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척결

남조선노동당 [南朝鮮勞動黨]

순수한 남자 2007. 10. 29. 22:54
남조선노동당 [南朝鮮勞動黨]
- 1946년 11월 서울에서 결성된 공산주의 정당.

◈ 설립연도 : 1946년
◈ 구분 : 정당
◈ 소재지 : 서울
◈ 설립목적 : 남한의 공산화 공작
◈ 주요활동 : 남한의 공산주의 세력 규합, 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 총파업 주도, 경찰서 및 공공건물 파괴
◈ 주요인물 : 박헌영, 박상희, 박정희
 

□ 주요인물 주요 요약
ㅇ 박헌영(남로당 초대 부위원장, 처형당함)
 - 1922년 4월 국내공산당 조직을 위하여 귀국 일본경찰에 체포 징역 1년 6개월 복역
- 1924년 출옥 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활동
- 1925년 4월 18일 조선공산당 창립 참가 , 고려공산청년회 결성 책임비서
- 1946년 12월 남조선신민당·조선인민당을 조선공산당에 흡수 초대 부위원장
- 1946년 9월부터 미군정의 지명수배를 받자, 북한으로 도피
- 1953년 김일성에 의한 남로당계 숙청작업으로 8월 3일 체포
- 1955년 12월 5일 반당·종파분자·간첩방조·정부 전복음모 등 7가지 죄목으로 사형
 

ㅇ 박상희(남로당 대구 고위 간부, 경찰 총에 맞아 사망)
- 박정희 셋째형, 김종필 장인
- 1946년10월01일 대구폭동 주동
- 1946년10월 대구폭동 중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
    ※대구 폭동을 주도하다 경찰에 �겨 도망을 가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
 

ㅇ 박정희(남로당 군사총책,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총에 맞아 사망)
- 1946년 5월 간첩 이중엽과 비밀 접촉
- 1946년 12월 ~ 1947년 2월까지 제1연대의 중대장으로서 사관생도들 중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모집
- 1948년 4월에 제주도 제9연대에서 처음 발생한 소규모의 전복기도
- 1948년 10월 19 ~ 27일에 여수-순천 반란
ㆍ육군사령부는 49년 1월 10일 발표문에 따르면 모두 2천8백17명이 재판을 받아 4백10명이 사형, 5백68명이 종신형(박정희)을 받고 나머지는 유죄형 혹은 무죄 석방되었다.
ㆍ또 『한국전쟁사 1권』에는 여순사건 1주일 현재 여수지구에서만 관민 1천2백명이 학살당하고 중, 경상자 1천1백50명, 가옥소실파괴 1천5백38동, 이재민 발생 9천8백여명의 피해를 냈으며 여순지구의 인명피해도 4백여명에 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1948년 10월 20일에 발생한 제4연대사건
- 1948년 11월 2일에 발생한 대구 제6연대사건
- 1948년 11월에 발생한 대전 제2연대사건
- 1948년 12월말 서대문 형무소 수감
- 1949년 2월 8일 고등군법회의 무기징역형
ㆍ바로 이 군사법정에 당시 육군본부 소속 박정희 소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섰다. '문건'에 따르면 박정희는 이날 이발을 새로 하고 머릿기름을 많이 발라서 유난히 번득였다. 복장은 당시로선 예복인 진한 구레바인 정복차림이었다. 그는 재판장의 신문에 순순히 피의사실을 자백하고 또 시인했다. 이날 법정에서 그는 국방경비법 제18조, 33조 위반으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이 판결로 그는 현역 소령에서 파면됐고, 급료도 몰수당했다. 그와 같이 재판을 받았던 최남근 중령, 오일균 소령, 조모 대위 등은 사형 구형에, 사형 언도를 받고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들 세 사람은 모두 박정희와 만주군관학교 또는 일본 육사 선후배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