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

천사를 만나다!-대선,연말,새해,밤택시6년차의 소고(1)

순수한 남자 2008. 1. 4. 11:25
천사를 만나다!-대선,연말,새해,밤택시6년차의 소고(1)
번호 195552  글쓴이 nightowl (inmotion11)  조회 734  누리 330 (330/0)  등록일 2008-1-4 09:33 대문 8 톡톡


밤 택시 6년차 nightowl 입니다.


천사를 만나다!

그러니까 그때가 택시 운전대를 처음 잡았던 2003년 연말이었다. 그해 9월에 택시를 시작하였으니 막 3개월 수습딱지를 떼가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면허증을 따고 입사하여 처음 거리로 나올 때는 "난 승차거부 따위는 안 해!",라든가 "항상 약자를 돌보는 택시기사가 돼야지!"라는 각오로 충만했었지만, 3개월 만에 이런 각오들은 먼 옛날 얘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 달 26일 입금. 12시간 노동. 운전하고 밥 먹고 잠자고 또 나와서 운전하고. 쉬는 날엔 잠에 취해 주위를 돌볼 여유조차 없게 만드는 한 달을 보내고 받아든 수입은 월급포함 90만 원. 심각한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좀 나지겠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설 거야!" 스스로 위안하며 맞이한 10월에도 100만 원을 못 넘기고 말았다. 11월도 마찬가지.

죽어라 일은 열심히 하는데, 원인이 무얼까? 그리곤, 선택의 기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택시를 때려치우든가, 아님 영업방식을 바꾸던가.

처음 거리로 나설 때의 각오와 다짐이 그 3개월 동안 나의 영업방식이었다. 승차거부(손님이 몰리는 시간에 차 막히는 길이나 외딴곳에 가면 그날 수입이 많게는 2~3만 원 차이가 난다.) 한번 없었고, 남들 다 기피하는 술 취한 손님 (저 사람은 언제 집에 가나? 나라도 태워야지.)때문에 시간 까먹기 일쑤였고, 신호위반 불법유턴 등은 최대한 자제하고(그러다 보니 손님 빼앗기기는 다반사) 입금하고 돌아오는 길에 1~2만 원만 남아있어도 그저 감사하게 생각해왔던 생활이 실로 크나큰 벽에 부딪힌 것이었다. 어쩌다 사고라도 날뻔한 아찔한 상황에선 "한 달에 100만 원 벌라고 내가 이 짓을 해야 하나?"라는 회의와 무기력감이 엄습해 오곤 했다.

그렇게 맞이한 연말. 280만 원을 벌었다. 매일같이 거리엔 손님들로 넘쳐났고 승차거부를 밥 먹듯 하며, 손님만 눈에 띄면 남이 가로채기 전에 신호위반 불법유턴은 다반사였고,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웃돈을 요구하고. (강남서 강남 가는데 3만 원도 받아봤다.)

"아~씨바. 택시란 이런 거구나!"

눈이 오던 2003년 12월 말 자정 무렵 유난히 추웠던 그날, 홍대 정문 앞에서 그 일이 있기 전까지 택시로 살아남기를 터득한 어느 불쌍한 영혼은 차문을 잠근 채 장거리 손님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디요? 신촌? 안 가요."
"상암동? 거기서 여기까지 빈차로 왔는데 거길 또 가자고? 어림없는 소리."

그렇게 여러 손님들을 지나치고 있을 즈음 발을 동동 구르며 택시를 잡고 있는 40대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앞서가던 빈 택시들이 그 아주머니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아저씨! 제발 태워주세요. 우리 애가 아파서. 연세대 세브란스에 좀…"

그녀의 치마폭엔 4~5살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순간, 멈칫거리며 아주머니를 태워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홍대 앞 거리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도열해 있는 손님들이 나를 지배했고 그냥 이 순간을 모면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 태워주겠지!'란 생각과 함께.

그렇게 지나쳐버리며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 아주머니의 눈물은 10여 미터를 지나고서야 나의 머리를 들쑤셔 놓았고, 택시로 살아남기를 터득한 불쌍한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차를 돌리자!"

홍대 정문 앞 왕복 2차선 도로를 빼곡히 점령한 차들은 차를 돌릴 한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아저씨! 분당!", "강남 3만 원~"

이미 이런 손님들의 외침은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오로지 차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던 그 아주머니를 태워야 한다는 생각 하나밖에는.

중앙선을 넘어 반대차선을 비집고 들어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울리는 클랙슨소리며 욕지거리는 이미 나의 관심 밖이었다.

"제발 그 자리에 있어만 주세요. 내가 태워 병원에 모셔 드릴게요."

나도 모르게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있던 그 자리로 되돌아가는 그 10여 분. 살아왔던 삶에 대한 사무침으로 울었고, 택시 3개월 만에 영특해져 버린 스스로에 대한 놀라움으로 울었다.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 없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빈 택시를 탔거나 아니면 택시를 못 잡자 큰길로 나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주머니를 찾아 보았으나 이미 그 흔적은 사라진 뒤였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손님들로 넘쳐나는 밤이면 길가에 늘어선 사람들을 훑어본다. 내 택시를 가장 간절히 원하는 손님이 누구일까? 아이들 손을 맞잡고 오랜만에 시내에 나온 엄마, 서있기조차 힘들게만 보이는 어르신,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집고 있는 장애인, 길가 한 차선을 완전히 점령해 버린 사람들 뒤로 묵묵히 자기 차례가 오길 기다리는 손님들.

그들이 내 손님이 되면서부터 그날의 깊은 상처는 아물어 갔고, 점차로 경험이 붙고 일이 즐거워지면서 일정한 수입도 유지할 수 있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2007년 연말과 새해. 택시 운전대를 처음 잡고 세상의 혼탁한 흐름에 내 한몸을 기꺼이 던지려 했던 불쌍한 영혼을 뒤흔들어버린 그 아주머니는 하늘이 보낸 천사가 아닐까?

대선패배의 아픔을 뒤로하고 다가선 연말의 거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손님들을 만났고, 그들과 난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을 나누었다.

그들이 누구를 찍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 사는 정을 나누고 또 나눈 정을 다른 곳에도 나눌 수 있다면, 우리가 바라는 더불어 사는 세상은 더 빨리 다가올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요즘 인수위나 당선자께서 하시는 일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은 그리 빨리 올 것 같지 않다는 불안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단순히 내가 그를 지지하지 않아서일까?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