했고요. 안보는 국방과 외교라는 두 개의 날개가 온전해야 날 수 있습니다. MB는 두 가지 다 못하는 경우죠.”
- 무엇이 문제입니까. 대통령의 철학 부재? 외교안보라인의 무능함?
“현재 청와대 안보라인을 살펴보면 이른바 ‘네오콘’적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선과 악이라는 2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거죠. 악으로 규정하면 대화상대로 인정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여기에 MB의 기독교적 실용주의도 한몫을 했습니다. 북한에 대해 관심이 전무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 말은 세게 하면서 정책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거죠. 총체적인 난국인 겁니다.”
전쟁할 능력도 없으면서 강경책이 웬 말
- 말씀하신 네오콘들이 외교안보라인을 장악하고 있다면 향후 북한에 대해 강경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겠군요. 물리적 선제타격 같은.
“그렇게까진 힘들 겁니다. 눈 감고 10분만 생각해보면 이 땅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게 어떤 상황이 될 거라는 건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만약 선제타격을 한다고 칩시다. 미군의 오산기지에서 각종 레이더 정보를 받아야 가능합니다. 미군이 선뜻 동의해 줄까요? 더군다나 우리한테는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도 없잖아요. 구조적으로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한반도 화해무드가 조성될 것이란 섣부른 예측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는데요. 왜 그럴까요.
“분명 오바마와 부시의 외교정책은 차이가 있습니다. 부시는 동맹국을 강아지 취급했다고나 할까요. 동맹국의 의견을 무시한 일방주의적인 외교전략이었죠. 하지만 오바마는 동맹국의 의견을 상당히 존중하는 편입니다. 오히려 전 정권보다 한국 정부를 더 신뢰하고 있어요. 최근 백악관의 성명서를 쭉 살펴보면 MB 정부의 성명서와 거의 흡사해요. 우스갯소리로 청와대 문서 번역한 거 아니냐고 할 정도에요. 그만큼 MB한테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죠. 말씀하신 대로 역대 미국 정부를 보면 민주당 정권일 때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된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 내 정치역학이 작용한 측면이 큽니다. 한국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진보적 정권 때 군비가 더 많이 늘었습니다. 국내 보수파 여론을 의식한 거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바마도 미국 내 보수층들의 여론을 의식해야 하니 어느 정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
과도한 중국 평가는 ‘오버’… 한반도, 이제는 ‘독립변수’
- 미국 얘기가 나온 김에 중국 얘기도 해야 할 거 같네요.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팍스 아메리카나’가 무너지는 세계사적 대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평가는 약간 ‘오버’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미소 냉전 때를 되돌아보죠. 당시에는 크게 세 가지 대결의 축이 있었습니다. 첫째, 이념 대결입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습니다. 둘째, 핵 대결입니다. 그 전과는 대결 구도가 질적으로 다른 부분입니다. 전쟁에 이겨도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서로를 지배했던 시기였습니다. 셋째, 동서 진영대결이 확실했습니다.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그 예죠. 현재의 중국과 미국을 봅시다. 미소 냉전 시기만큼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이념 대결 측면도 약하고, 핵 대결의 경우도 중국의 핵은 미국의 1/30 수준밖에 안 됩니다. 더군다나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은 30여 개에 불과해요. 그렇다고 미·중 양쪽으로 나뉜 진영대결이 있나요? 한반도가 어느 편이죠? 중국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겠지만 미국과 함께 양극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양극체제는 아니죠. 굳이 말하면 협조체제라고 해야 할까요.”
- 하지만 여전히 한국이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중국과의 ‘줄타기’를 통해 실리는 얻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과거 명·청 교체기 때 국제정세를 잘못 읽어 병자호란을 만난 사례를 제시하면서요.
“(잠시 생각 뒤) 줄타기? 전 이제 한국이 강대국 눈치 보는 ‘줄타기’식 외교적 사고를 지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반도 4대 강국이 한반도를 좌지우지했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북한의 핵실험 소식이 들리면 주변 4대국이 다 긴장합니다. 한반도 문제서 끝나는 게 아니라 미·중이 갈등하고, 중·일이 갈등합니다. 최근 한미 군사 훈련으로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에 들어왔을 때 생긴 중·미 갈등을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한반도 상황은 이제 종속변수가 아닙니다. 세계 외교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독립변수가 됐습니다. 강대국 눈치 보기가 아닌 우리가 중심이 되는 외교를 해야지요.”
천암함·연평도 사건 분리해서 접근해야
- 최근 남북 군사 실무회담도 결렬됐습니다. 핵심 논제는 역시 천안함·연평도 문제였습니다. 일괄협상을 주장하는 한국과 반대하는 북한이 서로 평행선을 달린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무척 조심스러운 문제입니다. 팩트만 가지고 얘기를 해보죠. 일단 천안함 합조단 조사결과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여전히 대다수의 국민들이 ‘의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여전히 자기들 소행이 아니라는 입장이고요. 하지만 연평도는 다르죠. 북한은 민간인 희생에 대해 유감 표명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안을 함께 묶어 해결하려 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분리해서 접근하는 게 옳습니다. 하지만 정권에선 갈등의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두 문제를 하나로 엮어 보수 심리를 자극한 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지 자꾸 ‘구실’을 찾는 거 같습니다. 해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는 거겠죠.”
- ‘북한 핵미사일의 주기적 위기’와 같은 개념처럼 최근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일종의 패턴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어느 정도의 경향성은 존재합니다. 특히 미국 정부의 교체와 관련이 깊죠. 미국은 북한에 관심이 없고, 그저 북한이 가만있으면 좋아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어떡하든 미국과 한국의 지원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상황이지요. 최근의 사태가 ‘느닷없는 것’은 분명 아닐 겁니다. 북한이 없어도 된다는 ‘배타적’논리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가능성이 큽니다.”
정보 수집도 중요하지만 해석이 더 중요
- 외부 기고를 많이 하시는 걸로 압니다. 어느 정도 쓰시는 지요. 또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십니까.
“아무래도 단체의 재정상황이 열악하다 보니 제가 속칭 ‘앵벌이’를 많이 하는 실정입니다. (하하) 한 달에 7~8편은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원문으로 된 원자료를 많이 보려고 합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의문점이 생기면 이메일 등을 통해 인터뷰를 하고요.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보얻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얻은 정보를 해석해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입니다. 일종의 분석능력이 필요한 부분이지요.”
- 한국에선 드물게 외교안보 관련 시민단체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MB 정부 들어서 더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까요. 원래 이 분야가 소수의 권력자에게 정보가 집중되는 분야기도 해서 시민단체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보는 시각이 커요. 그래도 전 정권 때는 들어주는 척이라고 했죠. 미국 펜타곤에 간 적이 있는데 저를 ‘악명 높다’고 하면서도 이야기는 다 들어주더군요. 그런데 이번 정권은 전혀…”
-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시지요.
“일단은 ‘핵문제 해법 보고서’를 집필 중입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지요. 외부에서 리액션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지만요. (쓴웃음) 시민단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책이 나오면 정책로비도 병행해야죠. 그리고 미국 중심적 사고로 집필된 한반도 관련 영문 컨텐트들이 너무나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서들이 계속 퍼져 나가면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변수들의 보수성이 증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시각을 담은 문서들을 영문 번역해 유통하는 일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또 단체 설립 취지와 맞는 군축을 통한 평화복지 운동에 힘쓸 예정입니다. 이론상으로 6년 정도 국방비 예산을 동결하면 현재 논란 중인 ‘복지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회적으로 가장 큰 화두기도 하지요.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저는 학연도 없고, 박사 학위도 없습니다. 이런 제가 전문성과 기밀성이 요구되는 외교안보분야 관련한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어디 얽힌 게 없으니 오히려 자유로운 편이죠. 보통 사람들도 외교안보에 관해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외교안보의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상근자 3명으로 끌어가는 ‘평화네트워크’는 서울 경복궁 근처 시장 골목에 위치해 있다. 외교안보를 다루는 외국의 멋들어진 ‘씽크탱크’와 비교하면 너무나 열악한 환경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 대표는 행복해 보였다. 앞서 말한 자신의 두통을 낫게 한 운명적인 만남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특히 소수 전문가들에 의해 독점된 외교안보 분야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벤처 NGO’라는 자평과 어울려 보였다.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 다양한 외교안보 ‘싱크탱크’가 필요한 나라에서 관련정보를 소수가 독점하고 귀를 막는 상황은 비극에 가깝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 있는 사공이 변변치 못하면 배는 가라앉는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http://www.peacekorea.org/)에 가면 배가 가라앉지 않는 다양한 조언들이 제시돼 있다.
※ 정욱식님의 글 보러가기
출처 : http://hook.hani.co.kr/archives/22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