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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4대강사업, 재앙적 홍수 피해 몰고올 것"

순수한 남자 2010. 9. 23. 19:20
이준구 "4대강사업, 재앙적 홍수 피해 몰고올 것"
번호 201762  글쓴이 뷰스앤뉴스  조회 687  누리 110 (115-5, 5:18:1)  등록일 2010-9-23 17:06
대문 10


추석연휴를 강타한 수해
잘못된 우선순위에 의한 인재(人災)

(서울대 경제학부 / 이준구 / 2010-09-23)


언제 그런 무시무시한 물폭탄을 쏟아부었느냐는 듯, 추석연휴 마지막 날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하다. 그렇지만 난데없는 수해에 명절마저 잃어버린 수도권의 수많은 주민들의 가슴은 시꺼멓게 멍이 들어 있다. 서울 같은 현대적 대도시에서 그런 물난리가 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겉모습만 보면 세계 어느 나라의 대도시 못지않게 얼마나 번지르르하게 꾸며 놓고 있는가? 명품도시를 꿈꾼다는 서울이지만, 도시 최중심부가 완전히 물에 잠겨버리는 수모를 당해 버리고 말았다.

거의 호수처럼 변해 버린 광화문 네거리를 오고 가는 자동차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살풍경한 광화문 광장을 만든답시고 쏟아부은 돈은 하수도와 배수시설 정비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도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배수능력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볼품없이 크기만 한 세종대왕 동상 만들어 세우고 철마다 꽃을 바꿔 심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 추석 연휴 첫날인 21일 오후 서울 지역에 천둥ㆍ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최고 100㎜에 달하는 기습폭우가 쏟아지면서 일부 도로가 통제되고 주택이 침수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물에 잠긴 광화문 사거리에서 얕은 도로로 피해 운행하는 차량들. ⓒ연합뉴스

그동안 서울시가 ‘디자인 서울’이니 ‘한강 르네상스’니 하며 난리법석을 떨어온 것을 생각해 보면 입맛이 더욱 씁쓸하다. 이번의 수해는 내실을 제쳐두고 겉모양 꾸미기에만 급급해 왔던 서울시의 전시행정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해 주고 있다. 청계천에 무슨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에 바로 그 옆을 지나는 하수도관의 상태를 점검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냐고 묻고 싶다. 이번의 수해는 이렇게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우선순위에 의해 빚어진 인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번 수해를 겪으면서 또 한 가지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전국적인 재난예방체계가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잘 알듯, 올해 일어난 수해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4대강의 본류와는 거리가 먼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번에 경험한 서울시의 수해도 한강 본류와는 아무 상관없는 도심 한가운데서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관심은 온통 4대강 사업에 쏠려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나는 수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2백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홍수까지 예방하기 위해 4대강 사업이 필요하다고 억지를 피운다. 그 억지 논리를 듣고 있으면 우리 사회에서 한때 유행했던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머리에 떠오른다. 유비무환이라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 미리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으면 화를 피할 수 있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말세에 대비한다면 이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동안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홍수예방의 최우선순위를 본류가 아닌 지천 정비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과거의 홍수통계를 봐도 그렇고, 당장 올해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그렇지만, 거의 모든 홍수피해가 지천에서 발생하고 있다. 4대강 본류를 아무리 뜯어고쳐 본들 지천에서 해마다 일어나는 수해는 전혀 막을 수 없다. 지천 정비에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지적에 한 점 틀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쓸모없이 4대강 본류 파헤치기에 여념이 없다.

정부는 4대강 사업 해서 몇 년만 홍수 피해를 막아도 22조 원의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고 말한다. 1년에 발생하는 평균적 홍수 피해액이 4조 원이나 되니 5, 6년이면 본전을 뽑는다는 계산일 터이다. 4대강 사업이 끝나면 우리나라가 영원히 홍수 피해에서 자유로운 지상 유일의 나라가 된다는 말이다. 아, 이건 정말로 멋진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 꿈의 실현가능성은 0 그 자체다. 나는 4대강 사업이 아무리 성공적으로 끝난다 해도 홍수 피해는 거의 줄지 않으리라고 단언한다.

이번 물난리를 보면서 4대강 사업이 오히려 홍수 피해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단지 기우에 그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 여러 개의 댐으로 물길을 막은 구조에서는 각 댐 사이의 적절한 조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된다. 즉 여러 댐들이 강수량에 따라 적절히 수문을 여닫아 방류량을 조절해야만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댐으로 물을 가둬 수량을 불려놓았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이 조정 메커니즘에 문제가 생긴다면 거의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단지 상상만 할 수 있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실제로 조정 메커니즘은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붕괴될 수 있다. 무엇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담당자들의 실수 혹은 태만에 의한 붕괴 가능성이다. 댐의 숫자가 많을수록 조정의 작업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질 텐데, 이런 상황에서는 사소한 잘못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인간인 이상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게으름을 부릴 수도 있는데, 이로 인한 사고 발생의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의 발생에 의한 조정 메커니즘의 붕괴다. 요즈음 기상이변이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돌발사태가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100년 만에 처음 일어나는 일이라든지 기상관측을 시작한 후 처음 일어나는 일이라는 등의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조정 메커니즘이라 할지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가 발생하면 무력하게 붕괴될 수 있다. 이런 일이 전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감히 손을 들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비화된 과정을 생각해 보면 돌발사태에 의한 조정 메커니즘의 붕괴 가능성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금융위기에서 역설적이었던 점은 위험에 대한 대비수단으로 만들어졌던 금융상품들이 위험을 증폭시킨 장본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위험 대비수단은 평상시의 위험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그런 정도의 위험은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지만, 문제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주택가격의 대폭락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연쇄반응을 통해 금융시스템의 대붕괴(meltdown)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4대강 사업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조정 메커니즘의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강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놓아두면 홍수의 발생 횟수가 늘어나겠지만 여러 가지 자연방어 시스템 덕분에 홍수 피해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처럼 강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체제하에서는 일단 홍수가 나면 방어 시스템이 전무하기 때문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유럽 여러 나라들이 강에 설치된 인공구조물들을 헐어내고 자연상태로 되돌리려고 노력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비록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강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 잘못된 것임을 뼈저리게 반성했기 때문이다. 굳이 엄청난 돈 들여가며 그들이 간 잘못된 길을 골라서 가려하는 우리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2백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홍수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해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홍수에 대비하는 일이다.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면 우리 땅 어딘가에서는 해마다 틀림없이 수해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것처럼 분명한 사실이 없다. 이렇게 훨씬 더 시급한 과제는 뒷전에 미뤄둔 채 쓸모없는 4대강 사업에 골몰하는 정부를 보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잘못된 우선순위를 한시라도 빨리 바로잡지 않는 한, 수해는 해마다 단골손님처럼 찾아와 우리를 괴롭히고 갈 것이다. 추석연휴를 강타한 수해가 잘못된 우선순위에 의해 빚어진 인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나마 재난예방체계 근본적인 손질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준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처 : http://jkl123.com/sub3_1.htm?table=my1&st=view&page=1&id=107&limit=&keykind=&keyword=&bo_class=&fpage=&spage=




※ 본 글에는 함께 생각해보고싶은 내용을 참고삼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론, 학문' 활동의 자유는 헌법 21조와 22조로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 학문, 토론' 등 공익적 목적에 적합한 공연과 자료활용은 저작권법상으로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0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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