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척결

한국의 명문가문(?) 제9편 "박정희家"

순수한 남자 2007. 10. 29. 22:50
한국의 명문가문(?) 제9편 "박정희家"
                                 -쩜억개-
 
 
오늘도 어김없이 칡넝쿨처럼, 고구마 줄기처럼,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있는 대한민국 명문가문(?)의 인맥에 대해 사정없이 후벼 파 보자.

오늘은 "박정희가"다.

△ 박정희 전 대통령 ⓒ 네이버 검색
대한민국을 19년간 떡 주무르듯이 가지고 놀고, 동서남북 찢어서 국민들 가슴에 상처를 주고, 수많은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던 그 악명 높은 박정희 가문에 대해 알아보자.

한마디로 박정희는 멋대로 마음대로 한 세상 풍미하면서 즐길 거 다 즐기고 해 볼 거 다 해보고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이다.

물론 박정희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요즘도 내이션 빌딩 운운하며 그의 경제개발 업적을 지나치게 과대하면서 불가피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럴 때 늘 인용하는 글이 있다. 좋지도 않은 머리로 귀찮게 한두 명도 아닌 그런 사람들이 억지논리를 늘어놓을 때마다 일일이 대꾸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것보다 그냥 이런 논문들을 사안별로 딱 정리해놓고 있다가 필요할 때 긁어 붙이면 게임 끝이다.

<연 10% 안팎의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모두 박정희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값싼 양질의 노동력이 있었고, 집권 초창기 방위비 부담이 크지 않았으며, 1960~80년대에 걸쳐 미국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린 데 따라 반사이익을 볼 수 있었다는 객관적인 여건을 감안해야 한다.

박정희가 잘해서 경제가 잘됐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량과 국민의 역량을 혼동하는 것이다. 국민의 역량과 시대적 요구에 의해 지도자의 역량이 발휘된 것으로 봐야 한다. 흔히 필리핀 마르코스 정권의 예를 들어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지만, 한국은 필리핀과 달리 우수한 노동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토지개혁을 단행했다는 좋은 바탕을 깔고 있었다. 여기에 국제적인 역학 구도로 중동 특수를 누릴 수 있었고,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는 데 유리했다는 외부 여건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1960, 70년대에 한국이 이룬 경제적 성과에서 박정희의 공은 제한적이다.

박정희 정권 경제정책의 상징인 ‘경제개발계획’이 실상 5·16 쿠데타 이전인 2공화국 시절에 세워졌다는 점도 박정희 개인의 공을 일정하게 제한하는 대목이다.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이를 추진할 경제기획원 설립 구상도 2공화국 때 이미 마련돼 있었다.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은 박정희 시대의 경이적인 양적 성장은 정경유착, 각 부문의 불균형 성장, 관치금융 등 어두운 구석을 배경에 깔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60, 70년대의 경제적 성과에서 차지하는 박 전 대통령의 기여도와 함께 또 하나의 커다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양적 성장이 세계 경제사적으로도 괄목할 만했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을 고려하면 총점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독재를 했지만, 그래도 경제는 잘하지 않았느냐’식의 ‘박정희 신화’는 설 땅을 잃게 된다.

문제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 총점’을 똑 떨어지게 매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박정희를 바라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의 크기가 확연하게 달리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순전히 경제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경제 철학과 가치관의 문제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사회과학적 사안이어서 경제 총점은 제각각 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박정희 신화의 실체는 "지도자의 역량과 대중의 역량을 혼동한 결과"라는 말이다. 또 시운까지 딱 들어맞았던 것이 주효한 것이다.

서프앙들이라면 전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말이므로 더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다.

다카키 마사오 시절 얘기 제쳐두고, 또한 여순사건 당시의 왔다리갔다리 행각 빼놓더라도, 박정권 19년만을 두고 평가해도 박정희의 죄악은 천지를 뒤덮고도 남을 양이다.

박정희 정권 전반기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후반기엔 긴급조치로 사람들을 조졌다. 물론 긴급조치 시절에도 급하면 국가보안법, 반공법의 미친 칼춤을 추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혁당 사건이다. 취약한 군사독재정권의 한계를 감추기 위해서, 저항하는 민주화세력을 빨간색으로 채색시켜 국가전복을 기도하는 폭력집단으로 조작하여 일관되게 사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나이 서른도 안 되어 잔혹하게 파멸당한 여정남씨 얘기는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얼마나 고문을 많이 당했던지 사형을 선고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고 한다. 사형을 선고하자 마자 가족에서 알리지도 않은 채 급하게 사형을 집행하고, 처형 후에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하지도 않고 서둘러 화장해 버렸다.

석방시켜 주거나 면회시켜 주거나 시신을 인도하면 그 잔학상이 드러나 정권이 파멸될 거 같으니까.

이런 개씹탱구리같은 새끼들이 어디 있나?? 이렇게 죽인 사람이 자그마치 여덟 명.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9명, 징역 12년 이상 선고받은 사람이 20명.

울화통 치민다. 그 딸은 그 죄악이나 빌 것이지 무슨 또 대통령을 하겠다고 설쳐대질 않나, 그 사법살인의 정점에 있던 자의 사위가 대한민국 최고 귀족에, 거대 족벌 언론사 사장이라니....

나라꼴이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박정희가 이데올로기 사슬로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억울하게 몰아가지고 남의 인생 조지고, 그 집안 풍비박산 시킨 경우가 어디 한 둘인가?

박정희정권은 국가테러리즘의 전형이었다. 제일 웃긴 것은 박정희가 스스로 깡패보다 더한 짓을 했으면서 깡패소탕 운운한 것이다. 기가 차다.

박정희가 깡패들을 잡아서 바람직한 인간으로 선도하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재창조할 수 있도록 도와준게 아니라 무식하게 군사적 규율을 살인적인 폭력으로 강요하면서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했다. 깡패보다도 못한 국가적 폭력을 자행했다.

그래서 새사람 만들었나? 이후 또 다시 깡패조직을 권력의 말단 행동대원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는가?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깡패를 써 먹고, 깡패짓 해도 되고, 사회적 공포분위기를 조장하기 위해 국민재건 운운하면서 끌고 가서 마구 부려먹고 마구 때린 거 아닌가?

전두환이도 나중에 그거 흉내 내면서 사회정화를 떠벌린 거 아닌가?

대가리에 들어있는 군국주의의 잔재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지금도 "그게 사나이답다"면서 침 질질 흘리는 사람들은 뭐야? 침 닦아!!! 전사모, 뭐야?? 박사모, 누구야??

그 군홧발 아래 억울하게 희생당했을 힘없고 가엾은 약자들의 고통은 왜 안 보나?

유신체제 7년동안 국가보안법, 반공법, 긴급조치 위반으로 엮어서 감옥으로 끌고 간 청년 학생만 무려 1197명, 노동자 농민 275명, 성직자, 종교인 132명, 언론인 문인 84명, 선생님 52명, 정치인 70명, 기타 등등 1000명..........

유신체제 하 양심수 총 2704명.

△ 김지하 시인 ⓒ 네이버 검색
김지하 시인이 당시 이렇게 말했다.

"반공법 제4조의 상투적, 견강부회적, 무차별적, 모략적 적응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사상적, 정신적 성장과 발전을 빼앗아 온 최대의 질곡이며 우리 민중으로부터 '말의 자유'를 빼앗아 숨막히는 암흑과 침묵의 문화를 보급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부패특권의 압제권력을 유지해 온 최대의 억압의 무기이다. 나는 이에 대하여 자유의 이름으로 머리 끝부터 발끝가지 치떨리는 분노로 항의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개성의 허용,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온몸으로 요구한다. "

그야말로 박정희정권은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인권유린의 구조화를 자행하여 한국사회 전체를 군사문화가 지배하는, 반민주적 독소로 가득찬 사회로 만든 원흉이다.

박정희 덕분에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국가기관들이 전부 인권유린의 도구로 전락하였고, 아직도 그 때문에 국민적 신뢰를 되찾지 못해서 고충을 겪는 것이다.

극악한 고문도 성행하였다. 물고문, 전기고문, 수면방해, 구타, 천장에 거꾸로 매달기,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넣어 비틀기, 겨울에 옷을 벗기고 찬물에 집어 넣기, 불이나 담배불로 지지기, 비녀꽂기, 통닭구이, 강간.윤간.기타 성고문, 물 속에 머리 처박기, 고춧가루물을 코에 붓기, 원산폭격, 빈대붙기, 칠성판에 묶고 구타하기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박사모?? 박정희의 전면적 이데올로기 공세에 흡수된 거냐? 살인적인 인권탄압의 실상을 모르는 거냐? 망각의 해악인가? 민주주의가 그렇게 불만인가? 뭐야,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조용수 사장은 왜 죽었고, 황태성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고, 동백림 사건, 남민전 사건은 뭐야? 멧돼지는 어디로 갔나?

젊은 사람들이 왜 멀쩡히 있다가 감옥에서 옥사를 그렇게 많이 했는지 생각해 봐라.

영화 "실미도" 못 봤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무슨 부정선거 고발했다고 열차에서 떠밀어서 죽이지 않나,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운동하는 선교사에게 독약을 먹이질 않나, 대학교수를 잡아다가 창밖으로 집어 던지질 않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억울하게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했다고 결정된 사안만 보더라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박근혜가 저렇게 정치판에서 설쳐댈 수가 없는 거다.

이건 악마 중에도 대마왕이다, 대마왕. 베엘제불.... 악마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박정희 향수라는 것은 결국 자기 가치파괴로 귀결될 게 뻔하다.

박근혜라는 여인도 불쌍한 여인이다. 박근혜 정도되는 사람이 이런 사건들의 진실에 대해 전혀 모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부친이 저지른 죄업을 모른 척 하면서, 또는 두둔하면서 그 죄를 씻기 위해 용서를 빌기는커녕 가해자 편에 서서 또 다시 민주세력에게 상처를 가하고 있는데 이 또한 불행한 자기 가치파괴로 결론이 날 것 같다. 그러니까 박근혜도 박정희에 의해 빚어진 또 하나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박정희는 불법적인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후, 탈취한 권력을 악용해 끊임없이 추악하게 정권 연장을 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최고권좌에 앉아 있었다.

물론 그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가문도 엄청나게 번성시켰다.

무슨 박정희가 검소하고, 역대 가장 청렴한 대통령이고, 친인척을 멀리했다는 소리들을 그렇게 하는데 다 좆까는 소리다. 죽을 때까지 이 나라에서 천황으로 살았는데 무슨 소리하는 건가? 정수장학회 얘기는 듣지도 못했나?

그 문란했던 사생활을 보고도 검소하고 청렴하다는 얘기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나? 친인척을 멀리하기는 뭘 멀리해? 쓸 수 있는 사람은 다 끌어다 한 자리씩 줬다.

당시 박정희 친인척비리가 불가사의하게도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를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어도 잡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는 걸 몰라??

우선 박정희의 딸 박재옥부터 알아보자. 사람들이 박근혜가 큰 딸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박재옥이다. 박재옥은 박정희의 첫째 부인 김호남이 낳은 딸이다. 박재옥은 한병기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한병기는 1931년 평남 안주 출신이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을 하자마자 불과 30살의 나이에 별 경력도 없이 주뉴욕총영사관 영사가 되었다. 35살의 나이에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이 되기도 했다. 선주협회 회장을 지내고 박정희 시절 설악관광케이블카 회장이 되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유엔대사, 캐나다대사를 역임하기도 하고, 공화당 총재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박정희가 죽자마자 권력에서 멀어졌다. DJP연대로 사촌 동서인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득세하자, 방송개혁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자문위원장이 되는 등, 조금 고개를 들었다.

이래도 박정희가 친인척을 멀리한 건가?

그 다음에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아들 박재홍을 보자. 그러니까 박정희는 박재홍의 작은 아버지다.

1941년 경북 구미 출신이다. 대구상고, 고려법대를 졸업하였다.

28살의 나이에 포항제철 행정실장이 됐고 32살의 나이에 동양철관 회장이 되었다. 이거 정상적인 건가??

민정당, 민자당에서 국회의원을 4번씩이나 해 먹었다. 그 후 자민련으로 갔다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갔다가 국민회의로 건너오는 등 이상한 정치행각을 보여주었다.

또 박정희의 또 다른 형 박상희의 아들 박준홍을 보자.

1947년생이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계성고, 경희대 정외과,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였다. 김종필의 부인 박영옥이 박준홍의 누나다.

불과 서른 살의 나이에 1급 관리관 정무조정실장이 되었다. 요거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가능한 얘긴가? 그러더니 32살 때 그 막강한 대한축구협회장이 되었다.

박정희 사망으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매형 김종필이 만든 자민련에 들어가서 지금도 자민련 경북 구미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촌형인 박재홍과 맞붙기도 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의 친인척 가운데 쓸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안 썼을 뿐이지 쓸만한 사람은 다 갖다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의 오빠, 그러니까 박근혜의 외삼촌인 육인수 같은 경우에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후에 승승장구하면서 5선 의원 씩이나 지낸 거 아닌가?

그 육인수의 사위 이석훈은 청주 MBC 사장을 지내고, 충청일보 사장을 거쳐서 현재 일신산업 회장이다.

김종필 같은 경우에도 박정희가 끔찍이 생각했던 형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의 남편 아닌가? 박정희의 처조카 김종필이 이후락 등과 함께 80년 신군부에 의해서 부정축재한 재산이 환수조치됐는데 그 총 규모가 887억원이다. 25년 전에 887억원이면... 이건 계산이 불가능한 돈이다.

이래도 박정희가 깨끗하고 청렴한가? 그걸 몰라서 가만히 놔 둔 건가? 박정희 개인은 절대권력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축재할 필요가 없었을런지는 모르겠다.

박정희 덕이 아니라면 박근혜가 어떻게 정수장학회를 지배하고 있나? 정수장학회가 말이 장학회지, 그 규모가 1조 300억원에 이른다. MBC의 30%가 정수장학회 소유다. 부산일보도... 경향신문 사옥 부지도...

△ 육영재단 박서영 이사장 ⓒ 네이버 검색
박정희의 또 다른 딸 박근영(박서영으로 개명)은 또 어떻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나? 육영재단도 수천 억원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무슨 수로 코스닥에서 한방에 46억원 짜리 대박을 치나?

이게 청렴한 대통령의 표상이라는 박정희의 모습이다.

게다가 시골에서 농사만 지었다던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딸 박재선을 의사와 결혼시키고, 형 박상희의 둘째 딸 박계옥의 남편 김용태를 그 막강한 대통령 경호실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그 뿐이랴!!!!

박상희의 세째 딸 박금자를 총리실에서 근무하는 반기언과 혼인시키고, 결정적으로는 박상희의 막내 딸 박설자를 벽산그룹 창업자 김인득의 아들인 김희용과 결혼시켰다. 김희용은 현재 벽산계열인 동양물산기업 대표이사 회장이다.

이 박설자로 말미암아 박정희 집안이 드디어 그랜드 서클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박정희의 조카 박설자의 남편 김희용의 형 김희철이 현재 벽산그룹 회장이다.

김희철의 부인, 그러니까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가 바로 LG그룹의 한 축인 삼양통상의 창업자 허정구의 딸 허영자다. 이 허영자의 조카사위, 그러니까 허영자의 남동생의 사위가 바로 조선일보 후계자로 알려진 방준오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한번 가보자. 참 웃기는 거 발견했다.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인 허영자의 오빠가 현재 삼양통상 회장인 허남각이다.

이 허남각의 딸 허정윤이 얼마 전에 정대호라는 청년과 결혼을 했는데 이 정대호가 그 유명한 황해도 재령의 대지주의 아들인 강원산업 창업자 정인욱의 손자이자, 현재 강원산업 회장인 정문원의 아들이다.

이 정문원의 부인 최금자의 언니가 최금숙이다. 최금숙이 누구냐? 바로 얼마 전에 형제의 난으로 물러난 두산그룹 회장 박용오의 부인이다.

게다가 정문원의 동생이 정도원인데 정도원에게 두 딸이 있다.

큰 딸 지선이는 기아자동자 회장인 정의선과 결혼했다. 정의선은 누구냐? 현대자동차 정몽구의 회장의 외아들이자 정주영회장의 손자다, 이 말이다.

작은 딸 지윤이는 박성빈이라는 청년과 결혼했다. 이 박성빈은 또 누구냐? 포항제철 박태준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포철 박성빈이랑 현대 정의선이랑 동서가 된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철강산업을 하려고 부지까지 선정하러 다니다가 포기한 배경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 박성빈을 좀 파헤쳐보면 아주 재밌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서프앙들에게 미안해진다. 양해 바란다.

박성빈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다가 요즘 무슨 통신 솔루션 업체인 사운드파이프 코리아 대표이사로 있다.

이 회사를 가만히 보니까 무슨 다국적 기업인 것 같은데 국내 대리점을 영업하는 듯 하다. 전자신문같은 걸 보면 꽤 잘 나가는 듯 하다. 잘 나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사운드파이프에서 무선랜 환경을 구축했다는 아산병원은 현대 계열 아닌가??

박성빈도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박태준이 국무총리직에 있을 때 드러난 박성빈의 부동산만도 강남구 역삼동의 170평짜리 카센터와 강남구 신사동의 빌딩 등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한남동에 빌라도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고구마 줄기라고 할 수 없다.

박성빈의 매형 김형수를 주목해야 한다. 김형수는 박태준의 한국화가 딸 박유아와 결혼을 했는데, 박유아는 본래 변호사 고승덕과 살다가 헤어졌다.

이 김형수는 또 이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맥도널드 사장과 국내에서 일본 도요다 자동차 렉서스를 수입판매하는 렉서스 케이모터스 대표이사다.

그런데 이 김형수의 부친이 그 유명한 동일고무벨트 창업자인 김도근이다. 이 김도근의 이력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지향적인 것이 분명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등등 골 때리는 이력이 꽤 많다.

문제는 김도근의 큰 아들이자 김형수의 형인 김진재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박정희시절부터 여기저기 부산지역을 마구 쑤시고 돌아다녔다. 청년회의소니 부산 싸이클 연맹이니 뭐니 닥치는대로 자리라는 자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총력안보 부산시 협의회 특별위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부산시 청소년 선도위원도 맡았다.

부산 동래구 새마을지도자연합회 고문직도 맡았다.

열심히 하면 위에서 알아보는 법, 전두환이 급조한 민정당 간판을 달고 11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막론하고 내리 5선의원이 되었다.

△ 한승수 ⓒ 네이버 검색
이 김진재의 아들인 동일고무벨트 기획이사 1972년생 김세연이 그 유명한 춘천 한승수의 딸 한상은과 결혼을 했다. 그러니까 왜 한승수가 무소속으로 있다가 뒤늦게 또 다시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는지 답이 나온다.

그런데 이 괴상한 상황을 우리 서프앙들이 알아야 한다. 이 한승수가 박정희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한승수의 장모가 육영수의 큰언니 육인순이다. 그러니까 박근혜에게 한승수는 사촌 형부다. 한승수의 장인은 일제 만주국에서 관리를 지낸 홍순일이다.

이 박정희의 동서 홍순일의 사위들이 세명이나 국회의원이 됐다. 예전에 서주산업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혓바닥 시뻘겋게 되는 아이스 바를 다들 먹어 봤을거다. 그 서주산업의 회장이 바로 국회의원을 지낸 홍순일의 다섯째 사위 윤석민이다.

한승수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홍소자가 혜원여고 교장을 지냈는데 알아보니까 혜원여고 이사장 윤석민의 처형이네?? 헐... 신문에는 그런 관계가 안 나와서 참 재미가 없다.

홍소자랑 열린우리당 이미경의원이랑 친하게 지내지 않기를 바란다.

또 만주지역에서 엄청나게 크게 농장사업을 벌였던 천재라는 장덕진이라는 사람이 육영수의 언니 육인순의 사위다. 이 사람은 박정희정권하에서 장관도 지냈다. 분명히 장덕진과 한승수가 춘천고 동문으로 친분이 있어서 동서가 된 거 같다.

전국민이 뻔질나게 소풍가는 한국민속촌 회장 정영삼도 육인순의 사위로서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어쨌든 이렇게 오만가지 요직은 다 해 먹었는데 무슨 박정희가 친인척을 등용하지 않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승수의 아들 한상준은 얼마 전 이희현이라는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내가 깊이 파보니까 이희현의 아버지, 그러니까 한상준의 장인은 유니드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이화영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 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웬걸??

이 이화영이라는 사람이 마지막 개성상인이니 뭐니 하면서 언론에서 띄워주는 성북동에 사는 동양제철화학그룹 명예회장 이회림의 아들이었다. 다들 봐서 알겠지만 ITV 폐업할 때 그 모습이 마지막 개성상인의 모습인가?

내가 그동안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후원회장 이회림이 왜 그랜드 서클 안에 안 들어오나, 의아했다. 그러니까 이회림과 한승수가 사돈을 맺은 거다.

어쨌든 한승수같이 유엔총회 의장까지 지낸 학벌 좋고, 경력 좋은 사람이 부인까지 데리고 가서 박정희를 추모하고 애도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 깜빡 속아넘어가겠다. 여러분, 한승수는 박정희의 조카사위에요, 조카사위!!!!!!!!!!!!!!!!!!!!!!!!!!!!!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아까 언급했던 박태준의 사위 중 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박태준의 딸 가운데 디자이너인 박경아가 있는데 전두환의 아들 전재용과 이혼을 하고, 김병주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김병주는 1962년생인데 얼마 전까지 미국 칼라일 그룹 아시아지역 회장 겸 이사였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를 졸업하였다.

김병주는 국민의 정부시절 자민련이 연정을 할 즈음 박태준이 총리가 되기 직전에 칼라일 코리아 사장이 되었다. 김병주는 쌍용정보통신을 꿀꺽 하더니, 5000억원을 쏟아부어 한미은행을 먹었다. 하나은행마저 잡아먹기 위해 공을 들였다.

한미은행을 4억달러에 사서 씨티 은행에 27억달러에 팔아먹었다. 물론 그 이익은 미국 칼라일의 몫이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외국계 인사로 초대된 것으로 봐서 한국인이기 보다는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요즘 칼라일 간부 5명과 `MBK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를 만들어서 돈을 긁어 들이고 있다. MBK는 마이클 병주 김의 약자다. 싱가포르 정부투자기관에서 5억 달러를 끌어들였고, 캐나다 교직연금에서 2억 5천만 달러를 끌어들였다. 삼성생명, 대우정밀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인물은 민주개혁세력이 끊임없이 눈여겨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로 다시 돌아가자.

지금 청렴하다는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아들 박재석은 연필장사를 하다가 박정희 덕분에 국제전기기업 회장이 되었다. 자민련 부총재를 지냈던 조부영같은 사람이 거기 이사출신인 걸 보면 대단한 은혜를 입은 거다.

게다가 박무희의 또 다른 아들 박재호는 벽돌공장에 다니다가 박정희가 집권한 후 동양육운 회장이 되었다.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있나??

박정희가 친인척에게 엄했고 공사구별이 철저했다는 소리는 다 뻥이다. 말이나 못하면 얄밉지나 않겠다. 이상과 같이 해 줄만큼 다 해주고 해먹을 만큼 다 해 먹었다.

최태민 문제는 서영석 대기자가 깊은 관심이 있는 영역인 듯 하므로 논외로 한다.
 
 
                   ☆ 예니아빠님이 그려주신 박정희 집안 혼맥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