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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과 노무현.

순수한 남자 2010. 1. 13. 21:41

곰탕과 노무현.
번호 107965  글쓴이 kinguk (kinguk)  조회 1065  누리 509 (509-0, 21:62:0)  등록일 2010-1-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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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과 노무현

(서프라이즈 / kinguk / 2010-01-13)


요 며칠 몸살로 꼼짝도 못하고 앓아누웠다.

그동안 두부를 사러 오셨다가 빈 발걸음 하신 많은 분들께 죄송해 오늘은 정신 바짝 차리고 일어나 두부를 시작하며 무언가 속이 든든한 걸 먹었으면 하고 생각하자 바로 생각난 음식이 곰탕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이게 생각했다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한식당에 가서 또는 동네 한인슈퍼에서 팩으로 된 곰탕을 사다 바로 먹을 수는 있지만 가급적 조미료가 든 음식은 먹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해 먹는 편이라 오늘은 그냥 참기로 했다.

그런데 문득 한 사람이 내 뇌리를 스친다. 바로 노짱님......

곰탕과 노무현?
무슨 연관이 있을까? 분명 있다.

곰탕 또는 곰국의 사전적 의미는 푹 잘 곤 국이다. 보통 소, 닭, 돼지 등 동물성재료를 사용하나 절기(節氣)나 종교적인 이유로 나물이나 버섯 등 식물성재료를 고아 탕을 만들기도 한다.

아무튼 곰탕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아주 친숙한 음식중의 하나다.

집안에 누군가가 허약하다던가 가끔 식구들의 영양보충을 위해 연탄아궁이 위에서 설설 끓던 정성과 사랑이 담뿍 든 음식이다.

요즘 같이 추운 겨울에 할머니나 어머니가 며칠 공을 들여 고와 상에 올라온 뽀얀 곰국에 곱게 썬 파 한두 숟갈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후 밥을 말아 살얼음이 얇게 낀 잘 익은 김장김치를 얹어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던 시절도 있었다, 거기에 살코기 몇점이나 소양이나 곱창이 들어있으면 금상첨화였고......

많은 사람들이 곰탕과 설렁탕을 혼동하는데 설렁탕은 아무래도 그 기원이 곰탕이 아닐까 싶다.

우리 민족이 정착농경부족을 이루며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곰탕의 역사는 시작되었으리라는 설이 있다.

농사를 모두 손으로 짓다 보니 일손이 항상 부족하기 마련인데 한 솥에 이것저것 넣고 물 한가득 부어 끓여 먹으면 간편하기도 하거니와 많은 식구 배불리기도 그만이었을 터다.

그러다 재수 좋게 들짐승이나 날짐승의 고기를 얻게 되어 국을 끓이게 되면 얼마나 흐믓했을까.......

그러다 점점 살림이 나아지면서 맛을 찾게 되다 오늘날의 곰탕이나 설렁탕이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게 야생에서부터 곰탕이 시작된데 반해 다들 알다시피 설렁탕의 유래에 관한 가장 타당한 설은 조선시대 왕이 선농단(先農壇)에서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난 후 제물로 바친 소로 국밥을 끓여 참관한 대신들과 인근의 농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 때 나누어 먹은 국이 선농탕(先農湯)이고 이 선농탕이 자음동화현상으로 인해 오늘날의 설렁탕이 되었을 것이라는 거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근본이 백성이었고 그 백성의 근본이 농사였으니 종묘제례 못지않은 정성으로 왕실에서 주관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요는 선농제를 마치고 왕은 물론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함께 나누었던 음식이 설렁탕의 기원이라는 건데 이 탕(곰탕이건 설렁탕이건 구별 없이) 한 그릇에 녹아있는 나눔의 철학이 참으로 아름답다.

허나 재료에는 차이가 있으니 설렁탕의 주재료가 소뼈와 살 그리고 그 부속물인데 반해 곰탕의 재료에는 딱히 제한이 없다.

설렁탕은 그래도 세련된 탕 음식이라 할 수 있으나, 곰탕은 태생이 야생적이니 어딘가 모르게 투박하다고나 할까?

물론 지금 우리가 먹는 태반의 곰탕은 소를 주재료로 하지만 그 옛날 소가 어디 함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재료였던가.....

그래서 각 지방 나름의 독특한 곰탕 제조법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가 보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음식 장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음식은 정성’이다. 정성과 사랑이 가득한 거기에 엄격한 예절교육이 더해진 밥상을 받고 자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에서 보이는 태도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내가 주방에서 조회 때마다 요리사들에게 자주 하던 말이 “지금 네가 만든 음식을 네 식구에게 자신있게 줄 수 있게 만들어라”였다.

물론 이게 내가 만들어 낸 말은 아니다. 어린 시절 스승에게서 귀에 못이 박이게 듣고 또 듣던 말이다.

그때 지겹게 듣던 말을 내가 나도 모르게 내 직원들에게 하고 있다. 마치 어릴 적 부모님이 진절머리 치게 하시던 잔소리를 지금 내가 자식들에게 하고 있는 것처럼.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소개하겠지만 내 인생의 세 스승이 계시다.

그 중의 한 분이 옛날 한국에서 함께 일했던 조리장이신데, 우리 동기끼리는 욕쟁이아저씨로 통한다. 하도 욕을 잘 하셔서 얻은 별명인데 오죽하면 입에서 나오는 소린 숨소리 빼고 다 욕이라고 할까.

그런 분이 어떻게 내 인생의 스승이 되었을까 궁금하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분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가 '약한 사람에게는 더 약하게, 강한 사람에게는 더 강하게'이다.

또한 장인으로서의 철저한 자세가 나를 감동시켰다.

그분이 항상 하시던 말씀이
“야, 이C8놈아, 니가 나중에 조리장 아니라 조리장 할애비가 되도 손님상에 나가는 음식은 세상없어도 꼭 맛 보고 내 보내!!!!!”이다.  

근데 이분은 말만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라 손님이 어쩌다 음식을 절반이상 남기게 되면 쓰레기통을 뒤져서 라도 다시 맛을 보신다. 그 모습을 보고 감동해서 얼마나 울었던지(지금도 그 분은 내가 뒤에서 그 모습을 숨어 보고 있었던 걸 모르신다.)......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도 그 양반께 문안전화 드리면 예의 그 욕을 날리신다. 그래도 어찌나 정겨운지 형언을 못한다. 그분께 배운 건 불의를 보면 참지 말라는 것과 정성이다(물론 욕도...ㅎㅎㅎ).

지금도 그 분께 배운 정신으로 살고 있다. 때론 나도 편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지금이라도 그 양반의 두터운 손바닥이 내 등을 후려칠 것 같다.

몇 해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대장금......

거기서 인상 깊었던 대목이 대비마마가 내린 첫 번째 최고상궁 경합과제이다.

거기서 대비는 경합 대상자인 한 상궁과 최 상궁 그리고 그들의 보조인 장금과 금영에게 백성들이 먹는 음식을 첫 번째 경합과제로 하교한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것이 곰탕. 장금과 금영은 각자 열심히 준비한다.

결과는 최상궁과 금영의 승.

첫 번째 경합후 장금이는 한상궁의 싸늘한 말 한마디에 보모상궁이 있는 절로 내쳐진다.

“네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 깨닫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거라”

그게 무엇이었을까? 바로 정성이다.

금영이가 사옹원에서 받아온 평범한 재료로 온 정성을 들여 곰탕을 고고 있을 때 장금이는 좋은 재료를 찾는다고 온 사방을 헤매다 나름 비법이라고 한지로 기름을 걷어내며 속성으로 곰탕을 끓여낸다.

이 글 첫머리에서 말했듯이 곰탕이 단 몇 시간 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루 저녁은 사골과 잡뼈를 찬물에 담가 피를 빼야 하고 그다음엔 끓는 물에 넣어 잠시 튀긴 후 뼈를 건져내어 찬물에 깨끗이 씻어(누린내와 잡내가 심한 그리고 국물이 뽀얗지 않은 곰탕은 십중팔구 이 과정이 생략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깨끗이 씻은 솥에 다시 얹은 후 찬물에서부터 끓이기 시작해서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여 대략 7-8시간 괄하지 않게 끓인다.

그 후 우려낸 뼈 국을 따로 걷어 식히고 뼈가 들어 있는 솥에는 다시 찬물을 부어 같은 방법으로 재탕을 시작한다. 보통 삼탕까지 우려내는데 삼탕 이후에는 국물이 잘 나지도 않을뿐더러 뼈가 바스러질 정도가 되어 별 의미가 없다.

이 과정에서 초탕, 재탕, 삼탕이 식으면 위에 뜬 기름을 걷어내고 모두 합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곰탕은 식으면 묵같이 엉긴다. 이를 진국이라한다.

여기에 국물을 더 맛있게 하고 건더기를 좀 많이 하려면 재탕이 끓는 중에 양지머리(반드시 전날 찬물에 담가 피를 뺀)나 잘 손질된 소양 또는 곱창 등을 넣어 2-3시간이 넘지 않게 삶아 낸 후 건져낸다. 이유는 너무 오래 삶으면 고기가 너무 흐물흐물해지고 맛이 다 빠져 건더기 가치가 떨어진다.

여기까지가 곰탕의 기본과정이다.

그 이후에 이 기본을 응용해서 색다른 곰탕을 만들 수 있다.

무와 양지머리를 깍둑썰기를 해서 탕에 넣고 푹 무를 때까지 고아서 상에 내던지, 삶아 헹궈놓은 묵은 나물을 넣고 끓인다든지 해서.....

이 과정을 모두 마치고 상에 올리려면 아무리 빨라도 2-3일은 족히 걸린다.

이 일은 위의 조리장님과 오래 해 왔던 일이라 지금도 눈감고도 한다.

이런 정성이 들어야 완성되는 음식을 아무리 타고난 미각을 가진 장금이라고 해도 금영이의 곰국을 이길 순 없는 것이다.

요즘도 사이비 곰탕이 판친다. 그게 갈수록 가관이다. 아마도 내가 아는 한 십중팔구는 사이비다. 대부분이 제대로 고아내지도 않았을 뿐더러 온갖 조미료와 색소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가짜 곰탕을 진짜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진짜 진국을 만나고도 알아보질 못한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진국을 만나고 있었는데......아직도 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애통할 따름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니 곰국 같은 뽀얀 눈이 내린다.

아마도 그 분이 높은 곳에서 우릴 위해 곰탕을 고고 계시나 보다.

근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그분이 온 정성과 사랑으로 우릴 위해 준비하시던 곰탕을 엄한 놈들이 솥째 들어내 가니 내 속이 횅해서 그런가?


(cL) kin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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