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탐사기

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5)

순수한 남자 2010. 11. 14. 18:13

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5)
번호 206369  글쓴이 김제영  조회 1126  누리 105 (105-0, 5:14:0)  등록일 2010-10-10 08:11
대문 7


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5)
아케메니언 캐피탈(Capital)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서프라이즈 / 김제영 / 2010-10-10)
 

만일 알렉산더(Alexander)가 태어나지 않았거나 태어났어도 평범하게 세상을 살다가 갔더라면 오늘날 인류는 지구 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석조 예술문화의 보고(寶庫)를 자자손손(子子孫孫) 후대에 물려준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호머 (Homer)의 오디세이(Odyssey)를 즐겨 읽고 싸움터에까지 호머의 시집을 휴대하고 다녔다는 알렉산더의 정서(情緖)가 어찌하여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과 솜씨로 구현해낸 인류 석조문화의 진수(眞髓)요 거봉인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궁전에 불을 지를 수 있었을까.

지중해 연안 70개 도시에 알렉산더는 자신의 이름으로 전적(戰績)을 기념하여 동일하게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라고 명명했다. 정복(征服)을 인간승리로 착각하고 있는 전쟁영웅 알렉산더의 광기(狂氣)의 연장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알렉산더는 페르샤의 위대한 미술 유적을 파괴한 죄를 물어 인류의 전 명의로 징벌되어져야 할 것이다. Great King에서 Mad(미친) King으로.

현재 남겨진 잔해만으로도 아케메니언 (Achaemenian)의 수도(Capital) 페르세폴리스의 장대한 규모와 구조물의 용자가 눈에 보인다. 페르세폴리스는 곧 아케메니언 제국의 얼굴이요 역사의 숨결이다. 페르세폴리스의 출현은 아케메니언 조(朝)의 신권(神權)정치의 영향에서였다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신에게 선택되어 통치권을 부여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대목들이 페르세폴리스의 요소요소에서 드러나고 있다.

페르세폴리스 비문(碑文) 중에는 다리우스 (Darius) 1세의 신권적 정치욕구의 면모를 드러낸 어귀들이 꽤 많다. 

‘위대하신 신(神)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 그분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행복을 창조하시어 우리 인간에게 주시었다.’ 페르세폴리스비문 서송(序誦)에서

‘왕(王) 다리우스는 고(告)하노라. 행복이 넘치고 말(馬)은 풍족하고 선(善)한 사람들이 사는 왕국 페르샤를 아후라 마즈다는 내게 맡기셨다. 아후라 마즈다의 은총을 입은 짐 다리우스는 이제 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 페르세폴리스 남벽비문(南壁碑文)

‘왕 다리우스는 고(告)하나이다. 아후라 마즈다여, 제게 왕가(王家)의 제신(諸神)들과 함께 힘을 주소서. 아후라 미즈다여, 적군으로부터 기근으로부터 허위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주시와, 이 나라에 여아한 적도 기근도 거짓도 오지 못하도록. 이것을 저는 은혜로 생각하고 왕가의 제신들과 아후라 마즈다 당신께 기도하나이다.’ 페르세폴리스 남쪽벽에 새겨진 글귀다. 

아후라 마즈다 신에 대한 다리우스 1세의 경외(敬畏)와 긍지와 의지(依支)는 절대적이다. 그것은 또한 세계를 정복하려는 아케메니언 왕조의 지배욕구를 신탁(神託)으로 합리화한 그들의 패권주의의 일단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아케메니언 왕조의 이러한 욕구는 페르세폴리스의 석조문화를 탄생하게 하였다고 단언해도 무방할 것 같다. 

알렉산더에 의해 파괴 소실된 부분은 가이드의 설명과 안내책자의 기록에서 찾아내어 아케메니언 왕조시대의 페르세폴리스의 옛 모습을 역부족이나마 복원해 보겠다. 

꺾이어 되돌아오는 백 열 한 개 단(段)의 이중대계단(二重大階段)으로 테라스 (Terrace)에 이르면 구세르구세스의 문(Gate House of Xerxes)을 통과하게 된다. 이곳에서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내국인과 외국사신의 통로가 여기에서부터 갈리게 되는 것이다. 내국인은 다리우스의 명(命)으로 세워진 페르세폴리스의 유적(遺跡) 중 최고(最古) 최대(最大)인 아파다나(Apadana)궁에 이르는 북쪽 계단으로 들어가게 되고, 속국의 사신은 동쪽 출입구로 들어가서 의장병(儀仗兵)의 통로(Prccesaonal Way)를 거쳐 미완성의 문(Unfinished Gate House)으로 해서 기둥 100개(A Hundred Columns)가 지붕을 받쳐주고 있는 건물 사이의 뜰에 당도 비로소 여기에서 노 로우즈(No Rouz) 신년 축제의 행사장인 아파나다(Apadana)궁전의 동쪽계단에 당도하게 된다.

아파나다 궁전의 중뜰 바닥엔 산에서 절단해온 대리석(돌)이 깔렸고 북쪽과 동쪽으로 나 있는 대계단으로 해서 아파다나 궁전의 현관(Porch)과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36개 원주(Columns)의 광대한 홀로 통하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내국의 귀족 명사 유지는 구세르구세스(Xerxes)문에서 곧바로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지만 먼 걸음을 한 페르시안 속국의 사신들은 황제를 알현하는데도 축하행사장에 참가하려 해도 긴 복도와 몇 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 공물(貢物)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신들의 조공(租貢) 행렬을 떠올리자 기원전 5, 6세기 페르샤에 있었던 옛 이야기가 아니라 어쩐지 미군의 온갖 야만적인 행패(동두천, 이태원 여인 살인, 독극물 방류 등등)에도 역대정권이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했던 우리의 초라한 처지로 비춰져 씁쓸했다.

피겨(Figure)로 불을 상징한 난간의 장식, 부조(浮彫)가 페르샤의 번영을 보여주고 있는 중앙계단(Main Stair Way)은 구세르구세스의 문과 이어져 있다.

구세르구세스는 다리우스 1세를 승계한 아케메니언 조(朝)의 제5대 왕이다. 그의 이름을 딴 구세르구세스 문은 높이 10m의 거대한 3개의 출입구와 612m2 넓이의 방으로 되어 있다. 동과 서의 출입구 문주(門柱)에는 사람 얼굴에 날개가 달린 짐승상과 사람 얼굴의 황소(黃牛)상 이 문지기를 하고 있다. 기둥 꼭대기에는 고대 페르시아어 바빌로니아어 에람어로 된 설형문자(楔形文字) 비문(碑文)판이 설치되어 있다.

구세르구세스 문에서 우리는 그 조상(彫像)이 은유하고 있는 아케메니언 왕조의 전지전능의 의지와 용맹, 지(智)와 문화에의 욕구, 인류화합의 도모 등을 읽을 수 있다. 재해와 풍상에 부대껴 균열이 가고 상처투성이기는 하지만 황소 인간과 네발 짐승에 두발 날짐승의 날개를 단 인간의 위용은 당당했다.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고 이 세상에 이루지 못할 게 없으니 곧 신(神) 아후라 마즈다가 아케메니언 조(朝)에 내린 신탁의 기상(氣相)인 것이다.

지난 호에 언급한 다리우스의 궁 아파다 나의 36개 원주의 머리에는 연화문(蓮華文)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그 맨 꼭대기에는 쌍두모우상(雙頭牡牛像)이 얹혀져 있다. 포치의 원주(圓柱)도 서쪽과 북쪽 것에는 쌍두모우(雙頭牡牛)형, 동쪽에는 사자상으로 장식을 했다.

중앙궁전(회의장소)은 페르세폴리스의 중심부에 위치, 그 계단 벽의 부조 또한 걸작이다. 한쪽 벽에는 페르샤인의 고관과 귀족이, 한쪽에는 메디아인이 묘사되어 있다. 회의장에 들어가는 모습들이다. 왕비의 거처는 구세르구세스 시대에 창건되었고 현재는 박물관과 유적(遺跡)본부로 활용되고 있다.

안내자에게 불려간 우리 일행은 그가 가리키는 쪽을 내려다본다. 마치 남산 순환도로에서 언덕 아래 도시를 굽어보는 기분이다. 왕비의 거처가 여느 구조물과 같이 평지에 지어진 게 아니고 페르세폴리스 기단(基壇)에서 꽤 거리를 둔 아래쪽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주목을 요했다. 의상(차도르)에서부터 비롯하여 사회 각 분야에 걸친 이란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 생활양식은 세계의 페미니즘(Feminism) 여성들을 화가 나게 할 것이겠지만 워낙 옹고집에 폐쇄적인 호메이니(Ayatollah Ozma Ruhollah Khomeini)의 영향권에 아직 눌려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란 여성들의 의식에 변화가 초래될지는 의문이다. 

오늘날의 은행과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금은보화를 숨겨두는 국고(國庫)였을까? 어쨌든 페르세폴리스에는 두터운 벽과 보안을 고려한 위치의 금고(창고)가 몇 군데 있다. Royal Treasury, 또는 Store Room of the Royal Treasury로 안내 책에 표기되어 있다.

키러스(Cyrus)며 다리우스(Darius)가 아시아의 동서남북과 지중해 연안 이집트 등의 원정에서 긁어 들인 진귀한 보물들이 그 창고에 가득하였을 테니 알렉산더가 탐을 내었음은 무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루다 구세르구르스 2세(BC 404-359), 3세(BC. 359-337)의 묘는 호화롭게 페르세폴리스 언덕 산자락에 묻혀 있고 키러스는 파사르가다(Pasargadae) 솔로몬 어머니의 묘라고 불리우는 곳에, 다리우스는 루스탐(Naqsh Rustam)에 묻혀 있다. 키러스는 다음 코스인 시라즈와 이스판을 가는 길목에 있고, 다리우스는 페르세폴리스 근처에 있다. 페르세폴리스를 내려오면서 우리 일행은 그들의 무덤에 들렸다. 페르세폴리스의 미완성의 문을 지나면 쌍두의 독수리상이 옛 모습 그 위치에 놓여 있다. 페르세폴리스야말로 인간의 에너지와 창의성과 장인적 테크닉과 상상력이 총동원되어 지배 욕구를 충족시킨 세계 최고의 미술(조각, 부조, 피겨, 문자 등) 현장이다.  


김제영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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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06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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