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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바의 한국교육에 대한 순진한 생각;'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순수한 남자 2010. 9. 21. 16:25

오마바의 한국교육에 대한 순진한 생각;'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번호 201378  글쓴이 명덕  조회 62  누리 15 (15-0, 0:3:0)  등록일 2010-9-21 12:07
대문 2


오바마의 한국교육에 대한 순진한 생각
한국의 아이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서프라이즈 / 명덕 / 2010-09-21)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미치 앨봄(Mich Albom)이 이달 방한했었다. 이 책은 41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1,600여만 부, 우리나라에서도 3백여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잘 알다시피 이 책은 대학(브랜다이스 대학) 시절 은사였던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교수가 1995년 루게릭병으로 죽기 직전 몇 달 전부터 매주 화요일에 만나 인생과 죽음, 행복을 비롯한 일상의 삶에 관한 대화를 정리해 내 놓은 논픽션이다.

그에게는 스승이 그의 인생의 멘토다. 그 책에는 삶, 죽음, 사랑, 결혼, 죽기 전에 인생에서 아쉬운 것에 대한 모리 교수의 소회가 가득 차 있다. 그는 한국에서 책이 많이 팔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일을 많이 할수록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가 않다. 세상에는 그릇되게 바쁜 사람이 많다. 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을까 묻는 사람들이 책에서 해답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 평생의 은사인 모리 교수를 통해 인생의 희망의 싹을 키우고, 그의 가르침을 통해 “인생은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의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인생에서의 중요한 것은 ‘타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sympathy)과 함께 사는 즐거움 같은 것이다. 사랑과 행복이 필요한 가족 간의 긴밀한 대화를 매우 중시한다.

코리아 헤럴드 기사에 따르면, 모리가 죽기 전에 TV에서 세상의 어린아이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자, 울기 시작했단다. 그 나라에 가본 적이 없는데, 왜 우느냐고 묻자. “네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고통당하는 세상 사람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들이 슬픔이 너의 슬픔이니까.” (2010/9/6)

그와의 대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제대로 죽는 법, 후회 없이 사는 법이다. 죽음은 끝이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의 삶의 일부라는 것(death really is a part of our lives)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관심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 수밖에 없다. 그의 스승이 가르쳐 준 대로, 타자에게 준 긍정적 변화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에서 봉사활동을 중요한 것으로 본다. 실제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 현재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노숙자 쉼터와 저소득층 주택 건설 등 활발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아이들은 100년 전의 우리 아이들과 같다’

그가 한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의 아이들은 100년 전의 우리 아이들과 같다’(Korea's kids just like ours, 100 years ago/ Detroit Free Press; 9월 12일)라는 칼럼을 썼다. 그 칼럼은 오바마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을 비판하는 글이다.

지난해에 오바마는 “한국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미국 바로 여기서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학교와 공부하는 시간에 대해 말한 것인데, 한국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얼마나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는지, 다시 말해 한 해에 한 달 이상 미국보다 더 공부한다는 것이고,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오바마의 말의 요지였다.

한국을 방문해 이 칼럼을 쓴 미치 앨봄은 직접 돌아본 한국의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고하고 있다. 직접 고등학생들을 만나 대화하고 난 후, 앨봄은 “우리는 한국에서 하는 것을 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신뢰할 수 없으니까”라는 확신을 가지고 오바마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오바마에게 한국의 교육 현장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훈계를 주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한국의 학교는 풀타임 직장에다 풀타임 결혼생활과 마찬가지로 여긴다는 것이다. 주말을 물론이고 온종일 밤낮을 학교생활에 매달린다. 공교육 위에는 영어 학원이 있다. 가족은 어린애를 가르치기 위해 갈라져야 한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 학교에 머물며 삼시 삼 때를 학교에서 다 해결해야 한다. 치어리딩하는 일단의 무리, Cancún(멕시코의 휴양지)으로의 휴식, 자기 존중심을 기르고, 인종 집단을 찬양하고, 예술을 탐구하는 것은 들을 수 없다.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환희, “High School Musical”, 고등학생으로서의 재기 발랄한 성, 패션, 유머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 미국의 아이들이 미국의 학교 체제와 전혀 같지 않는 이 한국의 아이들을 모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한국의 교육목표는 성공을 위한 투쟁

한국의 교육에는 인생의 승리만을 위한 ‘투쟁’만이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들은 미국군에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와 지위,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영어를 말하기 위해 미국인이 되고자 할 뿐이다. 결코 ‘미국 시민’이란 의식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 언론매체로부터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어떻게 하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미국에서는 흔히 있는 질문이 아니다. 어쨌든 한국을 방문한 작가에게 물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 교실에서 시작된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은 직장에도 스며들고 있다. 여기는 엄격한 시간과 불충분한 휴가가 규범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 태도는 20세기 초 미국 이민자들 중에서 들었던 바로 그 말과 닮았다. “만일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지 못하다면, 대학에 갈 수 없고, 대학에 가지 못한다면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없고, 직업을 얻지 못한다면 루저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잔소리 같은 훈계에 어떤 수치심 따위는 없다는 것이고, 그런 권유를 진부하고 낡은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최소한 국가적 강박관념은 아니라 할지라도, 국가적 자부심의 일부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어떻게 미국 아이들이 그것을 모방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훈육돼지도 않았다. 우리는 배고프지도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설령 부모가 그렇게 말한다 해도 아이들은 부모를 무시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나이 든 사람에 대한 존경이 보다 중요하다. 나이에 따른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이한 언어가 있고, 더 나이 든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좀 더 젊은 사람은 또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넨다. 이런 사회에서는 10살 먹은 애가 가족의 중요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되고, 부모가 힘없는 중심이 되는 코미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교육자의 지적처럼 한국에서 가족은 미래의 학교 행태가 시작되는 곳이다.


인생은 의미를 발견하는 투쟁이어야 한다

아무튼 한국의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그 반대일 수 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내 책을 사랑하는 십 대들을 만났다. 그 책의 선생님이 성적이 아니라, 공감(compassion), 인간애(humanity)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이 “내 인생에서 모리를 만나기를 바란다”고 나에게 말했다. 좀 더 나이 든 아이들은 그렇게 바쁘게 일하고 연구한다면 어떻게 당신의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하는지를 의아해한다. 한국의 아이들의 공부방식은, 어떤 규정된 시험으로는 놀라운 만큼 잘하지만, 그들이 미국에 오면 미국의 교육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종종 낙오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국 이 모든 사실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학생과 동등하게 높은 성적을 받도록 미국의 아이들은 내몰아 좀 더 학교에서 수업을 연장시키려 하는 것은 나이브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성공은 한국학생의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그들의 문젯거리도 또한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더 웃고, 더 운동을 즐기고, 더 개방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한국의 아이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들은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아이들이다. 어떤 교육체제를 내가 선호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아이들과 미국 아이들이 애플과 오렌지(apples and oranges)라는, 전혀 ‘환경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차이는 학교에 매달린 생활의 길이만이 다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는 마을 하나가 다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교육시키는 데는 국가 전체가 들어간다.

요컨대 교육은 한 가정에 맡길 일이 아니고,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족에 교육을 맡기면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고, 공교육은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앨봄의 인생과 죽음, 행복에 대한 모리 교수와의 대화를 떠올린다면, 오직 인생의 ‘외면적 성공’을 위한 교육 투쟁에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명덕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0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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