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저명한 의사가 주축이 된 일단의 광신도 집단이 지구멸망을 예고했다. 신도들은 모든 재산을 팔고 멸망의 날 구원을 얻기 위해 모여 있었다. 안드로메다 어디쯤에선가 '사난다'라는 신이 우주선을 보낼 것이고 자신들은 그 우주선을 타고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마침내 멸망의 날이 다가오고 미국의 많은 언론들이 구원의 장소에 모여 중계를 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지만 당연히(?)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광신도 집단은 일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잠시 후 그네들은 언론 앞에 당당히 나서서 이렇게 주장했다. 자신들의 열렬한 기도에 감동한 '사난다' 신께서 지구 멸망의 날을 늦춰 주셨다고.
이 사례는 심리학상 유명한 '인지부조화' 이론의 탄생을 가져왔다. 인간은 자신의 머릿속에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할 때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기제를 발동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르는 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1달러를 주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할 때와 100달러를 주고 같은 행위를 하게 할 때 1달러를 받은 사람들이 훨씬 더 진지하게 거짓말을 하고 마침내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되더라고.
한국 전쟁 때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던 많은 미군 병사들이 공산주의로 귀순했는데, 나중에 이들을 인터뷰해 보니 그들이 신념을 바꾼 이유는 고작 사탕 몇 개 때문이었다고 한다. 무슨 거창한 세뇌 공작이나 대단한 반대급부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단다.
100달러를 받은 사람은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나쁜 짓을 해도 인지부조화를 덜 겪는다. 100달러라는 돈의 가치가 자기가 거짓말을 한 이유를 합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달러를 받은 사람은 고작 1달러의 푼돈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는 점에서 심리적 고통을 받게 된다. 따라서 1달러 받은 사람이 더 열심히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한다는 자체를 잊어버림으로써 무의식적으로 고통을 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고작 사탕 몇 개, 밥 한 그릇을 더 먹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부정했던 미군 병사는 그 부끄러움을 면하기 위하여 무의식적으로 공산주의가 옳기 때문에 전향했다고 자신의 머릿속을 조작해 내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 전 한나라당에서 귀순 기자회견을 하는 김장수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진기자가 그런 장면만 골라 찍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으나 결코 기쁘고 자랑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어제까지 언론에 오르내리던 그의 어록에 비추어 보면 그는 지금 심각한 인지부조화의 상황에 빠져 있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남자 1번이라는 대가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그의 이미지를 상쇄할 만큼 대단한 것일까? 그것이 위에 말한 100달러에 상응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 구식 콩코드를 자가용으로 타고 다니는 꼿꼿장수, 육사에 가서 후배들에게 하트를 날릴 수 있었던, 자랑스러운 선배였다. 그에게 가장 귀중한 가치는 아마도 명예일 것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가치가 그 명예를 상쇄할 수 있을까?
인지부조화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인지부조화 상태를 합리화하지 못하고 자살 등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보다 극렬하게 자신을 합리화하고 합리화한 그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김장수는 자살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극렬히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부정하고 멍통과 한나라당의 충견이 되어 대북강경론을 설파할 것이다. 그것만이 그가 스스로의 모순을 합리화하고 살아나갈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