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 버스 안에서
늘 새침하던 어떻게든 사귀고 싶었던 포항여고
그 계집애 어느 날 누이동생이
그저 철없는 표정으로 내 일기장 속에서도 늘 새침하던 계집애의 심각한 편지를 가져 왔다.
그날 밤 달은 뜨고 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
그 빈터엔 정말 그 계집애가 교복 차림으로 검은 운동화로
작은 그림자를 밟고 여우처럼 꿈처럼 서 있었다 나를 허연 달빛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얻어맞았다.
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 그 빈터에서 정말 계집애는 죽도록 얻어맞았다
처음엔 눈만 동그랗게 뜨면서 나중엔 눈물도 안 흘리고 왜 때리느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달빛 아래서 죽도록 얻어맞았다.
그날 밤 달은 지고 그 또 다른 허연 분노가 면도칼로 책상 모서리를 나를 함부로 깍으면서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자꾸 책상 모서리를 눈물을 흘리며 책상 모서리를 깍아댔다.
(박남철,「첫사랑」,『地上의 人間』, 문학과지성사, 1984)
'詩 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한다 말하기도 아까운 사람을 위해 ...여명의눈동자 (0) | 2008.08.29 |
---|---|
참 아름다운 사람 ..... 여명의 눈동자 (0) | 2008.08.29 |
[시] 선열들이 진노하셨다. (0) | 2008.08.16 |
[스크랩] 빗 속을 걷고싶다 (0) | 2008.02.24 |
[스크랩] 봄이 오는 소리(1) (0) | 2008.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