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길은 앞으로만 가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순수한 남자 2010. 6. 8. 11:05

길은 앞으로만 가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번호 168669  글쓴이 이기명 (kmlee36)  조회 1235  누리 211 (216-5, 9:26:1)  등록일 2010-6-8 08:48
대문 10


길은 앞으로만 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이 막혔으면 돌아가야지 길도 없는데 어떻게 가나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6-08)


개미를 주의 깊게 관찰해 보라. 배울 것이 참 많다. 부지런히 가다가 앞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재빨리 옆으로 돌아간다. 아주 꽉 막혔으면 몇 번 건드려 보다가 포기하고 뒤돌아 간다. 되지도 않을 짓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이다. 미물이지만 얼마나 현명한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때로는 미물보다도 더 못 나서 부끄럽다. 이번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먹물 좀 먹은 사람들이 더 그렇다. 그러나 진 것은 확실하고 앞으로 절대로 지들 한나라당 맘대로는 못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잘 알 것이다.

원래 정치하는 인간들이 머리는 잘 돌아서 (현명하다는 뜻이 아님) 자기 이익 챙기는 데는 도가 텄는데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얼마나 머리를 재빨리 굴렸을까 듣고 보지 않아도 뻔하다.

우선 서울을 생각해 보자. 25개 지역에서 겨우 4군데 건졌다. 간이 뚝 떨어졌을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낙선을 하고 눈물 흘리는 자신의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를 어쩌나.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야 하는데 앞은 꽉 막혔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아니 전부가 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몸서리가 쳐질 것이다.

자신을 개미라고 여기고 생각을 해보라. 대답은 저절로 나오지 않는가. 돌아가야지. 길을 찾아야지. 민심이라는 벽이 딱 버티고 있는데 도저히 넘을 수가 없다면 포기해야지. 뒤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이제 앞으로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자위해도 좋다. 죽을 각오를 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죽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더구나 정치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치사한데 죽을 결심을 해. 그보다는 다른 수를 생각하겠지.

원인을 분석할 것이다.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천안함 때문에 망했다고 할 수 있고 북풍을 원망하는 낙선자도 무지 많을 것이다. 원수 같은 여론조사 믿고 희희낙락거린 게 망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망친 원인은 없을까. 뭐가 더 있을 것 같다. 찝찝하다.

있다. 무릎을 탁 쳤다. 청와대다.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걸 빼고는 해답을 얻을 수가 없다. 그렇게 결론을 낼 것이다. 대통령의 책임이라. 겁이 더럭 난다. 누구보다 잘 안다. 청와대가 어떤 곳인지 잘 안다. 어떻게 할까. 떠들어 볼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지 않을까. 머리를 열심히 굴린다.

그러나 아니지. 죽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다니. 청와대가 뭔가. 이명박 대통령이 뭔가. 나부터 살고 봐야지. 금배지가 어떤 것인데 버려. 바퀴벌레처럼 모욕을 당해도 살아야 한다. 이를 갈고 맞서 보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이미 임기의 절반이 지나지 않았는가.

벌써 조짐이 수상쩍다. 한나라당의 젊은 의원들이 모여서 뭔가 꾸미고 있는 모양이다. 인적쇄신이 어쩌구 청와대 책임이 어떻고 하는 모양이다. 주변에서는 제까짓 것들이 뛰어 봤자 벼룩이고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지 무슨 수가 있겠느냐고 하지만 그게 아니다. 잔 매에 골병든다.

아무리 못 난 국회의원이라 해도 그중에는 배알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들 중에는 독재와 싸워 이겼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도 있다. 정태근 김성식 등은 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에서 일당백의 투사였다. 쓰레기하치장을 뒤져 보면 쓸 만한 물건도 있다. 한나라당에 희망을 걸어보는 이유다.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싼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이들이 자꾸 지껄여대면 이명박 대통령의 체면이 구겨진다.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대통령도 별거 아니로군. 애들이 겁도 없이 막 까부네. 까불어도 아무 말 못하네. 그럼 나도 한마디 해야지.

바로 이것이 가장 심각한 레임덕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말로 한다. 대통령의 말이 권위를 잃고 영이 서질 않고 이놈 저놈 다 한마디씩 하는데 무슨 수로 정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청와대 안에서 아무리 역정을 내셔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앞을 꽉 막은 벽을 뛰어넘으려고 해도 길이 없다. 보이지 않는 길이니 불도저로 밀어 버릴 수도 없다.

한나라당이 일을 내야지.

‘각하! 길이 끊겼으니 뒤로 돌아요.’

‘뭐라구? 뒤로 돌라고. 난 못 돌아.’

‘그럼 맘대로 하시구려.’

이명박 대통령이 한 성질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사태가 꼬여 가면 어떻게 되는가. 모두가 불행해진다.

4대강은 그냥 밀어붙이겠다고 했다. 누구 맘대로. 전남지사 박준영 믿고? 세종시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누구 맘대로.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까 도지사 권한이 막강하더라. 4대강 모래 파낸 거 도지사가 허락 안 하면 쌓아 놀 곳이 없다. 아무리 한나라당 시장이라도 오세훈이 광화문 광장에다 쌓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부산에 허남식이 할까. 대구시장이 할까. 울산시장이? 경북지사가?

괜히 해 보는 소리다. 사면초가라는 것은 이럴 때 쓰려고 만들어 놓은 고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집값 떨어진다고 ‘강부자’들이 생난리 법석을 떨 것이다. 세종시는? 벌써 물 건너갔다.

천안함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명박 정부가 구세주로 목을 매고 있는 미국이 어째 요상하다. 영 마음이 안 놓인다. 두 나라가 8일과 11일 한다던 서해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했다. 훈련에 참가한다던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의 출항은 취소됐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싱가포르에서 김태영 장관에게 우선 유엔에서 뭐가 나오나 지켜보고 다음 조처를 생각하고 싶다고 했다. 의장 성명도 불투명하단다.

거기다가 천안함과 관련해 세계 도처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왜 말들이 많아.’ 하고 야단을 치고 싶지만 한국도 아니고 벙어리 냉가슴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사 억지로 되는 것이 없다.

하기야 바로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듯 서슬이 퍼렇던 이명박 대통령도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다고 했다. 숨을 고르는 것인가. 사태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인가.

좌우간 사방을 돌아봐도 싹수가 보이는 것이 별로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7월 재보선도 물 건넌 갈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이른바 ‘확인레임덕’이 되는 것이 아닌가. 무슨 동력으로 국회를 움직여 정책을 집행해 나간단 말인가.

그래도 믿는 구석은 하나 있다. 아직 임기의 반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부정적인 인간은 술이 겨우 반 잔밖에 안 남았다고 낙담을 하지만 긍정적인 인간은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한다. 절반이 남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기대 볼만한 또 한 가지 변수가 있다. 바로 민주당이다. 지금 6·2선거에서 압승했다고 기고만장한 민주당은 공격의 수위를 한껏 높이고 있다. 그러나 속을 파 보면 제각각 논다.

국민이 제발 물러나라고 하는 인물들이 죽기 살기로 당권장악에 혈안이다. 그게 잘 될 것인가. 안 되지. 그럼 깽판 놀 것이다. 원래 그런 족속들이다. 

그렇게 전열이 깨지고 7월 재보선에서 죽을 쑤면 한나라당이 살아날 수 있다. ‘봐라 국민은 아직 한나라당을 믿고 있지 않으냐.’ 하면서 밀어붙일 것이다. 그렇게 한나라당이 민주당 덕을 보는 것이다. 아니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당의 덕을 톡톡히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100%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럼 100% 믿을 것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이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변화다. 이번 선거 이후 국민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국정쇄신이다. 소통이다. 독주의 스톱이다. 그러나 꿈쩍도 안 했다. 아니 안 한다.

“선거 결과를 다 함께 성찰의 기회로 삼고 경제 살리기에 전념하자”는 말 한마디다. 국민들은 실망했다. 이건 민심과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더욱 기막힌 말이 나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 왈.

바람을 쫓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공천을 잘못해서 졌다고도 했다. 바람이라도 좋다. 바람이 무엇인가. 국민의 호흡이다. 한숨 소리다.

기가 막힌다. 민심과 정면대결을 해서 이기겠다는 것이다. 민심의 벽을 넘겠다는 것이다. 국민을 이겨 먹고 없는 길은 뚫어서라도 가겠다는 것이다. 뚫는 데는 자신 있다는 것인가.

착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착각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번 선거에서 질 수가 없다. 생각해 보자. 바로 서해에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정에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46명의 고귀한 국민의 아들이 숨졌다.

최고의 안보를 자랑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는 무려 50%다. 이런데 어떻게 선거에서 질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을 성찰의 기회로 삼겠다는 말 한마디로 그냥 넘어갈 수 있다면 보통 심장이 아니다.

청와대 때리는 ‘친박’… 불길 막는 ‘친이’ -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국회의원 워크샵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쇄신요구가 봇물처럼 터졌다. 대통령 빼고 다 바꾸라고 했다. 대통령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청와대는 침묵이다. 침묵은 금인가. 그러나 전에는 말을 너무 많이 했고 그래서 마사지도 많았다.

정치는 절대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도 없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벨기에의 극작가 ‘메테를링크’가 한 말이다. 나폴레옹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간다고 아무리 비키라고 해도 운명은 비키지 않는다. 불도저로 밀면 비킬까.

길은 앞으로만 가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0년 6월 8일
이  기  명(전 노무현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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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68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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