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고향이란다. 알아보지도 못하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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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9-21) 넓은 벌 동쪽 끝으로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섞은 별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국보’같은 소중한 시인 정지용의 시 ‘향수’다. 우리말을 ‘정지용’처럼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대표작인 ‘향수’를 읽노라면 고향의 기억조차 없는 사람도 아! 고향이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구나. 하고 고향의 그림을 나름대로 아름답게 그릴 것 같다. 정지용은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 때문에 불행한 인생을 보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북으로 가서 병사했다고도 전한다. 수십만의 이산가족들. 민족의 비극은 위대한 시인도 비켜갈 수가 없었다. 추석이다. 남의 나라 명절이 아닌 우리의 명절이다. 전에는 추석 때 남북 이산가족이 서로 만났다. 지금은 왜 안 되는가. 또 다른 한이다. 온 나라가 만남으로 가슴이 설렌다. 지역을 가릴 것 없이 모두들 명절을 맞는 기쁨으로 들 떠 있다. 기차역에도 고속버스터미널에도 헤어졌던 가족과 만나는 설렘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 있다. 기차역이나 터미널 TV에 고향을 찾는 설레는 얼굴이 보이는가 하면 바로 이어지는 화면에서 독거노인의 참담한 모습이 보인다. 평일에는 무의탁 노인을 위한 급식소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추석에는 연휴라 문을 닫는다. 어디서 먹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가. 하반신이 마비된 한 여성은 자원봉사자가 찾아오지 않는 연휴 때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면서도 티 없는 미소를 진다. 미소인가. 눈물인가. 역대합실의 한구석. 또 다른 모습은 쾡한 눈의 표정 없는 얼굴이다. 그들의 가슴엔들 왜 그리운 얼굴이 없겠는가. 왜 고향의 모습이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갈 곳이 없다. 아니 갈 수가 없다. 잃어버린 고향이다. 고향을 잃은 슬픈 인생이다. 역 구내에는 기름진 얼굴을 하고 어깨에는 띠를 두른 채 여야 정치인들이 귀성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안상수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의 어색한 미소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솔직한 말을 그들에게 차마 다 전할 수는 없다. 한마디만 전한다. 제발 사람 노릇 좀 하라는 것이다. 취한 채 빈 술병 옆에 쓰러져 있는 노숙자의 기억 속에 고향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꿈속에서 부모 형제와 함께 즐거운 얘기를 나누고 있을까. 지친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어려웠던 시절,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공돌이 공순이로 푼돈을 벌던 농촌의 처녀 총각들이 손마다 정성껏 마련한 보따리를 들고 기차를 탔다. 고향역에서 10여 리 길을 걸어 동구 밖에 이르면 실타래 같이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 속에 솔가지 타는 냄새가 향기처럼 코끝에 서린다. 반가움에 뛰어나와 눈물짓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울먹이는 집 떠났던 아들딸들. 부모 자식 간에 이 날은 최고였다. 그것이 우리의 추석이었다. 지금도 고향을 찾는다. 추석 때 차례를 지내기 위해 힘겹게 오르던 조상님 묘소는 고층 아파트로 변했다. 마을 앞 실개천은 아스팔트로 변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낯선 눈길을 보낸다. 고향은 어디로 갔는가. 몇백 년을 함께 살아온 느티나무도 이웃도 사라졌다. 물고기 잡던 개천도 사라졌다. 어디를 봐도 낯익은 곳이 없다. 이제 고향은 남의 땅. 서로가 이방인이다. 이제 정겨운 이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고향은 마음속에만 살아 있다. 강이 사라지고 산이 깎이고 조상의 묘소가 사라졌다. 명절 때 모여 막걸리 한 잔 나누던 정겨운 이웃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디에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다. 개발을 면한 산꼭대기 절벽 위에 서서 봉화산 부엉이 바위를 생각한다. 사는 것이 무엇인가. 그의 삶을 반만이라도 이어 갈 수 있다면. 온통 아파트로 변한 고향의 마을을 내려다보며 저기가 누구 집이었지. 저기 몇백 년 묵은 느티나무가 서 있었지. 동네우물은 저쯤 있었고 어느새 눈물이 고인다. 고향에 아파트 하나를 마련해 늙어가는 옛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사는 게 아니란다. 눈 씻고 찾아도 대를 이어 사는 젊은이들은 없다. 하루종일 TV 앞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는 자신은 이미 죽은 송장이라고 했다. 황폐한 골짜기 같은 주름살이 묘지처럼 느껴진다. 서로가 죽은 모습을 보면서 이건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고 눈물짓는다. TV에는 추석을 맞아 불우 이웃돕기가 법석이다. 고마운 일이다. 대통령 부부도 TV에 나왔단다.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의 권유를 받아들여 아프리카 순방 중에 봉사를 할 것이란다. 그는 가진 사람들이 안 가진 사람들에게 나누는 문화가 매우 소중하다고 지당한 말도 했단다. 빌 게이츠가 말했다. ‘힘든 결정이었지만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으로 엄청난 부를 얻었고 지금은 그것을 환원할 때입니다. 그것은 나의 책임이며 또 최선의 방식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재산 99%를 사회에 환원하고 자녀들에게는 1,000만 달러씩만 상속하면서 한 말이다. 이건 대한민국 재벌이 아닌 미국재벌의 얘기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나 빌 게이츠의 말이나 모두 옳은 말이다. 문제는 누가 믿느냐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초 참 많은 약속을 했다. 이번에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공정은 특히 강조했다. 아직도 안 잊고 있구나. 국민들이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의 저 생각을 일관되게 가지고 있기를 바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재산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이런저런 말도 많았지만 만들었다. 부의 양극화로 비판을 받는 MB정부도 이번 이 대통령의 아프리카 봉사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는데 기여하기를 온 국민과 함께 기원해야 할 것이다.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도 대통령의 뜻을 반드시 받들 것으로 국민은 믿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빌 게이츠와 함께 아프리카 봉사를 하고 돌아오면 우리 사회가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리라고 확신한다. 윗물이 이렇게 깨끗하게 흐르는데 아랫물이 더러울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도덕적 위상이 세계적으로 빛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국민도 이 기쁨을 함께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MB 만세다. 정당들은 추석을 맞이해서 민심잡기에 여념이 없다. 그럴 수밖에. 추석은 어쨌던 민족 최대의 명절이고 설과 함께 전국의 흩어졌던 국민들이 모이는 때다. 정당은 무슨 거짓말을 해서라도 자기 당을 선전하려고 든다. 국회의원은 자기 자랑하기에 바쁜 때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나라당은 추락한 여론을 이끌어 보려고 눈이 벌겋다. 특히 4대강과 천안함으로 잃은 점수를 만회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추석이라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것이 옳은 것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국민은 그만큼 현명해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두렵고 겁이 난다. 더구나 생각을 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지난 6·2선거와 8.8개각은 악몽이었다. 몸서리가 쳐진다. 4대강을 두고 보자. 한마디로 국민들은 대다수가 반대다. MB와 한나라당이 무슨 소리를 해도 다수는 반대다. 왜 멀쩡한 강을 뒤엎어 망치느냐는 것이다. 집 한 채를 지어도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고 지혜를 모으는데 나라의 명운이 왔다갔다하는 국토의 대 변경을 이렇게 쉽게 해도 되는 것인가. 회복할 수 없는 대재앙이 될 수 있는 4대강 사업을 이렇게 하꼬방(판잣집) 짓듯이 뚝딱 해 치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반대여론을 죽이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면 4대강이 제대로 흐를 것인가. 나지도 않는 홍수에 무슨 예방이며 보족한 물도 아닌데 웬 물 부족 타령인가. 웬 놈의 카지노 선박 타령인가. 신정환이 불러다 선장 시킬 것인가. 대통령이 밀어붙이면 해야 되는 것이고 성공한다는 사고는 왕권시대, 독재시대 사고다. 정 그렇게 해야 된다면 국민투표라도 하라는 것이다. 세계 환경기구에서도 반대를 하고 외국의 경우 운하로 파괴된 땅을 다시 원상으로 회복하는 대공사가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이런 대역사를 왜 특정 지역출신의 기업들이 모두 독차지하는가. 이것이 바로 특정 세력을 위한 공사라는 지적에 제대로 된 대답한 마디 할 수 있는가. 포항지역의 특정학교 출신들이 공사를 독점했다는 사실은 4대강 사업의 불신이 근거 있음을 말해 준다. 여론 장난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청와대가 다음 아고라에 4대강을 띄우려는 글을 올렸다가 망신만 당했다. 4대강 사업에 찬성은 174와 반대 3010이다. “강으로 연결되면 한국의 갈라진 정서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란 MB의 말로 설득을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는 국민이다. 국민들은 4대강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잘못된 지도자의 판단으로 기억할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국토의 파괴와 낭비를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죽고 난 다음에도 눈을 못 감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신뢰를 한다는 천주교 신부님들 천백여 명이 모여 4대강 사업 반대 성명을 냈다. 4대 종교단체에서 반대를 한다. 천안함을 보자. 남북 군사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북한의 사과를 전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의 고위 당국자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귀가 의심을 할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초 천안함 사건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를 북한에 요구했지만 지금은 일종의 애도를 표시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요구가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어어, 이게 무슨 소리야. 태산이 울었는데 겨우 쥐 한 마리. 고향의 친구가 말했다. 도대체 믿을 걸 믿으라고 해야 되지 않느냐고 했다. 출발이 틀렸다는 것이다. 국민을 바보로 알았다는 것이다. “도둑놈이 어떻게 담을 넘어들어와 어떻게 도둑질을 하고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는 경찰이 알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세계에서 제일 잘난 미국도 모른다고 한다. CCTV보다 수백 배나 성능이 좋은 하늘의 인공위성이 떠 있고 이지스 함이 훈련 중이었는데도 그때가 낮잠 시간이었나. 왜 이렇게 감추는 것이 많은가. 도무지 믿지 못할 것이 너무나 많아서 믿고 싶어도 병신 되는 것 같아서 믿지를 못하겠다는 친구의 말을 그냥 들어야만 했다. 애초에 국민의 70%가 북한의 소행으로 믿었는데 왜 나중에 70%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러시아 조사단의 조사결과 미발표와 중국의 이상한 침묵은 정부의 등에서 진땀이 나게 했다. 우리 국민은 아직도 혼미한 상태로 헤맨다. 어쩔 것인가. 이런 불안한 상태로 남북 대결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가. 늙은 친구의 냉소적 반응이 겁난다. 우리는 4대강과 천안함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4대강으로 잃은 것은 아름다운 강산이다. 잃어버린 민심이다. 또한,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46명의 젊은 생명이 사라졌다. 국민의 신뢰도 잃었다. 사람의 마음은 겁박으로 굴복시킬 수도 없고 회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잃고 언제 이를 다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각할수록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개념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그럼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 진정 주적은 사라진 것인가. 믿어도 되는가. 다시 혼란이 온다. 무엇이 진정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가. 이제 다시는 고향을 찾지 않는다. 고향도 잃었다. 그나마 마음속에서 그리던 고향도 이제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이제 한 줌 재로 변한 육신은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고 영혼이 머물 고향의 하늘도 잃고 우주의 미아가 될 것이다.
2010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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