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

김대중의 선택

순수한 남자 2007. 10. 21. 08:44
김대중의 선택
번호 138410  글쓴이 후랑   조회 6651  누리 1437 (1665/228)  등록일 2007-10-19 13:27 대문 27 톡톡


김대중은 이번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정동영의 승리로 끝난 후 가진 통화에서 정동영에게 "잘했다"고 치하했다 한다. 그 말이 내 심금을 울렸다. 생각해보면 과연 정동영이 잘 하긴 했다. 박스떼기, 버스떼기, 명부도용, 인적사항 도용, 개인의 정치참여의사 도용, 불법 콜센터 운용 등등. 동일한 사태를 놓고 동일한 언어를 사용했는데도 생각하는 사람간의 인식차이가 대단하지 않은가?

나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 순진해서인지 모자라서인지 김대중이라는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못했었다. 경선이 한참 진행중인 때 갑자기 미국으로 간다고 해서 생뚱맞다 생각하면서도 박광태 광주시장 등에게 이해찬을 도우라고 했다던가 하는 말을 지나는 말로 전해 들으면서 "슨상님도 참 화끈하게 좀 밀어주시지"하는 심정을 느낄 뿐이었다.

나는 심정적으로 김대중이 이해찬을 지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왜 안 그랬겠는가. 그 동안의 정치역정을 생각해보면 이, 정, 손 3인 중 김대중이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그가 지지할 사람은 이해찬 외에 달리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었다. 그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경선 후 정동영에게 "잘했다"고 했다는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확 깼다. 이번 선거판이 우리에게도 중요했지만 인간 김대중 개인에게도 엄청나게 중요한 게임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 못했었다!

민주개혁진영의 입장과는 관계없이 현재 시점에서 정치판을 바라보고 있는 김대중 개인의 입장이 있는 것이다. 우리(민주개혁진영 & 서프)는 그의 존재를 너무 미미하게 보고 안일한 판세 분석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경선의 가장 큰 변수는 김대중이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판세만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분석하고 행동했다. 적어도 서프의 대체적 분위기는 그랬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의 치열한 내적 갈등을 통해 결정된 것들의 외부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빙산 꼭대기의 조그마한 얼음조각만을 보았을 뿐 그 얼음조각을 보이게 한 수면 아래의 커다란 얼음 덩어리의 존재를 깊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구호와 자긍심, 자신감, 믿음과 선한 의지로 충만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김대중이 정동영에게 한 발언 후 그의 입장(좋던 나쁘던)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대충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의 선택이 있었다.

버스는 지나갔지만 다음 버스는 타야겠기에 정류장에 서서 담배 한 대 피우는 심정으로 생각을 정리해 본다(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모르겠다). 연청이라는 조직이 있다. 오래전에 김대중이 만든 조직이다. 여러 궁물 조직이 있지만 한나라당의 대척점에 있어서의 조직이라면 가장 오래되고 세력이 막강한 조직이다. 연청은 2002년 노무현의 승리에 큰 힘을 발휘하기도한 현재진행형의 조직으로 궁물계의 맏형이라 할 만 하다. 회장은 윤철상 전 의원이고 명예회장은 김대중의 아들 김홍일이다.

* 2006년 11월 15일 연청 중앙위 모임이 있었다. 모임 후 김홍일은 세계일보 황영미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2007년 대선 판도에 관한 질문을 받고 "아버지만큼 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을 내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그 사람이) 안 보인다. 아직 누구를 밀지 모르지만 일단 세를 모아 놓아야한다" 고 말한다.

그 당시 김홍일은 정치적 낭인 신세였다. 2004년 1월 20일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12일만에 복당했던 김홍일은 2006년 나라종금 사태로 의원직을 상실한 상태였다. 김홍일의 민주당 탈당 당시 김심이 민주당을 버렸다는 심증으로 정치판이 요동쳤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합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던 김대중과 민주당 지도부의 알력이 가관이던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김대중은 기회있을 때마다 민주당의 힘을 빼는 발언을 하면서 반한나라당 세력의 통합에 대한 심중을 본격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그 후 민주당 새 대표 박상천은 "그런다고 (민주당이) 죽지 않는다"며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다). 아무튼, 12일만에 복당한 김홍일이 2년 후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 김대중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의미심장한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 동안의 검찰이 매우 정치적인 행보를 해왔던 정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 2007년 3월 손학규의 한나라당 탈당이 있었다. 그 때 동교동계와의 교감설이 나돌았다. 2007년 9월 17일 동교동계 배기선은 당시 sbs 백지연의 전망대에 출연, "손학규는 DJ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발언을 한다. 손학규는 일종의 덤이다. 그가 이쪽으로 참여해 뛴다고 할 때 한나라당 중도성향의 표를 잠식할 잠재력이 분명히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해찬은 3등을 해도 그의 지지표가 이쪽 손바닥안에서 구를 뿐 결코 한나라당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손학규가 이쪽에서 심하게 홀대 받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2등은 시켜줘야 손님이 그나마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이대목에서는 내 상상력이 너무 "미쳐 날뛰는" 것인가?)

* 2007년 7월 9일 김대중은 정동영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대통합에 헌신하면서 대통합에 헌신한 사람을 지지하겠다"는 발언을 한다. 정동영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대중의 복심인 권노갑의 뒤통수를 치고 (이른바 정풍)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를 정치권에 각인시킨 정동영이건만, 이 일을 전후로 권노갑들은 "의리없는 배신자" 정동영에게 말을 아끼기 시작한다.

*2007년 7월 25일 지난 4.25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 후로보 나서 당선됐던 김대중의 둘째 아들 김홍업이 민주당을 탈당한다.

* 2007년 8월 10일 목포를 방문한 조순형은 대통합민주신당을 비판하며 "지루한 통합 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는 홀로서기에 나서야한다. 끝까지 민주당을 지키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에 개입해선 안된다. 존경하지만 대통합국면에서 그 분을 따를 수 없다. 대통합은 국민 사기극이다. 이 시기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압력은 누구인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라는 발언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자신의 직접 체험을 통해 목도하게 된다.

* 2007년 10월 15일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 정동영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다. 정통들이라는 조직도 있고, 평화포럼인가 하는 조직도 있지만 염동연들을 비롯한 인물들과 정동영은 흐릿하게 화면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다른 조직이 가동되었는데 연상되는 것이 있다. 연청이 가동되지 않고 일천한 정동영의 조직만으로 그렇게 압승을 거두었으리라고 도저히 단정할 수가 없다.

* 2007년 10월 16일 이인제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다. 압도적 승리였고, 이 과정에서 민주당 예비후보로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던 극렬한 대통합 반대론자 조순형은 철저히 망가진다. 이인제가 민주당에 무슨 조직이 있어 당내 경선에서 압승을 했겠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약간의 단서를 달자면 연청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치지 않는가? 게다가 김대중은 이인제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그리고 이인제는 대통합 문제에 대해 대놓고 반대한 적이 없다. 모종의 흐름이 읽혀지지 않는가?

경선와중에 정동영의 후안무치한 반칙으로 경선이 일시 중단되는 과정에서 유시민의 강경한 태도에 대해 김대중은 경고성 발언을 하면서 경선이 중단되어 판이 깨지는 사태를 결사적으로 막으려 한다. 한명숙을 불러 이해찬측을 단속하기도 했다.그의 집요함이 읽히는 대목이다. 그 일로 김대중은 서프에서 욕깨나 얻어 먹었다.

김대중은 노무현과 다르다 - 권위가 몸에 베어버린 사람

김대중은 노무현과 다르다. 노무현은 이대로 물러나도 꿇릴 것이 없는 사람이다. 뒷일을 걱정할 일이 없다. 그는 걸어온 행보가 말끔한 사람이다. 그러나 김대중은 아니다. 그의 최대 업적이라 할 만한 남북문제에 얽힌 사연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햇볕정책으로 인해 인생최대의 영광이라 할 만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민주주의 투사에서 대통령으로, 그리고 노벨상으로 이어지는 레드카펫을 시종 일관되게 걸어온 그다.

그를 수식하는 여러 단어들은 그의 권위가 되었다. 그는 권위가 몸에 베어버린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영광과 명예가 더럽혀지는 꼴은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나름 훌륭한 사람이고, 존경받을 만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가 획득한 권위가 그의 사람됨을 역설적으로 속박하는 경우를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인생의 황혼길에서 자신이 이룩한 업적들이 훼손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느꼈음직하다.

그는 그 자신 스스로 자연인인 개인이 아니다. 자신이 평생동안 기치로 삼아왔던 남북문제에 관한 업적은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운명에 관한 문제로 그의 내면에서 등치될 수 있다. 그의 삶과 인생역정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국가와 민족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하는데 지금 그것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 또는 차악을 선택해서라도 자신을 비롯한 남북문제 및 대북송금문제가 다치지 않아야 한다. 대선을 위해 최선의 구도를 짜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일차적 고려 대상이고, 다음은 만약 대선에서 졌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원칙과 정도를 버린 김대중의 선택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할 경우 최선의 방어책은 역시 그 약발 좋은 지역감정이다. 한나라당이 97년 대선에서 패한 후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릴 때마다 영남으로 내려가 농성하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고 가정했을 때 김대중의 가장 좋은 방어막은 호남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세력일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과 이해찬들은 철저한 반지역주의자들이다. 이미 노무현들은 대북송금 조사까지 했던 전력이 있다. 그렇다면 누구누구를 골라서 일을 도모해야 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그는 고민했을 것이다.

이쯤에서 전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브레진스키가 지은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책이 떠 오른다. 지구를 하나의 체스판으로 묘사하면서 미국은 그 장기판 위에서 말들을 움직이며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 대략적인 내용이다. 어쩌면 김대중은 장기놀음의 고수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대선을 바라보는 관전법으로 각각의 세력들이 벌이는 장기놀음 토너먼트를 연상할 수 있을법 하다. 일단 판을 벌려 놓으면 장기 토너먼트 놀음은 어쨌든 최종적으로 양자간의 게임이 된다.

그가 도모한 선택이 이 나라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원칙과 정도는 버렸다. 우리네 인간사가 본래 선과 악이 따로 없고 늘 상대적인 것이긴 하다지만 지금의 심정은 그저 참담할 뿐이다. 방금 버스 한 대는 손을 흔들었지만 이미 지나가 버렸고 다음에 올 버스는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조차 알 수 없다.

긴역사에서 볼 때 결국 노무현들이 옳았다는 것이 머지 않은 장래에 밝혀지길 바라고 노무현들이 바라는 세상이 그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때가 오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밖에는 이제 달리 할 일이 없는 듯이 보인다. 노무현들인 우리는 지금 걷고 있는 이 걸음을 그저 뚜벅뚜벅 하염없이 걸을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혼돈의 시절이다.

끝으로 임마누엘 칸트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면서 글을 맺는다.

"현실에서 승리한 자만이 비로소 이상의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현실적 여유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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