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기검열, 체념인가 굴복인가. |
번호 167340 글쓴이 이기명 (kmlee) 조회 41 누리 38 (38/0) 등록일 2008-9-29 08:41 | 대문 1 추천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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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기검열, 체념인가 굴복인가. 이 기 명(칼럼니스트) 이승만 독재의 1956년 5월 5일. 효자동 CIC(기무사)본부 지하 감방에 있었다. 간첩혐의는 아니고 야당인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호남유세 도중 야간열차에서 급서하자 국민들이 독살의혹을 제기했고 경무대 앞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경무대 앞에서 시위 학생들을 향해 경찰은 총을 쐈다. 군수사기관인 특무대(기무사)가 왜 학생들을 체포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때 특무대에 잡혀가면 반은 죽는 줄 알던 곳이었다. 민주당에서 돈을 얼마나 받고 경무대 앞에서 데모를 했느냐고 추궁을 받았다. 기가 막혔다. 돈을 받다니, 절대로 돈 받은 사실 없다고 하니 몽둥이로 내리친다. 오뉴월 복날에 개 잡듯 두들겨 맞으니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묻는 대로 네, 네 다. 학생이라고 경찰서로 넘겨진 후에도 원 없이 매를 맞았다. 다음부터 매 소리만 나오면 몸을 떤다. 시위모임이 있으면 우선 머리부터 굴렸다. 자기검열이다. 독재 시절 없는 죄 만들어 병신 만들던 고문의 야만이 지금은 없어졌는가. 그때의 몽둥이를 대신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고문과 매질만이 고문인가. 자유당 시절 파출소(지구대)도 피해 다녔다. 요즘 다시 검경이 무섭다. 걸리면 안 되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인간 없다. 조심하자. 유모차 끌고 나왔다가 밤중에 경찰 전화 받는 젊은 주부들 얼마나 가슴이 떨릴까. 소환장 받으면 고문이다. 시어머니가 알면 뭐라고 할까. 자기검열에 걸린다. 인터넷 생방송을 했다. 얼마 후 튀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다. 살살 하라는 것이다. 충고의 의미가 무엇일까. 독감기로 방송을 며칠 쉬었다. 충고가 먹혀들어간 줄 알겠지. 속이 끓는다. 청와대 언론 2비서관 박선규는 KBS 기자 출신이다. 국회의원 되겠다고 공천 신청하더니 낙천 후 청와대로 들어갔다. 청와대에 출입하는 YTN 우장균 기자가 기자협회보에 글을 썼다. 우장균 가자가 KBS에 근무할 때 선배이기도 한 박선규는 후배에게 겁을 준 모양이다. 경찰서와 회사에서 보낸 소환통지서에 충격을 받고 70이 넘은 노모가 몸져누운 우장균 기자는 기자 선배인 박선규의 겁박을 받고 기가 막혔던 모양이다. “1990년 KBS 사태 예를 들면서 징계를 받아 월급을 받지 못하면 생활이 곤란할 것이라고 겁박하며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청와대에서는 벌써부터 박 비서관과 같은 참모진들이 교언영색과 거짓 보고로 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뜻을 청와대 참모 개인의 영달을 위해 꺾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박 비서관이 저를 해직기자로 몰고 간다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와 YTN 기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박 비서관 같은 권력을 가진 공복의 서슬 푸른 칼날이 아닙니다. 저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통령을 호가호위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그릇된 정책이 우리의 일터를 유린하고 이 땅의 언론독립을 훼손하고 우리나라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입니다” 민주언론쟁취의 빛나는 역사이자 깊은 상처인 1990년 4월의 KBS 언론민주화 투쟁은 KBS 기자들로서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일 것이다. 박선규는 바로 악몽을 상기시킨 것이다. 자기검열에 철저하라는 충고일까. 1985년 8월24일 전북 이리에 중공군 폭격기 한 대가 불시착했다. 조종사는 대만으로 망명을 원했다. 국내 제1의 정론지인 동아일보는 이 기사로 해서 쑥밭이 됐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편집국장 이채주 정치부장 이상하 취재기자 김충식, 이들은 짐승처럼 두들겨 맞았다. 1981년 5월 한수산의 중앙일보 연재소설 ‘욕망의 거리’가 걸려들었다. 전두환을 모독했다는 혐의다. 정규웅(문화부장), 손기상(편집국장 대리), 권영빈(문예중앙 주간), 허술(출판부장), 이근성(연재소설 담당 기자) 등이 잡혀갔다. 한수산도 제주도에서 압송됐다. 한수산과 그냥 친구라는 이유로 시인 박정만도 연행됐다. 박정만은 그 후유증으로 죽는다. “고문은 당사자들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해마다 8월 말이면 고문의 기억에 잠을 뒤척인다. 특히 이채주는 주황빛 전구가 괴물의 눈처럼 침침하게 비추던 지하조사실에서 거인처럼 서 있던 요원을 잊지 못한다. 김충식은 “밀폐된 지하실, 법과 제도의 사각에서 벌어지는 광분한 권력의 행패에 정신 이상이 되지 않고 불구가 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라고 회고했다. 독재는 이랬다. 그때 지식인들은 행동하기 전에 스스로 검열했다. 걸릴 것은 없는가. 까불지 말자. 털면 먼지 난다. 지금 이 순간 떨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촛불축제에 나온 유모차 주부들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네티즌들이 재판을 받는다.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다. 국가보안법이 두렵다. 걸릴 것이 없는가. 스스로 철저히 검열을 해야 한다. 아니 그냥 조용히 살아야지. 그 힘든 신문사 기자시험 치르고 견습 마치고 출입처 생기고 기사를 썼다. 이제 자신의 기사가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자랑도 좀 했겠지. 헌데 안 나온다. 무슨 일이지. 물어보지도 못한다. 다음 기사도 안 나온다. 고민을 한다. 선배가 충고를 한다. 그따위로 기사 쓰면 햇볕보기 틀렸다. 이렇게 써 봐라. 시키는 대로 썼다. 와아, 기사가 실렸다. 이유는 뭔가. 사주 마음에 들어야지. 니 마음에 들면 되냐. 선배의 현명한 가르침이다. 그 후 올챙이 기자는 철저하게 자기검열을 거치면서 길들여진 착한 기자가 됐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언론은 얼마나 신바람이 났던가. 조중동도 살 판 났었다. 자기검열에 시달렸나. 언론자유 잘 누렸다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지금은 어떤가. 왜 방송사 기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YTN의 구본홍 사장은 70여 일을 출근을 못하는가. 왜 YTN 기자들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는가. KBS 기자들과 PD들이 왜 인사보복이라고 항의를 하며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가 없어진다고 온몸으로 저항하는가. 이기적 기득권 수호인가. 언론자유 지키기인가. MBC는 왜 공정방송 사수대까지 만들어 농성을 하고 있는가. PD수첩은 규탄받아야 할 프로그램인가. 왜 국장이 항의성 보직사퇴를 하는가. 신뢰성 1위와 영향력 1위의 KBS는 앞으로도 그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독재시절의 오명을 겪어야 하는가. 독재시절 KBS기자들은 시위 현장에서 신분확인을 받고 취재거부를 당한 치욕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당신 KBS기자야?’ 모멸감으로 몸을 떨었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 치욕의 시절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금 기자와 PD들이 싸운다. 그러나 이미 자기검열의 증세는 도처에서 나타난다. 아니라고 할 것인가. 강요한 바 없지만, 알아서 표현수위를 조절하겠지. “지극히 개인적인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단어 하나 선택하는데도 신경을 쓰는 자신을 발견하곤, 문득 소스라친다. 내가 왜 이러지. 독재시절이 떠올랐다. 이러면 안 되는데… 몇 번인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날 선 칼을 등 뒤에 숨기고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권력의 눈초리가 자꾸 뒤통수에 박힐 것이다. ‘신경 끄고 살거라. 너 아니라도 사람들 많다. 괜히 다치면 너만 손해야. 부모 처자식 뭘로 먹여 살릴 거냐. 군사독재시절 설치다가 잘리고 처자식 쫄쫄 굶기고 화난다고 술만 퍼먹다가 제 명 못 살고 죽은 선배들 얼굴 안 보이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다. 권력 쥐고 대우받으며 편하게 살고 있는 기자출신들 얼마나 많으냐. 너라고 못할 것 뭐가 있느냐. 치욕은 잠깐이다. 금방 잊어. 국회 한번 드려다 봐라. 모두들 그 앞에서 굽신거리지 않느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요즘 자기검열에 피곤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일부 기자들에게서 느껴진다.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는 원하던 일일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언론을 장악하려고 하고 절대로 언론장악 의사가 없다는 것을 늘 강조한다. 본심과는 정 반대다. 언론은 어떤가. 알아서 긴다. 약한 자에게는 맹수처럼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더 할 수 없이 양순한 언론들. 지금 그들은 얼마나 자기검열에 매달리고 있을까. 속으로 그러겠지. 넌 아닌 줄 아느냐. 자기검열의 이중성으로 고통 받으면서 아닌 척 당당한 위선의 지식인들은 모두의 자화상이다. 나는 지금 얼마나 자기검열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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