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强盜)가 따로 없다
(서프라이즈 / 논가외딴우물 / 2010-02-12)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적 사과 요구를 알리는 기사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또 '세종시 문제’와 관련, “미국 링컨 대통령도 원래는 노예제 폐지에 반대했지만, 남북전쟁이 시작되고 현실적 필요도 있어서 노예제 폐지를 선언했다.”면서 “어떤 경우든 정치지도자의 최종적 판단 기준은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자세”라고 지적했다.』
수평적·통합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링컨이 재임했던 150여 년 전의 시대와 견주어 정치지도자상을 비교해야 할 일도 아니겠고, 마침내는 암살로 막을 내린 링컨이라는 인물과 이명박 대통령을 단순 비교하는 것 또한 의미 없는 일이지만, 이동관 수석의 이 발언 내용 중에서 단어 몇 개만 바꿔보면 이명박 정부의 의식을 표현할 수도 있겠기에 바꿔봤다.
"이명박 대통령도 원래는 세종시에 찬성했지만,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현실적 필요도 있어 세종시에 대한 반대를 선언했다." 또는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반대에 놀라 대운하를 포기한 바 있지만, 정권은 끝나가고 현실적 필요도 있어 대운하를 4대강 사업이라 선언했다."
이렇게 바꾸니 한마디로 "어떤 경우든 최종적 판단 기준은 정권의 오년대계를 생각하는 자세" 아닌가?
한나라당의 내부 논란에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청와대가 여당 전직 대표의 발언을 두고 이의 저의(底意)를 따져 사과를 요구하는 일은 싸움을 위한 싸움 이외에 얻을 것이 없다.
비유한 내부의 강도(強盗)가 이명박 대통령을 지칭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발언의 팩트 자체는 어디까지나 내부인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언급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의 발언을 문제 삼아 청와대가 공식적 사과 요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을 들어보면 그 강도가 누구인가 하는 주어는 없었으니 말이다.
청와대 측은 일단 밀어붙이는 게 여러 가지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은데 너저분함도 유분수지 대한민국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이들의 입에서 때아닌 ‘강도론’이 웬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이동관 수석은 박근혜 전 대표와 대화하기에 앞서 국민과 대화를 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지난 7년여의 기간에 대선만도 두 번, 헌법재판과 국회 합의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국민인들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링컨의 이름을 어뤤지 발음으로 입에 담는 것이야 개인으로서는 자유이겠지만, 대통령과 공직자의 입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는 것은 어떤가? 질이 떨어져도 정도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질적 수준을 걱정하는 측면에서 보면 강도(強盗)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cL) 논가외딴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