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시민 그리고 정몽준.

순수한 남자 2010. 5. 13. 09:57
유시민 그리고 정몽준.
번호 144715  글쓴이 이기명 (kmlee36)  조회 3712  누리 937 (942-5, 46:129:1)  등록일 2010-5-13 04:56
대문 72


유시민 그리고 정몽준
정몽준은 자신이 ‘킹메이커’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5-13)


2002년 12월 18일 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었다.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정몽준이 노무현 지지를 철회한다.’

▲ 정몽준 대표의 면담 거절로 발길을 돌리던 노무현 후보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등의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정신이 멍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불과 몇 초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무릎을 쳤다.

정몽준이 노무현을 돕는구나.
하늘이 정몽준을 시켜 노무현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정몽준이 대단한 인물이다. 앞을 보는 안목이 있다.
저렇게 의표를 찌르는 결단을 내리다니.
이제 정몽준을 다시 봐야 한다. 그리고 안도의 긴 숨을 쉬었다.

이제 노무현의 당선은 확실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이고 정몽준의 결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단언했다.

노무현 지지자들이 깊은 한숨을 쉬며 낙담을 하며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나는 그들을 위로했다. 아무 걱정 말라고.

다음 날 12월 19일,
대통령 투표 방송사 출구조사는 노무현 당선을 예견했다.
그리고 개표가 완료됐을 때 노무현은 대통령 당선자였다.

▲ 12월19일 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뒤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권양숙 여사. 환호하고 있는 노사모 회원들(작은 사진). ⓒ 주간동아

정몽준의 배신이 왜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이라고 확신했을까.

인간의 보편적 정서다. 배신자를 능멸하는 인간의 감정이다. 이회창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노무현에게 배신이란 철퇴를 가하다니. 이것은 용서가 안 된다. 그게 국민감정이었다.

18일 밤에서 19일 투표가 끝날 시간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밤을 새우며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노무현 지지를 애원했는가.

부산에 사시는 시아버지에게 노무현 안 찍으면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눈물로 공갈·협박을 한 며느리를 알고 있다.

노무현의 승리는 배신을 증오하는 순수한 인간감정의 결과이기도 했다. 정몽준을 따라간 김민석의 배신을 보고 대전지법의 어느 판사는 법복을 벗고 노무현 선거운동원으로 나섰다. 그게 순수다.

이제 그 얘기는 그만 하자.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그만 하라고 하실 것이다. 정몽준이나 김민석에게는 너무나 아픈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오늘은 해야 한다.

다시 2002년 12월 18일이 떠오르고 정몽준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번에는 노무현 대신 유시민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정몽준이 유시민을 도와주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왜 정몽준이 유시민을 도와준다는 얘기를 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게 정말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먼저 말해야 할 일이 있다.
정몽준은 한나라당 중진회의에서 유시민에게 비판의 날을 세웠다.
유시민의 천안함 사고 언급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고를 폭발에 의한 사고로 보지 않는다고 했을 뿐이다. 증거도 없는데 어떻게 폭발로 보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했을 뿐이다. 이것이 잘못된 국가관이라는 것이다. 정몽준이 ‘국가관 심사관’이 된 것이다.

▲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최고위원이 12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경기도지사로 출마한 유시민 후보의 천안함 침몰사건 관련 발언을 질타하고 있다. ⓒ 뉴시스

그건 그렇다 치고 정몽준은 왜 유시민을 상대로 비판의 수위를 한껏 올렸을까. 유시민이 경기지사가 되면 정몽준에게는 강력한 라이벌이 생긴다.

국민들의 정몽준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정몽준은 한나라당의 당 대표며 차기 대권의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다. 비록 이루지 못하고 비난만 샀지만 그래도 대통령 출마까지 한 몸이 아닌가. 아버지도 대통령의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어받아야 하지 않는가.

미래의 라이벌을 미리 공격해 파괴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잠재욕망을 국민에게 과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선 유시민을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면 장차 자신과 싸우게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니까

헌데 생각을 잘못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노무현 지지를 철회하고 배신을 했다는 평가가 결국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결코, 본의가 아니었지만, 자신이 노무현의 킹메이커가 됐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같을 것이다. 딱하다.

‘천안함 소설 쓰기 언론들 보니까 졌다. 소설 쓰는 능력에서 기자를 못 따라 간다’라고 이외수 선생이 트위터에 글을 쓸 정도의 천안함 사고 언급을 두고 비판을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의도적 행위가 아닌가. 말하자면 ‘노무현 대통령 당선시키기’의 재판이라는 생각이다.

행위의 선악은 결과가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정몽준의 기본적 생각이 어찌 됐던 결과는 유시민을 도운 것이다.

어떤 행위든지 누구는 덕을 보고 누구는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이번 정몽준의 행위로 손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유시민과 겨루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 말은 않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을 것이다. 정몽준이 자기와 무슨 감정이 있다고 저렇게 확실하게 유시민을 돕느냐고 앙앙불락하고 있을 것이다. 유시민 비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난다는 것을 그들이 왜 모르겠는가.

이제 정몽준도 자기 입을 쥐어박으며 후회를 하겠지만 이미 그의 말은 국민들 머릿속에 박혀 있을 것이다. 정몽준이 물인지 불인지도 모르고 유시민을 돕는다고 생각하고 웃을 것이다.

적어도 일국의 도지사 꿈을 꾸는 사람은 나라의 소중한 재목이다. ‘클린턴’이나 ‘부시’도 주지사 출신이다. 지금 도지사 출마한 사람들에게도 왜 큰 꿈이 없으랴. 아니라면 거짓말쟁이다.

깜이 되느냐 아니냐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고 자기야 얼마든지 꿈을 꿀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아프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생존해 계실 때 생각이 난다. 가끔 뵙고 싶을 때 공휴일 찾아뵈었다. 독대는 안 하신다고 하지만 나야 벼슬 달라고 할 사람도 아니고 편하게 대해 주셨다.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말씀도 하신다. 워낙에 꾸미시지 않는 분이라서 솔직하게 말씀하신다. 언제인가 이런 말씀을 드렸다.

‘대통령님은 유시민을 어떻게 보시느냐’고. 그냥 웃으셨다. 나도 더 이상 여쭙지 않았다. 일어날 때쯤 되어서다.

‘좋은 재목이죠. 조금 다듬기만 하면 말입니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세상에 재목이야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찾기가 쉽지 않다. 경복궁 대들보를 찾기 위해 전국의 산을 이 잡듯 뒤진다지 않던가. 남대문 들보 감은 제사까지 지내며 벤다. 하물며 나라의 운명을 지고 갈 대통령감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우리 국민은 대통령 잘못 뽑아 지지리도 고생 많이 한 경험이 있다.
내 손으로 뽑았으니 손가락을 잘라 버릴 수도 없고 속만 앓는다.

정몽준이 알고 했던 모르고 했던 결과적으로는 이적행위를 했다.
그래서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서양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한 번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해라.’

능력이 모자라면 참모를 잘 둬야 한다. 그러나 너무 모자라면 참모도 골치가 아플 것이다. 다 팔자다.

 

2010년 5월 13일
이  기  명(전 노무현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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