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참패, 아~그리운 청교도정신
[기자수첩] G20, 헬리콥터로 달러 뿌리는 양적완화 등 일방주의 산물
(미디어오늘 / 강은미 / 2010-11-14)
12일 폐막한 G20 서울 정상회의의 성과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국내에서의 평가는 명암이 뚜렷이 엇갈린 가운데 국외에서의 평가는 대체로 기대 이하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세계의 경찰’로 군림해온 미국이 이번 회의에서 완패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국제무대에서 점점 힘을 잃어 가는 미국의 초라한 모습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이번 서울 G20 주 의제인 환율과 경상수지 문제는 결국 안을 들여다보면 미국이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한국을 내세워 미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안화 평가절상, 무역 불균형 해소는 달러 약세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 나아가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려는 데 있다. 하지만 브라질, 중국, 독일 등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합의에 실패했다.
AP통신은 서울발 분석기사를 통해 “중국을 압박해 위안화를 절상시키려던 미국의 계획이 다른 나라의 지지를 얻지 못해 수포로 돌아갔다”며 “적어도 경제문제에 관한 한 국제무대에서 워싱턴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자신들의 뜻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단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제65차 유엔총회에서 실시된 미국의 쿠바에 대한 경제·무역제재 조치 해제 결의안 투표에서도 미국은 참패를 맛봐야 했다. 이 법안은 192개 전체 회원국 가운데 찬성 187개국, 반대 2개국, 기권 3개국으로 통과됐다. 반대한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뿐이었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번번이 왕따를 당하는 데는 거짓과 왜곡, 부당한 힘의 논리, 일방주의, 이중 잣대, 설득력 없는 군사개입, 내정간섭 등 국제관계에서 그동안 미국이 보여 온 행태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한·미 FTA는 양국 간에 수차례 협상을 통해 지난 2007년 5월 27일 협정문을 주고받은 바 있다. 협정문 발효를 위한 국회비준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3년 6개월 가까이 끌어오다 미국은 다시 내용을 수정하자고 한국을 압박했고 이번엔 밀실 재협상을 했다. 협정문에 서명까지 했으면 통과가 되든 안 되든 절차대로 양국은 국회비준 절차에 들어가는 게 순서다. 추가조치는 비준에 실패했을 때, 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국의 입장은 조금도 고려치 않고 자국의 정치상황에 맞춰 내용과 시기 등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미국의 태도는 우리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뒤,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낸다며 벌인 이라크 전쟁은 전 세계인의 비난을 받을 만한 사건이었다. 기밀고발 전문사이트인 위키리크스는 지난달 22일 이라크 전쟁으로 총 10만 9천 명이 사망했으며 이 가운데 3분의 2인 6만 6천여 명이 민간인이었다고 폭로했다. 전쟁기간 중 수많은 오인사살과 고문이 자행됐지만 모두 은폐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범죄행위에 대해 미국은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전쟁의 당사자였던 부시 대통령은 회고록을 출간하고 골프를 즐기며 노년을 여유롭게 보내는 모순이 정의와 이성의 눈에 어긋나 보일 수밖에 없다.
저명한 동아시아 전문가이자 국제정치학계의 거목인 찰머스 존슨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명예교수는 <제국의 해체>에서 “미국이 전 세계 수백 곳에 군사 기지를 운영하는 등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처럼 예산을 쓰면 머지않아 비참한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루빨리 전쟁이나 군사 개입에서 손을 떼고 점점 피폐해지는 미국 경제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정의롭지 못하고 힘의 논리만을 앞세운 명분 없는 일방주의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더 이상 얻을 수 없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이 세계평화에 위협이 된다고 선전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먼저 폐기한다면 모든 국가로부터 지지와 박수를 받을 수 있다.
무역수지 흑·적자폭의 가이드라인을 정할 것이 아니라 서브프라임의 원인이 된 월가의 탐욕을 적절히 제어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공격하기에 앞서 달러를 무차별적으로 찍어내는 양적완화 조치를 중단하는 게 먼저다.
미국은 근면과 절약에 기초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초기의 청교도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태어날 때는 스토아(금욕주의)학파이지만 몰락할 때는 에피큐로스(쾌락주의)학파가 된다”는 역사학자 윌 듀란트의 말이 지금 미국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역사·경제·미래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미국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국제무대에서 하차하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미국사회는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