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이야기입니다. 저는 지방의 어느 대학에서 제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병원전산과 의료보험청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이 편리하게 잘 만들어졌다고 소문나다 보니 지역 내 병원에 꽤 보급하게 되었고, 같은 프로그램을 학습하고 졸업한 학생들의 병원 취업률도 당연히 높았습니다. 한마디로 잘 나갔던 거죠. 그렇게 몇 년을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우려먹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취업시키고 좋은 소리 들으며 안락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세상'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란 말이죠. '정보의 바다'니 뭐니 하는데 저는 그게 남의 나라 이야긴 줄 알았습니다. 나름, 잘나가던 프로그래머라 생각하던 내가 모르는 영역의 등장으로, 마음 한 켠 찝찝한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변화하는 환경을 무시하며 두어 해를 흘려보낸 어느 날, 저는 경천동지할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인터넷 환경에서 작동되는 병원전산 프로그램을 처음 접하게 된 거지요. 비주얼베이직(Visual Basic)으로 만들어진 그 프로그램은 전산 1세대인 제가 RM-코볼이나 클리퍼로 만든 제 프로그램과는 화면의 디자인부터가 달랐습니다. 산뜻한 색상, 다양한 인터페이스, 편리한 검색기능, GUI 환경 등등…
저는 학기 내내 고민을 했고, 기말에 학생들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컴퓨터 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낡은 프로그램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미안하고 용서를 구한다고. 그래서 이번 학기로 강의를 마치겠다고.
나름 최고의 프로그램이라 자부하며 가르쳐 왔는데 인터넷 환경이라는 새로운 환경의 변화를 외면했던 것이 저의 커다란 잘못이었습니다. 패러다임 쉬프팅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지요.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접할 기회를 차단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미안했습니다.
다음 학기 새로운 프로그램과 가르칠 분을 추천하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했습니다만, 그때의 부끄러웠던 경험은 이후 살아오며 제게 좋은 약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에 제 자신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변화시켰고, 그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지요.
패러다임이 크게 변화할 때는 반드시 어떤 징조가 먼저 다가옵니다. 마치 큰 지진(地震)이 발생하면 본진(本震)이 오기 전 여러 차례 여진(餘震)이 감지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2007 대선을 통해 본 패러다임 쉬프팅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변화를 꼽아 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저토록 비리 의혹이 많은 사람도 대통령 당선이 될 수 있구나'하는 것은 세계 정치사에 기록될 토픽감이지만, 그런 것 말고 연구해 볼 만한 대표적인 것 하나를 들라면 저는 '보수의 제대로 된 분열'을 꼽고 싶습니다. 왜 그에 관심을 갖는가… 그동안 여진이 몇 번 있었지요.
첫째, 1997년 이인제의 탈당으로 보수가 분열하고, DJ는 JP와 손잡음으로써 DJP연합이 탄생합니다. 이 두 사건이 DJ정권 탄생에 효자노릇 한 것은 분명하지만, 보수의 분열이나 보수와의 연대가 정치적으로 의미 있게 발전하지 못하고 그저 이용되었거나 소멸된 측면이 큽니다.
둘째, 2002년에는 盧·夢 연합이 위력을 발휘했습니다만, 마지막 순간에 결별함으로써 역시 소멸되었습니다. 물론 정몽준씨는 하나의 정당으로 세력화하지는 않았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의 분열 혹은 연대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지지율로 볼 때 그 파괴력은 적지 않았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YS 역시 삼당합당을 통해 정권을 창출했듯이,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민주개혁진영이 정상적인 투표방식에 의해 정권교체가 가능했던 경우 반드시 보수진영의 분열 혹은 보수와의 연대가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쪽은 언제나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승리조차도 박빙이었지요.
15대 : 김대중 (39만 표 차 승리) - DJP연합, 이인제(19% 획득)
16대 : 노무현 (57만 표 차 승리) - 노·몽연합, 昌 병역비리.
이번 대선을 놓고 보면 보수가 분열(昌 독자출마 15.1% 획득)함으로써 97년 15대 대선 DJ-昌 대결상황과 매우 흡사해 보입니다. 그러나 15대 DJ의 여건보다 정동영이 불리한 것은, 첫째, 여권 후보군의 고집스러운 난립(문국현, 이인제), 둘째, DJP 나 盧·夢 연합과 같은 메이저급 保-革연대가 없다는 점입니다.
鄭-昌연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保-革연대를 이룰 기회였던 셈
따라서, 정동영 후보가 DJ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확신적 근거라도 있다면 모르겠으되, 그것도 아닌 상황에서 단순 통계 분석과 자료만으로도 이미 결과는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선거 일주일 앞두고 이 정도 결과예측 못 하면 그건 '복불복 캠프'입니다. 단순 분석이 아니라 확실한 자료에 근거한 데이터가 만들어 지지요.
자, 이런 결과가 나와 있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최소한 조건만이라도 15, 16대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한 결과로 첫째, 鄭-文-濟연대를 하거나, 둘째, 鄭-昌연대를 하거나 셋째, 모두 합쳐 鄭-昌-文-濟연대를 성사시키는 것 등 큰 틀에서의 변화를 주어야 하는데 어느 것이 가능할까…
이 지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했던 것은, 과거 DJP연합이나 盧.夢연합의 경우 오로지 대선승리만을 위해 임시 결탁했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鄭-昌연대 역시 국민들에게 그러한 시각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이기려고 별짓을 다 한다.'라고 인식되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효과가 많이 줄어들게 되거든요.
이 부분을 극복하려면, 과거의 '임기응변식 결탁이미지'를 뛰어넘는 가치부여와 논리적 설명이 따라야 합니다.
첫째, 鄭-昌연대의 외형을 뛰어넘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保.革연대'를 이루자.
둘째, 保革갈등뿐만 아니라, 地域갈등, 嶺湖南갈등, 階層갈등을 극복하자.
셋째, 전국에서 고르게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전국정당 건립을 완성하자.
넷째, 큰 시각차인 통일·남북·핵 문제는 치열한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자.
우선 주변 분들을 설득했습니다. 솔직히 昌의 신당이나 통합신당이나 뭐가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느냐, 과거 꼴통 짓을 했던 집단이나, 지금 현재 삽질하는 집단이나 뭐가 다르며, 부패한 집단이나 부정한 집단이나 뭐가 다르며 말하자면 강도질했던 도둑이나 도둑질하는 신부가 뭐가 다르다고 큰소리치느냐…
햇볕정책, 대북관계… 그게 많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빌어먹을, 정권을 잡아야 햇볕이고 대북이고 지랄이고 있는 거지, 야당 되면 햇볕이고 대북이고 이명박 제 맘대로 하는데 지금 이게 뭐하자는 논쟁이냐… 일단 하나로 만들어 싸우고, 이긴 다음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정립해도 안될 것 없다.'
통합신당 정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 후보 단일화 결렬
鄭-昌연대 가동에 앞서 꾸준히 노력했던 것이 鄭-文 단일화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문국현입니다.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글들이 나와 있기에 구구절절 설명은 생략하고 결론만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입으로 말하는 가치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자신 스스로 실천하지 않는 이중적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선한 이미지, 봉사하는 이미지, 환경사랑 이미지, 경영자 이미지로 포장을 하고 사실 속으로는 꿍꿍이만 가득찬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는 선량한 민주개혁 지지자들의 진정성을 철저하게 이용만 했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는 실패한 경영자'입니다. 아직도 그가 사람들 머릿속에 '성공한 CEO'로 각인되어 있는 것은 아이러니의 극치입니다. 저는 단호하게 평가합니다. 그는 '실패한 CEO'입니다. 그가 과거에 개인사업체인 '유한킴벌리' 경영은 무난하게 잘했을지 모르나, 국가창조 사업인 대선킴벌리 경영은 실패했습니다.
'대선킴벌리'의 홍보전, 마케팅, 시제품출시… 다 좋았습니다. 짧은 기간 내에 시장진입에 성공했으니 말입니다. 수익도 꽤 올렸습니다. 8%이던가요. 거기까진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는 함께 살기 위해 커다란 M&A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자신 중심으로 합치고 자신이 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 하나만을 끝까지 고집합니다.
객관적 지표도 없고, 합리적 판단도 없고, 참모의 조언도 무시하고, 컨설턴트들의 분석도 캐무시하고, 가장 우호적인 조언자들의 간곡한 충언도 짓밟아 버립니다. 그래서 결과는 M&A를 통해 경쟁력 있는 회사로 키우기를 갈망했던 통합킴벌리, 민주킴벌리 등과 함께 모두 도산 직전 상황으로 전락하고, 불량품 전문회사가 국제무대로 진출케 했습니다.
누가 그를 '성공한 CEO'라고 말을 합니까? 제 앞에서 그 말 하면 입을 찢어… 아니 엉덩이를 때리겠습니다. 저는 문 캠프의 비교적 핵심참모진 몇 분과 교감을 나누어 오며, 나름대로 간곡히, 진정성 있게, 부탁도 하고, 설명도 하고, 한마디로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원로님들도 학을 뗐는데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鄭-昌연대, 더 조급해지다
鄭-文 단일화만 성사된다면, 민주당과 손잡는 것 나아가 이회창 캠프와 손잡는 것도 쉽게 풀려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국현 후보 쪽의 '절벽' 같은 옹고집에 두 손 두발 다 들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문 캠프 참모들 중에는 단일화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부혼선이 컸을 겁니다. 위에서 일은 안 풀리는데 아래에서는 단일화 노력을 해달라는 요청이 옵니다. 저는 그 집안을 콩가루훼밀리로 봅니다.
저는 그쪽 참모분께 그랬습니다. 이제 鄭-文단일화는 물 건너 간 것으로 판단한다. 이제 돌아볼 겨를이 없다. 鄭-昌연대를 추진하게 될 것이다. 鄭-文단일화를 거쳐 갔으면 했는데 시간만 빼앗겼다. 鄭-昌연대를 위해 올인할 것이고 몇 분과 만나게 될 것이다. (사실은 문 후보 귀에 들어가라고, 압박하려고 말한 셈이지요.)
저는 정동영 후보나 그 핵심 참모들은 만나지 않았습니다. 별로 만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그즈음 이강래 선수가 KBS 열린토론에 나와서 '개혁지지자들이 어디로 가겠나. 결국은 우리 손을 들어줄 것이다. 정동영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다르다… 어쩌고…' 취지로 이야기하는 것을 라디오로 직접 들었던 터라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대신 이장춘 대사님께 진지하게 말씀을 드렸고, 적극 찬성과 동의를 하셨습니다. 강운태 전 장관님께서도 정 후보나 이 대사님이 적극 설득을 하시는 부분과, 그쪽 내부에서도 그런 필요성을 느꼈던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를 바랬습니다.
이회창 캠프 쪽은 김혁규 전 지사님, 이흥주 특보를 뵙고 진지하게 말씀도 드렸고, 강운태 전 장관님께서도 정동영 후보를 만나고 강삼재 총장을 만나는 등 몇몇 분들이 함께 혹은 개별적으로 다각도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기사가 하나 뜹니다. 이회창 후보가 포항유세 중에 급히 서울로 올라온다는 소식. 그리고 문국현 후보를 만났다는 뜬금없는 뉴스가 나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鄭-文단일화를 애쓰던 분들이 모두 손을 포기해버리니, 치킨게임으로 유리하게 몰고 가려던 문 후보가 낙동강 오리알 심정을 느껴 昌에 요청했구나… (昌을 만나서도 자기중심을 강조했을 것이고, 그러니 성사가 안되었겠지요.)
다시 鄭-昌연대로 돌아가서 과정 생략하고 결론만 말씀드리면, 두 번의 기회에서 결렬됩니다. MB동영상 터지는 날짜를 중심으로 그 이전에는 昌쪽이 적극적이었던 반면, 동영상 유포 이후엔 입장이 바뀌어 鄭쪽이 적극적이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해석하는 입장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현재의 상황은 가봉합(假縫合)으로 극복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나왔던 과정들을 (말씀드리기 힘든 부분은 생략했지만) 비교적 소상하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그것으로 끝날 사안이라면 17대 대선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노력중 하나로 묻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대선책임론을 가운데 놓고 서로 삿대질을 합니다. 나는 (+)인데 니가 (-)라서 결국 곱하기 해서 (-)가 되었다고 싸움질을 합니다. 중량급 선수들이 펀치를 툭툭 날릴라 치면, 그 다음 수순은 아래에서 치고 나옵니다. 초선들이 세를 형성해 윗선 모두를 싸잡아 몰아치는 거지요. 과거 빛바랜 정풍(政風)운동의 복고풍 버전입니다.
이렇게 갈등하고, 등돌리고, 갈라치기 하면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묻어놓는 것이 나을 땐 그렇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나와있는 정답만 보고 가는 거지요. 결과적으로 졌지않느냐.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해 졌다. 누가 잘못했느냐는 일단 접어놓고,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렇게 긍정적으로 가야 합니다.
치고받고 싸울 기회는 총선 지나서도 얼마든지 있고, 가만히 있어도 할 일 없는 우리가 알아서 씹어 줄 터인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출혈이 심할 때는 무조건 지혈부터 하고 가봉합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수술실에서 미세봉합수술을 하는 거지요.
언제까지 '保守' '進步'로 이분화하며 손가락질할 텐가
이회창 총재가 보수로부터 분열해 나와서 독자신당 창당을 준비합니다. 과거처럼 대선 앞두고 합종연횡을 위해 분열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지금 나와있는 결과만으로도 鄭-昌연대는 성사되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랬다면 우리 정치사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는 거지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소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합니다. 소 한 번 키우고 그만둘 것 아니라면 말이지요.
과거 '수구꼴통'이라고 지탄하던 바로 그 꼴통이 길바닥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부패한 정치집단은 싫다' '조.중.동이 이렇게 나쁜 신문인지 전에는 몰랐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느껴지시는 게 없습니까?
그들의 과거를 비난할 만큼 정당성 있고 정통성 있고 정체성 분명한 정치집단이 2007년 12월 27일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기라도 합니까?
언제까지 우물안 개구리처럼 뻥 뚫린 하늘만 바라보며 자위질 하고 있으렵니까.
이제 이 땅에서 그 무시무시한 左右갈등 깔아뭉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이 땅에서 그 지긋지긋한 嶺湖南갈등 쓸어버릴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이 땅에서 그 구태의연한 保守進步 논리도 제대로 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정체성(Identity)이 무엇입니까?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렵니다. 민노당 같은 진보라면 진보라는 단어 입에도 꺼내기 싫습니다. 한나라당 같은 보수라면 보수라는 단어 입에 담기도 싫습니다. 민노는 시민사회단체 역할이나 하면 맞고, 한나라당은 수구당이지 보수당이 아닙니다.
개혁이라는 단어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 적당히 삐집고 들어가 앉으면 되는 개념입니까? 보수.진보의 개념서 이제 새로 써야 합니다. 이념 논리에 빠진 사람들의 레토릭에 지긋지긋하지도 않습니까?
우리 정치인들, 지난 대선에서 그렇게 뻘짓을 했으면, 이제 총선을 앞두고는 그렇게 삽질하면 안되지요.
전국 243개 지역구에서 대선의 축소판이 벌어지면 볼만 할 겁니다. 꼬시래기들이 제 살 뜯어 먹고, 무지랭이들이 난립하고, 힘센 놈 쓸어가는 구도가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두렵지도 않습니까.
최상의 가치는 '保-革 연대'
이번 대선의 패배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내부논리이지요. 외부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외에 할 말이 무엇이 있습니까. 저 국민이 내 국민 맞나 하는 울컥한 심정이 들더라도 '제가 못났습니다.' 하는 말 외에 할 말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면 더 나은 가치를 보여 주어야지요.
保-革 연대를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손을 잡으세요. 보수라는 분들이 나와서 부정부패를 비난하고 조중동의 폐해를 주장할 때 손을 잡으세요. 그분들이 민족을 이야기하고 애국을 이야기할 때 그 담론을 같이 나누어보자고 손을 내미세요.
설득할 자신 있으면 설득할 것이고, 설득당하면 당할 것이고, 현명하다면 합의점을 찾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한나라당 핵심이시던 손학규 전 지사가 통합신당에 합류해 있지요. 통합신당의 핵심이시던 김혁규 전 지사가 이회창 신당에 몸담고 있습니다. 이제 鄭-昌연대는 역사 속에 사라진 단어이지만, 奎-奎 연대를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을 배타할 만큼 서로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합니까?
큰 흐름을 보고 가야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保-革연대를 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