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숙 죽이기’ 시대극의 재구성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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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죽이기' 시대극의 재구성 <제 1 부>
1.글쓰기를 시작하며 이제 한명숙 재판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선고 예정일(4월 9일)을 목전에 있다. 이제 더 이상 글쓰기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여전히 미진하지만 사건의 대강도 드러난 것 같다. 고통스런 글쓰기에 나선 또 하나의 이유는 한명숙 재판이 세기의 재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러한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추후 상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것을 글쓰기로 표현하는 것은 본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상식 이하 수준 이하의 검찰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런 검찰이 멋대로 군림하는 비극적 현실이 오히려 나를 고통스런 글쓰기로 내몰았다고 해야겠다. 물론 나의 글쓰기는 만용의 소치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막강 권력 검찰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검찰 조서와 공소장 원문과 같은 1차 자료도 살피지 못했고, 재판을 방청한 적도 없기 때문에 글쓰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공개된 자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또 나눌 시점이 된 것 같다. 필부는 물론 심지어 스스로마저 혼돈되고 헷갈리는 사실들을 나름대로 재구성해보려 한다. 이 사건에서 수많은 논점이 제기되지만 오직 한가지 논점에만 집중하려 한다. 역시 핵심은 “곽영욱이 한명숙(who)에게 석탄공사 사장이 되기 위해(why) 2006년 12월 20일(when) 총리공관(where)에서 5만달러(what)를 건넸다(how)”는 사실이다. 기사 작성에서 6하원칙 [六何原則, five W's and one H]은 기본이다. 공소장 작성에도 이 6하원칙은 필수이다. 이러한 6하원칙에 입각하여 검찰 언론 곽영욱 등이 그것을 집단 창작하는 과정을 면밀히 추적할 것이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그 창작물은 희대의, 그러나 너무도 허접한 코메디극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코메디극본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역사적 사례가 무수히 있고 실제로 작년 노무현도 죽였다. 이번 사건의 결말은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구태여 고통스런 글쓰기를 할 필요가 있을지 조차 망설여진다. 하지만 어이없던 수많은 재판 결과들과 이명박정권의 역행를 반추해 보건데 기우를 떨칠 수 없다. 아무튼 이 글이 진실이 드러나고 판사의 판단에 일조하기를 기대하며 고통스런 글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아무래도 글이 좀 길어질 것 같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 부득이 서너편의 글로 나누어 쓰려 한다. 일일이 각주를 달아 근거를 밝혀야 하지만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출처는 최소화했다. 하지만 결코 근거 없거나 신빙성이 없는 팩트를 근거로 이 글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자신한다. 2.언론 특종을 통해 본 사건 재구성(피의사실 공표)
사건을 예의주시한 이들이라면 이 표만 살피고도 앞으로 필자가 개진할 내용들을 대충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표는 어떤 우여 곡절을 거쳐 최종 완성되어 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다. 배경 색깔이 있는 부분이 특종이니 그 부분을 자세히 살피기 바란다. 필자는 검찰 조서는 물론 공소장도 보지 못했다. 다행히도 언론이 그것들을 전해 주어서 그 대강을 파악하게 되었다. 형법에 엄연히 중죄로 명문화되어 있는 피의사실공표죄가 검찰의 직무태만(아니 범법)으로 사문화된 덕분이다. 지독한 역설이라고 해야겠다. 검찰은 피의사실을 유출한 적이 없다고 누차 말했다. 언론 기사들과 공소장의 내용이 다른 것이 피의사실 유출에 대한 자기들의 결백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능청스런 지껄임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결국 귀신이 유출했거나 기자들이 창작했고 언론이 오보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이번 사건을 면밀히 살피면서 검찰의 수사 내용이 거의 실시간으로 그리고 기획되어 언론에 유출 보도되었다고 생각한다(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케이스별로 밝히겠다). 실제로 곽영욱도 전날 조사받은 내용이 다음날 언론에 보도되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따라서 표에 제시된 특종 기사들은 전날 취조된 내용을 각각 보도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검찰 조서와 동영상을 살필 수 있다면 이에 대해 보다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것에 접근할 수 없다. 다행히도 변호사에게 검찰조서와 동영상을 열람하게 했다니 변호사에게 대신 수고해 줄 것을 감히 청한다. 물론 검찰에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조서와 동영상은 이미 숨긴 것으로 보이지만, 그리고 그 방대한 량을 열람하기 쉽지 않겠지만, 내가 제시한 표를 들고 가서 중요한 사항들을 확인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더 욕심을 부리자면 피의사실이 얼마나 실시간 의도적으로 유출되었는지를 증거할 수 있는 근거들을 조서들과 언론 보도를 대조하여 최대한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글이 검사에게 대응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당당하게 겨루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추적한 바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언론의 특종은 7차례 있었다. 그 특종의 생산 유통과정은 검찰의 공소장이 완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검찰은 필요한 정보를 특정 언론에 누설하고 언론은 약간의 상상력을 더하여 특종을 생산한다. 또 이 특종에 대한 반응을 보며 공소장은 조금씩 그럴듯하게 가다듬어 졌다. 곽영욱도 (검찰이 흘린) 언론 기사를 들이밀며 추궁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았던가. 한편 법정의 심판을 받기 이전에, 무죄추정의 절대적 원칙에도 불구하고 피의자는 검찰과 언론에 의해 이미 단죄당하고 만다. 이런 과정은 노무현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생생하게 목도한 것이기도 하다.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피의사실공표와 검찰과 언론의 공소장 합동 창작과정은 한명숙 사건에도 그대로 되풀이 되었다. 한국일보의 특종으로부터 시작하여 40여일 동안 7건의 특종을 거치며 공소장은 점차 창작되어 가는 과정을 잘 살필 수 있다. 최근 재판과정에서 공소장과 다른 결정적 증언들이 있었는데 이것마저도 이들 특종 지면에서 그 흔적을 살필 수 있다(이것은 필자가 이번에 글을 써야겠다고 작정한 결정적 단서인데,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다). 한국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CBS 노컷뉴스-동아일보-한겨레신문의 순이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특정 언론이나 보수 언론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특종을 생산했던 점이다. 언론의 특종 경쟁을 검찰이 최대한 활용한 탓이리라. 또 그 내용에 따라 선별적으로 뿌렸던 점도 주목된다. 비판적인 언론으로 지목되는 CBS와 한겨레가 특종한 내용은 총리공관 모임에 동행자가 있었다는 것과 동행자 실명(정세균 강동석)을 공개한 것이다. 표적수사이고 야당탄압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검찰은 오히려 비판언론으로 지목되는 CBS와 한겨레를 적절히 활용했다고 추정한다면 과도한 것일까. 결국 CBS와 한겨레는 특종하여 그 성가를 높였을지 모르지만 검찰의 기획대로 제대로 놀아난 셈이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내친 김에 미리 말하자면, 이런 잘못된 관행은 극복되어야 한다. 검찰과 언론 스스로에게 맡겨둘 수 없다. 적어도 이번 판결의 결과와 무관하게 피의사실유출과 검찰의 망나니 칼춤에 대해 국정조사가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의 자뻑쇼로 낭패 본 이명박정권도 국정조사에 동의해야 하지 않을까.
표에서 보듯이 언론 특종을 통해 보면, 거액(11.13)-수만달러(12.4)-5만달러(12.5)로 변화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1면톱으로 한명숙의 실명을 폭로하며 본격 사건화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또한 관심 대상이 되는 뇌물액수를 ‘수만달러’라고 보도한 것이 주목된다. 그런데 다음날 중앙일보는 5만달러라고 그 액수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특종을 했다. 이 항목은 6하원칙 항목 중 비교적 일찍 확정되었다. 곽영욱이 구속된 후, 검찰의 최고 관심과 조사시간의 대부분은 그 뇌물액수에 두어졌을 것이다. 당시 지면에는 20만 10만 5만 3만달러설 등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설들이 근거가 없지 않음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공소장은 물론 검찰조서에도 누락되어 있는 10만달러와 3만달러 관련 진술들이 그것이다(궁색한 핑계를 대며 조서를 남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동영상이라도 있을 것 아닌가?) 우선 10만달러설부터 살펴보자. 3월 15일자 재판에서 곽영욱은, 검찰조사시에 한명숙에게 10만달러를 주었다고 진술한 적이 있음을 증언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독고탁의 상세한 글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21353#pre)이 있으니 부연 설명은 생략하겠다.
정말 쇼킹한 해프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10만불 해프닝은 검찰조서에도 누락되어 있는 듯하다(이런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을 리가..). 이 해프닝이 정확하게 언제 일어난 것인지 궁금하다. 위 인용문에서 검찰의 진술에서 주목되는 점은, 당시에 이미 검찰은 한명숙의 출입국 기록 등 과거사를 파악해두고 있었다. 표적수사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여기서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곽영욱이 검찰이 제시한 10만불설이란 황당한 각본에 쉽게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변호사였다면 10만불 해프닝건을 최대한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10만불 각본이 폐기된 이유 역시 궁금하다. 뉴욕의 누군가에게 10만불을 부쳤고 그것이 복잡한 경로를 통해 한명숙에 전달되었다는 각본도 제법 그럴듯한데. 전반적 상황을 감안하면, 10만-3만-5만달러 순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곽영욱이 한명숙에게 얼마를 주었는지를 집요하게 추궁했을 것이고 곽영욱이 입을 열지 않자, 계좌추적과 한명숙의 미국 방문시기를 근거를 대며 곽영욱을 압박하자, 곽영욱은 10만달러 각본에 동의했다. 그런데 송금한 돈의 출구가 분명했던 탓인지 10만달러설은 폐기된다. 검찰은 곽영욱의 거짓과 이로 인한 뺑뺑이에 엄청 화났을 것이고 거세게 겁박했을 것이다. 이에 곽영욱은 3만달러설을 문득 내뱉었다. 10만달러 각본은 이내 폐기되었지만 나름대로 각본의 구성에 일조했다. ‘달러’라는 것은 ‘3만(5만)달러’ 식으로 계승되었던 것이다. 3만달러설은 어느 순간에 결국 5만달러로 낙착된다. 이에 대해 곽영욱은 한명숙이 ‘좋은 분이라 좀 줄여야 돼서’ 3만달러라고 거짓말 했다가 정정한 것이라고 재판에서 말했다. 곽영욱의 이 진술 역시 신뢰성이 없다. 곽영욱이 순순히 자발적으로 거짓을 실토하고 정정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검찰이 3만달러설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또 번복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거짓 횡설수설 모르쇠에 번번이 당했으므로, 곽영욱의 3만달러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검찰도 무척 갑갑했을 듯하다. 거짓임을 증명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는 물론 아직도 돈의 입구와 출구를 전혀 밝히지 못하고 있지 아니한가. 3만달러와 5만달러는 양자 모두 거짓일 수도 있고 참일 수도 있다. 이런 사정을 미루어 볼 때 3만달러가 5만달러로 수정되는 과정이 정말 궁금하다. 검찰관계자는 이에 대해 “총리에게 준 돈으로 3만달러는 아무래도 좀 적은게 아니냐며 불신감을 표현하자 곽씨가 액수를 5만달러로 높였다”고 한다(조선일보 3월 15일). 검찰의 이 해명보다 나의 아래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한명숙의 죄목이 특가법상의 뇌물죄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특가법 2조에서 3천만원 이상의 뇌물을 받아야 특가법 대상이 된다. 그런데 3만불은 당시 3천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뇌물이 건네졌다는 2006년 12월 20일(물론 당시에 검찰도 이 날짜를 몰랐지만) 당시 환율은 그림에서 보듯이 1달러에 925.8원이었다(이 그림은 조선일보 12월 21일자 경제면 상단을 캡쳐한 것이다). 물론 당시 검찰도 정확한 날짜를 몰랐고, 다만 07년 (초)무렵이라고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도 역시 900원대 초반이었다. 검찰도 나처럼 당시 환율자료를 찾아보았을 것이다.
검찰과 곽영욱은 모종의 타협 혹은 거래하여 뇌물액이 5만달러로 낙착된 것이 아닐까. 이리하여 한명숙은 5만달러 즉 46,290,000원의 뇌물을 받은 자가 되고 특가법상 뇌물죄로 기소되었던 것이 아닐까? 내 추정이 맞다면 5만이란 3천만원 이상의 무수한 수치 중 하나 그리고 가공의 수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5만’이란 단어가 검찰과 곽영욱 중 누구의 입에서 처음 나왔는지 궁금하다. 차마 검찰의 입에서 ‘5만’이란 단어가 먼저 발설되었다고 믿고 싶지 않다. 곽영욱이 말바꾸기를 거듭했으니, 검찰 스스로도 곽영욱의 5만달러 진술조차 확신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5만달러의 진위도 검증하지 못했으니 더더구나 그러리라. 검찰이 과거에 충분한 신뢰를 쌓았다면 위와 같은 상상력을 감히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여튼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5만달러 극본이 리얼리티와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뇌물의 입구와 출구가 전혀 없다. 신뢰도 높은 증거와 물증이 없고, 오직 곽영욱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건인지라, 뇌물 제공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 신뢰도가 중요하다. 특히 돈이 전달된 정황이 설득력있게 제시되어야 한다. 실제로 ‘어떻게’에 대해 검찰도 무척 고심한 듯하고, 세간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판부도 가장 눈여겨 볼 것이다. 그런데 재판부가 이 부분에 대한 공소장 변경을 검찰에 권고했고, 결국 공소장이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이미 신뢰도에 결정적 문제가 있음을 증거한다. 곽영욱이 아무리 연로하고 병약해도 돈을 준 상황을 헷갈리고 기억하지 못할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표에서 보듯이 조선일보 특종(12.4)이 있던 다음날, 중앙일보(12.5)가 5만달러설을 특종하면서 ‘직접전달’이라고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로부터 5일후에, CBS는 장소가 총리공관이었다는 1차 특종(12.9)에 이은 2차 특종 보도(12.10일)에서 아래와 같이 보다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곽(영욱) 전 사장은 총리공관에 들어갈 당시 양복 왼쪽 오른쪽 주머니에 각각 2만달러와 3만달러 등 모두 5만 달러를 넣고 한(명숙) 전 총리를 만나 돈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찬장 출입문 근처에서 한 전 총리에게 바로 건네줬다’ ‘핸드백 같은 것 들고 다니니 거기에 넣었을 것이다’라는 등등의 내용들이 검찰조서에도 있다고 한다. 누차 강조했지만 당시 언론들의 특종들이 언론의 순수작문만은 아니다.
그 뒤 한겨레신문(12.21)이 총리공관의 동행자들이 정세균과 강동석이었다는 것과 그 외 몇가지 내용들을 보도했는데, 동아일보 특종으로 특종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한겨레신문의 기사는 특종이라 하기에는 미흡하고 막판에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아일보 특종의 ‘두고 나왔다’가 공소장(12.12)에서 ‘건네주었다’라고 바뀌었다. 공소장의 이 내용은 재판정에서 ‘의자위에 놓아두고 나왔고, 갖고 가는지 보지 못했다’라는 곽영욱의 진술에서 다시 전복되었다. 결국 곽영욱의 법정 진술은 동아일보 특종 즉 ‘두고 나왔다’로 되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곽영욱이 검찰조사시의 진술을 다만 번복한 것으로 단순하게 여긴다. 그리고 곽영욱도 ‘검찰조사에서는 한번도 그렇게(’두고 나왔다‘) 말한 적이 없느냐’고 묻자, 곽영욱은 ‘없다’고 단언했다. 검찰에게 물어도 곽영욱처럼 말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당시에 검찰에게 이를 확인하지 않았는지 아쉽다). 결국 곽영욱과 검찰은 동아일보 특종이 오보라는 것이다. 이는 검찰이 이명박정권의 절대 옹호자인 동아일보와 이태훈기자를 심히 모독한 것이다. 나는 동아일보 특종이 오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판단이 맞다는 것은 동아일보 특종을 생산한 이태훈 기자가 증언해 주리라 믿는다. ‘두고 나왔다’는 내용은 특종(12.14) 2일전인 12일자 이태훈기자의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2일자 기사에는 ‘여럿이 동행했다’는 부분만 없을 뿐, ‘두고 나왔다’는 부분은 표현마저 14일자 기사와 똑같다. 이들 기사에 어디(의자)에 두고 나왔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직접 전달’의 보편 속에서 ‘두고 나왔다’는 특수 표현을 연거푸 썼다는 것은 확실한 정보원(물론 ‘검찰 빨대’일 것이다)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나는 곽영욱이 법정에서 위증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검찰조서에도 이 부분은 남아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하지만 변호사는 10-11일자 조서와 동영상을 꼼꼼히 검토해 보길 바란다). 검찰이 ‘두고 나왔다’는 검찰에서의 곽영욱 진술과 어긋나게 공소장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곽영욱의 진술이 공소장 내용을 뒤집으면서 검찰이 궁지에 몰리자, 담당검사 권오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 ‘건네 주었다’에는 의자에 두고 나왔다는 방법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기소할 때부터 손으로 건넸는지 식탁이나 의자에 놨는지 추상적이었다”고 변명했다. 검사의 말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공소장의 가장 핵심 증거마저 추상적인데 기소가 가능해??? 노무현 사건에서 ‘포괄적 뇌물수수’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포괄적 기소’마저... 검찰이 궁지에 몰리자 보수 언론들은, 검찰관계자의 입을 빌리는 형태로, 곽영욱이 진술번복을 검찰도 재판 직전에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식으로 대신 변명해주었다. 과연 ‘두고 나왔다’는 곽영욱의 진술이 재판 직전에 처음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검찰의 이 변명은 앞의 ‘포괄적’ 변명과도 배치된다. 거짓 왜곡 구차한 변명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이 모든 혼돈과 모순의 출발이 기소유지를 위해 공소장을 왜곡 작성한 것에서 초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고 나왔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기소유지마저 어렵다고 검찰도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공소장에서 ‘건네 주었다’라고 꼼수를 부린 것이리라. 이런 꼼수 마련에 누가 관련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국민들은 물론 검찰수뇌진마저 기망한 셈이다. 내 추정이 맞다면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검찰의 중대 범죄행위다. 이런 꼼수들을 최근 검찰 행태에서 자주 발견된다. 내가 이글을 감히 쓰야겠다고 작정한 직접적 동기이기도 하다. 거의 유일하고 핵심 증거인 곽영욱의 증언이 법정에서 번복될 줄 검찰은 과연 몰랐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마저 흔들리면 담당 검찰은 물론 나아가 특수부 검찰-검찰 전체-이명박정권이 치명타를 입을 줄 예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검찰은 넘어선 정권 차원의 거대하고 은밀한 노림수가 있는 것일까? 재판에 대비하여 검찰과 곽영욱이 예행연습까지 치밀하게 했을 터인데, 재판 과정에서 ‘곽영욱이 검찰에게 불합격점을 받았던’(조선일보 3.11)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영감이 노회한 곽영감에게 오히려 당한 것일까. 대한통운 비자금 241억과 곽영욱의 횡령금 83억 중 그 출구가 밝혀진 것은 한명숙에게 제공했다는 4천 수백만원에 불과한데... 곽영욱은 구속집행정지의 혜택을 잠정적으로 누리고 있는 중인데... 힘이 닿는대로 이러한 난제들도 풀어보려 한다. 언제 글을 더 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내친 김에 한가지만 첨언하고 중간 매듭을 지으려 한다. 검찰은 검찰조서와 동영상을 숨김없이 널리 공개할 것을 제안한다. 나의 제안이 이루어진다면 검찰을 능멸한 죄값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으려 한다. 나는 귀중한 진실을 찾는 것이고, 검찰은 ‘미친 사냥개’라는 오명을 벗고 그 결백을 만천하에 증명하게 될 것이니. (cL) 오랜서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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