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라는 괴물이 최악의 투표율을 낳았다
- 원더걸즈와 2천원 티켓이 투표율 높이리라 믿었나?
이명박 대통령은 참으로 뜬금없이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그동안 선거 중립 지키면서 국정을 수행하느라 수고가 많다"고 말했다. 선거 하루 전날,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을 필두로 하여 각 장관들이 교묘하게 선거운동을 했다는 비난이 높아지는 와중에, 느닷없이 선거 중립으로 수고 많았다는 인사를 한 것이다. 선거 중립을 지키는 것은 편파적인 행정업무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니, 굳이 수고했다는 칭찬은 필요 없을 것이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선거중립'이 아니라 교묘한 '선거개입'을 치하한 것으로 들린다"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정작 '교묘한 선거개입'으로 칭찬을 받아야 할 곳은 대놓고 선거격전지를 찾아다니면서 지역공약에 힘을 실어준 국무위원들이 아니다. 원더걸즈같은 어린 소녀들을 방패막이 삼아 온갖 자의적인 기본권 침해행위로 국민들이 '선거'에 진절머리 치게 만든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에 그 칭찬을 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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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선관위가 18대 총선의 홍보대사로 정한 원더걸스 |
제18대 총선은 역대 최악의 투표율로 기록될 것이다. 선관위는 원더걸즈를 동원하고, 2,000원짜리 할인권도 뿌리면서 투표독려를 했다고 강변한다. 그렇게 변명하는 선관위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았을까? 시민들의 선거에 대한 목소리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위법판정을 내리고, 고소·고발 조치하고, 벌금을 매기는 협박을 하고서는, 투표는 꼭 하라고 한다.
선관위는 대운하 반대서명운동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정내렸다. 그렇다면, 반문해 보자. 대운하 추진을 위해 부서를 신설하고, TF를 만들고, 운하홍보 전문가를 청와대 국가홍보비서관으로 채용한 행위는 선거법 위반이 아닌가?
더 나아가, 서울시장의 신분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겠다."라고 한 2005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선거법 위반인가 아닌가? 선관위는 정치 중립이 엄격하게 요구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대선 3년 전에 선거공약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어떤 판단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선관위는 현직 대통령이 대운하 선거공약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선거법위반 판정을 내렸고, 시민단체가 대운하 반대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판정을 내렸다. 어느 언론도 이를 지적하지 않고 있으니, 그 편파성을 들키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칭찬들을 만 하다.
지난 2007년 대선을 거치면서 누리꾼들은 뼈에 사무치는 교훈을 얻었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내 글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사람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디에서든 선관위는 그 수많은 알바조직을 통해 나의 글을 검열하고 언제든지 삭제를 시킬 수도 있고, 고발을 할 수도 있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도시의 경찰서에서 출두요청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렇게 불려 들어간 사람들은 1,500명이 넘었고, 삭제된 글은 6만 건을 넘었다.
선관위는 "선거법에 위반되는 게시물"에 대해 삭제나 고발했다고 강변한다. 선관위도 현재 법률의 불완전성을 잘 알고 이에 대해 개정의견을 내었다고도 변명한다. 그런 변명들은 또 얼마나 실소를 자아내는가?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선거법은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다만, 선관위의 "UCC운용기준"이라는 해괴망측한 행정규칙이 국민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법률도 아닌 행정규칙이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정한 기본원칙을 이렇게 훼손하고 있는 사태에 대해 선관위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결국, 최악의 투표율이 터져 나왔다. 원더걸즈와 2,000원짜리 공원할인권으로 국민들을 투표장에 끌고 나오게 만들려는 선관위의 노력은 실패했다.
선거 이전에 선거와 관련된 모든 발언을 적대시하며 어떤 식으로든 위반의 판정을 내리려는 저 '완장'의 정신에 투철했던 선관위가 투표일 하루만은 제발 투표해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은 얼마나 희극적인가?
현재의 중앙선관위는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적이다. 공단의 화물차 운행을 막는 전봇대에 그렇게 화를 내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이다. 전 국민의 정치적 발언을 꽁꽁 옭아매는 이 초대형 규제에 대해 꿈쩍도 않는 국가기관이 바로 선관위이다. 규제철폐와 실용을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에게 과연 선관위는 얼마나 큰 전봇대인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선관위가 세운 우리 마음의 전봇대는 이명박 정부의 모순성을 증명하는 증거로 쓰이고 말았다.
투표독려는 하지만 선거 관련 움직임은 안된다는 모순, 기업의 경제적 규제는 풀지만 국민의 정치적 규제는 늘리겠다는 모순,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기관에 대해 가장 편파적인 기준을 들이대는 모순.
이런 모순의 집합이 결국 18대 총선의 저 한심한 투표율을 낳았고,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에 비웃음을 날렸고, 결국 대한민국의 정치퇴보를 가져오고 있다. 선관위의 치열한 자기반성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