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겨레! 비판받으니 야속한가. 되돌아 보는 슬기를 갖자.

순수한 남자 2009. 12. 29. 10:23

한겨레! 비판받으니 야속한가. 되돌아 보는 슬기를 갖자.
번호 105158  글쓴이 이기명 (kmlee36)  조회 1246  누리 419 (434-15, 18:58:4)  등록일 2009-12-29 03:54
대문추천 18


한겨레! 비판받으니 야속한가. 되돌아보는 슬기를 갖자.
창간정신 망각했다면 욕먹어도 할 말 없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9-12-29)


너희들이 떠들어 봤자 별 수 있냐. 이렇게 생각하면 할 수 없이 계속 떠들면서 비판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구독을 끊을 수도 있고 한겨레 보지 말자고 떠들고 다닐 수도 있지만 그 짓이야 어떻게 하겠나. 그동안에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진알시(진실을알리는시민모임)같은 모임에 가서 한겨레신문 배포중단을 선언할 수도 있다.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하면 별수 없다.

딱히 묘수가 있는 것은 아닌데 주위에 창간주주들은 자신들이 궐기(?)를 해야 한다고 흥분한다.

도대체 이유가 뭔가. 왜 흥분하는가. 한마디로 한겨레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변했다는 것이다. 배신했다는 것이다. 뭐가 달라졌나. 뭐가 변했나. 무슨 배신을 했나.

정리를 해 보면 실망스럽고 야속하다는 것이다. 화가 난다는 것이다. 한편, 한겨레를 씹고 물어뜯는 꼴통들은 한겨레가 창간정신을 까먹었다는 비난을 박수로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꼴통들은 한겨레가 변했다고 해도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한겨레 아니더라도 조중동이 죽자 하고 닦아주고 빨아주니까.

다만, 쓰레기 같은 한국 언론 판에서 한겨레만은 정론지가 될 것이라 믿고 기꺼이 창간주주가 되었고 열성 독자로 자부하던 사람들은 정말 가슴이 아프다. 화가 난다. 너희들 정말 이럴 수 있느냐고.

참여정부 시절에 한겨레가 참 심했다고 생각한다. 노빠들만이 아니다. 한겨레가 진보라서 그런가. 그러나 아무리 진보라 해도 적과 아군은 구별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다들 아는 얘기니까 이 정도로 끝내자.

노무현 대통령이 투신자살했다. 왜 투신을 했는지는 세상이 다 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대로 자살을 강요당한 것이다. 법의학적으로는 자살이지만 타살이다.

노무현 지우기에 광분한 권력은 노무현 대통령이 목숨까지야 끊으랴 했을지 모르지만 결과는 온 국민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두고두고 목구멍에 가시가 될 것이다. 죄값을 받아야만 천벌이 있음을 알고 하늘을 두려워할 것이다.

이번에는 한명숙이다. 노무현에게 한 것과 판박이다. 서울시장 깜이니 흠집을 내라.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다 잡아먹어야 속이 시원할 것인가. 이해찬 유시민 줄줄이 거명된다.

누가 조종을 하는지 한명숙이 공기업 사장을 원하는 곽영욱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70이 넘어 한쪽 눈 가리고 휠체어의 의지하는 노인의 진술만으로 한명숙을 긴급체포했다.

총리공관에서 3만 불과 2만 불을 한명숙의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었다는 것이다. 주머니가 없는 여성 옷인데 어떻게 찔러 넣어 주었을까. 넣어 주었다고 진술하니까 믿어야 되는 것인가.

현장검증 한 번 해보자.

곽영욱은 무슨 양복을 입었는지, 큼직한 주머니가 달린 점퍼를 입고 왔는지. 양복 주머니에는 2만 불 3만 불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지. 총리와 식사할 때 옷매무새는 이상하지 않았는지.

“검사님. 살려주십시오.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
“검사님한테 야단 많이 맞았습니다.”

검사에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매달리며 구명을 호소하는 병든 노인에게서 무슨 진술인들 받아내지 못할까. 죽음의 공포 앞에서 병약한 노인이 무슨 소린들 하지 못하겠는가. 이건 상식인의 상식적인 판단이다.

상식이란 참 중요하다. 특히 어떤 판단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왜냐면 상식은 보통사람들의 보편적 가치판단 기준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의 정남기라는 논설위원이 있다. 기명 칼럼을 썼기에 이름을 쓴다. 지난 12월24일자 ‘아침햇발’에 기명 칼럼을 썼다.

“정세균의 이상한 행보”라는 칼럼이다. 기명 칼럼 정도면 책임지고 쓰는 당당한 소신 칼럼이다.

논설위원쯤 되면 언론사의 중진이고 광범위하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인맥도 있고 능력도 있고 능력이 있으니 판단력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만만하게 기명 칼럼을 썼을 것이다.

칼럼을 읽고 나면 이분이 검찰빨대의 충실한 나팔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고 논설위원으로서의 기본은 무엇이며 한겨레 칼럼이 왜 이 지경이 됐느냐고 화를 내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정남기 논설위원의 칼럼이 아무리 문제가 있다 해도 기명 칼럼이기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한겨레로서는 억울한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어쩐다는 말도 있고 쌀 속에는 뉘도 섞이게 마련이라고도 한다.

솔직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칼럼이기에 탓하기도 싫지만 한겨레가 욕을 먹은 것만은 변명을 하고 싶어 이 글 쓰고 있다. 역시 독자가 판단한다.

우선 다음 글을 한 번 읽어주기 바란다. ‘시사 IN'의 고재열 기자가 썼다.

“정황증거가 현실성이 없습니다.

검찰은 곽영욱 전 사장이 양복 주머니에 2만 달러와 3만 달러를 나눠서 넣고 있다고 한명숙 전 총리와 둘이 있을 때 살짝 주머니에 넣었다고 했습니다.

대낮에 총리공관에서 돈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해도, 박지원 의원이 실험으로 보인 대로 2만 달러는 신권으로 해도 두께가 2.2cm고 3만 달러는 3.3cm입니다.

이것을 봉투에 넣고 총리와 장관 2명과 함께 밥을 먹었다고요? 그리고 한 전 총리 주머니에 넣어주었다고 했는데, 편지봉투를 넣을만한 주머니가 있는 여성복이 어디 있나요?”

문제가 된 정남기 논설위원의 칼럼은 아니지만 그의 다른 칼럼 중에 관심을 끄는 부분을 한 번 보자.

“인간의 이중성을 말하는 심리학 용어 가운데 ‘소망적 사고’라는 것이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는 태도다.”

이 정도로 정남기 칼럼에 대해서 이제 말을 맺는다.

다만, 한겨레에 대해서 왜 이렇게 열을 올리느냐에 대한 이유는 설명해야 할 것 같다. 한겨레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한겨레가 아무리 달라지고 변했다 해도 조중동과 같은 수준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까마귀와 백조를 비교하면 되겠는가. 용과 미꾸라지를 비교할 수는 없다. 비교하는 것부터가 모욕이다.

한겨레 창간 이유를 국민들은 너무 잘 안다. 그러기에 국민주로 창간된 세계의 유일무이한 신문이다. 한국 언론사의 찬란한 별이다.

창간주주로서 처음 윤전기가 돌고 최초의 신문이 나왔을 때 환호를 잊을 수가 없다.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제 신문 같은 신문 나오고 창간주주들은 사람 노릇 한다고 자부했다.

나의 고교 은사이기도 한 송건호 사장님의 감격스러운 모습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동아일보에서 쫓겨나고 조선일보에서 잘린 후 한겨레를 창간한 기자들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그중에는 유명을 달리한 기자도 있다.

공치사 같지만 한겨레 판촉을 위해서 애 많이 썼다. ‘한겨레21’ 구독 권유도 열심히 했고 어느 편집장은 나에게 명예판촉사원이라고 농담도 했다.

한겨레신문이라고 해서 모두가 마음에 드는 기사일 수는 없다. 그걸 바라서야 되겠는가. 정도만 가면 욕을 해도 좋다.

평생 글 써 먹고살아서 무엇이 옳고 그른 기사인지 대충은 알기에 때로는 이건 정말 아니다 탄식도 하고 화도 낸 일도 있지만 그건 감내해야 할 최소한의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한겨레가 성경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속이 상했다.

왜냐, 한겨레는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언론의 마지막 희망이었으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신문은 한겨레라고 여기며 자랑하고 사랑했다. 한겨레 안에 존경하는 기자들도 많다.

그러기에 한겨레를 비난하면 근거를 대라고 팔 걷어붙이고 변호했다. 너희들 한겨레가 없으면 어쩌려느냐고 호통도 쳤다. 물론 구독료 자동이체도 했다.

가끔 구독중단을 하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쥐 잡으려고 곳간 태우면 어쩌느냐고 말렸다. 그렇다. 아무리 쥐가 미워도 불을 지를 수는 없다. 고양이를 기르면 된다고 했다. 한겨레가 쥐 잡는 고양이라고 했다.

논설위원 한 명의 시각과 글이 잘못됐다 해도 그게 한겨레의 생각을 아니다. 냉정해야 한다. 누구 좋으라고 흥분만 하는가. 적어도 한겨레 독자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정남기는 무시하면 된다. 속은 상해도.

한겨레가 비난받을 때 박수 칠 인간들은 따로 있다. 설마 정남기 논설위원도 꼴통들에게 박수받기 위해 칼럼을 썼겠는가.

그러나 문제가 또 하나 있다. 사회부문 법조팀장이라는 사람의 글이다. 그가 쓴 ‘진실과 거짓의 대차대조표’란 글이 있다.

“한 전 총리는 검찰 조사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느니 차라리 말을 말자고 마음먹었던 것일까.

아니면 ‘신은 진실을 알지만, 기다린다’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떠올리며 치욕을 감내했던 것일까.”

‘톨스토이’까지 등장했다. 신도 등장했다. 아마 법조팀장이 독심술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독심술에 능하다 해도 이건 아니다. 이건 참 맹랑한 글이다.

한 번 읽어보자.

“곽영욱 전 사장은 자신에게 뇌물공여죄가 추가될 수 있는데도 5만 달러를 줬다고 했다.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지 않는가.

어떤 궁한 사정이 있는지 몰라도, 일국의 총리를 지냈고 친분이 있는 인사를 완벽하게 모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총리공관 오찬은 공기업 사장 선임을 갈망하던 곽 전 사장을 위한 자리였던 것은 맞는 것 같다.

억울한 사람은 자신에게 죄를 씌우는 사람 앞에서는 강하게 반박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한 전 총리는 곽 전 사장 앞에서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정치인은 혐의를 인정하면 ‘정치생명’이 끝나기에 일단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검찰이 미덥지 않다지만, 없는 것을 지어냈다는 상상은 지나친 것 같다.”

무슨 글을 쓴 것인가. 쓰고 나서 한 번 읽어보기는 했는가.

며칠 동안 속을 끓이다가 이제 속이 좀 풀린다. 역시 속물인가. 그냥 무시하면 될 것을. 그러나 다만 한 가지. 한겨레가 이들의 신문은 아니다. 한겨레는 누가 뭐라고 해도 언론자유를 사랑하는 국민의 편이라고 믿는다.

설사 피눈물을 흘리며 한겨레 기사를 보는 한이 있어도 나는 한겨레 사랑을 접을 수가 없다. 한겨레를 생각할 때마다 국민들이 야속하다. 속이 짠하다.

한겨레를 사랑하자. 사랑 이상으로 좋은 매가 어디 있단 말인가.

 

2009년 12월 29일

(cL) 이기명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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