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달이야 어느 누군들 멈출 수 있으랴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이제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6-07)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병원을 찾겠지. 의사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몸의 여기저기 살피고 진단하고 처방을 한다. 의사 말 잘 듣고 약 제대로 충실하게 잘 먹으면 병은 낫는다.
세상에는 이상한 환자도 있다. 자기가 진단을 한다. 이거 뭐 별거 아냐. 버티면 금방 날 거야. 주위에서 충고를 한다. 이거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의사 말을 잘 따라야 한다. 헌데 돌아오는 대답은 그게 아니다.
‘네가 뭘 알아’ ‘아파 봤어’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죽든지 말든지 내 버려두는 것이다. 의사도 말 안 듣는 환자는 어떻게 치료할 수 없다. 그러다가 인생 끝내는 것이다. 혹시 누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거야 마음대로다.
휘영청 밝은 달이 진다. 중천에 둥실 떠 구름 사이로 흘러가는 달을 보면서 시인은 지는 달이 아쉽지만 무슨 재주로 지는 달을 멈출 수 있으랴.
선거가 끝났다. 한나라당의 완패라고도 하고 참패라고도 하고 민주당의 완승이라고도 하고 국민의 승리라고도 한다. 어떤 해석을 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가 실패했음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패도 성공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실패를 거울삼아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걸 성공으로 바꾸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현명한 지도자가 할 일이다.
어떤가. 이명박 대통령이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들이 눈 크게 뜨고 보고 있다. 무척 원망스러울 것이다. 자신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참패라는 수모를 안겨 줬으니 왜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원망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국민을 하늘이라고 했거늘 원망해서야 되겠는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통렬한 자기반성이다.
그럼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 정권은 왜 국민의 심판을 받았는가. 심판을 받은 게 아니라고 한다면 왜 패했는가. 적어도 패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많은 대선공약을 내 놓았다. 공약이란 국민에게 자기가 지키겠다는 공적 약속이다. 지켰는가. 제대로 지켰으면 이번 선거 결과 같은 패배는 없었을 것이다.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은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까지 불러왔다. 수도하는 스님이 목숨까지 바치며 반대했다. 세종시는 어떤가. 세종시는 원안 그대로 시행하겠다는 게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헛공약이 됐다. 치열한 반대였다. 결과는 보는 것과 같다.
집권 초기부터 불러온 인사 난맥.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내각이라는 별명을 얻은 인사는 이미 출발부터 불안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정연주, 미네르바 YTN 등 언론사에 가해진 탄압은 이게 어느 시대의 정부인지 의심케 했다.
더욱이 정치보복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검찰에 의해 저질러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500만 조문객의 눈물과 촛불이 대한민국의 하늘을 밝히고 국민의 눈물이 강을 이룬 비극은 우리 역사상 최악의 정치탄압이라고 기록될 것이다.
그보다 먼저 ‘미친 소 너나 먹어.’ 하면서 온 국민이 궐기한 광우병 시위는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뒷동산에 올라 서울시내에서 울려 퍼지는 ‘아침이슬’을 들으며 눈물과 반성을 하게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고개를 깊이 숙여 국민에게 사과했다. 진심이려니 했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그는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기록으로 남기라고 엄명했다. 국민의 가슴은 어떨까.
언론장악은 제1과제였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용감무쌍한 전사들의 얼굴들을 보라.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특보출신들이 방송사를 장악했다. 임전무퇴. 돌격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겸손과는 처음부터 담을 싼 무리들이다. 겸손은 고사하고 점령군의 잔인함을 그대로 들어냈다.
KBS의 김인규는 정연주 사장 시절의 신뢰도 1위인 KBS를 꼴등으로 만들고 기자들은 취재현장에서 내쫓기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 사회를 본 김제동은 마이크를 뺏기고 밥줄이 끊겼다. 정관용 윤도현의 퇴출. 칼바람의 위력은 거칠 것이 없었다.
마치 조자룡의 헌 창 쓰듯 현란한 놀림으로 여의도 KBS는 피바다로 변했다. 광우병과 PD수첩의 한은 언론장악의 집념으로 변했다.
MBC는 어떤가. 원래 대가 약한 엄기영은 만만했다. 국민 앵커 손석희는 100분 토론에서 하차했다. 엄기영도 두 손 번쩍 들고 나가고 조인트 소용돌이를 몰고 온 김우룡은 자해 범이 됐다.
공수병 김재철이 대단하다. 포기의 달인이다. 언론인이기를 포기하고 신뢰를 포기하고 마침내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40여 명의 이르는 부하직원을 징계한 그에게 학살자라는 별칭은 부적절하다. 그가 뭘 믿고 저렇게 잔인무도하냐고 물으면 그건 어리석은 질문이다.
지금은 분명히 2010년이지만 우리의 국민의 악몽은 1970년대를 방황하고 있다. 독재의 유령들이 히죽거리고 있다.
전가에 보도처럼 세 불리하다 하면 뿌려지는 붉은 색깔. 노무현 추종세력은 좌빨이다. 그런 좌빨들이 선거에서 대량 당선됐다. 이 딱한 국민들아. 어쩌자고 좌빨들을 모두 당선시켰느냐고 절통해하는 탄식이 들려온다.
이쯤 얘길 하면 아주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50%는 어떻게 된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의 원동력인 50% 지지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딱 한 가지 해석이라면 이해가 가능하다. 바로 좌빨들의 음모다. 50%라는 가짜 지지율에 도취되어 이명박 대통령이 독단으로 국정을 운영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고 마침내 대한민국의 붕괴를 가져오게 한다는 거대한 음모.
날 욕하지 말라. 아직 멀쩡한 머리다. 그렇게라도 해석하지 않고는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혹 이것이 유언비어 유포죄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겁은 난다.
천안함 침몰 사건. 회심의 카드였을 것이다. 북한이 이런 사건을 저질러 주다니. 너희들이 우리를 돕는구나. 이게 천우신조로구나 하고 희열의 젖어 감격한 높은 분들은 안 계실까. 여론조사가 뒷받침하는 지지율을 보면서 선거는 하나 마나라고 휘파람을 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전쟁은 당장 눈앞에 있고 귀에는 포성의 환청이 들린다. 안보가 최고다. 이래도 안 믿을래.
결과는 어떤가. 뒤로 자빠졌다. 나타난 현상대로라면, 나타난 결과대로라면 지지율 50%도 군민합조단이 천안함 발표도 국민들은 하나도 믿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모두 뻥이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선거 결과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신뢰라는 것이다.
달이 기우는 것은 아무리 안타까워도 붙잡아 둘 수가 없다. 순리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미 저만큼 떠난 민심도 되돌려 올 수가 없다. 너무 멀리 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멀리 떠난 민심을 돌아오게 할 수가 있을까. 정정길 비서실장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사의를 표명했고 정운찬 총리는 그만둔다는 건지 더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루가 지나면 하루만큼 더 치사한 인생이 된다.
“이번 선거의 결과를 다 함께 성찰의 기회로 삼고 경제 살리기에 전념하자”고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다고 한다. 아직 미몽인 것 같다. 성찰은 대통령만 하면 된다. 국민들은 성찰할 것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보필하는 참모들만 뼈저린 성찰을 하면 된다. 마사지 참모나 성찰하면 된다.
비록 선거에서 참패를 하고 아직도 성찰의 주제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이며 우리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다. 미우나 고우나 2012년 임기까지 이 나라의 최고 국정 책임자다.
어느 국민이 자기 나라 대통령이 잘못하기를 바라겠는가. 비록 지는 달 같은 신세라 해도 국민들은 그가 대오각성 잘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인간은 착각의 명수다. 아마 착각하는 능력이 없다면 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제멋에 산다는 말은 바로 착각 속에 산다는 말과 같다. 선거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가 반드시 당선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50% 지지라는 여론을 이 대통령이 설마 착각을 했을까만 알뜰한 참모들은 십중팔구 착각 속에 대통령을 보필한 것 같다.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착각은 정부와 한나라당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특히 진보라고 하는 사람의 고집도 아니고 아집도 아닌 행위는 착각을 넘어 환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유는 다 알 것이다.
여기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착각이다. 만약에 이번 선거에서의 승리를 자기들 잘나서 지지해 준 것이라고 착각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민주당 예쁜 곳이 어디 있는가. 원님 덕분에 주라(나팔) 분다고 이번 선거는 순전히 한나라당 덕이다. 한나라당이 하도 못된 정치를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 없이 찍어 준 것이다.
벌써부터 이상한 징조가 보인다. 국회 원 구성에서 민주당 부의장에 출마한다는 박 모나 김 모.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나 한번 물어보라. 사람 좀 바꿔라. 걸어온 길을 보면 뻔하지 않은가.
또 한 가지. 영남이 어쩌고 호남이 어쩌고 입 벌리는 인간들은 민족의 이름으로 응징해야 한다. 우리 서프앙들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국민의 수준이 점점 높아간다. 정치 무관심을 자랑처럼 알던 젊은 층이 달라졌다. 이번에 그것을 보여주었다. 정치인들이 분수를 차릴 줄 알아야 한다. 착각도 계속하다 보면 불치병이 된다.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여론이라는 환각제에 취해 착각 속에 살았다. 이제 국민의 철퇴로 환각에서 깨어나고 국민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았다. 국민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리는 우울하다. 인적 쇄신은 남의 일인 것 같다. 선거참패는 책임 물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도리가 없다.
기우는 달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된다. 국민을 하늘이라고 한다. 천심을 거슬리는 자들에게 내리는 하늘의 심판은 피할 길이 없다.
중병의 증세는 본인이 제일 먼저 안다. 치료는 빨리할수록 좋다.
2010년 6월 7일
이 기 명(전 노무현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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