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8일. 우리는 한명숙 피고와 함께 법정에 섰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모두가 불쌍한 피고가 아닌가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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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8일, 첫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도착한 한명숙 전 총리 ⓒ 에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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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오늘 생애 두 번째로 법정에 섰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투옥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고문을 당하고 법정에 섰던 것이 첫 번째입니다. |
2010년 2월 8일 오후 2시.
한명숙 피고의 진술을 이렇게 시작됐다.
독재가 사라졌다는 지금 법정에 선 참담한 심정이 짙게 묻어났다.
그는 독재 권력에 맞서 죄수복을 입었을 때 떳떳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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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지금 제가 맞닥뜨린 시련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검찰 기소에 의해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뒤집어 쓴, 전 국무총리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부패와 비리, 제 인생에는 결코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말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제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전처럼 저의 신념과 행동의 올바름을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뇌물수수’라는 모두가 경멸해마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서 싸워야 하는 구차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
굳이 변명을 하지 않아도 살아 온 과거를 보면 그의 삶을 조명할 수가 있다. 국민들이 경악을 하는 것은 한명숙이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이미 한명숙이라는 인간의 걸어 온 삶을 통해서 한명숙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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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저는 남의 눈을 피해 슬쩍 돈을 받아 챙기는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할 줄도 모릅니다. 또 남의 돈을 스스럼없이 용돈처럼 받아 쓰는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국가 공공시설인 총리공관에서 벌어진 오찬 자리에서, 비서관과 경호관들이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는 그런 자리에서 돈을 받는다는 것은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방청석의 흔들림이 있었다. 흐느낌이었다. 옆에 앉은 여성이 손수건을 꺼냈고 재판 내내 그는 눈에서는 손수건이 떠나지 않았다.
그 여성뿐이 아니었다. 둘러 본 법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과 분노가 무겁게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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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저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과 양심을 돈과 바꿀 만큼 세상을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가난해도 항상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한때나마 제가 가졌던 지위를 자랑하거나 허세를 부려 본 바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저는 국민을 향해서 “인생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단순한 언어적 수사가 아닙니다. 저의 살아온 삶 전체를 건 절규였습니다. 저에게는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화려한 경력보다는 저를 지탱해 온 삶의 진실이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
한명숙은 자신이 한국 최초의 여성총리로서 또한 민주주의를 위해 신명을 바쳐 헌신한 사람으로서 국민에게 또한 여성들에게 상징적인 인물이었고 누구에게든 뇌물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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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제가 도덕성을 잃으면 이것은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저를 바라보고 온 사람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저는 그 책임감과 내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소명감을 매순간 자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또한 한국 최초의 여성총리로서 제가 일을 잘하고 깨끗해야만 후배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자라나는 우리 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
한명숙은 왜 자신이 검찰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는지 분명하게 밝혔다.
검찰 빨대들을 향한 대한 분노가 생생하게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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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저에 대한 수사는 조사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언론플레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익명의 가면을 쓴 누군가에 의해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심지어는 수사가 종결되기도 전에 제 혐의 내용이 샅샅이 구체적으로 때로는 내용을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언론에 유출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 속에서 저는 이미 범죄자가 되어 있었고 저의 인격과 명예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검찰조사는 진실을 밝히는 공정한 절차가 아니라 요식절차에 불과했습니다. |
저질 빨대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이 그 비열한 정체를 소상하게 알고 있다. 빨대들에 의해 근거도 없이 병균처럼 번진 악성소문은 급기야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 참담한 고통을 한명숙 역시 뼈저리게 체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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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검찰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가 검사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병약하고 공포에 내몰려 있었습니다.
“살려 주세요 검사님,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애원하는 처절한 모습을 봤습니다. 한명숙 표적수사에 얼마나 모진 고초를 당했으며 얼마나 재산과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면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진술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고 동정이 갔습니다. 이러한 궁박한 상황에서 그의 약점을 잡아 받아낸 진술 하나 만을 가지고 저를 몰아붙이고 있는 검찰의 수사는 재판과정을 통하여 그 허구가 명명백백히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
인생을 건다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의미다.
누구나 목숨을 건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냥 해 보는 사람이 있다.
입만 열면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목숨을 수백 번 수천 번을 건다 해도 국민이 그를 믿을 것인가. 오늘의 정치가 이 지경이 된 것도 국민들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있는 불신 때문이 아닌가. 그 불신의 주인공과 목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본래 거짓이니 약속은 그냥 장식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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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저는 지금 이 순간, 살아온 모든 인생을 걸고 제가 평생을 지켜온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죄의 유무를 따지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살아 온 삶 전체를 심판받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진 재산이라곤 지금까지 살아 온 삶 밖에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살아 온 삶이 소중합니다.
저는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직 진실만을, 양심의 소리만을 말하겠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일은 난감하고 가슴 답답한 일입니다만,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재판에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정의와 공평의 눈으로 진실을 밝혀내실 판사님의 혜안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2시간이 넘는 재판과정은 한숨과 분노와 연민과 모멸의 장이었다.
한명숙의 발언이 계속되는 동안은 한숨과 분노가 일었고 곽영욱의 이름이 언급될 때는 분노와 모멸과 연민이 엇갈렸다.
링거를 꽂고 휠체어에 노구를 의지한 채 앉아있는 곽영욱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법률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답답하다. 곽영욱 사장이 전달한 5만 달러를 어디다 썼는지 검찰은 아직 밝히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피고인에게 어디다 썼는지 자료를 냈으면 하는 눈치다.
“한 전 총리가 해외체류 중 달러를 구입한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경비를 충당했는지 피고인이 소명자료를 낼 계획이면 미리 알려 달라”
그 때 장내가 소란스러워 졌고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음의 의미를 모두가 안다.
“검찰이 입증을 못해서 수사기록에도 없는 걸 피고인에게 보여 달라는 것이냐”
변호인의 거부는 당연하게 느껴졌다.
검찰은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꼴이 말이 아니다. 재판장도 한마디 했다. 오죽하면 재판장이 공소유지에 자신이 있으면 변호인의 자료 요청을 거부하라고 까지 했을까. 검찰의 자질부족인지 순진한 것인지 헷갈린다.
기자들이 열을 올리고 있다. 문득 '빨대'라는 추한 단어가 생각났다.
'빨대'.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던 빨대와 빨대를 따르던 검찰 기자들.
지금도 빨대가 그리울지 모른다. 왜냐면 받아만 쓰면 되니까.
어차피 그렇고 그렇게 평가된 검찰 기자가 아닌가.
심한가. 그래서 평소에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보고 느낀 대로 공정하게 쓰라는 것이다.
불러 주는 대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은 4월 9일로 1심이 끝난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코미디를 구경하게 될 것인가.
문득 서글퍼진다.
이유는 묻지 말라. 법정에 우리 모두가 피고가 된 느낌이다.
역사의 법정에 선 우리들.
한명숙 전 총리의 얼굴 뒤에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2010년 3월 9일
이기명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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