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월' 주장은 국민에 대한 모독
- 국가부도사태 누가 불렀고, 재도약 10년 누가 이뤘나?
청와대 정책실
한나라당이 자신들이 정권을 잡지 못한 지난 10년을 '육란(六亂)시대'라며 그동안 잃어버렸다는 열 가지 목록을 제시했다. '잃어버린 세월 신고목록'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이 열거한 열 가지 목록을 일일이 거론하지는 않겠다. 조목조목 짚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주장을 접하다 보면 새삼 명확해지는 바가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10년 동안 정권을 잃으면서 기억도, 책임도 함께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초래…한나라당은 기억도, 책임도 잃어버렸나?
1만 2,000달러를 넘었던 1인당 국민소득이 1년 만에 절반 가까운 수준인 7,300달러로 꺾어진 때가 있었다. 올라가야 할 것은 내려가고, 내려가야 할 것은 올라갔다.
실질 GDP는 4.7%('97)에서 마이너스 6.9%('98)로 돌아섰다. 외환보유액은 '97년 39억 달러로 바닥을 드러냈고 국가신용등급은 10단계까지 추락했다(S&P: AA- → B+). 반면 부도업체 수는 1만 7,168개('97)에서 2만 2,828개('98)로 급증했다. 실업률은 2.5%('97)에서 7.0%('98)로, 실업자 수는 46만 명('97.9)에서 178만 명('99.2)으로 늘었다. 영어 한마디 모르던 어린 아이와 시골 어르신까지 '아이엠에프'를 정확히 발음하던 시절이었다.
한나라당이 그렇게 성토하는 양극화, 실업과 파산, 국가채무 증대, 비정규직 증가, 자살률 증대 등의 주요원인은 97년 외환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외환위기라는 국가부도 사태를 불러온 당사자다. 그런 한나라당이 이제 와서 잃어버렸다는 목록을 내놓고 있다. 기억도, 책임도 없다.
97년 이후 10년은 과연 어떠했는가. 지난 10년간 4대 부문 구조조정과 양극화 등 외환위기의 부작용 극복을 위한 동반성장 전략으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비로소 올라가야 할 것이 올라가고 내려가야 할 것은 내려갔다.
수출은 2002년 1,625억 달러에서 매년 두 자리 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06년 3,000억 달러를 돌파(3,255억 달러)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14달러 ('07년 예상치)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외환보유액은 2,500억 달러를 넘어서 세계 5대 외환보유국이 됐다. 국가신용등급도 S&P가 A, 무디스가 A2로 각각 8단계, 5단계 상승했다. 실업률은 절반 수준인 3.5%('06)로, 부도업체 수는 6분의 1 수준을 밑도는 3,416개('05)로 줄었다.
당연히, 이 같은 수치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아픔을 딛고 땀 흘려 이루어낸 성과다. 아직도 외환위기의 여파는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어려움을 극복하며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영업주 비중 감소(28.2%/'98 → 25.8%/'07.1/4분기), 548만 명('05.8)까지 늘었다가 감소세로 돌아선 비정규직(545만 명/'06.8) 등의 지표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나라당에만 보이지 않는 지난 10년의 성과
수치만 가지고 얘기할 일이 아니다. 6·15공동선언을 시발로 9·19 공동선언, 2·13 및 10·3 합의, 2007 남북정상선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평화를 위한 안보' '안보는 경제'라는 명제를 입증했다. 냉전과 대결의 반세기를 종식하고, 평화공존의 10년이 그렇게 열렸다. 1994년 민자당 시절, 시대 흐름에 뒤처진 강경론으로 북폭위기까지 불러온 세력들은 보고도 깨닫지 못할 일이다. 아직도 '북한 퍼주기' 운운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처럼 지난 10년의 성과는 경제는 물론 외교안보·정치·사회 등 제반 분야를 포괄한다. 그동안 제도적 민주주의 확립, 정경유착과 부패정치 근절 등 민주주의개혁은 '고속성장'을 이뤘다. 이를 통해 외환위기로 폭발한 우리 사회의 특권과 반칙, 유착과 불균형의 폐해를 상당 부분 근절했다. 아울러 혁신주도형 경제, 복지예산 확충을 비롯한 사회투자, 능동적 개방 등을 통해 미래를 준비했다. 성장제일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보편적 복지와 동반성장의 기틀을 일군 것이다.
한나라당의 '신고목록'은 2만 달러 시대로 향하는 우리 사회의 뒷덜미를 누가 잡고 있는지 되짚어보게 한다. 03∼06년 4년간 우리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0개 OECD 회원국 중 9위 수준인 4.3%다. 그런데 여전히 개도국들의 고도성장에 빗대 '저성장'이라며 국민의 눈을 가리려 들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범위를 확대해 복지 지원을 강화한 것을 도리어 극빈층이 늘었다고 주장하고, 공무원 증원 인력의 84%가 교사, 경찰, 소방관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사회서비스 분야라는 점은 외면한 채 '큰 정부' 시비를 되풀이하고 있다.
'깨끗한 정치' '서민을 위한 정치'는 누가 가로막고 있는가.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공천비리로 입건된 사범이 118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한나라당이 가장 많은 80명이었다. 지난해 예산안 심의에서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 예산 1469억 원이 삭감됐다. 민생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당시 선심용이라는 이유로 관련 예산을 삭감했고 이에 따라 약 9000개의 일자리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한나라당은 공교육 붕괴를 성토하면서 정작 서열화 심화, 사교육 폭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농후한 자립형 사립고 확대, 본고사 허용 등의 공약을 내놓고 있다. 공교육 붕괴를 누가 걱정하고 누가 성토해야 하는가.
과거 언론과 유착하고 노골적인 회유와 협박을 앞세우던 세력이 언론탄압을 거론하고 있다. 북풍, 세풍 등 권력기관의 선거개입과 각종 게이트의 원조가 실체 없이 이름뿐인 게이트를 열거하며 이 나라의 법치를 걱정하고 있다.
'무능정권' '상실의 시대' 규정은 '그때 그 시절'에 적용해야
"지난 무능정권 세월은 상실의 시대였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그 말은 94년에 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넘어선 이후 외환위기로 98년 280포인트까지 떨어진 세월에 적용되는 게 상식적이다. 혹은 과거 한나라당정권이 93∼97년 5년간 500억 달러 가까운 적자를 낸 끝에 국가부도 사태를 몰고 왔던 그 세월에 적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적어도 2003년부터 4년간 600억 달러가 넘는 흑자를 기록했고, 주가는 2,000포인트를 넘나드는 지금 갖다 댈 주장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잃어버린 그 10년을 우리 사회는 환란 극복과 재도약의 10년으로 만들었다. 현 정부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 사실부터 인정하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