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지워지는 신뢰도 1위 KBS 채널
- KBS가 치욕의 시대로 돌아간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8-11-10)
밤늦은 시간에 '시사 투나잇'과 토요일 방송되는 '미디어 포커스'는 세상없어도 시청하는 프로다. 예약녹화를 해서 새벽에 보든지 아니면 다시 보기를 통해서 반드시 본다. KBS를 신뢰도 1위와 시청률 1위로 올려놓는데 절대적 공헌을 한 프로기도 하고 국민의 구역질을 진정시켜 준 진정제이기도 했다.
KBS는 조중동 '찌라시'와는 달리 뉴스에서도 공정성이 인정됐기에 국민들은 KBS를 영향력 1위와 신뢰도 1위로 꼽았다. KBS구성원들은 무한한 긍지를 느끼며 월급을 타 먹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시사 투나잇'에 꼬리가 잡힌 정상배들이나 악덕 기업인들은 밤잠을 설치고, 편파 왜곡 과장 보도로 쓰레기란 욕을 달고 다니는 조중동 기자들도 '미디어 포커스'에 뭐가 또 나오나 간을 졸였을 것이다. 그 대신 국민들은 울분을 삭였지.
이제 안심을 해도 좋다. 정상배, 탐관오리, 악덕재벌, 썩은 언론인은 푹 자라. '시사 투나잇'과 '미디어 포커스'가 만신창이가 된다. 제목 바꾸고 제작진 바꾸고 시간 바꾸고 완전 불구 만든다.
하기야 독재자의 입맛을 잘 알고 '땡전뉴스'를 호기롭게 읊어대던 앵커란 위인들은 보상처럼 금배지를 달았다. 감히 기자정신을 입에 올렸던 기자들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됐다. 국회의장을 비롯해 부의장 등 40여 명이 기자 출신인데도 국민으로부터 가장 신뢰를 받고 영향력이 있는 프로그램이 만신창이가 되는데도 꿀 먹은 벙어리다. 침묵은 금이란 명언을 따르는 것인가.
권력맹종에 익숙한 KBS 인지라 최악의 환경에도 쉽게 적응하겠지. 그러나 기자정신을 외치든 기자들이나 올곧은 PD들의 얼굴은 너무도 참혹하다.
KBS 채널이 기억에서 사라진다
'내 머리 속에 지우개'란 영화가 있다. 제목만 기억한다. 세상에는 얼마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많은가. 참 많다. 전쟁의 기억이 싫다. 독재의 기억이 싫다. 언론탄압의 기억도 싫다. 싹 지워버리고 싶다. 그게 안 된다. 악몽은 거머리인가.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어머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씀이다. 옳은 말씀이다. 그래서 싫은 것을 보면서 마음을 상하기보다는 차라리 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 역시 잘 되는 게 아니다.
방송과 관련된 직업도 가졌고, 요즘 세상에 방송을 보지 않고 살 수 없어 방송을 참 아끼고 사랑했다. 그러나 박정희 전두환 시대 방송이라면 치를 떨었다. 땡 하면 전두환이다. 전두환 이름 듣기 지겨워서 뉴스 안 보고 안 듣고 살았다. 특히 KBS 뉴스는 뱀처럼 싫었다.
정말 KBS기자들과 PD들 가엾다. 귀머거리 세상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의식이 살아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행세를 못했다. 반독재 투쟁이 거리에서 가열 차게 전개될 때 KBS기자들은 참 불쌍했다. 조중동처럼 천대를 받았다. 어디 기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했다. KBS 기자라고 할 수가 없었다.
KBS 로고가 달린 취재차량이 돌팔매를 맞는 판에 기자라고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 궁여지책으로 가짜가 되는 수밖에. 한겨레 기자라고 속였다. 당한 기자가 아니면 그 심정을 누가 알랴. 지금은 퇴임한 기자가 한 고백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놈의 처자식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그런 기자들이 제대로 된 세상을 만나 대접을 받고 살게 됐다. 바로 언론민주화 덕분이다. 특히 KBS의 경우 90년 4월 투쟁의 결과로 사람대접을 받은 것이다. 기자가 기자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면 그건 인간대열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얼마나 수치스러웠으면 KBS 명함을 내밀지 못했을까.
그런 KBS가 신뢰도 1위의 언론이 된 것이다. 영향력 1위의 방송이 된 것이다. KBS 기자라고 하면 점수 얹어주었다. '시사 투나잇'과 '미디어 포커스'가 일등공신이다. 그동안 국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죄를 속죄하는 KBS인들의 참회가 '시사 투나잇'이고 '미디어 포커스'였다.
조선일보만도 못하다는 방송을 신뢰도와 영향력에서 1위의 매체로 만든 주인공들이 이제 다시 5공으로 되돌아갈 운명이 됐다. 풍비박산이다. 박살이 났다.
신문에서 신뢰도 1위인 한겨레의 기사 좀 인용하자.
"'미디어 포커스' 제작진의 말을 종합하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막말' 파문을 다룬 꼭지, '의원에게 뺨 맞고 기자에게 화풀이'(1일 방영)가 편집 과정에서 담당 기자가 유 장관을 인터뷰한 내용이 이세강 시사보도팀장의 지시로 빠졌다. 이 팀장은 이 사장이 취임 직후 실시한 지난 9월 간부 인사에서 시사보도팀장으로 발탁됐다. 제작진들은 이 팀장에게서 '유 장관의 품위가 손상될 만한 내용들은 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YTN> 기자 6명 해고 사태를 다룬 '파국으로 치닫는 와이티엔 사태'(10월11일 방영)도 취재기자가 일주일 내내 이 팀장과 격한 논쟁을 거친 뒤에야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제작진은 '와이티엔 기자 집단해고 사태는 최근 언론계 최대 이슈인데도 (이 팀장이) 아이템으로 다루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고 밝혔다."
이세강 팀장. 당신의 기자정신은 무엇인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무조건 따르면 기자정신인가. 선배들로부터 그렇게 기자정신을 배웠는가. 세계가 요동친다. 이제 다시 5공 시절의 '땡전' 뉴스로 돌아갈 것인가. 국민을 모두 바보로 만들 것인가. 고민 좀 해라.
MB 정권은 감사원과 쑥덕쑥덕 정연주를 내 쫓았다. 천하에 둘도 없는 희한한 노조의 묵시적 지원 속에 KBS에 입성한 이병순은 대단한 걸물이다. 시대가 인물을 만들어 낸다든가. MB 시대가 이병순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어서 꼬리를 물고 들어서는 졸개들. (찍지 마. C8은 하지 마라. 유인촌의 특허다.) 이세강도 졸개인가. 그들에게서 기자정신을 기대하는가. 송건호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 이임호 기자. 저들이 기자 맞습니까.
심야토론의 정관용, 러브레터의 윤도현,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이들은 줄줄이 하차다. MB의 특보를 했다면 이들은 기구를 타고 멋지게 승천했을 텐데… 그래서 출세하려면 눈을 잘 굴려야 한다. 어느 잘 난 인간들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인가. 선거에서 떨어진 박찬숙이 있다. 조갑제는 안 되나. 이계진 전여옥 나경원은 국회의원이라서 안 되겠군. 와아 우종창도 있구나.
묻는다.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참 바보짓이다. 이래서 될 일인가. 이래서 언론장악이 된다고 믿는가. 언론을 장악한다면 언론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박정희 전두환 독재의 그 처절한 탄압 속에서도 기자들이 저항했고 승리했다. 조선투위, 동아투위가 생기고 KBS, MBC의 언론민주화 투쟁이 성공했다.
최시중이 말했다. 자기도 언론민주화 투쟁을 했다고. 아 장해라. 그런데 이제는 탄압인가. 아니라고 하는가. 정연주 쫓아내고 이병순 앉힌 게 탄압이 아닌가. '시사 투나잇' '미디어 포커스'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이 언론탄압 아닌가. YTN의 구본홍 꽂기와 유인촌 박선규 신재민이 벌이는 짓거리는 언론탄압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믿는가.
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다 해도 조용히 가슴에 물어보라. 진정 언론탄압이 아니고 언론장악 기도가 아닌가.
아무리 겉으로는 언론장악이 성공한 듯 보여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모두가 꽝이다. 그 뒤에 올 결과는 머리 똑똑한 사람들이라 잘 알 것이다. 너무 끔찍하다는 생각을 못하는가.
이제 KBS 뉴스가 눈에서 귀에서 사라진다. 채널이 기억에서 지워진다. 건강에는 좋다. 조중동 안 봐서 마음 편하듯 KBS 안보니 소화가 잘 될 것이다. 그러나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흐르는 눈물이 있다. KBS 보면서 희망을 느꼈고 국민을 대신해 주는 언론이 살아 있음을 알았는데 이제 다시 절망한다. KBS는 드디어 안 보는 방송 1위, 안 듣는 방송 1위의 영광스러운 자리로 등극한다.
보지 않는 방송, 듣지 않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 오직 호구지책을 위해서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KBS의 기자들과 PD. 그리고 구성원들은 얼마나 참담할 것인가.
그동안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노력했던 '시사 투나잇'과 '미디어 포커스'를 제작한 기자와 PD 그리고 이들을 성원했던 수많은 국민들의 아픔을 위로하면서 그러나 살아있는 KBS 인들은 결코 허접스러운 사이비 언론이 활보하는 세상을 허용치 않을 것을 굳게 믿는다.
2008년 11월 10일
이기명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