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이야기10] 이 한장의 사진 |
번호 159619 글쓴이 노피디 (kbsnkj) 조회 6 누리 0 (0/0) 등록일 2007-11-28 12:57 | 대문 0 톡톡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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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도서관 검색창을 통해 한 장의 사진을 봤습니다. 사진을 보며 사람이 지켜야할 '양심과 신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제 아무리 서울대 의대 교수라 한들, 우리나라에서 시험관 아기를 처음으로 받아낸 저명한 의사라 한들,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신의와 양심을 저버린다면 그 모습은 저열한 말바꾸기 정치인이나 보여주던 우스꽝스러움 자체일 것입니다.
논문 뜰땐 '공동연구', 문제되자 '그저 도와주려했을 뿐' 위 사진은 인간배아줄기세포 관련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이 발표된 직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열린 축하연 모습입니다. 맨 위 플래카드에는 큼지막하게 '문신용/황우석 교수팀' 의 연구성과라고 걸려있습니다. 그랬습니다. '황우석 팀'의 성과가 아니라 '문신용/황우석'의 공동연구임을 분명히 내걸었습니다. 연단에 서있는 사람이 바로 논문의 교신저자였던 서울대 의대 문신용 교수. 앞줄에 정운찬 당시 총장과 황우석 교수의 모습도 보입니다. 플래카드에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문신용 교수가 단장으로 있던 과기부 산하 세포응용사업단(20여개 대학연구팀 망라)이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소식지를 보면, 문 교수가 2004년 논문의 공동대표연구자임을 분명하게 적시해놓고 있습니다.
논문을 써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교신저자'라는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사실 2저자이든 3저자이든 간에 논문에 있어 제일 알아주는 것은 제1저자와 교신저자입니다. 문신용 교수는 실질적인 역할 면에서도 2004년 논문에 대한 전반적 자문과 임상과정을 맡아왔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2004년 논문에서 난자를 제공한 미즈메디 노성일 이사장을 추천하고 공동연구팀을 결성시킨 게 바로 문신용 교수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2004년 논문의 생명윤리(난자) 의혹을 제기하던 MBC <PD수첩>은 노성일 이사장과 황우석 교수만 찾아갈 뿐 문신용 교수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습니다. 안 찾아간걸까요 아니면 숨겨둔 걸까요. 어쨌든 2004년 논문 역시 처녀생식 논란에 휩싸이자 교신저자 문 교수, 이렇게 말을 바꿔버립니다. '난 그저 도와주려 했을 뿐인데...'라고. 2007년 3월 서울지법 황우석 박사 9차 공판의 한 장면입니다. 변호사 : 당시 공동연구의 업무분담을 보면 황우석은 체세포 핵이식과 배반포 형성, 문신용 : 그렇게 A,B,C를 나누듯 명쾌하게 역할분담을 한 게 아니라... 변호사 : 증인, 말씀 바로 하셔야 합니다. 문신용 : 당시에는 황 박사를 무조건 도와주자고 했지 누가 어떻게 누가 어떻게 이러지 않았다는거죠... (중략) 변호사 : 증인, 지난 공판 때 노성일 이사장도 나와서 증언했습니다. 문신용 : 그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황 박사를 도우려고 했을 뿐... 맞습니다. 역할을 그렇게 했다고 하죠. 2005년 논문에 대한 말바꿈은 더욱 기가 막힙니다. 뜰 때는 '내가 연구책임자', 추락하자 "내 이름이 왜 거�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발표된 후, 문신용 교수는 자신이 단장으로 있던 세포응용사업단의 성과를 과학기술부에 제출하며 사이언스 논문의 성과를 함께 제출합니다. 연구책임자는 '문신용' 자신의 이름으로 올라있습니다. (그러나 세포응용사업단이 2005년 논문에 지원한 연구비는 전혀 없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사이언스 논문의 인용지수(Impact Factor)가 다른 논문 5~10배 가까이 됐기에 이 논문을 세포응용사업단의 성과로 만드는 즉시 사업단의 성과는 과대포장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논문이 추락하자 "내 이름이 왜 올라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바뀝니다. 다시 한번 황우석 박사 9차 공판(2007.3) 현장기록입니다. 문신용 : 2005년 논문이 저도 모르게 런던에서 발표됐어요. 이후 황 박사가 귀국해서 서울에서 전화를 저에게 걸어 “저자모임을 하겠다.“라고 알려왔으나 저는 모임에 가지 않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발표된 논문... 제가 왜 갈 이유가 없다고 분명히 말을...(중략) 저는 2005년 논문에 관여한 사실도 없고, 기획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문신용 교수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이언스 논문에 이름 한번 올리겠다고 쉼없이 황 박사에게 눈도장을 찍으러다니던 그 많은 사람들... "저희 연구원들조차도 황 박사님 얼굴 보기가 힘들었어요. 아침 6시~7시에 연구실에 나오시는데도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찾아왔거든요. 2저자이든 3저자이든 논문에는 1저자와 교신저자만 알아줄 뿐이었는데도 이름 한번 올리겠다고....그런데 막상 상황이 돌변하자 '난 한 게 없다' '내 이름이 왜 거기있느냐' 라며 빠져나가는 걸 보면 서글프고 무섭죠." (황우석 팀 전직연구원 B씨의 말) '내 이름이 왜 거�냐?' 요즘 많이 들려오는 이야기죠. BBK 명함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내 이름이 왜 거�냐?' '내 도장이 왜 거�냐?' '그건 착오였다.' 이 풍진 세상에서도 양심과 신의를 지켜가며 살고 싶은 이 땅의 보통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겁니다. '내 이름이 왜 거�냐'는 사람들의 진실을, 그 양심을, 그들의 사람 됨됨이를...그리고 줄기세포 논란의 전체적 윤곽이 드러난 이 마당에도 아직껏 '사기꾼 황우석'이라는 비유를 서슴치 않고 떠들고 다니는 정치꾼들이 보여주고 있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해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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