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이히만, 아우슈비츠, 킬링필드. 그리고 KBS

순수한 남자 2008. 9. 19. 22:06

아이히만, 아우슈비츠, 킬링필드. 그리고 KBS
번호 165177  글쓴이 이기명 (kmlee)  조회 821  누리 376 (376/0)  등록일 2008-9-19 15:50 대문 16 추천


아이히만, 아우슈비츠, 킬링필드. 그리고 KBS
 - 국민이 다시 KBS를 사랑할 수 있을까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8-9-19)


"숨을 멈추고…… 제1탄 발사아. 탕! (잠시 쉬고) 숨을 멈추고… 제2탄 발사아. 탕!"

수십 년이 지난 까마득한 세월이라 자신이 없지만 1950년대 말 논산훈련소 사격장에서 조교의 구령을 들으며 M-1 소총 사격훈련을 받았다. 오른쪽 눈을 지그시 감고 표적을 향해 사격을 하면서 저 표적이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죽겠지. 그럼 난 살인자가 된다는 망상도 했다. 까맣게 세월은 갔는 데 느닷없는 사격장의 기억은 무슨 일인가. 왜 갑자기 KBS가 머리에 떠오른단 말인가.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꽤 많다.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은 가스실로 들어간다. 죽는 게 뭔지도 모르는 어린이들도 있다. 무슨 죄인가.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죄다. 그런 죄목으로 학살된다. 악마도 눈감을 인간의 잔인성을 누가 심었는가. 학살자 '아이히만' 그는 잡혀서 죽었다.

인간을 죽일 권리는 인간에게 없다. 죄짓지 않고 사는 인간은 누구인가. 뱃속에 생명뿐이다. 왜 이러는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대학살, 서부개척시대의 인디언 학살, 스탈린의 숙청, 200만 명을 학살한 폴 포트의 킬링필드. 그리고 제주 4.3 사건과 광주의 5.18.

왜 처절 끔찍한 비극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일까. 갑자기 한강변 여의도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KBS 건물이 떠오른다.

<하나 되는 KBS. 함께하는 KBS> <희망의 KBS>

지금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왜 저처럼 장중한 KBS의 위용을 바라보면서 끔찍한 상상이 지워지지 않는가.

1990년 4월. KBS 신관에서는 함성과 노래소리가 울려 퍼졌지. 전국 노래자랑이 아니라 꽝꽝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절규와도 같은 KBS 사원들이 토해내는 목맨 통곡이었지. 국민의 방송으로 태어나 공정한 방송, 공정한 언론의 길을 걷겠다는 젊은 언론인들의 절규는 그곳을 <민주광장>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남게 했지.

민주방송 쟁취를 위한 처절한 전쟁에서 싸우던 기자가 쓰러져 죽고 그를 보내는 전우들은 통곡했다. 90년 4월 민주방송을 위해 싸우다 줄줄이 구속되던 노조 간부들은 KBS 역사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 순간 서해의 해풍을 즐길 KBS 노조 간부들의 선유도 행차는 무슨 의미일까. 전쟁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축하연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지금 진정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오욕으로 얼룩진 KBS의 역사, 비록 입에 풀칠은 넉넉할지 몰라도 어쩔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로부터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시절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 보지 못한 KBS의 피맺힌 한은 민주광장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타올랐다.

출입처 기자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공보실 구석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정부입장을 기사라고 써야 했던 독재시절의 KBS 기자들, 어용기자, 정권의 나팔수라는 낙인을 이마에 찍은 채 명함 한 장도 당당하게 내밀지 못하던 치욕의 역사를 그들은 겪었다. 신분을 묻는 군중들에게 남의 언론사를 팔 수밖에 없었던 처참한 심정을 고위 간부급 기자들은 지금도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신뢰도 1위와 영향력 1위의 자랑스러운 KBS를 보면서 왜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을, 폴 포트의 킬링필드를 떠올리는가.

<미디어포커스> <시사투나잇> <기획취재 쌈>을 진행하는 얼굴들을 보면서 "너희들이 희망이다." 가슴 벅차던 국민들은 기가 막히다. 왜 느닷없이 제주 4.3사건과 광주 5.18이 떠오르는가.

2008년 9월 17일. 국민의 방송 KBS는 한국방송사의 지워지지 않을 영혼의 혈흔이 낭자한 학살의 역사를 기록했다. 김경래 기자의 글이다.

"기자는 권력을 감시하고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람으로 배웠습니다. 이번 인사는 KBS 기자들을 그저 고분고분한 순둥이로 만들겠다는 거 아닙니까. 기자들을 이런 방법으로 순치하려 한다면 KBS의 저널리즘은 희망이 없습니다. 이번 인사를 받아보고 혀 한 번 끌 끌차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저 자신의 무기력함에 치가 떨립니다. 어차피 원칙도 절차도 없는 인사라면 저도 포함시켜 주십시오."

2008년 9월 17일. KBS 건물에서는 한순간 공기가 빠져나가는 공포가 몰려왔다. 하얗게 바랜 공간. 그날 호흡곤란으로 죽은 시체는 보이지 않았어도 그러나 도처에 쓰러져 있는 영혼들의 시신이 보인다. 환상이겠지. 분명 그냥 눈에 비치는 환상이겠지.

결실의 계절이라는 이 좋은 계절에 국민의 방송 KBS에서는 ‘이별의 노래’가 들린다. 누가 어디로 가는가. 누가 어디로 보내는가.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하고 싶은 일 다 놔두고 눈물 뿌리며 떠나는가. 이별의 노래나 부를까.

"서편에 달이 호수가에 질 때에…

친구 내 친구 어이 이별할거나.
친구 내 친구 잊지 마시오."

슬퍼진다. 두려워진다. 가장 신뢰받는 KBS가 가장 불신받는 KBS가 되고 미움받는 KBS가 되는 것은 아닌가. 다시 박정희 전두환 시대가 오는가.

"2008년 9월 17일의 KBS를 기억하자. 수치를 잊는 자에게 명예는 없다."

"KBS여. 절망하지 말라. 절망하는 자는 하늘도 외면한다. 국민이 외면한다. 사랑은 자신이 지니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2008년 9월 19일
이기명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